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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령-박지만, 육영재단 분쟁 2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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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조 원 개발이익 노린 재산싸움 점입가경
공익법인 취지 무색… 수십 억대 적자 운영

육영재단을 둘러싼 박정희 자녀들의 재산 싸움이 점입가경이다. 경영 부실화 명분으로 박근혜 전 이사장을 몰아냈던 박근령·박지만 남매가 2라운드를 펼치는 중. 박지만 측근 인사들의 맹공에 박근령 전 이사장이 수성하는 모양새다. <권호욱 기자>

육영재단을 둘러싼 박정희 자녀들의 재산 싸움이 점입가경이다. 경영 부실화 명분으로 박근혜 전 이사장을 몰아냈던 박근령·박지만 남매가 2라운드를 펼치는 중. 박지만 측근 인사들의 맹공에 박근령 전 이사장이 수성하는 모양새다. <권호욱 기자>

2007년 12월 초 어느 날 밤, 서울 광진구 능동 육영재단 어린이회관 주변에 검은 양복 차림의 괴청년이 여기저기 포진했다. 법령에 어긋난 운영을 시정하라는 교육청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사유로 이사장 승인이 취소되자 이에 불복해 소송을 냈던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 하지만 항소심에서도 패소하자 박 전 이사장과 측근은 대법원 확정 판결이 있을 때까지 이사장직이 유효하다면서 이사장실에 머물며 재단 운영에 개입, 사무국 직원들과 운영권을 두고 마찰을 빚어왔으며 이 과정에서 각종 신고와 고발이 난무했다. 이날도 양측은 사설경호원들을 동원해 용접기로 출입문을 막느니, 소화전으로 이를 끄느니 하며 이사장실 확보 싸움을 전개했다.

양측의 대치가 거듭되고 관할 광진경찰서가 양측의 충돌을 막기 위해 수십 차례 출동한 끝에 그달 11일, 결국 박근령 전 이사장은 어린이회관 이사장실을 떠나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지난해 5월 박근령 육영재단 이사장에 대한 이사장 승인 취소 처분은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육영재단 사태는 진정되는 모양새를 띠었다.

‘3억5천만원’ 차용증으로 박지만 역공
그러나 박 전 이사장은 지난해 11월 1일부터 재단 사무실에 다시 출근하고 있다. 이사장이 아닌 사무국장 직함으로 업무를 보고 있는 상태. 이유는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의 측근 인사들이 속속 육영재단 경영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으로, 재단 운영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육영재단을 둘러싼 박정희 전 대통령 자녀들의 분쟁이 ‘2라운드’에 돌입한 것이다.

서울동부지법은 11월 13일 육영재단 임시이사 9명을 선임했다. 이번 9명의 임시이사를 보면 전원이 박지만씨가 추천한 인물로, 누나인 박 전 이사장이 추천한 9명과 재단 사무국에서 추천한 9명 중 한 명도 선임되지 못했다. 임시이사장은 DJ정부 시절 교육부 차관을 지내고 이후 한경대 총장을 역임한 이원우 안양대 석좌교수가 맡았다.

하지만 12월 23일 어린이회관 3층에서 열린 첫 임시이사회에서 박 회장 측 인사를 사무국장에 앉히려고 하자 노조 측이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최재영 육영재단 노조위원장은 “1년을 끌던 분쟁이 겨우 수습 국면에 왔는데 또다시 분쟁의 한 당사자가 사무국장으로 부임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박근령 전 이사장과 재단 측도 반발하고 있다. 1990년대 육영재단을 둘러싼 ‘박근혜-박근령의 난’ 이후 또다시 ‘박근령-박지만’의 대립이 부각되면서 경영 정상화는 물 건너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때 소송을 벌였던 재단 사무국 직원들은 지금은 박 전 이사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분위기. 어차피 박정희 전 대통령 일가 중 하나가 재단을 맡을 것이라면 박근령 전 이사장이 적임자라는 판단에서다.

박지만씨가 법원에 임시이사진을 추천할 수 있는 자격은 재단 채권인이기 때문. 1990년대 초반 이사직을 수행한 것 외에 그동안 육영재단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던 박지만씨가 재단 측에 빌려준 3억4200만 원에 대한 차용증을 앞세워 임시이사회를 추천해 만들고 재단을 통째로 먹으려 한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차용증에 따르면 2008년 2월 29일 4200만 원과 4월 24일 3억 원을 어린이회관 관장 이름으로 빌린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차용증 어디에도 빌려준 사람은 기명돼 있지 않다. 당시 재단을 장악했던 사무국장과 관장이 개인적으로 써준 차용증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육영재단을 둘러싼 세 남매의 분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69년 4월 고 육영수 여사가 어린이복지사업을 벌일 목적으로 세운 이후 1982년 큰딸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이사장을 맡았지만 방만한 경영 등을 이유로 측근 인사의 사퇴를 요구하는 재단 안팎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쫓기듯 물러났다. 당시 문제의 측근으로 지목된 최모씨는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서 박 전 대표의 ‘아킬레스건’으로 재등장하기도 했다.

세 남매 간의 물고 물리는 재산 싸움
문제는 재단을 둘러싼 분쟁의 핵심에 ‘재산’이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회관의 면적은 약 13만2000㎡(4만 평). 인근에 있는 건국대 야구장을 주상복합으로 개발하면서 남긴 5000억 원보다 큰 개발 차익이 나올 것이라는 게 주변 부동산업계의 판단이다. 3.3㎡당 최저 2500만 원을 잡아도 1조 원의 수익이 남는다는 게 노조 측 설명. 하지만 이는 상당히 보수적인 계산이고 3.3㎡당 8000만 원으로 계산해 3조 원이 넘는다는 게 부동산업자들의 분석이다.

2008년 12월 육영재단 이사장 자리를 놓고 박근령 전 이사장과 사무국 직원들이 충돌하고 있는 와중에 고 육영수 여사의 영정이 바닥에 뒹굴고 있다. <조득진 기자>

2008년 12월 육영재단 이사장 자리를 놓고 박근령 전 이사장과 사무국 직원들이 충돌하고 있는 와중에 고 육영수 여사의 영정이 바닥에 뒹굴고 있다. <조득진 기자>

재단 측 한 인사는 “임시이사회가 꾸려진 이후 벌써 서편 운동장 1만3200㎡에 대해 실측이 들어갔다”면서 “이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의결기관이 필요한데 이번에 꾸린 임시이사회가 바로 그것”이라고 주장했다. 세종대와 건국대 사이, 게다가 지하철역까지 끼고 있는 이곳은 길 건너편 낙후한 로데오거리를 대체할 수 있어 크게 주목받고 있다.

현재 누나 박근령씨와 동생 박지만씨 양측이 서로 제기한 소송만 폭행, 출입금지가처분신청, 통장 가압류 등 20여 건에 달한다. 근령씨 측은 최근 임시이사등기금지가처분 신청, 이사장승인취소처분에 대한취소청구, 위헌제청신청서 등을 법원에 낸 상태다. 이에 대해 동생 지만씨 측은 “말려들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EG 측 한 관계자는 “법적으로 결정난 일을 가족 간 분쟁으로 비쳐지게 하려는 목적”이라며 “육영재단 정관은 사무국장을 이사장이 선임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박 전 이사장의 사무국장직은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설립 취지 맞는 경영 정상화 필요
육영재단에 대한, 구체적으로 누나 근령씨에 대한 동생 지만씨의 공격은 여러 수로 읽힌다. 그중 근령씨가 최근 신동욱 백석문화대 교수와 결혼하는 과정에서 틀어졌다는 분석이다. 측근에 따르면 큰 누나인 박근혜 전 대표가 정치권에서 승승장구할 때 둘째 박근령과 막내 박지만 사이는 돈독했다고 한다. 무대에 오르지 못하고 막 뒤에 있는 두 사람으로서는 동병상련의 정이 있었던 것. 하지만 이번 결혼건을 두고 반대한 누나에 대해 반감이 커졌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결국 근혜씨와 지만씨는 근령씨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표의 입장에서는 10여 년 전만 해도 박지만 회장이 자신의 이미지에 해를 끼쳤다면 최근엔 박근령 전 이사장이 발목을 잡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육영재단 직원은 성동교육청이 지만씨가 추천한 인사들에게 편파적 자세를 보여 이번 법원의 임시이사 선임에 영향을 미쳤다고 의심하고 있다. 육영재단 관계자와 노조 측은 “공무원은 공정한 업무를 수행할 의무가 있는데 성동교육청은 그렇지 않았다”면서 “9년째 감사를 하고 있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만들어놓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박용권 성동교육청 평생교육과 과장은 “그동안 인허가 과정 등 민원 발생시 교육청이 조사하고 이에 대해 이행을 지도했지만 재단 측이 이에 반발해 이후 취소와 소송이 이어진 것”이라며 “이사 선임의 권한은 법원이나 이해 관계자의 문제지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성동교육청에 확인한 결과, 지만씨는 법원에 의해 임시이사가 확정되고 나서 교육청을 찾은 일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교육청 측은 ‘사전 교감설’에 대해선 강력 부인했다. 이원우 신임 이사장 또한 “이사장하던 분이 사무국장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면서 “나는 박지만 회장과 어떤 관계도 없다”고 밝혔다.

사실 지금까지 육영재단을 둘러싼 박정희 전 대통령 자녀들의 분쟁에 대해 여론은 호기심어린 눈길과 남매들에 대한 질타를 보냈을 뿐, 육영재단이 어떤 자금을 기반으로 세워졌는지, 이후 남매들이 이사장 자리를 넘겨주고 받으며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그들이 육영재단을 소유하는 것이 맞는 일인지 정색을 하고 들여다본 적은 없다. 어느 정권도 박정희를 추모하는 세력의 반발을 사고 싶지 않았고,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때문에 명실공히 이 재산을 국고로 환수해 원래 목적에 맞게 써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세 남매의 분쟁으로 육영재단은 매년 70억 원의 적자를 보고 있다. 분쟁이 일어난 2001년부터 시설에 대한 투자와 새로운 사업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답보 상태에 빠져 있다. 어린이회관 과학관에 한참 구식인 286컴퓨터를 전시해놓고 있을 정도고, 일부 임대사업을 제외하곤 회관을 찾는 사람도 거의 없다.

박정희가 남긴 슬픈 유산 ‘육영재단’. 70~80년대 어려운 시기, 국민의 세금으로 지은 이곳이 이젠 그 자녀들의 재산 싸움터로 변질됐다. ‘밝게 뛰놀자’는 현판이 걸린 어린이회관은, 그러나 그 어느 공간보다 을씨년스럽다.

육영재단 관련 일지

1969. 4. 재단법인 육영재단 설립
1970. 7. 어린이회관 준공개관(남산)
1974. 10. 새 어린이회관 부지 3만1238평 사용 허가(서울시)
1974. 10. 새 어린이회관 기공식 거행(현대건설)
1975. 10. 새 어린이회관 준공, 개관 (현 위치)
1976. 12. 서울시로부터 어린이회관 부지 매입(3만1238평)
1982. 10. 박근혜 이사장 취임
1990. 12. 박근령 이사장 취임(박지만 이사 1990~1994)
1994. 6. 서울동부교육청, 육영재단 편법 운영 조사 착수
2001. 12. 성동교육청, 박근령 이사장 취임 취소
2002. 5. 박근령 이사장, 취임 취소 관련 소송 패소
2004. 7.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 박근령 이사장 복귀
2004. 12. 성동교육청, 박근령 이사장 취임 재취소
2007. 1. 성동교육청, 육영재단 이사진 7명 취임 취소
2007. 6. 서울고법, 박근령 이사장 해임 정당 판결
2008. 5. 대법원, 박근령 이사장 해임 정당 판결
2008. 11. 박근령 전 이사장 사무국장으로 출근 시작
2008. 11. 서울동부지법, 박지만 추천 임시이사 9명 선임

<조득진 기자>

<조득진 기자>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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