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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장물유산’ 언제 원소유주에 돌려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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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송·부산일보·영남대 등… 과거사委 “돌려주라” 권고

과거청산범국민회의 등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2005년 7월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경향신문 강탈사건에 관한 입장을 밝히며 정수장학회의 공익재단화를 요구하고 있다. <김대진 기자>

과거청산범국민회의 등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2005년 7월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경향신문 강탈사건에 관한 입장을 밝히며 정수장학회의 공익재단화를 요구하고 있다. <김대진 기자>

육영재단을 둘러싸고 고 박정희 대통령의 자녀들이 벌이는 재산 싸움은 새삼 박 전 대통령의 ‘유산’에 대한 논란을 낳고 있다. ‘박정희 가(家)의 유산’이란 박정희 정권이 부정축재 척결의 명분으로 강압적으로 헌납받은 재산이다. 그 재산은 국고에 귀속되지 않고, 사회 환원이라는 명목으로 세운 정수장학회, 육영재단 등으로 ‘은닉’되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런 일련의 과정을 ‘부정축재의 수단’이라고 규정했다. 겉으로는 공익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사유화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박 전 대통령이 강압적 수단을 동원해 착복한 재산을 그 자녀들이 마치 유산으로 물려받은 양 행세하고 있다는 얘기다.

‘박정희 유산’은 그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정수장학회는 박정희의 유산을 관리·담당하는 ‘지주회사’ 역할을 하고 있다. 정수장학회는 최대 지상파 방송 중 하나인 문화방송의 최대주주다. 또 지방 최대신문인 부산일보를 소유하고 있다.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사옥부지(2385㎡)의 금싸라기 땅도 정수장학회 소유다. 사학명문인 영남대학교 정관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교주(校主)로 적시되어 있다. 육영재단은 어린이회관 등을 소유하고 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강제로 헌납받은 재산을 원소유주에게 돌려주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재산관리자들은 아직 묵묵부답이다.

지주회사 격인 정수장학회
정수장학회는 박정희 일가의 재산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방송과 신문을 ‘소유’하고 있는 조직체다. 문화방송 주식 30%(6만 주), 부산일보 주식 100%(20만 주)를 갖고 있다. 문화방송 주식의 액면가는 5000원이다. 비상장 주식이어서 시세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부산일보 역시 한국 제2의 대도시에서 발간하는 전국 발행부수 5위권의 알짜 신문사다. 임직원이 900명이 넘는다. 특히 정수장학회는 부산일보 임원 임면권을 갖고 있으며 이를 실제 행사하고 있다. 부산일보 주식의 액면가는 1만 원이다. 또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부지 2385㎡(723평)를 소유하고 있다. 이곳은 3.3㎡당 가격이 수천만 원에 이르는 금싸라기 땅이다. 언론노조 정수장학회 공동대책위원회는 2005년 정수장학회 재산을 최소 1조 원 이상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요즘 민영화 논란이 일고 있는 문화방송과 맞물려 문화방송 자산이 10조 원에 이른다는 추산도 있느니만큼 정수장학회의 자산은 수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정수장학회가 이같이 엄청난 언론기업을 소유한 배경은 무엇일까. 박정희 정권은 정수장학회 출범 때부터 인재양성이라는 공익사업 이외의 목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5·16정권’은 ‘5·16쿠데타’의 정당성을 홍보하고 효율적인 국가통제를 위해 언론기관이 필요했다. 물론 정수장학회의 표면적 설립 명분은 부정축재를 척결하고 몰수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속셈은 다른 데 있다. 그것은 재산 강제 환수 과정과 정수장학회의 설립 재원을 보면 알 수 있다.

정수장학회의 전신은 부일장학회다. 박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군부는 1962년 7월 당시 김지태 삼화고무 사장이 설립한 부일장학회를 몰수해 ‘5·16 혁명’을 기린다는 의미로 5·16장학회를 만들었다(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 이후인 1982년 박정희의 정, 육영수의 수 자를 따서 정수장학회로 이름을 고쳤다).

정수장학회의 기본 재산은 전적으로 김지태에게 강제 헌납받은 재산(부산일보 주식 2만 주, 한국문화방송 주식 100% 2만 주 ,부산문화방송 주식 65.5% 1만3100주, 부산 시내 토지 33만485㎡)으로 충당했다. 부일장학회 소유 땅 33만485㎡(10만147평)는 재산을 몰수한 이듬해인 1963년 국방에 무상 양도했다. 이 규모는 당시 15명의 ‘부정축재자’에게서 환수한 42억2800만 환의 8분의 1인 5억4570만 환에 해당하는 것이다.

당시 김지태씨는 부산일보를 운영하는 한편 한국 최초의 민영 상업방송인 부산문화방송을 설립했다. 오늘날의 MBC 전신인 서울문화방송을 설립한 인물이다. 또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33만㎡가 넘는 땅을 투자해서 ‘부일장학재단’을 만들었다. 1958년 설립 이후 4년 동안 1만2464명에게 17억7032환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당시 가장 큰 육영법인인 ‘상이군경장학회’가 연간 300명을 대상으로 1500만 환을 지급한 것과 비교하면 부일장학재단의 규모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진상조사 과정에서 김씨의 유족은 5·16 쿠데타 직전 거사자금을 융통하기 위한 자금 지원 요청을 모른 척한 것이 권력의 미움을 산 이유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5·16쿠데타 직후 부정축재 환수 처분을 받은 기업인 중 재구속됐고 또 구속된상태에서 재산을 헌납한 유일한 기업인이다. 구속 과정도 ‘기획수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떻든 김지태는 부정축재처리법 등 9개 혐의가 적용되어 구속됐고 군사 재판 아래서 7년 구형을 받았다. 구속된 상태에서 그는 5억4579만 환을 헌납한다는 ‘기부승낙서’에 도장을 찍고 석방됐다.

표면상 자진 헌납의 형식을 취했지만 구속 상태였던 김지태가 권력의 재산 헌납 유도 및 압력에 따라 기부승낙서를 작성한 것임이 입증됐다. 김지태는 자서전인 <나의 이력서>와 <문항라 저고리는 비에 젖지 않는다>에서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고 맞서는 경우 (회사) 간부들과 수천 명의 종업원이 희생당할 것이 안타까워 미리 작성해온 각종 양도서에 강제로 날인하자 며칠 만에 경남지구고등군법재판소는 자신을 비롯한 전원에 대해 공소 취소를 선고했다”고 기술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김씨가 강압에 의해 헌납한 재산은 국가의 공식적 절차를 밟지 않고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의 지시에 따라 5·16장학회의 기본 재산으로 출연됐고, 헌납 재산의 소유명의는 국유재산법 등이 절차를 따르지 않고 5·16장학회로 이전됐다”고 밝혔다.

문제는 30여 년 전에 이미 사라진 권력임에도 그가 불법으로 남긴 유산은 그 자녀들의 영향력 아래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부정축재 재산이 유산으로 승계된 것이다. 정수장학회는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1995년부터 2005년까지 10년 동안 이사장을 역임했다.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박준규 전 부산일보 사장, 진혜숙 전 청와대 총무비서 등 박 전 대통령의 측근이 이사를 지냈다. 박 의원은 정치를 본격화하기 위해 2005년 2월 이사장직에서 물러났다. 대신 부친의 의전·공보비서관을 지낸 최필립 전 리비아 대사가 이사장에 선임됐지만 정수장학회의 지배권을 박근혜 의원이 갖고 있다는 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박근혜 의원은 원소유주에게 돌려주라는 진실화해위의 권고에 대해 “공익법인화한 정수장학회를 다시 사회환원하라는 것은 정치 공세”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 논리라면 육영사업을 위한 공익법인인 육영재단을 두고 형제끼리 싸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정희 ‘교주’ 명시된 영남대학교
영남대학교와 영남대학병원을 소유하고 있는 학교법인 영남학원의 정관상 소유권은 박정희 일가에 있다. 아예 학원 정관에 ‘박정희 교주(校主)’라고 소유권자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다.

영남학원의 재산 가치는 정확히 돈으로 환산할 수조차 없다. 하지만 엄연히 학원도 팔고 사는 거래가 이뤄진다.

264만㎡(80만 평)의 광활한 캠퍼스를 가진 영남대는 전국 최대의 교지(校地)를 자랑한다. 학부와 대학원을 합해 2만7000여 명의 재학생이 있다. 거기다가 총 16만 명의 졸업생을 두고 있는 지방사학 명문이다.

영남대는 1968년에 개교했다. 민족사학이던 청구대학과 대구대학을 통합해 개명한 것이다. 청구대학은 최해청이 1950년 ‘제2의 독립운동가 양성’이라는 기치 아래 전 재산을 털어 세운 학교다. 경리직원 비리와 신축 교사 붕괴의 ‘책임’을 져야 했던 재단이사회가 설립자의 의견을 무시한 채 ‘박정희 정권’에 대학을 헌납했다. 최해청은 유고집인 <청구유언>에서 “나의 동의란 하나도 없었다. 전부 일방적 행위였다”고 적고 있다.

대구대학은 경주 부자로 잘 알려진 최준 이 1947년 설립했다. 5·16쿠데타 당시 학교를 위탁받아 운영해오던 이병철 삼성 회장이 1966년 삼성 사카린 밀수사건에 대한 여론 무마용으로 국가에 헌납했다. 이유야 어떻든 민간이 헌납한 재산은 국가에 귀속돼야 했지만 박정희 정권은 학교 통합 후 이름을 바꾼 ‘사학재단’의 운영대리권을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에게 맡겼다. 1980년 신군부가 등장하기 전까지 이 전 부장은 영남학원 이사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퇴임후 대학총장으로 노후를 보내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었고 이에 대한 사전 준비 작업을 이 전 부장이 맡았다는 게 정설이다.

1980년 들어선 신군부는 박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의원에게 영남대 재단 일을 맡겼다. 박 의원은 1980년 3월 재단이사에 취임하고 한 달 만에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그해 11월까지 이사장으로 재임했다. 또 1981년부터 7년여 동안 재단이사로 일했다. 물론 1983년 동생인 근령씨 등을 이사에 앉히는 등 영남대학교는 박 전 대통령의 자녀들이 학교를 운영했다. 사실상 박정희 자녀의 소유였다.

하지만 부정입학과 복지기금 전용 의혹, 박 의원 측근의 학교 운영 개입비리 의혹이 불거지면서 영남대는 1988년 사학 사상 처음으로 국정감사를 받았다. 최근 육영재단을 운영하던 동생이 재단 부정 운영으로 감사를 받고 이사장직에서 해임된 것과 비슷한 과정이다.

이인영 의원(민주당)이 2005년 서울시 교육청을 상대로 한 국정감사에서 정수장학회 운영 실태를 추궁하고 있다.

이인영 의원(민주당)이 2005년 서울시 교육청을 상대로 한 국정감사에서 정수장학회 운영 실태를 추궁하고 있다.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 사건을 계기로 박 의원은 영남대 운영에서 손을 떼게 됐다. 관선이사를 투입한 탓이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대변인 역할을 맡았던 김재원 전 의원은 “박 후보는 당시 학교 운영에 관여한 일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아니 법적으로 학교 이사장이, 이사가 학교 경영에 책임이 없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비리로 인해 학교 재단에서 물러난 박정희 일가는 최근 소유권 회복을 위한 암중모색 중이다. 이는 비리로 인해 빼앗긴 대학을 돌려받으려는 최근 일부 구 재단의 움직임과 맞물려 있다. ‘영남대학교의 교주는 박정희’라는 정관을 내세워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정권 교체 이후 사회적 보수화 분위기도 한몫하고 있다. 여기에도 박정희 세 자녀의 보이지 않는 갈등이 내재돼 있다.

먼저 박근령씨는 2002년 영남학원 이사장 앞으로 보낸 공문에서 100억 원 기부와 1000억 원 모금 출연을 약속하면서 재단이사의 재선임을 요구했다. 사실상 1100억 원을 출연하는 대가로 재단운영권을 넘겨달라는 요구였다. 박씨는 2006년 말 영남학원 임시이사 직무행정정지 가처분신청을 했다. 이듬해에는 서울행정법원에 영남학원 임시이사 선임취소 소송을 냈다.
이에 서울행정법원은 “원고에게는 소송을 제기할 법률상 이해관계가 없다”며 각하 판결을 했다. 관선이사 직전의 임원이 아니었다는 게 이유였다.

특히 최근 교육과학기술부의 흐름으로 보아 관선이사 체제도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는 2007년 4월 영남대 재단을 임시이사 파견 사유소멸 대학으로 판정했다. 어떤 형태로든 ‘관선이사 체제 이후’를 논의해야 하는 실정이다.

박근혜 의원은 관선이사 직전까지 이사로 재임했다. 따라서 앞서 여동생인 근령씨가 제기한 소송 결과로 보면 박 의원이 소송한다면 대학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법조계 안팎의 시각이다.

실제 박 의원의 영남대 ‘접수’를 위한 사회적 분위기도 조성되고 있다. 영남학원 정상화추진위원회는 지난해 11월 27일 “영남대 교수와 직원, 동창회 등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어 구 재단이 새로운 재단에 참여할 수 있도록 결정했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는 사실상 박 의원의 복귀를 뜻한다. 1988년 당시 이사 7명 가운데 박 의원을 제외하고 대부분 세상을 떠났거나 고령이기 때문이다. 학교 내 구성원의 여론 정지작업도 착실히 추진되고 있다. 노석균 영남대 정상화추진위원장은 “학원정상화에 책임질 당사자들에게 수렴된 의견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구재단의 일원인 박 의원과도 학원정상화 방안에 대해 협의하고 있음을 암시했다.

하지만 박 전 의원의 영남대 복귀가 순탄하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학원 비리로 물러난 당사자가 학교를 다시 운영한다는 정서와 박 의원의 정치적 부담 때문이다. 일부 교수와 학생의 반발도 예상된다.

경향신문도 탄압 대상
경향신문사를 강제 매각하고 사옥 부지의 일부가 정수장학회로 넘어가는 과정은 권력에 의한 언론 탄압이 얼마나 가혹하고 조직적인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2007년 국정원 과거사진실위원회는 경향신문 매각사건을 두고 “당시 정황을 볼 때, 이준구(경향신문 전 사주)가 경향신문에서 손을 떼게 하라는 박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중앙정보부가 계획을 수립하여 집행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이 축재한 재산은 비록 학교법인, 장학재단 형태지만 엄청난 규모다. 박 의원 측은 “이미 사회에 환원한 공익법인”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와 거리가 멀다. 이들 재산은 실제 소유와 거래가 있는 재산이다. 세 자녀가 치열하게 싸움을 벌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비록 겉으로 드러난 것은 그중 규모가 작은 육영재단 문제로 싸움을 벌이고 있지만 그 대상이 훨씬 규모가 큰 부산일보, 정수장학회, 영남대학에까지 이르면 싸움의 양상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문제는 학원 운영에서 비리로 이사장직에서 물러난 사람이, 육영재단 운영에서 불법으로 해임된 사람이 단지 박 전 대통령의 자녀라고 계속 이 유산을 관리해야 하는지다. 더구나 최근 언론 전개 상황으로 보면 박 전 대통령의 자녀는 최대 언론, 학원재벌이 될지 모른다. 이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이 축재한 이들 재산은 모두 명실상부하게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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