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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라의 진화, 어디까지 이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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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착된 진지전에서 기동전으로… 유비쿼터스화 진행될 듯

촛불시위가 열리던 6월, 촛불시위를 마친 참가자들이 세종로 네거리 광장에서 고인 빗물에 슬라이딩을 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촛불시위가 열리던 6월, 촛불시위를 마친 참가자들이 세종로 네거리 광장에서 고인 빗물에 슬라이딩을 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2008년 대한민국의 역사는 아고라를 빼놓고 논할 수 없다. 올 상반기를 휩쓸었던 촛불시위의 도화선을 아고리언 안단테가 당겼다. 시위판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급 시민단체들을 제치고 두 달이 넘는 촛불대장정을 이끈 주역도 아고리언들이었다. 하반기로 접어들자 이번에는 미네르바라는 아고리언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과 환율 급등을 예언하면서 일약 스타급 논객으로 떠오른 미네르바는 경제대통령 1순위 후보였던 이명박 대통령을 가볍게 제치고 누리꾼 사이에서 진정한 경제대통령으로 추앙받았다. 이렇듯 아고라는 국민 여론의 진원지였다. 아고라는 기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취재 대상이었으며, 학자들에게는 경이로운 연구 대상이었다. 심지어 수사기관에도 아고라는 가장 예의주시해야 할 관찰 대상이었다. 그렇게 아고라는 올 한 해 대한민국 역사의 한복판에 우뚝 서 있었다.

블로그, RSS, 북마크 등 다양한 모습
원래 아고라는 고대 그리스 시민들이 직접 민주주의를 펼쳤던 광장을 가리키는 말이다. 돌이켜보면 광장은 사실 오랜 옛날부터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삶의 터전이었다. 농악, 마당놀이, 고싸움, 강강술래 등 지금까지 맥을 이어오고 있는 전통놀이들은 대부분 광장을 무대로 한 것이다. 그렇다고 광장이 꼭 물리적으로 탁 트인 넓은 공간이어야만 할 필요는 없다. 광장 문화는 참여와 소통, 그리고 규율되지 않은 자유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골 장터에 펼쳐진 난장, 마을 아낙네들이 모여 수다 떠는 개울가 빨래터, 어르신네들은 마주앉아 장기를 두고 그 옆에서 아이들이 뛰노는 느티나무 그늘 밑도 넓은 의미에서 모두 우리네 오랜 광장이었다.

그러나 현대 정치사의 시작과 함께 광장은 금기의 공간으로 바뀌어 버렸다. 광장으로의 자유로운 참여와 소통은 체제 전복을 노리는 불순한 집단들의 도발이거나 방종한 시민들의 무절제한 행위 따위로 간주되었다. 광장의 문은 집시법과 도로교통법이라는 자물쇠에 채워진 채 굳게 닫혀버렸다. 그나마 이따금 개방된 광장은 보무당당한 위용을 자랑하며 퍼레이드를 벌이는 국군 장병들이나 국위 선양을 하고 금의환향한 올림픽 태극 전사들을 위한 무대일 뿐이었다. 시민들은 광장의 주인공이 아니라 연도에 도열해 태극기를 흔들고 박수갈채를 보내는 구경꾼에 머물렀다. 그곳에는 오로지 규율과 질서만 통용될 뿐이었다. 광장문화의 핵심인 참여와 소통, 그리고 자유가 끼어들 틈은 어디에도 없었다. 가장 일상적인 삶의 터전이었던 광장은 이렇게 아무나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금지된 공간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그런데 인터넷이란 새로운 공간이 열렸다. 시민들은 폐쇄된 오프라인 광장을 대신할 수 있는 대안의 공간을 인터넷에서 찾았다.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잘 발달된 인터넷 게시판이 온라인 광장을 일군 인프라였다. 매일 수많은 누리꾼이 온라인 광장에 접속해 다양한 목소리를 쏟아냈다. 때로는 누리꾼 사이에 격론이 벌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관심과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따로 모여 온라인 커뮤니티를 형성하기도 했다. 인터넷 게시판을 근간으로 형성된 온라인 광장은 이렇게 자유로운 정치적 의사 표현이 이루어지는 공론장이자 누리꾼 여론의 진원지로 발전해갔다. 그리고 누리꾼은 이 새로운 광장을 통해 서서히 참여와 소통의 문화를 만들어나갔다. 본래 광장의 주인이었던 시민들이 다시 온라인 광장으로 귀환한 것이다.

모임과 흩어짐 거듭하는 다중
인터넷은 늘 끊임없는 변화와 흐름을 특징으로 하는 공간이다. 온라인 광장의 주 무대와 주인공 역시 변화와 흐름을 거듭하며 진화해왔다. 인터넷 초창기 온라인 광장의 개척자는 각종 시사웹진과 인터넷 언론 매체를 무대로 활약하던 사이버 논객이었다. 2002년 대선은 이들의 활동이 정점에 달하던 시기였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정국을 즈음해서는 디시인사이드, 웃긴대학, 미디어몹 등 시사 패러디 사이트를 중심으로 형성된 이른바 ‘폐인’들이 새롭게 온라인 광장을 이끌었다. 이들 ‘폐인’ 집단은 사이버 논객이 토해내는 장문의 글을 ‘세 줄로 요약’하라며 일축하고, 촌철살인의 합성사진을 무기로 온라인 광장을 장악해나갔다.

포털의 영향력이 본격화하던 2006년 이후 온라인 광장은 다시 한 번 변화를 맞는다. 포털사이트 다음에 세워진 아고라가 말 그대로 광장으로서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부터다. 포털이기에 가능했던 방대한 이용자 수와 폭넓은 대중적 인지도 등 ‘규모의 경제’가 온라인 광장의 위력을 한층 증폭시켰다. 아고라의 주역인 아고리언들은 과거 사이버 논객이나 폐인들과 달리 특정 부류의 누리꾼이 아니다. 그들은 포털을 이용하는 누리꾼 일반이며, 네그리(A. Negri)가 정의했듯이 다양한 개별 주체들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다중(multitudes)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아고라는 애초부터 포털사이트 다음 안에 http://agora.media. daum.net란 주소로만 존재하는 고착된 공간이 아니었다. 온라인 광장으로서의 아고라는 앞으로도 또 다른 형태로 계속 변화하고 진화할 것이다. 그람시(A. Gramsci)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금까지 소규모 시사사이트에서 대형 포털까지 온라인 광장이 외연을 확장시켜온 과정은 곧 누리꾼 여론의 진지전이 확장되어간 과정이기도 했다. 그리고 포털에 구축한 아고라는 진지전의 가장 완성된 형태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이어질 아고라의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그것은 기동전으로의 전환일 것이다. 다중으로서의 개별 주체들이 네트워크를 타고 유연하게 모임과 흩어짐을 거듭하면서 인터넷 공간 곳곳에 온라인 광장이 출몰하는 아고라의 유비쿼터스화가 진행될 것이다. 고착된 진지로서의 아고라가 아니라 블로그, RSS, 북마크, 개인화 포털 등 다양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기반으로 유연하게 기동하는 흐름의 아고라다. 이미 촛불시위에서 블로거들은 아고리언들과는 다른 한 축에서 흐름의 아고라를 형성해보였다. 이미 블로고스피어에는 아고라 논객 미네르바 못지않은 쟁쟁한 파워 블로거들이 사이버 강호를 누비고 있다.

촛불에 놀라고 미네르바에 또 놀란 정부 여당이 갖가지 인터넷 통제 장치를 내놓고 있다. 어쩌면 다음 아고라가 가장 첫 번째 타깃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결국 이 모두 부질없는 헛수고라는 점이다. 설령 진지로서의 아고라가 와해되더라도 흐르는 물처럼 결코 손에 움켜쥘 수 없는 새로운 아고라가 쑥쑥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경배<경희사이버대학교 NGO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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