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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영화로 역사를 바로잡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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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100부작 다큐드라마 제작…실체 없이 소리만 요란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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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뉴라이트 전국연합(뉴라이트)이 거장 PD, 작가와 함께 한국 현대사를 재조명하는 100부작 다큐드라마를 제작한다고 해서 화제다. 그렇지 않아도 뉴라이트의 역사 교과서 수정작업 그리고 일부 극우 강사의 역사 특강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에서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TV 드라마까지 보수색을 칠하겠다는 의도여서 관심이 집중됐다.

제작비 300억,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첫 보도는 12월 2일 <조선일보> 사회면에 실렸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이 드라마의 가제는 <남산 위의 저 소나무>로 1945년 해방 직후부터 2007년 이명박 정권 탄생 직전까지 다룬다. 제작비는 300억여 원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기금을 모금하여 충당할 예정이라는 것이 기사의 요지다.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취재를 시작하면서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은, 뉴라이트와 이영신(80) 작가를 제외한 나머지 관계자들은 뉴라이트와 연관을 되도록 부정하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색깔이 확실한 단체가 중심이 된 드라마에 가담했다는 세간의 부정적 시각에 부담을 느끼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제작 총책임을 맡고 있는 김진철(전 KBS 편성제작 PD)씨는 “나와 다큐멘터리 감독인 정수웅 감독이 현대사를 객관적으로 다룬 드라마를 만들자는 데 뜻을 같이해 기획안을 만들었고, 뉴라이트는 자기네가 하고 있는 좌편향 역사 교과서 바로잡기와 맥이 같으니까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겠다고 한 것”이라며 “뉴라이트와 <조선일보>가 너무 앞서 나갔다”고 뉴라이트의 역할을 애써 축소했다.

또 연출을 맡기로 한 장기오(62) PD(전 KBS드라마제작국장)와 장형일(70) PD는 “연출 제안이 와서 하겠다고는 했지만 뉴라이트가 개입한 드라마인 줄은 전혀 몰랐다”고 잘라 말했다. 특히 장형일 PD는 “역사를 바르게 세울 수 있는 다큐드라마라고 해서 하겠다고 한 것인데 너무 색깔을 띠면 (연출을) 맡을 수 없지 않겠느냐”면서 “뉴라이트를 세우면 색안경을 안 끼고 볼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장기오 PD는 1971년 KBS에 입사해 시리즈를 연출했고, 장형일 PD 역시 SBS <야인시대> <장길산> 등으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원로 연출자다.

하지만 뉴라이트 임헌조(42) 사무처장은 “뉴라이트가 드라마를 제작하기 위해 6개월 전부터 방송관계자들을 접촉하면서 아이디어를 모았고, 2개월 전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정리했으며 지금은 기획 마무리 단계다”라며 “뉴라이트가 이런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고 먼저 제안했고, 객관적인 현대사를 그린 드라마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 분들이 모인 것”이라고 밝혔다.

뉴라이트를 비롯해 보수인사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산 드라마 <서울1945>. |경향신문

뉴라이트를 비롯해 보수인사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산 드라마 <서울1945>. |경향신문

임 사무처장에 따르면, 뉴라이트는 드라마뿐 아니라 영화 제작도 추진 중이다. ‘인천상륙작전’을 주제로 한 영화로 현재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 2005년 9월 진보세력과 보수세력이 인천자유공원에서 맥아더동상 철거 문제로 충돌하는 사태가 벌어진 후 맥아더에 대한 국민의 고정관념이 바뀌었고 그 결과 사회가 좌경화하고 있다는 게 뉴라이트의 판단이다.

임 사무처장은 “나름대로 알아본 바에 따르면, 진보 좌파 진영에서는 반미투쟁의 아이콘으로 맥아더를 주시했고 맥아더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기 위해 동상을 끌어내리려고 한 것”이라며 “연합군과 국군의 영웅담을 극적으로 묘사하면 국민의 잘못된 안보관과 국가관이 조금이라도 회복되지 않을까 하는 심정에서 영화제작을 추진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돈을 내고 극장을 찾는 관객만 관람할 수 있는 반면, 드라마는 누구나 안방에서 볼 수 있다는 데 착안해 드라마 제작을 병행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어쨌든 드라마 제작은 현재 초기 단계다. 아직 연출자나 작가가 계약서에 사인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드라마를 인물 중심으로 갈지, 사건 중심으로 갈지 혹은 시대순으로 그릴지조차 정한 바가 없다.

“뉴라이트 개입 전혀 몰랐다” 난색
하지만 지금까지 근현대사를 다룬 드라마가 이념적으로 편향돼 있었다고 믿는 이들이 뭉친 것은 사실이다. 뉴라이트뿐 아니라 김진철씨, 장기오 PD, 이영신 작가는 2006년 방영한 KBS 1TV <서울 1945>가 특히 좌편향적이라고 말한다. <서울 1945>의 주인공은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에서 공산주의자로 변모하는 좌파 지식인으로 설정돼 있고 여운형은 훌륭한 민족주의자로, 이승만은 정권을 획득하기 위해 친일파를 이용하는 인물로 묘사돼, 드라마 방영 내내 좌우이념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아들 이인수 박사와 장택상 전 수도경찰청장의 딸은 드라마가 역사를 왜곡했다며 KBS 임원진과 제작진을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뉴라이트를 포함해 드라마 <남산 위의 저 소나무>와 관련해 거명된 이들은 한결같이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객관적인 역사를 그리겠다”고는 말한다. 김진철씨와 장형일 PD는 “양쪽의 입장을 취합해 중간자적 입장에서 그릴 것이고, 논쟁이 있을 수 있는 부분은 양쪽의 주장을 다 보여줌으로써 판단을 시청자가 하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뉴라이트는 이 드라마의 역사적 오류를 막기 위해 역사학자와 정치학과 교수를 아우르는 자문단을 구성했다고 한다. 그런데 자문단의 중심 인물은 김광동 나라정책원장이다. 김 원장은 이명박 정부의 대통령인수위 정무분과위 전문위원이다. 김 원장이 친MB 성향인데다 뉴라이트 소속인물임을 감안하면 드라마에 대한 자문이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청년시절의 김일성.

청년시절의 김일성.

이 드라마의 집필자로 꼽힌 이영신 작가는 40년 가까이 다큐라이터로서 라디오드라마 <광복 20년>과 <격동 30년>, TV드라마 <제3공화국>, <3김 시대> 등을 집필한 팔순 노장의 원로작가다. 황해 안악 출신인 이영신 작가는 가족과 외가가 6·25 때 공산당에 몰살당했다고 한다. 좌익에 치를 떨 수밖에 없는 개인사를 지닌 인물이다.

그는 “엉터리로 만든 <서울 1945>를 보면서 굉장히 (속이) 끓었다”고 말했다. 이씨의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는 다른 한 가지는 그가 막 끝낸 소설이다. 그는 최근 김일성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소설 <김일성정전> 집필을 마무리했다. <김일성정전>은 그가 1970년부터 1975년까지 독립투쟁의 비화를 그린 드라마(<백두산아 말하라> <백두산은 알고 있다>)를 집필하며 국내는 물론 일본과 중국에 있는 250여 명의 독립운동가를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쓴 것이라고 한다. 그 내용은 김일성은 독립운동을 한 적이 없고, 마적단 두목이었으며 그의 아버지는 만주에서 아편을 밀수하다 독립운동단체에 피살됐다는, 학계에서 인정하지 않는 지극히 극우적 내용이다. 이영신 작가가 뉴라이트가 중심이 된 드라마 집필자로 제안을 받은 것도 이 소설이 계기가 된 것이다. 뉴라이트가 올해 중 이 소설을 출판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이영신 작가는 “제목을 바꿔야 하지만, 드라마(<남산 위의 저 소나무>)는 남과 북을 아우르는 이야기가 될 것”이라며 “난 좌경화하는 사람들이 역사를 제대로 알고 그러면 좋겠다”고 말했다.

인천상륙작전 다룬 영화도 만들기로
드라마 제작비와 관련해 뉴라이트 측은 방송사가 지원하는 제작비를 초과하는 비용(일반적으로 외주제작으로 완성하는 드라마도 방송사가 제작비를 대는 게 원칙이지만 방송사가 지불하는 제작비는 실제 제작비의 절반가량에 불과한 게 현실이다)은 국민성금 그리고 여러 단체와 기업의 후원 및 협찬으로 채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뉴라이트 측과 제작사로 지목된 드라마파크가 이 부분을 맡겠다는 것이다. 이 드라마와 관련한 것은 아니지만 12월 10일 100여 개 보수단체가 연합해 세종문화회관에서 ‘시민사회단체 공동후원행사’를 열기도 했다(상자 기사 참조).

한편 드라마의 제작 여부는 해당 드라마를 방송할 방송사가 있는지에도 달려 있다. <조선일보>는 드라마파크 김강원 대표의 말을 인용해 이 드라마의 기획안을 우선 KBS에 제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정작 KBS 이웅진 드라마기획팀장이나 서재석 편성기획팀장은 “전혀 들은 바 없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뉴라이트 임헌조 사무처장은 “KBS에서 편성확인서를 받은 상태는 아니지만 드라마를 제작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내년 중에는 방송할 수 있을것”이라며 거듭 자신감을 피력했다.

결론적으로, 뉴라이트의 드라마는 드라마 원고가 한 줄도 없고(이영신 작가는 이 드라마와 관련해 쓴 원고는 없다고 밝혔고, 김진철씨는 누구를 작가로 선정할지 아직 확정된 게 아니라고 했다), 연출자도 정확히 정해지지 않은(장형일 PD는 다른 드라마를 연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아직은 그야말로 실체가 뚜렷하지 않은 이야기다.

뉴라이트는 제작과 방송을 확신하고 있지만 제작진이 정확히 꾸려지기도 전에 구설에 오른 이 드라마가 과연 제대로 촬영에 돌입할 수 있을지, 또 완성된다면 얼마나 이념적 색깔을 뺀 채 객관적으로 우리 현대사를 조명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뉴라이트가 마련한 ‘시민사회단체 공동후원행사’

<김석구 기자>

<김석구 기자>

12월 10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는 “옳소!” “맞소!” “파이팅!”과 같은 감탄사가 연방 터져나왔다. 뉴라이트전국연합 등 대표적인 보수단체 100여 개가 개최한 대규모 후원행사에서 참석자들이 내지른 소리다. 객석 사이에서는 “에구, 빨갱이들” “속 시원하다!”라는 말도 간간이 들려왔다.

이날 행사에는 뉴라이트전국연합 소속 20여 개, 국민행동본부 관련 20여 개, 탈북자 단체 30여 개, 반국가교육척결국민연합 소속 20여 개,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모임, 인터넷언론 등 100여 개 국내 보수단체가 참여했다. 한나라당 공성진·심재철·전여옥·장광근·현경병 의원 등 국회의원 4명이 참석했고, 청와대에서는 임삼진 시민사회비서관이 참석했다.

이명박 정부의 주요 지지세력인 보수단체들이 공개적으로 이 같은 대규모 후원행사를 벌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 국민행동본부 최인식 사무총장은 “좌파정권 10년 동안 소위 말하는 진보 진영, 실상은 종북 반헌법 반국가 단체들이 정권의 비호 아래 엄청난 모금을 하고 변형된 방식으로 기업 지원을 받아온 반면 정작 대한민국 헌법과 역사를 긍정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애국 진영은 그야말로 꼴통 대접을 받고 폄훼되면서 이런 자리를 가져본 일이 없다”면서 “우리 애국운동단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어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장에 기업을 대표해 참여한 사람은 없었다. 주최 측은 행사에 앞서 삼성·LG·SK 등 150여 개 대기업을 포함해 초청장 200여 장을 발송했다고 밝혔다. 후원금은 재정난을 겪고 있는 시민사회단체들에 대한 운영비 지원 등에 일정 부분 쓰이고 나머지는 향후 보수단체들의 행사·사업기금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한다. 뉴라이트전국연합 최진학 정책실장은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오늘 행사에 500여 명 정도가 후원에 참여했다”면서 “목표액은 5000만 원 정도인데 기업 후원과 최종 후원금 액수는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뉴라이트전국연합 임헌조 사무처장은 “이번 행사는 후원금 모금 목적 외 보수우파시민사회단체가 네트워크를 구성해 연대활동을 하기 구심점 구축의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 가장 많은 치사를 받고 소개된 이는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이다. 전 의원은 “저는 여기 오면서 이 세종홀 주변이 차가 막히지 않을까, 사람이 너무 많아서 힘들지 않을까, 또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너무 많이 와서 안 가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왔는데 참 순진했다. 와보니까 (그렇지 않아서) 가슴이 무척 아프다”면서 “이제 정권교체를 여러분의 힘으로 당이 이뤘으나 한나라당에 원했던 것은 올바르고 반듯한 대한민국이지 권력을 나눠먹는 모습은 원치 않았다고 감히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장에서 가장 열렬한 반응을 얻은 인물은 라이트코리아 봉태홍 대표. 그는 “우리의 목표는 북과 내통해 대한민국 파괴활동을 하고 있는 좌파척결”이라며 “국민이 일 잘하라고 172석을 줬는데 한나라당은 보수단체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쪽박을 깨지 말아달라”고 외쳤고, 객석에서는 장단이라도 맞추듯 “옳소!” “열받아 한나라당!” 하는 함성이 터져나왔다.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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