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어떤 방식으로든 환경운동을 평생 할 각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다시 사람이 희망이다

현장에서 움트는 시민사회운동의 새싹들

언제부터인가 시민사회운동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여전히 논평·성명을 내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하지만 여론은 그들을 외면하고 있다. 운동 가요 한 자락을 빌리면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끼는” 상황이다. ‘시민운동의 위기’란 말조차 식상할 지경이다. 보수정권으로 교체된 정치·사회적 분위기와 보수언론의 흠집내기 탓일 수도 있다. 언론에서는 시민운동단체 내의 부정비리와 관련한 기사를 대서특필한다. ‘그러면 그렇지’라는 냉소가 시민운동 주변에 흐른다. 하지만 만신창이가 된 시민운동에서 새로운 희망의 싹을 주목해야 한다. 그 싹은 여전히 지역에서 그리고 새로운 대안운동에서 길을 찾는 ‘사람’이다. 거창한 이념도, 허장성세의 조직론도 아니다. 시민운동의 현장과 지역 그리고 사람을 통해 미래의 희망을 본다.<편집자 주>

녹색연합 신입 활동가 손형진

손형진

손형진

연세대 환경공학과 4학년인 손형진(27)씨는 내년 2월 대학을 졸업한다. 손씨는 12월 1일부터 녹색연합으로 출근하고 있다. 고용 한파가 몰아치는 시절 일자리를 찾은 셈이지만, 그에게 녹색연합은 단순한 직장이 아니다. 대학 졸업반 학생들은 취업하기 위해 평균 수십 개 기업체에 이력서를 쓴다. 그러나 그는 일반 기업체에는 지원하지 않았다. 그가 이력서를 제출한 곳은 녹색연합이 유일하다. 손씨에게 녹색연합 활동가는 대학 신입생 시절부터 조금씩 키워온 꿈의 결실이기 때문이다.

손씨가 녹색연합 활동가가 되기로 한 이유는 간명하고 견고하다. 그는 “내가 원하는 것과 직업이 일치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출발은 대학 입학 후 총학생회에서 활동하면서다. 소위 ‘운동권’ 총학이다. 사회 문제에 대해 또래들보다 조금 일찍 눈을 떴다. 88만 원 세대를 조여오는 경제적 어려움들이 손씨를 학점과 토익 관리에 매달리게 만들 수도 있었지만, 동아리연합회 활동은 우리 사회의 민감한 이슈들에 대한 자의식이 무뎌지는 걸 막아주는 힘이 됐다. 작년에는 친구 셋을 모아 ‘학생연구소‘를 만들어 독자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사회적인 이슈를 대학생의 관점에서 논의하는 장을 만들고 성과가 축적되면 자료집을 내볼 요량이었다. 손씨를 포함, 4명이 각기 환경, 경제, 국제정세, 교육을 맡았다. 1년이 지난 지금 학생연구소 인원은 60명으로 불었다.

녹색연합에서 자원봉사활동을 시작한 것도 비슷한 무렵이다. 작년부터 손씨는 녹색연합이 회원들에게 보내는 소식지를 만드는 일을 했다. 그가 자원봉사라는 인연만으로 녹색연합 활동가를 지망한 것은 아니다. 환경운동가를 꿈꾸는 그에게 녹색연합은 환경운동에 대해 가장 선명한 관점을 지니고 있는 단체로 여겨졌다. 그는 “더 큰 규모의 환경단체도 있지만, 녹색연합이 더 생태적이고 운동 목표도 뚜렷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직 수습 교육도 끝나지 않은 새내기 활동가가 생각하는 시민사회운동의 현재는 어떤 모습일까. 손씨는 “환경단체에만 국한해서 말한다면 높은 수준의 시민의식을 뒷받침할 만한 시스템이 제도화되어 있지 않다”면서 “정부와 시민 사이의 빈 틈을 시민단체가 메워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민사회운동을 압박하는 현 정부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그는 “시민들의 입과 귀를 막으려고 할 게 아니라 시민단체와 소통하면서 필요하다면 함께 정책을 만들 수도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손씨는 시민단체의 활동성이 예전 같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이제 막 시작한 터라 잘 모르겠다”고 말했지만, 시민단체에 대한 일각의 비판에 대해서는 단호했다. 그는 “일부에서는 시민단체가 하는 일들이 시민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서 “녹색연합만 하더라도 시민참여국이 가장 조직 규모가 크고 많은 사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단체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열린 사고’라고 강조했다. 그는 “시민단체는 어떤 얘기에 대해서도 열려 있어야 하고, 민주적이고 투명하며, 시민과 함께해야 한다”면서 “그래야만 창의적이고 창발적인 시민운동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녹색연합 공채 18기다. 11월 24일 최종 합격자 발표가 난 2009년 공채에는 200여 명이 지원해 손씨를 포함, 세 사람이 3단계 전형을 거쳐 합격했다. 손씨는 ‘연봉이 얼마냐’고 묻는 친구들에게 “죽지 않을 만큼 받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사회 생활을 기업체가 아닌 시민단체에서 시작함으로써 치러야 하는 기회비용에 대한 고민이 없는지 궁금했다. 그는 기자의 의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환경운동을 평생 할 각오”라면서 “환경 교육에 특히 관심이 많다. 생활 속 생태운동으로 확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답했다.

<글·사진 정원식 기자 achwsik@kyunghyang.com>

관련기사

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