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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으로 눈을 돌리니 새로운 길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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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기준 희망제작소 지역홍보센터 센터장

원기준

원기준

그곳에 가면 지역에 관한 ‘모든 정보’가 있다. 천장까지 빼곡히 들어찬 칸마다 지역별 관광·축제·문화 정보를 담은 소책자와 광고지가 가득하다. 지역 특산물도 판매한다.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층에 자리 잡은 지역홍보센터는 희망제작소가 한국지역진흥재단의 위탁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처음 개관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썰렁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은 썩 다르다. 꽤 많은 정보가 모였고, 방문객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이곳은 원기준(48)씨가 소장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한국지역진흥재단은 246개 지자체가 공동으로 설립한 행정안전부 산하 재단. 지역홍보센터는 대표적인 민관협력 사업, 그러니까 거버넌스 모델에 근거해 만든 홍보센터다. 운영을 민간씽크탱크인 희망제작소에서 맡고 있는 것이다. 각종 서류나 실제 운영하는 데 지자체나 진흥재단 공무원들의 협조는 필수다. 원소장은 최근 벌어진 ‘환경연합 공금횡령 비리사건’이 “시민단체의 장점이라고 생각한 ‘저비용 고효율’이 거꾸로 화로 닥친 것”으로 풀이했다. “공무원은 하다못해 물건 하나 사더라도 그것과 관련해 시장 조사를 한 다음 최저가를 구매하는 식입니다. 우리가 보기엔 너무 비효율적이고, 그런 과정 자체가 힘든 것이죠. 예를 들어 1000원을 집행하기 위해 2000원을 쓰는 경우가 많죠. 그동안 우리는 1000원을 쓰기 위해서는 100원만 지출하는 효율성을 장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작은 규모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규모가 커지다 보니 큰 문제가 된 거죠.”

원 소장은 태백의 탄광지역 지역활동가로 더 유명했다. 총신대를 졸업하고 아는 목사의 소개로 태백으로 내려갔는데 가자마자 ‘조직사건’에 휘말렸다. 본의 아니게 1986년 말부터 ‘공개적인 재야’ 활동을 하게 됐다.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에 탄광지역에서 파업이 많이 일어났어요. 노동운동과 관련한 공개 단체의 대표다 보니 많은 책임을 덮어쓰게 되었지요. 국가보안법 위반, 노동쟁의조정법 위반으로 1년 6개월을 살고 나와 보니 바야흐로 탄광이 문을 닫고 있었습니다.”

그는 1991년 광산지역 사회연구소 활동을 하면서 지역 문제에 눈을 떴다. 노동운동가에서 지역운동가로 거듭난 것이다. 1995년 폐광지역 개발지원 특별법을 둘러싼 논란을 거쳐 원 소장은 더 지역을 천착해 들어간다.

“카지노 이권이 커지면서 지역 갈등이 일어났어요. 주민운동이 파탄난 거죠. 그 과정에서 저도 개인적으로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자괴감도 생기고.”

그는 더 지역운동으로 내려간다. 2000년 강원 태백시 철암마을로 이주한 그는 전혀 다른 차원의 주민운동을 전개한다. 마을을 통째로 박물관으로 만드는 운동이었다. 당시 쟁점은 길을 새로 낼지, 아니면 길옆의 집들을 보존해서 마을을 탄광촌 박물관으로 만들지였다. 하지만 대부분 집주인은 길을 낼 때 집을 허는 것이 더 보상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문화관광부에서 끌어온 예산은 반려했고, 지금은 길을 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원 소장의 지역운동은 실패만 되풀이한 역사는 아니었다. 갈 데 없는 아이들, 조손가정 어린이들을 위해 ‘아이들이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로 목표를 바꾸고 ‘철암어린이도서관’을 만들었다. 또 마을을 통째로 공부방으로 만들었다.

“어린아이들이 마을 어른들을 감동시키고 변화의 큰 자극제 역할을 했다고 할까요. 철암 마을 분들이 아이들 때문에 보람 있어 하고, 또 그 아이들 때문에 많이 배웠습니다. 이제야 주민운동이 무엇이라는 것을 조금 느끼게 되었죠.”

“지역에 중심을 둔 지역 살리기를 함께 고민해보자”는 박원순 변호사의 제안에 적극 찬성하고 상경해 희망제작소에서 지역 만들기와 컨설팅 사업을 진행한 뿌리센터 일을 하다, 지역홍보센터를 기획·추진해 센터장을 맡아 활동하고 있다.

정치로 진출해 일해보는 것은 어떨까. 오바마도 지역시민단체의 자원봉사 경험을 바탕으로 결국 대통령까지 되지 않았나. “이해가 될지는 모르겠는데, 여기서 한 발짝만 물러서면 죽음이라는 느낌이에요. 그 현실 감각을 잃어버리면 지역운동이나 시민운동을 못하는 거죠. 시민운동에서 발휘한 리더십으로 존경받는 것과 정치판에서 표를 얻는 것은 다릅니다.” 그는 “뿌리센터와 지역홍보센터 일을 하면서 배운 경험과 아이디어를 다시 돌아가 적용하는 것이 앞으로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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