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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파가 닿는 곳에 생활공동체 싹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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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출력 라디오 관악FM 안병천 방송본부장

안병천

안병천

"나눔으로 풍요로운 방송, 관악FM 100.3㎒, HLMA.”
반경 2~3㎞까지만 퍼지는 1W 소출력, 하지만 큰 건물 주변 사각지대를 제외하곤 관악구 봉천동 일대에 전파가 가지 않는 곳은 없다. 환갑이 넘은 어르신 20명을 포함해 자원봉사자 125명이 운영하는 풀뿌리 지역방송 공동체 라디오 관악FM의 방송은 그렇게 시작한다. 하루 21시간 방송 중 자체 제작 프로그램이 8시간 정도, 나머지 시간은 재방송과 음악프로그램으로 채운다. 편성과 제작, 방송의 모든 ‘큐’ 사인은 안병천(33) 방송본부장의 손끝에서 시작된다.

“지역 주민이 공유할 수 있는 문화와 정보를 나누는 공간입니다. 어르신들과 청소년 프로그램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지역의 인프라가 적어 매일 뉴스 방송을 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열심히 현장을 찾아다니고 있어요. 최근 우리의 관심사는 구청장 인사 비리 문제와 지역 재개발에 따른 서민들의 생계대책입니다.”

첫 전파가 나간 것은 2005년 7월 17일. 3개월 정도 시험방송을 하다가 그해 10월 10일 정식 개국했으니 벌써 만 3년이 지났다. 2002년부터 영상미디어센터 미디액트(영진위 위탁 운영)에서 공동체 라디오를 고민하던 안 본부장은 시민단체가 많은 관악구를 그 거점으로 삼았다. 하지만 자본의 논리 속에서 시민단체의 입지는 갈수록 열악해졌고, 컨소시엄을 구성하려던 계획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소출력 라디오 설립에 든 1억5000만 원 중 정부에서 50%를 지원받고, 나머지 50%는 안 본부장을 포함한 이사진이 개인 빚을 져가며 모았다.

“초기엔 방송국을 함께 준비하는 사람들과 소통이 힘들었다”는 안 본부장은 “자원봉사자의 경우 지역운동 차원에서의 접근보다는 언론 자체에 대한 관심이 더 컸고,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지역 정치판 논리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밝혔다. 게다가 대부분 방송과 인연이 없던 사람들이라 교육에서 홍보, 자원활동가 관리까지 도맡아야 했고, 정부에서 한 푼이라도 더 지원금을 따내기 위해 방송위원회를 쫓아다니다 현장에서 방송을 진행하는 등 혼자서 몇 사람의 일을 하며 몇 년을 보냈다.

대학 시절 학생회에서 활동했고, 졸업 후엔 민중가요 록밴드인 ‘천지인’의 음반사를 만들어 2년 넘게 회사를 운영했던 그는 왜 공동체 라디오를 선택했을까? “대부분 진보진영이 거대담론을 이야기하고 권력 추구형이며, 진보진영끼리 과도하게 견제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는 그는 “지역사회에서 내 역량을 풀자,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더 바람직하다는 생각에 지역으로 시선을 돌렸고, 공동체 라디오를 고민했다”고 밝혔다. 학생 시절 청년진보당 활동을 했고 이후 사회당에 가입했던 그는 방송국을 설립하면서 탈당했다. “아무래도 팔은 안으로 굽을 것 같아서, 다른 단체와 연대·융화를 위해, 또 정파성 탓에 공격받지 않으려고”가 그 이유다.

그의 월급은 100만 원. 운영비가 모자라 개인 주머니에서 꺼내 쓰다 보니 실수령액은 60만 원 정도다. 하지만 그는 “다른 시민단체에 비하면 매우 풍족한 편”이라며 웃었다. 공식 휴가 15일 중 단 하루도 쓰지 못할 정도로 빡빡하게 돌아가는 삶이지만 자원봉사자, 지역 주민들과 어울리는 것이 즐겁고, 또 그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그에게 “제대로 된 직장 찾아가라”고 성화하던 부모님도 최근엔 아들이 가는 길에 대해 인정해 주는 분위기다.

그는 “공동체 라디오는 미디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민과 문화·정보를 공유하는 것으로, 사실 지금도 시민운동의 누적된 경험을 가진 ‘동지’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면서 “하지만 활동가들끼리 있을 때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고, 생활공동체 운동의 중요성을 깨우치고 있다”고 말했다.

관악FM과 같은 소출력 라디오방송국은 전국에 8개. 하지만 최근 이 공동체 방송국들은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 4년 동안 재정을 지원하던 방통위가 내년부터 지원을 끊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는 “1W 출력으로 광고를 따서 운영하라니 말이 되느냐?”고 반문하며 “2007년 소출력 라디오에 대한 법안이 통과됐는데 이후 시행령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정부는 방치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정 자립도 중요하지만 현재처럼 미디어 공공성 역할을 하고 있는 상태에선 영국이나 일본처럼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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