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모친살인 혐의 여인의 ‘인터넷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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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악플로 지탄 받은 온라인 유명인사… 홈피엔 사실과 다른 자기과시 글 많아

아직 폐쇄돼지 않고 남아 있는 전씨의 미니 홈피. 이번 살인 사건의 주인공이 전씨인 것을 알아챈 누리꾼이 알음알음 방문해 방문 소감을 올리고 있다.

아직 폐쇄돼지 않고 남아 있는 전씨의 미니 홈피. 이번 살인 사건의 주인공이 전씨인 것을 알아챈 누리꾼이 알음알음 방문해 방문 소감을 올리고 있다.

"엄마가 사망한 것 같다. 빨리 와달라.”
11월 23일 오후 8시 53분. 112에 한 여성이 신고했다. 다급한 목소리였다. 서울 강서경찰서 강력반 형사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땐 지구대 경찰이 이 여성을 두고 자초지종을 묻고 있었다. 시신은 안방에 모로 누워 이불에 덮여 있었다. 여성은 자신의 방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지구대 경찰들의 질문을 듣고 있었다. 묵묵부답이었다.

오모 반장은 말한다. “이불이 흐트러진 흔적은 없고, 다툰 흔적도 없었다. 반면 얼굴에는 피멍이 들어 있었고, 이불엔 구토 흔적이 있었다. 누구에게 심하게 맞은 것 같은데, 피의자(전씨)는 계속 아무 말이 없었다.”

그녀는 뒤늦게 전날 심하게 다퉜다고 실토했다. 폭행 사실도 인정했다. 어머니 최모(56)씨는 지체장애 2급이다. 구속된 전모(31)씨는 경찰 조사에서 “엄마가 ‘왜 직업도 없이 노냐’라면서 ‘바보’라고 조롱하고 학대했다”라며 “순간적으로 치밀어오른 화를 참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씨는 가슴을 발로 차는 등 어머니를 심하게 구타했다.

직접적인 사인을 밝혀줄 부검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외관상으로 전신에 ‘다발성 타박상’과 피하출혈이 일어난 것으로 보였다. 갈비뼈도 4대 골절됐다. 전씨는 구타 후 어머니가 구토하자, 이불 모퉁이를 잡아 어머니의 얼굴을 덮고 자기 방으로 가 웹서핑을 계속한 것으로 보인다. 그날 새벽, 전씨는 어머니가 다시 구토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가보지 않았다.

언론은 “안재환 악플녀, 지체장애인 어머니 살해”라고 보도했다. 안재환씨가 자살한 후 “돈으로 사는 부부는 돈이 끝나면 다 끝이고 자살이다” “안씨가 마지막 순간에 보낸 문자는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내용이었다” 등의 댓글을 달아 지탄을 받은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네티즌은 “기사의 주인공이 혹시 전○○가 아니냐”고 수군거렸다. 알음알음으로 전씨의 싸이월드 미니홈피 주소가 퍼져나갔다. 전씨는 안재환 악플 사건 이전부터 인터넷에선 유명인사였다.

인터넷에 몰두하다 어머니 살인 혐의까지 받고 있는 전씨는 과연 어떤 사람일까. 전씨의 미니홈피는 모피코트나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전씨 사진으로 도배돼 있다. 대부분 전씨 자신 사진이다. 전씨는 미니홈피에서 가수 겸 프로듀서인 ㄱ씨와 자신이 내연의 관계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이 가수가 만든 모든 곡은 자신을 염두에 두고 만든 노래라고 주장했다.

가수 ㄱ씨와 ‘내연의 관계’ 주장
전씨의 주장은 그럴듯했다. 이를테면 이 가수의 공연장 배경의 스크린에 푸른 드레스를 입은 자신의 모습이 상영됐는데, 이 가수가 자신과 내연의 관계임을 은밀하게 밝히는 깜짝쇼였다는 것이다. 전씨는 이 가수뿐 아니라 최근에는 유명 아이돌 그룹 S의 멤버인 ㅎ씨가 자신과 함께 CF를 찍을 것이며, “ㅎ씨가 지금 씻는 중이다”라고 개인적으로 만나는 특별한 관계인양 암시하는 글을 적어놓았다. S그룹 팬클럽이 거칠게 항의했지만 전씨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전씨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주로 자신의 사진을 올렸다. 임상심리학자 심영섭교수는 전씨의 미니홈피를 검토한 결과, “전씨가 전형적인 자기애적 성격장애일 가능성이 크다”고 추론했다.

전씨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주로 자신의 사진을 올렸다. 임상심리학자 심영섭교수는 전씨의 미니홈피를 검토한 결과, “전씨가 전형적인 자기애적 성격장애일 가능성이 크다”고 추론했다.

전씨가 미니홈피에 밝혀놓은 프로필도 화제를 모았다. 전씨는 자신이 명문사립대인 ㅅ대 한국철학과를 2004년 2월에 졸업했으며, 역시 명문사립대인 ㅇ대 정치학과 대학원을 2004년 5월에 입학했다고 주장했다. 프로필에서는 3, 40대의 미래 계획도 밝혀놓았는데, “ㄱ씨가 문화부장관·국회의원이 될 것이며, 자신은 하버드대를 다니며 드레스 숍 대표를 할 것”이라고 적어놓았다. 이뿐 아니라 전씨는 자신의 부모에 대해서도 밝혀놓았다. 전씨에 따르면, 아버지(61)는 일본 건설회사 대표이며, 자민련 김종필 총재와 친분이 있는 재일 민단의 거물이다. 어머니는 1970년대 동양방송 공채로 연예인이 됐고, KBS 버라이어티쇼 <쇼쇼쇼>에 고정출연했다. 또 <선데이서울>의 모델을 하기도 했는데, 자신이 6세 때 유치원에 입학하면서 연예활동을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전씨는 전성기 때 어머니 사진과 동영상을 미니홈피에 공개했다.

그러나 ‘모친 살해’ 기사 속 전씨의 어머니는 전동 휠체어를 타는 지체장애2급으로 기초생활수급자였다.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기자는 전씨가 살던 임대아파트를 방문했다. 아파트 경비원은 “주민 상당수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라고 밝혔다. 전씨와 어머니 최씨가 살던 107동 ○○○호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입구에 달린 표식으로 보아 어머니는 성당을 다닌 것으로 보였다. 바로 옆집 거주자는 “그 집에 대해 전혀 모른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전반적으로 전씨나 최씨는 이웃과 거의 왕래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파트 경비원은 “아침 일찍 나갔다가 들어오는데, 말수가 없고 상당히 말랐다는 것만 기억난다”고 말한다.

전씨네 집은 자원봉사자 기피대상
동사무소 사회복지 담당 직원 전모씨는 의료급여 진단서 제출과 관련해 딱 한 번 지난해 전씨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는 “당시 의료급여를 연장하기 위해 어머니 최씨를 방문해 설명을 하는데, 전씨가 들어와 마주친 적이 있다”면서 “당시 전씨는 매우 마른 상태였으며 무거운 물건을 들지 못하는 허약 체질로 근로 능력이 없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동사무소에 따르면, 최씨 가족이 기초생활수급자로 신청한 것은 2000년. 당시 상담기록에 따르면, 전씨는 방송통신대에 재학 중이었다. 한 달에 나오는 급여는 류머티스 관절염을 앓고 있는 최씨의 장애수당을 포함해 61만 원가량에 불과했다.

아파트 사회복지관에서 전씨네 집은 자원봉사자 사이에서 기피 대상으로 통했다. 이유는 개 때문이었다. 자원봉사자가 물릴 뻔한 일도 있었다. 사회복지관 관계자는 “그 뒤로는 개를 작은방에 가둬놓고 나서야 자원봉사자가 들어갔지만, 그 집에 가는 것을 (봉사자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자원봉사 내용은 병원 외출 등을 돕는 일과 집을 치우는 것. 한 자원봉사자는 “아무래도 개를 키우다 보니 집이 매우 지저분했고, 또 항상 냄새가 났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동사무소 직원 전모씨도 “유난히 집이 더러웠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래도 어머니의 신체가 부자유스럽다 보니 전씨가 수발을 들어야 했고 그러다 보니 전씨가 외출하면 집이 지저분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것”라고 덧붙였다.

전씨가 ‘특별한 관계’임을 주장한 S그룹 ㅎ씨 소속사 관계자는 “전씨가 S그룹 ㅎ씨를 스토킹했다는 사실은 팬이 알려와 알고 있었다”면서 “전씨가 허상으로 만들어낸 것이고 오프라인에서 S그룹 멤버를 직접적으로 스토킹하지 않았기 때문에 딱히 대응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가수 겸 프로듀서 ㄱ씨 소속사 관계자는 “전씨가 ㄱ씨를 스토킹한 것은 오래전부터로, ㄱ씨의 팬들 사이에서는 널리 알려진 일”이라며 “다른 가수에 대한 극성팬도 마찬가지지만, ㄱ씨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아낸 전씨는 새벽에도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내는 등 ㄱ씨를 괴롭혀왔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ㄱ씨가 특별한 법적 조치는 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면서 “전씨가 어머니를 살해했다는 보도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대학로 블루걸 소동’은 전적으로 전씨가 지어낸 말이며 그것을 목격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최모씨의 미니홈피도 전씨가 만든 것으로 소속사나 팬들은 의심했다는 것이다.

한때 전씨와 함께 이슈 검색어에 오르기도 했던 최씨의 정체는 이번 사건으로 드러났다. 최모씨는 전씨가 살해한 어머니의 실명이다. 경찰은 “컴퓨터는 전씨 방에만 놓여 있었으며 최씨가 있던 방에는 벽에 가재도구만 쌓여 있었을 뿐 컴퓨터를 사용한 흔적은 없다”고 밝혔다. 정황상으론 전씨가 어머니 이름을 도용, 미니홈피를 개설했을 개연성이 크다.

‘된장녀’로 찍혀 접속거부 공격 당해

전모씨는 주민들과 왕래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파트 경비원은 “매우 말랐으며 말수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라고 말했다. 사건 이후 굳게 닫힌 전씨 임대아파트 대문.

전모씨는 주민들과 왕래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파트 경비원은 “매우 말랐으며 말수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라고 말했다. 사건 이후 굳게 닫힌 전씨 임대아파트 대문.

전씨의 ‘기이한 인터넷 행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전씨는 네이버 ‘지식인’에 “자신은 ㄱ씨의 애인이 맞는데, ㄱ씨의 팬클럽이 자신을 괴롭힌다”며 대처방안을 묻는 질문을 올렸다. 전씨가 선택한 답변은 “ㄱ씨에게 전화해보면 알지만, ㄱ씨는 전씨가 자신의 애인이 맞다고 대답했다. 다른 팬들이 예의를 지키면 좋겠다”라는 내용이다. 작성자는 ‘비공개’다. 역시 자문자답일 가능성이 크다.

전씨를 둘러싼 소동은 2003년도에도 벌어졌다. 전씨는 TV법정드라마 <사랑과 전쟁>, 주부클럽 <마이클럽> 게시판 등을 오가며 악플을 남겨 악명을 떨쳤다. 당시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인 DC인사이드의 사용자들은 전씨를 대표적인 ‘된장녀’로 규정, 접속 거부 공격의 형태로 전씨가 운영하던 홈페이지를 다운시켰다. 서울의 ㅅ대학 커뮤니티에서 전씨는 ‘검부(검사부인)’로 불리는 유명인사였다. 전씨 스스로 ㄱ대 출신 검사 애인이라고 주장하며 ㅅ대를 비방한 것. 당시 ㅅ대생 사이에서는 “전씨가 진짜 ㅅ대에 재학 중인 것이 맞냐”는 논란이 일었다. 전씨가 동명이인의 남학생이라는 소문도 그럴듯하게 돌았다.

기자가 확인한 결과, 전씨는 서울 ㅅ대 졸업생이 맞았다. ㅅ대 동창회 관계자는 “확인해본 결과 전씨와 이름과 생년월일이 일치하는 사람이 2002년에 편입해, 2004년 2월에 졸업했다”라고 밝혔다. 반면 ㅇ대 관계자는 “지방 캠퍼스 다른 과 학사 과정에서 과거 전씨와 동명이인이 있었을 뿐, 전씨는 정치학과 대학원에 입학한 적이 없다”라고 밝혔다.

전씨가 미니홈피에 올린 부모의 사진과 경력은 사실일까. 어머니 최씨 부검 과정에 입회한 형사는 “전씨 어머니의 젊었을 때 모습이 맞는 것 같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최씨의 경력은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는다. 전씨 아버지와 관련해 경찰은 “전씨가 6세 때 부모가 이혼했으며, 아버지는 재일교포로 홋카이도에 살고 있다고 진술했다”면서 “실제 전씨의 진술이 그렇다는 것일 뿐, 사실 관계는 명확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미니홈피에 올린 전씨의 주장 대부분은 사실이 아니거나 사실과 거짓이 섞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씨의 미니홈피를 살펴본 임상심리학 박사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교수는 “비키니 사진 등을 보면 자기 과시적인 사진이 많고, 수많은 사진이 대부분 단독 사진이라는 점에서 자기애적 성격장애였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추정했다. 전씨가 악플러로 유명했던 이유를 두고서도 심 교수는 “나르시시즘 환자일수록 자기방어능력이 취약한데, 관심받으려는 욕망이 좌절되면 그것이 다시 강한 공격성으로 전환해 악플을 달았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심 교수에 따르면, 전씨에게 미니홈피는 일종의 자신을 비추는 거울과 같은 역할을 했다. 헤어진 아버지를 마치 대단한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인 것처럼 묘사한 것도 자신이 갖고자 하는 욕망을 투사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심 교수는 마지막으로 “전씨는 현실이 너무 초라하기 때문에 자신이 갖고 있는 높은 이상에 비해 사랑받거나 유명해지거나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을 그런 식으로 메우는 것”이라며 “정신 감정이 필요할 듯싶다”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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