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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출자·저소득층, 제2 IMF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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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급여서 노인돌보미·아동교육 보조금까지
미흡한 사회안전망 불구 최대한 이용해야

용산역 부근에서 무료 점심식사를 받기 위해 길게 늘어선 노숙자들. 경제 상황의 악화로 서민과 저소득층을 보호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에 대한 대대적인 대책이 절실하다. <김석구 기자>

용산역 부근에서 무료 점심식사를 받기 위해 길게 늘어선 노숙자들. 경제 상황의 악화로 서민과 저소득층을 보호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에 대한 대대적인 대책이 절실하다. <김석구 기자>

중소기업에 다니는 김모씨는 얼마 전부터 4살 된 아이의 학습지 교사를 다시 신청했다. 김모씨는 아이를 어린이집(매달 30만 원)에 보낸 후부터 4만 원 정도 되는 학습지 교사 비용이 부담되어 중단했다. 그런데 얼마 전 학습지 교사 비용을 정부에서 지원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서 ‘아동인지능력 향상 서비스’라는 항목을 찾았다. 3인 가족 월평균 소득이 322만9000원 이하면 누구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관련 서류를 동사무소에 냈고, 정부에서 매일 2만5000원의 지원금을 받게 됐다. 김모씨는 학습지 교사를 다시 신청했고, 매달 1만5000원만 지불하고 있다.

김모씨는 “사회복지제도는 대부분 기초생활수급자만 혜택이 있는 것으로 알았는데, 우리도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면서 “바우처제도를 알고 난 후에는 우리 가족이 받을 수 있는 다른 제도가 있는지 계속 살펴보게 됐다”고 말했다. 김모씨의 이야기처럼 정부와 지자체는 노인과 교육에 관한 다양한 사회적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사회서비스 바우처’(Voucher·복지서비스 이용권)를 ‘국민의 수요에 부응하는 다양하고 질 좋은 사회서비스를 보장하기 위해 노인과 장애인, 산모, 아동 등 국민에게 서비스를 지원하는 제도’라고 정의했다. 이 제도의 특징은 정부 지원금과 본인 부담금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

나이와 수입 수준에 따라서 이용할 수 있는 사회서비스는 ▲노인 돌보미 ▲중증장애인 활동보조 ▲산모·신생아 도우미 ▲지역사회 서비스 혁신(아동인지능력 향상 서비스, 비만아동 건강 관리 서비스) ▲가사 간병 방문 등이 있다.

[커버스토리]퇴출자·저소득층, 제2 IMF서 살아남기

경제상황의 악화로 실직과 자영업자의 몰락, 꽁꽁 얼어붙은 취업 시장으로 서민과 저소득층의 삶이 팍팍해져가고 있다. 경제 전문가조차 “IMF 외환위기보다 혹독한 시기가 온다”는 예상이 나오면서 기초생활보장수급자(수급권자 가구의 소득인정액이 가구별 최저 생계비, 올해 경우 4인 가족 기준 1266만 원 이하인 경우)나 차상위계층(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지만 고정재산이 있어 기초생활보장수급자에서 제외되거나, 최저생계비 대비 1~1.2배의 소득이 있는 잠재 빈곤층)은 아니지만, 실직 혹은 취업을 하지 못해 생계가 어려운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이른바 사회안전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연세대 한준 교수(사회학과)는 ‘취약계층의 활로 모색’이라는 보고서에서 “취약계층은 하위소득 20%의 저소득층을 의미한다”면서 “지난 10년간 상위 20%의 실질소득은 24.2% 증가한 반면, 하위 20%는 2.5% 증가했다”고 밝혔다. 그만큼 저소득층의 생활고가 더욱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기업이 부도가 나면서 가장이 거리로 나앉고 자영업자가 몰락하는 이런 경제적 불황기에 그나마 취약계층을 보듬을 장치는 바로 사회안전망이다. 하지만 정부와 보건복지부가 운영하고 있는 사회안전망은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을 위주로 하고 있다. 최극빈층에 대한 최소한의 생활보장만 치중했기 때문이다.

기초생활수급자 아니라도 혜택
그나마 우리 사회의 사회안전망은 1987년 이후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1988년 1월 농어촌지역 의료보험 실시와 1989년 7월 도시지역 의료보험 실시로 전국민의료보험제도를 만든 것. 그리고 김대중 정부 시절 ‘생활보호제도’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로 바꿨고, 4대 사회보험 제도의 제도적 틀을 완성하면서 보편적 복지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당시 보건복지부 예산을 가장 큰 비율로 증액한 시기였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이상이 공동대표는 “국민의 정부 때 이루어 놓은 사회보장 및 복지제도를 안착시키는 역할을 수행했다”고 노무현 정부를 평가했다.

이에 반해 이명박 정부의 사회안전망은 전문가에게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10월 2009년 예산을 확정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 11월 4일 ‘서민생활 안정 예산 추가 반영’이라는 이유로 2009년 수정예산을 발표했다. “생색내기용이다” “복지예산이 너무 줄어들었다” 등의 비판이 거셌기 때문이다.

수정예산안을 살펴보면,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급하는 ▲생계급여 ▲주거급여 대상자는 당초 157만2000명에서 158만2000명으로 1만 명이 늘어났다. ▲의료급여 대상자 역시 168만2000명에서 169만2000명으로 1만 명이 늘어난 것으로 수정했다. ▲긴급복지비는 당초 385억 원에서 489억 원으로 늘어났고 ▲차상위계층 양곡지원비는 34억1200만 원에서 68억1200만 원으로 34억 원 증액했다. 복지부 소관 예산과 기금을 합한 총지출액은 2008년 24조9000억 원인데 2009년에는 28조2000억 원으로 늘었다고 주장했다.

서울적십자사 봉사회원들과 매일유업 직원이 서울 홍은1동 저소득층 가정에 사랑의 연탄을 배달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서울적십자사 봉사회원들과 매일유업 직원이 서울 홍은1동 저소득층 가정에 사랑의 연탄을 배달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하지만 수정예산 역시 비판의 목소리에서 자유롭지 않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전은경 팀장은 “2008년 생계급여 예산을 159만 명으로 짰는데, 이명박 정부가 처음으로 짠 예산이 157만 명에서 158만 명으로 늘렸다”면서 “당초 예산안보다 1만 명 늘었다고 자랑하지만, 경제 상황이 나빠지고 있는데 2008년보다 어떻게 줄어들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동덕여자대학교 남기철 교수(사회복지전공) 역시 “생계급여 대상자는 늘어나고 있는데, 사회적인 분위기와 역행하는 것”이라며 “보건복지부 예산이 늘어났다고 하지만, 기초노령연금 지급 대상 확대분(8749억 원), 노인장기요양보험 재정증대분(1971억원) 등 자동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 예산을 제외하고 나면 복지부 예산은 거의 늘어난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또 남 교수는 “노숙인 쉼터 등 지방으로 이양한 사업도 많은데, 이번에 종합부동산세가 폐지되면서 지방 재원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면서 “서울보다 지방의 사회안전망이 종부세 폐지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의 한 사무관은 “2007년도에는 생계급여 대상자를 167만 명으로 예측했는데, 실수급자는 155만 명이었다”면서 “올해 수급자를 159만 명으로 예측했는데, 실수급자는 9월까지 153만3000명으로 나타나 2009년도 예산안은 이런 변수를 반영한 것이므로 예측 대상자 수가 줄어든 것만 비판하면 안 된다”고 반박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제도 완성
하지만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관련 지출은 2005년 현재 GDP 대비 9.05%로 2003년도 OECD 평균 23.87%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가톨릭대 김종해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사회복지분야 입법 정책과제’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총사회복지지출 중 정부 부문의 지출인 공공복지지출은 2005년 현재 GDP 대비 6.87%로 OECD 평균 20.71%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며 “OECD 국가 중 복지지출 수준이 낮다는 미국이나 일본과 비교해도 우리나라의 지출 수준은 멕시코와 비슷한 상황이다”고 밝혔다.

남기철 교수는 “우리나라의 사회안전망은 이제 양극화와 고령화 문제에 대처해야 할 때”라면서 “최저생계비의 현실화, 차상위계층의 지원 확대, 부양의무의 기준 완화를 통해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커버스토리]퇴출자·저소득층, 제2 IMF서 살아남기

이런 경제적 위기 상황에 미흡하지만 그나마 있는 사회안전망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현재 그나마 사회안전망으로 꼽을 수 있는 대표적인 제도는 ▲신용회복 지원제도 ▲직업훈련 ▲실업급여 ▲청년 해외인턴십 ▲청년층 뉴스타트프로그램 ▲행정인턴 등이다. 이 제도들은 실직자나 취업 준비자 등이 이용할 수 있는 제도다.

신용회복지원제도는 IMF 외환위기 이후 부도나 실직으로 많은 빚을 진 사람이 늘어났고, 빚을 감당하지 못한 이들을 경제적으로 재기할 수 있게 도와주는 제도다. 신용회복지원 적격 여부를 심사해 대출금의 상환기간 연장, 분활상환, 이자율 조정, 채무상환 유예, 빚 감면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직업훈련은 직업훈련기관을 통해 교육비 없이 매월 일정액의 훈련수당을 받으면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실업급여를 받지 않고, 학교에 다니지 않고, 만 15세 이상 만 65세 미만인 무직자는 누구든 직업훈련을 받을 수 있다. 매월 출석률 80% 이상이면 교통비 5만 원과 식비 6만 원, 훈련수당 20만 원(재수강 시 10만 원, 3회차 수강 시에는 받을 수 없음)을 받는다.

실업급여는 실직 당시 나이에 따라 90일부터 240일까지 퇴직 전 평균임금의 50%를 받는 것이다. 올해 9월까지 실업급여를 받은 사람은 78만여 명이고, 지급액이 2조4000억 원에 달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만 명 이상 늘어났다.

청년 해외 인턴십과 청년층 뉴스타트프로그램, 행정인턴은 취업 준비생에게 도움이 되는 제도다. 올해까지 매년 전문대생 400명만 혜택을 봤던 해외인턴십 제도가 내년부터는 4년제 대학생까지 범위가 넓어진다. 해외 인턴십 학생은 최대 800만원 내에서 경비와 항공료 등을 지원받는다. 지금까지 4년제 대학은 자체적으로 해외 인턴십 과정을 운영했지만, 정부 차원에서 12억 원의 예산을 지원해 300명의 재학생에게 16주 해외 인턴십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다. 참가자는 16주 중 4주는 현지에서 적응교육을 받고, 12주 동안 산업체에서 인턴십을 수행한다.

최저생계비 현실화 등 역점 둬야
노동부가 최근 취업교육의 일환으로 내놓은 청년층 뉴스타트프로그램은 15세에서 29세 청년만 대상으로 하는 취업교육 프로그램이다. 1단계부터 3단계까지 청년층 개개인의 취업을 관리한다. 1단계는 직업적성교육 등을 하고, 2단계는 직업능력개발과 직장 체험 등의 프로그램으로 운영한다. 3단계에서는 노동부가 취업을 알선한다. 이 제도는 내년부터 시행할 예정인데, 1단계를 통과하면 30만 원의 수당을 받는다.

노동부 청년고용대책과 담당자는 “이 사업은 고용지원센터와 민간업체가 나눠서 할 예정”이라며 “이 프로그램을 통해 청년층의 취업률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일면 고용지원센터에서 하던 일과 차이점이 없어 일정 부분 겹치는 부문도 있지만 뉴스타트프로그램은 취업을 준비 중인 청년층만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차이가 있다.

행정안전부가 11월 21일 발표한 행정인턴은 주 40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최대 12개월까지 근무할 수 있고, 월 약 100만 원을 받게 된다. 이번 선발은 15부 2처 18청 전 중앙행정기관을 대상으로 하는데, 각 부처별로 신청공고가 나갈 예정이다. 우선적으로 행안부가 12월 8일부터 일할 30명의 인턴을 뽑는다는 공고를 했다.

정부의 동절기 서민생활안정 대책
“급조한 일회성 돌려막기식 정책”

11월 20일 12차 정부와 한나라당은 고위당정청협의회를 열고 7160억 원 규모의 ‘동절기 서민생활안정 대책’을 발표했다. 이날 발표한 대책에는 ▲저소득층 생활안정(복지부/지경부) ▲ 교육복지 강화(교과부) ▲ 청년층 취업지원 강화 및 취약근로자 고용안정(노동부) 등 다양한 분야에서 대책을 마련했다. 하지만 11월 4일 보건복지부의 수정예산안이 발표된 전례로 살펴보면 불과 2주 만에 7160억 원 규모의 대규모 사회안전망 대책이 새로 나온 것이다.

이번에 발표한 ‘청년층 뉴스트타프로그램’ ‘중소기업 인턴 월급 정부 50% 지원’ 등의 대책은 지난 8월 노동부에서 발표한 제도를 재탕한 것이다. 이번 당정청협의회에서 다시 새로운 대책이라고 발표하는 아이러니가 생긴 셈.

이날 보건복지부도 기초생활보장제도 및 긴급지원제도의 기준 완화를 골자로 하는 ‘사회안전망 개선방안’을 확정, 시행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눈에 띄는 대목은 ‘부양의무자 재산기준 완화’다. 부양의무자 재산 기준이 중·소 도시는 기존 9500만 원(4인가구 기준)에서 1억2600만 원으로 상향했다. 대도시는 기존 1억1200만 원에서 1억5000만 원으로, 농촌은 9000만 원에서 1억1900만 원으로 인상했다. 이로 인해 1만5000가구가 추가로 보호받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또한 부양비 부과율이 현행 40%에서 30%로 낮아졌다. 만일 가족에게 짐이 되기 싫어 혼자 나와 사는 노인은 부양의무자인 아들(4인 가구)의 소득이 165만 원 미만이면 부양 능력 없음으로 판정하고, 225만 원 이상이면 부양 능력 있음으로 판정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165만~225만 원이면 165만 원 초과금액의 40%를 부양비로 산정해 혼자 사는 노인의 소득에 합산했다. 즉 부양비 부과율이 너무 높아서 기초생활보장수급자가 못 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 부과율 인하로 혜택을 보는 이들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사회보험료를 연체하거나 단전·단수된 적이 있는 가구도 조사해 기초생활수급자에 포함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기초생활보장 시설 수급자 8만6000여 명에게 월동난방비 월 6만 원씩(11월, 12월), 경로당 등에는 월 38만 원씩 3개월간 난방비를 지급한다. 가구당 7만7000원의 연탄보조를 받는 대상자도 기초생활수급가구에 6만여의 차상위계층 가구까지 포함하기로 했다. 이에 필요한 1679억 원의 예산은 올해 예산절감액과 추경예산 등을 투입해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의 발표에 대한 평가는 냉담하다. 호서대학교 이용재 교수(사회복지학과)는 “경제 악화로 인해 급조한 땜질식 처방 수준으로 의미 있는 복지정책 변화가 아니다”라며 “지원 수준도 취약계층이 겪는 고통에 비하면 매우 부족하다”고 혹평했다. 이 교수는 또한 “향후 경제 악화가 지속하면서 취약계층이 크게 증가할 것이고, 복지분야에 대한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이태수 교수 역시 “이명박식 예산 절감은 막무가내로 전 부처 예산의 10% 절감이므로 복지사업도 10%를 절감하는 것”이라며 “나중에 보면 복지수혜자의 몫을 줄여서 다시 복지에 투여하는 똑같은 돌려막기가 일반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또 “정부의 정책기조에 따라 부처 간 우선순위가 있는데, 부처 내의 합리적 조정이 없는 상황이다”라며 “동절기 사회안전망의 개선 방안은 임기웅변식의 일회성·땜질 대책이고 현재 예상되는 경제사회 위기에 노출될 위기집단 규모에 비하면 미미한 대책이다”고 혹평했다.

참여연대 전은경 팀장 역시 “국민의 3.3%인 160만 명 기초생활보장의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사회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는 현실”이라며 “이번에 내놓은 대책 효과는 극히 미비할 것으로 보고, 상대 빈곤선 도입 등 근본적인 제도 개선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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