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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해협 ‘양안 경제권’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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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대만 ‘3통’ 전면실시 합의… 기술·인력 결합 시너지 효과 기대

59년 만에 대만을 방문한 중국의 최고위급 인사인 천윈린 중국 해협회 회장(오른쪽 두 번째)이 지난 3일 타이베이에 도착한 뒤 장빙쿤 대만 해기회 이사장과 포옹하고 있다.

59년 만에 대만을 방문한 중국의 최고위급 인사인 천윈린 중국 해협회 회장(오른쪽 두 번째)이 지난 3일 타이베이에 도착한 뒤 장빙쿤 대만 해기회 이사장과 포옹하고 있다.

대만의 기업인 왕모씨는 오전 7시, 타이베이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아침 식사를 마쳤다. 그러고는 오전 8시, 타이베이 근교에 있는 타오위안 공항에 도착했다. 중국 상하이 교외에 있는 공장을 둘러보기 위해서다. 그가 탄 비행기는 오전 9시 타이베이를 떠나 1시간 20분 만인 오전 10시 20분, 상하이 푸둥 공항에 도착했다. 상하이에서 직원들과 점심 식사를 마친 그는 오후에 공장을 3시간 정도 둘러보았다. 오후 6시쯤, 푸둥 공항에서 출발한 그는 오후 7시 20분 타오위안 공항에 도착한 뒤 귀가했다. 오는 12월 중순이면 현실로 나타날 중국과 대만 간 일일 생활권을 미리 가상해본 것이다.

대만해협을 사이에 둔 중국과 대만의 양안 경제권이 급부상하고 있다. 중국의 반관영기구로 대만 협상 창구인 해협양안관계협회(해협회) 천윈린 회장과 대만 측 상대인 해협교류기금회(해기회) 장빙쿤 이사장은 지난 4일 타이베이에서 협상하고 ‘3통’(해설기사 참조) 전면 실시를 뼈대로 하는 4가지 협정문에 서명했다. 이번 합의는 대만의 유관 법률 절차에 따라 서명 40일이 지난 뒤인 12월 중순, 정식으로 발효된다.

비행기 운항 늘리고 거리도 단축
양측 합의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매일 전세기를 운행한다는 것이다. 중국 해협회와 대만 해기회는 지난 6월 베이징에서 열린 협상에서 주말(금요일~다음 주 월요일) 전세기 운행과 중국 관광객의 대만 방문에 합의하고 지난 7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양측은 이번에 요일에 따른 제한을 완전히 없앴다. 날마다 비행기를 탈 수 있도록 했다. 주당 편수도 기존 36편에서 108편으로 늘렸다. 하루 15편 이상이 중국과 대만을 오갈 수 있는 셈이다. 대만에 갈 수 있는 중국 공항도 기존 5개 대도시에서 16개 도시로 늘렸다. 중국행 비행기를 탈 수 있는 대만 도시는 8개다. 중국이든 대만이든 웬만한 규모의 도시면 양안 직항 비행기를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행 거리도 짧아졌다. 보안상 이유를 들어 대만 측 요청으로 그동안 홍콩 비행통제구역으로 우회하던 비행 노선도 대만 비행통제구역을 직접 이용할 수 있도록 바꿨다. 문자 그대로 직항이 실현된 것이다. 비행노선 변경으로 가장 많은 승객이 이용하는 대만 타이베이와 중국 상하이 노선은 기존 2시간 20분에서 1시간 20분으로 비행시간이 줄었다. 타이베이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대만 남부 제2의 도시 가오슝까지 가는 시간보다 적게 걸린다. 항공업계는 연간 30억 대만달러(약 1140억 원)를 아낄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기업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던 해운 직항도 이번에 타결을 봤다. 그동안 대만 화물선이 중국 항구에 입항하려면 일본 영해나 홍콩 등으로 우회해야 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중국의 63개 항구, 대만의 11개 항구 간에 직접 화물 운송이 가능해진 것이다. 해운업계는 선박 운행 시간을 최대 27시간 줄이면서, 연간 12억 대만달러(약 456억 원)의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중국에서 대만으로 편지를 보내면 이전에는 홍콩 등 제3국을 거쳐 7~10일이 걸렸다. 그러나 앞으로는 전세기 직항을 이용하면 특급 우편의 경우 오전에 보내면 당일 낮에 도착할 수 있게 됐다.

이번 합의로 대만의 기술과 중국의 인력이 결합해 시너지(동반 상승) 효과를 내는 양안경제권이 급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전자 부문에서 세계적인 수준을 자랑하는 대만 기술이 풍부한 연구 인력과 근로자들을 자랑하는 ‘세계의 공장’ 중국에 흘러들어갈 경우 중국과 대만의 경쟁력이 동시에 급부상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3통 전면실시에 따른 경제적 효과가 향후 5년 동안 1000억 대만달러(약 3조8000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중국과 대만의 관계 단절로 앉아서 재미를 봤던 홍콩과 마카오는 3통 전면 실시로 여행업과 운수업의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홍콩 여행업계는 연간 100만 명의 대만 통과 여객이 줄어들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홍콩 특구 정부는 그러나 중국과 대만 관계가 밀접해지면 양안경제권 시장 규모가 커지고 이는 결국 홍콩 경제에 도움이 된다며 3통 실현이 단기적으로는 악재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호재라고 주장하면서 애써 충격파를 줄이려는 모습이다.

대만 야당 반대 극복해야

천윈린 중국 해협회 회장(왼쪽)이 마잉주 대만 총통을 지난 6일 예방해 말 그림을 선사하고 있다.

천윈린 중국 해협회 회장(왼쪽)이 마잉주 대만 총통을 지난 6일 예방해 말 그림을 선사하고 있다.

물론 양안관계 개선에 장애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만 야당인 민진당의 반대가 심상찮다. 지난달 중순 천윈린 회장의 방문에 앞서 대만을 찾았던 장밍칭 해협회 부회장이 대만 독립 지지자들에게 마구 폭행을 당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대만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이번에는 천윈린 회장을 경호하기 위해 경찰 7000여 명을 동원했다. 천 회장이 지난 6일 마잉주 총통을 예방했을 때도 면담 장소인 타이베이 호텔 앞에서는 수백 명의 민진당 당원이 연좌시위를 벌였다. 지난 5일 우보슝 국민당 주석 초청 만찬장에 참석했던 천 회장은 시위대에 둘러싸여 7시간이나 행사장에 갇히는 바람에 이튿날인 6일 새벽 3시쯤 숙소인 위안산 호텔로 돌아가는 곤욕을 치렀다.

민진당은 이번 합의가 대만 정부와 중국 측이 밀실 야합을 한 결과라고 주장하면서 마잉주 총통이 대만을 중국에 넘겨주려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상당수 시위대는 양안관계가 밀접해질수록 중국에 흡수 통일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결국 대만 독립의 꿈은 영원히 사라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또 다른 일부 시위대는 3통 전면실시가 기업에는 좋은 소식이지만, 중국의 값싼 노동력이 대거 대만에 몰려들 경우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을 지적한다. 당국이 제시하는 장밋빛 청사진보다는 자기 밥그릇이 사라지는 것을 걱정해야 할 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입장이다.

이번 합의를 계기로 양안관계는 급격한 관계 개선을 보일 듯하다. 중국은 대만 독립을 추진하던 천수이볜 전 총통과 달리 중국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마잉주 총통과 협력을 강화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고 있다. 대만은 고속 성장을 하고 있는 중국과의 제휴로 경제적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3통’이란
통상(직접 교역), 통우(우편 직접 교류), 통항(항공 교통 및 해상 교통 직접 교류)을 가리킨다. 1949년 국공내전이 끝나고 국민당이 대만으로 철수한 이후 교류 상태가 전무했던 양안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1979년 1월, 예젠잉 당시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장(국회의장)은 ‘대만 동포에 보내는 글’을 발표해 이른바 3통을 처음 제안했다. 이에 대해 대만은 중국의 통일전술이라고 보고 불접촉, 불담판, 불타협의 이른바 3불정책을 내세우며 거절했다. 2000년 취임한 민진당 소속 천수이볜 총통은 3통 실현에 적극적이었다. 양측 협상에 따라 2001년 1월부터 대만과 마주보고 있는 중국 푸젠성 샤먼과 대만 진먼다오 간 자유로운 인적 왕래를 시작한 이른바 ‘소3통(좁은 의미의 3통)’이 실시된 바 있다.

홍인표<경향신문 베이징지국장·중문학박사> iph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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