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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 윤시중, 가족극 한편으로 세계를 누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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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연출가 윤시중, 가족극 한편으로 세계를 누비다

세계를 누비고 다니는 가족극 <세상에서 제일 작은 개구리 왕자>(11월 30일까지, 목동방송회관 브로드홀)의 배우 연습실은 대학로와 전혀 상관없는 태릉 부근의 한 건물 지하실에 있다. <세상에서 제일…>은 서울의 외딴(?) 곳에서 만든 작품이지만, 작품성 하나로 세계 각국을 누비고 있다.

지난 해 6월 <세상에서 제일…>의 초연이 대학로의 한 소극장에서 열렸다. 연출을 맡은 윤시중씨는 잘나가는 무대디자이너 출신이지만, 연극판으로 돌아와 연출가로 데뷔했다. 자식과 같은 작품이기에 초대권으로 관객석을 채우기 싫었다. 그래서 내건 것이 무조건 ‘유료 관객’이라는 모토. 하지만 관객석은 텅텅 비었다. 보다 못한 아내와 극단 사람들이 대학로에 나가서 휴가 나온 군인이나 놀러온 청소년을 끌어오기도 했을 정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가면서 작품을 3번 이상 본 아주머니들이 입소문을 내면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그림 동화 <개구리 왕자>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어항과 카메라, 스크린, 인형을 이용한 독특한 연출법이 눈길을 끈다. 8㎜ 카메라가 작은 어항과 미니어처를 촬영하고, 그 화면이 무대 위 스크린에 비친다. 스크린 앞에서 배우가 연기를 하는데, 마치 배우가 물속에서 연기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윤시중씨는 “영상을 썼지만, 영상에 기댄 작품은 아니다”라면서 “작은 어항과 미니어처를 쓴 것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그가 말한 ‘작은 것’은 어쩌면 ‘순수’의 세계와 이음동의어다. “골목, 장터 등지에서 사거나 주웠음직한 허술한 물건을 변형시켜 아이들의 놀이 경험과 눈높이에서 상상력을 촉발해내는 구석구석 아이디어가 참신하다”는 연극평론가 장성희씨의 평가처럼, 무대 위에는 극단에서 준비한 작은 조명 몇 개와 스피커 등만 놓여 있다. 마치 소극장이 아닌 집에서 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 음향과 조명을 맡은 오퍼레이터도 따로 없다. 무대 위의 배우들이 불을 켜고 끌 정도고, 음향 시설 역시 무대 위에 설치해놓은 작은 스피커가 전부다. 심지어 아동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연 중간중간 아이들에게 물어보는 형식이나 막이 오르기 전에 하는, 어린이를 위한 멘트도 모두 생략했다. 아동극이지만 아동극의 형식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어쩌면 ‘무모한 도전’일 것 같지만, 이런 아이디어와 자연스러움은 큰 호응을 받았다. ‘2008 아시테지 서울 어린이연극상’에서 최우수작품상, 최고인기상을 수상했고, ‘2008 Pittsburgh International Children’s Festival’에서 최고 인기 작품으로 선정됐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2008 키지무나 페스타’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 내년에는 <난타>를 공연한 ‘뉴 빅토리아 시어터’ 공연이 예정되어 있고, 외국의 한 에이전시는 내년 캐나다, 뉴욕, 멕시코 투어를 하자고 요청했다. 중국의 한 에이전시에서는 이 작품의 라이선스를 사고 싶다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윤시중씨는 이와 같은 성공에 대해서 “미국 유학 시절 만난 사람들의 도움을 받게 되더라”면서 “여러 좋은 제안이 들어왔지만, 작품의 질이 좋아지는 제안만 받을 예정이다”고 말했다.

연기과 전공 후 서울예술단, 인천시립극단 등에서 활동한 잘나가는 배우였지만, 극단 생활 5년 만에 미국 유학길에 오른 윤시중씨. 미국에서 6년간 능력을 인정받은 무대디자이너로 활동한 후 돌아왔고, 한국에서는 무대디자이너, 극장건축, 대학교 겸임교수 등으로 바쁜 시간을 보냈다. 돈도 많이 벌고 좋은 차도 몰았지만, 그는 결국 다시 연극판으로 돌아왔다. 배우와 살을 부대끼며 만드는 연극이 훨씬 정겨웠다. 그래서 ‘하·땅·세’(하늘부터 땅끝까지 세게 간다는 뜻)라는 극단을 만들었고, 연극 한 편씩 매년 올릴 생각이다. 12월에는 또 다른 가족극 <콧구멍 벌렁벌렁>이라는 작품을 올릴 예정이다. 그를 연극쟁이로 살아가게 만든 사람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지낸 극작가 윤조병 선생이다. 윤시중씨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제일…> <콧구멍 벌렁벌렁> 역시 윤조병 선생이 직접 쓴 작품이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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