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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많고 탈 많은 방송가 인적 쇄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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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윤도현·정관용씨 하차… YTN은 노종면·현덕수씨 등 해고

지난 10월 13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의 KBS 국정감사에서 이병순 KBS 사장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경향신문>

지난 10월 13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의 KBS 국정감사에서 이병순 KBS 사장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경향신문>

인사가 만사다. 사람이 모든 일의 중심이 된다는 얘긴데, 요즘 KBS와 YTN을 바라보며 이 말을 더욱 실감하고 있다. KBS 기자 출신으로 KBS 사장에 임명된 이병순 사장, 이명박 대통령 후보 시절 방송특보를 지낸 구본홍 YTN 사장. 두 사람 모두 비정상적으로 진행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통해 선임된 사장이다. 이들이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모든 문제가 시작됐다.

KBS를 흔히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일컫는다. 직종·세대·이념·지역 간 갈등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조직이 크고 방대한 KBS는 사장이 바뀌고 나면 인사를 통해 조직 자체가 송두리째 바뀐다. KBS는 사장이 2명의 부사장을 임명하고 난 뒤 보도, TV 제작, 라디오 제작, 편성, 기술, 경영파트의 본부장 인사를 낸다. 그리고 각 본부의 팀장을 인사하고 나면 조직 장악이 완성된다. 이후에는 ‘생각대로’ 하면 된다.

KBS ‘제작비 절감’이 이유
KBS는 최근 ‘제작비 절감’을 이유로 이번 가을 개편에서 수상한 일을 냈다. 가수 윤도현씨와 시사평론가 정관용씨를 각각 하차시킨 것. 윤도현씨는 KBS 2TV <윤도현의 러브레터〉와 Cool FM 〈윤도현의 뮤직쇼〉에서, 정관용씨는 KBS 1TV 〈심야토론〉과 1라디오 〈열린토론〉에서 물러나게 된 것이다. 모두 5~6년간 프로그램을 진행한 베테랑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10월 30일 성명을 내어 “(이번 결정에서) 정관용씨는 정권에 비판적 보도를 많이 한 인터넷 언론 〈프레시안〉의 이사인 점이, 윤도현씨는 촛불집회에 참석한 점이 작용했다는 관측이 유력하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1년 전 정관용씨를 인터뷰했을 때 <프레시안〉 이사인 점을 들어 “혹시 편향됐다는 지적은 받지 않냐”고 물어봤다. 그는 “제가 편향되게 진행하던가요?”라고 반문했다. 그도 그럴 것이 PD들은 정관용씨에 대해 “그는 치우치게 방송한 적이 없는, 일종의 토론 프로그램의 교과서”라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그랬다. 오히려 손석희보다 너무 중립적이어서 네티즌에게 욕을 먹는 게 다반사였다. 편향성에 대해서는 담당 PD보다 더 고민했다고 그를 겪어본 PD들은 얘기했다.

KBS 가을 개편에서 ‘제작비 절감’을 이유로 가수 윤도현(왼쪽)씨와 시사평론가 정관용씨를 프로그램에서 물러나게 하자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경향신문>

KBS 가을 개편에서 ‘제작비 절감’을 이유로 가수 윤도현(왼쪽)씨와 시사평론가 정관용씨를 프로그램에서 물러나게 하자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경향신문>

윤도현씨의 하차와 관련해서 KBS 예능팀의 한 PD는 이렇게 얘기한다. “윤도현씨가 6개월 전에 라디오를 그만두려고 했을 때 한 달간 휴가까지 주면서 잡아뒀던 사람입니다. 삼고초려까지 하면서 모셔왔는데…. 비싼 출연료요? 유재석씨가 회당 900만 원인데 윤도현씨는 180만 원이에요.”

뉴스를 다루는 KBS 보도본부에도 이 같은 인사의 영향은 두드러진다. KBS 시청자위원회(위원장 고현욱)는 9월에 이어 10월에도 KBS 뉴스가 친정부적이라며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내놓았다. ‘땡전뉴스’에 이어 ‘땡이뉴스’가 우려된다는 지적이다.
KBS 시청자위원회는 방송법에 규정된 방송 편성·프로그램 내용·자체심의규정에 관한 의견 제시 또는 시정을 요구할 수 있는 기구로, 위원회의 거듭되는 지적은 KBS 보도가 최근 공정성과 신뢰성이 위기에 직면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KBS 뉴스가 이처럼 무너진 데 걸린 시간은 불과 2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지난 몇 년간 KBS는 신뢰도 1위, 영향력 1위의 언론사로 추앙받았다. KBS 뉴스가 다른 언론사에 비해 돋보였던 것은 KBS 탐사보도팀의 단독보도가 매번 이슈를 주도했던 점도 컸다. 메인 뉴스 중심의, 짧은 데일리 리포트 중심의 취재, 제작 방식에서 한 단계 전진하기 위해 다른 언론사와 질적으로 차별화된 심층 취재를 위한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KBS의 합의와 기대로 탐사보도팀은 2005년 4월 출범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MB식 인사실태보고 연속보도’ ‘새 정부 고위공직자 검증 연속보도’ ‘에버랜드, 삼성가 미술품 비밀 창고 의혹 및 삼성특검 관련 연속 단독 보도’ ‘김앤장을 말하다 1, 2편’ ‘시사기획 쌈 - 대선후보를 말한다. 무신불립(無信不立)’ 등으로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놨다. 41개월 동안 KBS 탐사보도팀은 23건의 탐사기획다큐와 152건의 탐사리포트를 취재, 보도하면서 29건의 각종 외부 언론상을 받으며 각광받았다.

무더기 해고, 전두환 정권 이후 처음
그러나 권력과 자본에 비판적인, 지극히 언론의 본질에 충실한 게 문제라면 문제였을까. 이병순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한국형 탐사보도의 기틀을 마련한 김용진 팀장을 팀원으로 인사냈다. 곧바로 부산총국으로, 또다시 울산으로 무차별적으로 인사를 냈다. 그는 한 달여간 세 번이나 짐을 쌌다. ‘부관참시’(剖棺斬屍) 인사라는 울분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그리고 탐사보도팀은 곧 있을 KBS 조직개편에서 없어질 운명에 처해 있다.

YTN은 지난달 6일 구본홍 사장의 ‘출근저지투쟁’을 벌여온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 노종면 지부장, 현덕수 전 노조 지부장 등 6명을 해고했다. 언론사에서 기자가 무더기로 해고된 것은 1980년 전두환 정권의 ‘언론통폐합과 언론인강제해직’ 이후 처음이다. 구본홍씨가 사장이 된 이후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돌발영상’은 담당 PD의 해고와 정직으로 무기한 불방됐다. 그러나 구씨가 참석한 ‘랜덱스’ 개막식은 편성까지 바꿔가며 생중계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달 새로 임명된 강철원 YTN 보도국장 직무대행은 ‘보도국 정상화 방안’의 일환으로 차장대우까지 갖고 있던 기사 승인권을 부·팀장과 차장만 가질 수 있도록 재정비하겠다고 밝혔다. YTN 사태를 YTN이 보도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속내다. 그는 노조의 입장에 동조하는 부장과 차장은 입장을 확실히 할 것을 지시하고, 노조에 가담한 기자들의 성향을 분석한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갈등에 갈등을 거듭하는 주식회사 YTN. 그러나 기업으로서 이들의 투쟁을 높이 평가 하는 곳은 다름아닌 한 증권사였다. 대신증권은 ‘YTN 보고서’에서 “국내 광고 경기가 침체인데도 YTN의 주 수입원인 광고 매출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노사간 갈등으로 인한 노조의 투쟁이 오히려 장기적으로 YTN 뉴스 가치를 제고시킬 수 있다고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그들의 투쟁이 설득력이 있다는 뜻이다.

지난달 정치부 왕선택 기자는 눈물을 흘리며 보도국 간부들에게 이렇게 호소했다. “홍수가 났을 때 하루 20번씩 4일 동안 80번 전화 연결하면서도 묵묵히 일한 조승호 기자, YTN 가치를 500억 이상 오르게 만든 노종면 지부장, 이 사람들 덕분에 우리가 여기까지 왔는데 왜 이 사람을 잘라요. 나도 얼마나 짐승처럼 일했는지 선배들은 모릅니다. 선배들이 움직이면 해결할 수 있어요. 선배들이 움직여 주셔야죠.”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이 모든 상황을 두고 ‘언론 정상화 과정’이라고 말했다.

<원성윤 | PD저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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