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 지갑 터는 대기오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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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오염은 개발도상국 도시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인에 속한다. 황사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등산하는 시민들. <남호진 기자>

대기오염은 개발도상국 도시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인에 속한다. 황사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등산하는 시민들. <남호진 기자>

영어로 ‘분위기’를 뜻하는 단어와 ‘대기’를 뜻하는 단어는 같다. “공기가 오염돼 숨 쉬기가 힘들다!”와 “분위기 칙칙해서 살맛 안 난다!”는 표현은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뜻이다. 특히 환경 보건의 관점에서 보면 공기는 모든 생명체에 ‘살맛’을 제공해주는 필수요소다.

해마다 80만 명에 달하는 세계 인구가 대기오염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고 한다. 정확한 실태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실내 공기오염은 대기오염보다 무서운 살인자다. 매년 160만 명의 조산아 사망에 책임이 있다니 말이다.

개도국과 선진국 들의 피해 수준이 같지 않기 때문에 대기오염은 경제적인 불평등과 떼놓을 수 없는 문제다. 세계자원연구소(WRI)가 1990년부터 2000년까지 대기오염 자료를 분석한 결과, 선진국에서는 대기오염물질의 배출이 줄었지만 개발도상국에서는 50%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보건기구(WHO)의 통계는 우리나라가 아직 개발도상국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확인해준다. 중국과 인도 등 브릭스와 엇비슷하게 100만 명당 200명에서 230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이웃나라 일본은 대기오염에 의한 사망자 수가 우리나라의 절반 정도에 그쳤다.

공기 깨끗해지면 사회적 비용 감소
개발도상국에서 대기오염이 심하고 특히 도시지역이 문제라는 사실로 보면, 대기오염은 개발도상국 도시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인에 속한다. 특히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겪고 있는 아시아가 문제다. 대기오염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65%는 아시아에서 발생하고 있다.

환경과 건강을 위협하는 대기오염 물질은 질소산화물, 미세먼지, 일산화탄소, 납, 오존, 휘발성유기화합물 등 셀 수 없을 정도다. 대부분 자동차가 내뿜거나 화력발전소와 중금속을 사용하는 산업공정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기오염의 특징은 지역별 오염도의 차이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국토가 좁고 도시화가 전국적으로 진행된데다 산업단지와 주거지가 혼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기오염으로 발생하는 사망자를 줄이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이 노력은 단지 이미 발생한 오염물질의 제거와 같은 기술적 해결책만 의미하지는 않는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오염원 자체를 줄여 피해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자가용 위주의 교통체계를 대중교통 중심으로 바꾸고 에너지와 자원을 낭비하는 산업 구조를 과감하게 변화시켜야 한다. 많은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다. 공기가 깨끗해지면 오히려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줄고, 장기적으로는 산업구조가 건전해지는 부수적인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대기오염을 줄이겠다는 정부 정책이 겉돌면서 시민들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공기청정기와 황사 방지용 마스크가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소아과마다 호흡기 질환에 걸린 아이들이 넘쳐난다. 통계에 잡히지는 않지만 대기오염 사망자들의 장례 비용도 함께 늘어나고 있을 게 분명하다. 이 비용들은 국내총생산(GDP)에 합산되기 때문에 늘면 늘수록 경제가 성장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정부가 대기오염을 줄이려는 노력을 등한히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들에게 옮겨간다. 가난한 이들조차 대기오염 때문에 얇은 지갑을 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일 공기청정기나 마스크를 구입할 수 없을 정도로 지갑이 비어 있다면, 두통과 목 아픔, 눈 따가움, 호흡기 질환 따위를 감수해야 한다. 고통을 견디다 못해 약을 먹거나 병원이라도 찾는다면 지갑 부피가 줄어들기는 마찬가지다. 경제학에서 ‘외부 효과’라고 부르는 이 현상은 시장 원리를 맹목적으로 신봉하는 나라일수록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입만 열면 규제 철폐를 말하는 정부와 기업들은 결국 가난한 사람들의 지갑을 더 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안병옥 환경연합 전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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