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퇴출 사학재단들 보수정권 맞아 복귀 시도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상지·세종·조선대 등 이사공백 상태
사학분쟁조정위, 정이사 선임 싸고 갈등

2004년 세종대학교 감사 기간 중 세종대 정문·기둥에 학교 구성원이 써붙인 이사 퇴진과 관선이사 파견을 요구하는 글 펼침막이 붙어 있다. <대양학원 제공>

2004년 세종대학교 감사 기간 중 세종대 정문·기둥에 학교 구성원이 써붙인 이사 퇴진과 관선이사 파견을 요구하는 글 펼침막이 붙어 있다. <대양학원 제공>

“저희 아들 주명건은 천륜을 저버린 패륜아였습니다. 세종대학교를 위해 단 한 푼의 재산을 기여한 바도 없이 모든 것을 저희에게 물려받은 그는 탐욕을 멈추지 못하고 부모인 저희를 핍박하고 폭언과 협박, 폭행을 해왔습니다. 저희 내외는 그로 인해 접근 금지 신청까지 내야 했으며, 부모인 저희를 검찰에 고발했다가 오히려 무고로 조사를 받기도 했습니다.(하략)”

9월 26일, <스포츠서울> 1면 하단에 9단통으로 실린 광고 내용의 일부다. 광고를 낸 이는 세종대 설립자 주영하·최옥자 부부다. 이들은 이 광고에서 “2004년 10월 교육부에서 실시한 세종대학교 종합감사에서 총 113억 횡령을 비롯해 39개 항목 158건에 달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비리와 부정이 밝혀졌다”라며 “대양학원 이사 전원과 함께 주명건은 이사장에서 해임되어 학교의 명예를 크게 훼손했음에도 근신 자중하지 않고 현재의 세종대학교 분규 사태를 가족 간 분쟁으로 호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설립자 부부가 자신의 친아들을 고발하는 광고를 신문에까지 게재한 까닭은 무엇일까. 세종대 재단을 둘러싸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기에 이들 설립자 부부는 이런 광고를 내게 된 걸까.

10월 21일 세종대 캠퍼스는 정작 조용했다. 플래카드가 여럿 걸려 있지만 그중 ‘분쟁’을 담고 있는 플래카드는 최근 고려대가 세종 캠퍼스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중단을 촉구하는 내용뿐이다. 적어도 외양으론 전 이사장과 설립자의 갈등 등을 보여주는 흔적은 없다. “학교 안에서 특별한 움직임은 눈에 띄지 않는다. 학교 후문에 보면 세종○○○라는 회사가 있는데, 주명건 전 이사장은 주로 거기로 출퇴근하면서 일을 본다고 들었다.”

박춘노 대양학원(세종대 재단) 사무국장의 말이다. 박 국장은 비록 학교에는 출입하지 않지만 주 전이사장은 학교 사정을 실시간으로 보고 받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 “이사회에 여전히 자신의 사돈이 정이사로 앉아 있고, 또 학교 구성원들 사이에도 ‘통합교협’이라고 주 전 이사장의 입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박 국장은 설명했다.

설립자 부부가 친아들 고발광고

현 상지학원 재단을 비난하는 기사가 실린 신문. 지난해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교문 앞 등에서 집중 배포됐다. <상지학원>

현 상지학원 재단을 비난하는 기사가 실린 신문. 지난해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교문 앞 등에서 집중 배포됐다. <상지학원>

학교 ‘안팎’의 기류는 심상찮다. 지난 6월까지만 하더라도 사학분쟁조정위원회(위원장 정귀호·사분위)와 관련해 주 전 이사장을 비롯한 구 재단 쪽은 “노무현 정권이 코드 인사로 임명한 5명(노 대통령 3인, 국회의장 중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 몫 2인)은 사퇴해야 하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사분위의 조정을 거부할 것”이라며 ‘사분위 보이코트’ 입장이었다. 주 전 이사장 측은 사분위에 조정위원인 주경복 건국대 교수와 박거용 상명대 교수의 기피 신청을 냈고, 이 신청은 사분위 법률소위에서 받아들여졌다. 상지대 구 재단 측도 박거용 교수와 김윤자 교수에 대한 기피 신청을 받아냈다.

10월 2일 사분위는 주 전 이사장을 김문기(상지대)·박철웅(조선대·99년 사망)·조무성(광운대)와 함께 ‘이해관계자’에 포함시키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최근 열린 사분위 회의에 참석해 ‘이해관계자’로 구 재단 측의 ‘정상화 방안’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횡령 등 각종 비리로 사학분쟁의 빌미를 제공하다 퇴출된 사립대학 재단 이사장의 ‘대학 찾기’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본격적인 공세’는 지난 5월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상임 대표 이명희)을 중심으로 한 임시이사파견대학 부정·비리 대책위원회의 기자회견부터 시작됐다.

이들은 “8개 관선 임시이사 파견대학에서 부정·비리가 만연하고 있다”며 감사원에 감사를 청구하고 대학 소재지 검찰에 고발했다. 고발당한 학교를 중심으로 한 임시이사파견대학공동대책위원회는 “이들의 고발이 ‘아니면 말고’ 식의 의혹 제기나 비리로 쫓겨난 구 재단 측이 제기한 의혹설의 재탕·삼탕”이라면서 이명희 대표(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 등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본지 778호 관련기사 참조).

교육과학기술부는 9월 17일부터 30일까지 세종대를 비롯한 3개 대학 감사를 실시했다. 당초 19일까지 3일로 예정된 감사는 7일을 연장, 총 10일 동안 강도 높게 진행됐다. 아직 감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교육부 사학감사팀 관계자는 “감사원이 해당 민원 중 대양학원(세종대)와 영광학원(대구대)·유신학원(대구예술대) 3개 대학을 조사하도록 위탁한 데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춘로 대양학원(세종대) 사무국장은 “세종대에 대한 감사 결정이 어떤 목적이나 배경에 의해 짜맞춰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구 재단 측이 9월 초 교육부에 낸 진정이 계기가 되었다고 하지만 더 큰 정치적 목적이 있는 감사라는 주장이다.

과거 방송통신위원회 위원 교체와 KBS사장 임명 등에서 보였던 (뉴라이트)우파시민단체의 문제 제기→감사 청구→인사 교체와 낙하산 인사 등의 수순과 지금 임시이사 파견대학에서 보이는 행태가 쏙 빼닮았다는 것이다.

올 초 조선대 동창들에게 발송된 조선대 동문회 명의의 홍보 소식지. 박철웅 전 총장을 지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올 초 조선대 동창들에게 발송된 조선대 동문회 명의의 홍보 소식지. 박철웅 전 총장을 지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과거 재단 비리와 학원민주화운동을 거쳐 겨우 정상화된 학교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세종대 한 교수는 “비록 일부 교수 사이의 움직임이지만 주 전 이사장이 복귀했을 때를 대비한 블랙리스트도 도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대학교에서는 올해 초 박철웅 전 이사장이 설립자라는 내용이 담긴 ‘조대인’이라는 홍보책자가 조선대 동창회라는 이름으로 배포되기도 했다. 상지대에서는 교문 앞 등지에서 ‘김문기 복귀과 상지대 운영자 퇴진’등을 주장하는 책자를 나눠주는 사람들이 목격되고 있다. 최근 사분위에 출석하려는 김성훈 총장을 김문기 전 이사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가로막고 못 들어가게 하는 사건도 발생했다. 지난해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는 김성훈 총장과 현 상지학원 측을 비난하는 기사로 도배한 <해공일보>라는 신문을 교문 앞에서 나눠주거나 신문 간지로 끼워 배달하는 등의 일도 있었다. 상지대 정문 맞은편에 원색적인 비난 플래카드를 거는 일도 계속되고 있다.

이명박 정권 들어 재탈환 노림수
박정원 임시이사파견대학공대위 공동대표는 “상지대·조선대·세종대 등은 사학비리로 구 재단이 물러난 뒤 학교구성원들에 의해 빠르게 정상화가 진척됐는데 이런 노력들이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우파단체와 구 재단 측인 이지환 사학설립자비상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경인여대 교수)은 “흔히 비리재단에도 경영권을 돌려줘야 하냐고 문제제기를 하는데, 비리재단이라고 낙인찍힌 사람에게 경영권을 주라 말라할 이유는 없다”라면서 “현행법에 따르면 형사 처벌을 받은 자는 5년 동안 이사할 수 없으며, 다시 복귀하려고 할 땐 이사회의 3분의 2 이상 이사회 찬성을 받으면 된다”고 말했다. 구 재단이사장은 비록 비리가 있어 법의 단죄를 받았더라도 그렇다고 학원을 몰수할 수 없다는 것이 이들 주장의 요지다.

이들 주장의 근거로 언급하는 것이 바로 2007년 5월 대법원의 상지대 관련 판결이다. 대법원은 상지대 임시이사회가 정이사를 선임한 것에 대해 무효라 판결했다. 이 판결에 따라 상지대에는 임시이사가 다시 파견됐다. 한편, 지난 해 7월 사립학교법이 다시 개정됐다. 개정사립학교법에서는 임시이사 파견대학의 경우 정이사를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심의하도록 했다. 어떻게 보면 사분위의 권한이 강화된 셈이다. 하지만 사분위는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막바지인 12월 27일 구성됐다. 우파단체는 사분위 위원 임명이 코드인사라고 반발했다. ‘사분위 조정거부’가 나온 배경이다.

권영상 상지대 전 사무국장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들은 ‘난동자’다. 반자유주의·반사학 입장을 가진 제3자들인데, 그들이 대학을 강탈한 것이 아니냐. 학교 교수들이 자기들끼리 보직을 나눠먹었다. 역대 총장만 보더라도 다 골수좌파였다. 김성훈 현 총장도 그렇다. 광우병 발언을 통해 촛불집회에 기름을 끼얹은 사람이 바로 김성훈이다.” 이들은 상지대를 비롯한 ‘분쟁사학’에 좌파이념을 가진 교수가 관선이사라는 이름으로 장악했고, 정권이 바뀐 지금 이들도 물갈이를 해야 한다는 맥락이다.

이에 대해 박정원 임시이사파견대학 공대위 공동대표는 “대법 판결은 임시이사가 정이사를 선출하는 것은 잘못이며, 구 재단도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지 경영권을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김문기 전 이사 쪽에서는 설립자라는 것을 강조하는데 2004년 대법원 판결로 그는 설립자가 아니라는 것이 확정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마지막 종전이사로 건학 이념을 이어받는다는 것도 설립 이념이 비리를 저지르기 위한 것은 아니며, 사학비리를 저지른 재단은 설립 이념을 왜곡·변질시켰기 때문에 비리를 저지르고 처벌받는 순간 대표성은 없다고 보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재판결과에 대한 아전인수 격인 해석이라는 것이다.

박경양 동덕여대 이사장 직무대행은 “현재 나도 이사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데, 만약 내가 잘못해서 쫓겨나서 임시이사가 들어왔다고 가정해보자. 5년 후 ‘내가 직전에 해임된 이사장인데 이건 내 학교다’라고 주장하면 누가 인정하겠는가”라고 구 재단 측 주장의 모순을 지적했다. 그는 “사학분쟁조정위원회도 임시이사나 정이사를 선임할 때 설립자 의견을 들어보는데, 그것을 반영해서 뽑을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사분위의 권한에 해당한다”라며 “김문기 전 이사장의 논리는 마치 밀수하다 적발돼 처벌받은 사람이 밀수품을 공매할 때 나타나 ‘내가 가져온 물건이니 나에게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고 덧붙였다.

지난 7월 조선대의 설립자기념탑을 누군가 훼손했다. <조선대학교 제공>

지난 7월 조선대의 설립자기념탑을 누군가 훼손했다. <조선대학교 제공>

문제는 6월 30일자로 파견한 임시이사 임기가 종료됐는데 사분위가 근 4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이들 대학에 대한 후속조치를 못 내고 있다는 점이다. 현 재단 및 학교구성원 측에서는 정상화방안을 제출하라는 요구에 올해 1월 정상화 방안을 이미 내놓은 상태다. 이들 입장에서는 벌써 9개월 이상 정상화가 지연되고 있는 셈이다. 사분위가 정권이 바뀐 뒤 ‘눈치보기’를 하는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사분위의 결정이 미뤄지면서 각 대학은 업무상 중요 결정 및 학사 행정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 현재는 ‘긴급사무처리권’을 동원, 흩어진 이사들을 모아 임시방편으로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10월 16일 사분위가 입주해 있는 서울시 종로구 코리안리재보험빌딩 앞. 상지대·조선대·세종대·광운대 교수·학생·학교관계자 100여 명이 모여 집회를 열었다. 1시간여 진행된 집회에서 이들은 “사분위가 이들 대학의 정상화추진계획안 심의를 계속 미루는 것은 구 재단에게 복귀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니냐”면서 “정이사 파견을 조속히 결정하라”고 촉구했다.

“정권 눈치보기 아니냐” 비판
이들 대학 구성원은 다시 임시이사가 파견될 경우를 우려하고 있다. 현 대학 재단 및 학교 구성원들이 우려하는 시나리오는 이렇다. 2009년 11월이면 현 사분위 조정위원들의 임기가 끝난다. 새로 임명될 조정위원의 인사권자는 이미 이명박 대통령과 국회에서 다수가 된 한나라당으로 바뀌었다. 그 뒤 정이사체제가 논의되면 훨씬 유리한 국면이 조성된다는 것이 구 재단 측의 판단이다. 앞으로 1년 만 임시 이사체제로 버티면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사이 새로 선정될 임시이사의 ‘성향’도 과거 정권과는 다르다. 이지환 위원장은 “일단 정권이 바뀌었으니 교과부도 임시이사 선임에서 좌파 성향은 배제할 것이고, 그렇다고 너무 노골적으로 우파 성향 인사를 파견한다면 구성원의 몰매를 맞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색깔 없는 사람으로 선정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교육과학부 관계자는 “아직 사분위가 결정하지 않은 사안이기 때문에 현재 선정된 임시이사 명단 등은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최승구 세종대 전 사무총장은 “지금 현 재단이나 구성원 측이 정이사를 빨리 선임하라는 것은 사분위에 자기편이 많을 때 좌파 위주의 이사를 선임해달라고 떼쓰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사분위의 정상화 계획이나 관련 규정을 담고 있는 사학법도 위헌소지가 있는데, 그런 문제를 충분히 검토하고 개선한 다음 정상화해야 한다”라며 “현재는 보수 성향의 임시이사가 파견되어 학교를 안정시킨 다음 정이사체제로 가는 것이 현실적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최 전 총장의 ‘사학법 위헌’ 발언과 함께 지난 16일 출범한 교육선진화운동(상임대표 김진성 명지대 교수)은 사립학교법 폐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박정원 임시이사파견대학공대위 공동대표는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대학은 과거 대학 민주화 투쟁을 통해 많은 희생을 겪고 오늘날 안정을 찾은 학교들”이라며 “임시이사 파견이나 정상화 과정에 구 재단이 참여하는 절충안이 나올 경우 다시 혼란과 분란에 빠질 것은 불을 보듯 빤하다”라고 말했다. 사분위는 10월 30일 정이사 선임 여부 또는 임시이사파견을 두고 최종인선을 심의할 예정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관련기사

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