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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 ‘반정부 볼륨’ 왜 줄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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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편향 규탄 강경 목소리 잦아들어…
‘마침표’ 찍지 못한 채 동력 점점 약화

조계종 총무원장 승용차를 검문해 불교계를 발칵 뒤집었던 경찰은 조계사 경내에 들어올 생각도 못했다. 그래서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수배자는 ‘느긋하게’ 천막농성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경찰이 조계사 경내에 들어와 천막 안을 지켜보고 있다.

전국 수만 명의 스님이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현 정부를 규탄하는 시국법회를 연 것이 바로 엊그제다. 대통령 사과, 경찰청장 파면 등을 요구했지만 어느 것 하나 이뤄진 것이 없다. 그러나 지금 불교계는 겉으로는 ‘우향우’, 친정부로 방향을 바꾼 듯한 기류다. 불교 신도는 물론 많은 일반인도 무엇 때문에, 무슨 대가를 얻고 불교계 지도부가 노선을 바꿨는지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별일 없습니까?”
경찰서 정보과 형사가 영남 지역 한 사찰의 주지 스님을 만나 건넨 인사말이라고 한다. ‘별일 없습니까’라는 말은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 이 스님은 조계종에서 종단 차원으로 계획하고 있는 11월 1일 대구·경북 범불교도 결의대회에 신도를 데리고 가야 하는 입장에 처해 있다. 이런 주지 스님에게 경찰서 관계자의 ‘별일 없습니까?’라는 인사는 진짜로 ‘별일’이 아닌 것이 됐다. 경찰 외에도 친분이 있는 지역 유지들에게서 대구·경북 지역 사찰 주지 스님은 ‘현 정권을 도와줘야지 왜 불교계가 반대하고 나서는지 모르겠다’는 핀잔을 받는다고 한다. 사찰의 주지는 지역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각종 인·허가 문제로 관공서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입장에 처해 있다.

불교도대회 앞두고 외유 나선 스님
대구에서 가장 큰 규모의 사찰로 이름난 영남불교대학 관음사의 회주 우학 스님은 외유 중이다. 대구·경북 범불교도 대회에서 가장 많은 인원을 동원할 수 있는 사찰의 회주가 대구를 떠난 것이다. 불교단체의 한 관계자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관음사 측은 “회주 스님은 8월 말 미국에 가셨다”면서 “당분간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한 중진 스님은 “범불교도 결의대회 때문이 아니라 사찰 일로 방문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하지만 불교계에서는 이런 상황이 벌어진 정황을 두고 말이 많다. 어떤 식으로든 스님의 입장이 난처했기 때문에 종단의 중요한 일을 앞두고 외유를 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대구 두류공원에서 열리는 불교도대회이니만큼 인근에서 많은 인원이 참석하게 할 수 있는 지역교구본사인 대구 동화사와 영천 은해사의 상황도 좋지 않다. 동화사는 주지인 허운 스님이 주지 선거에서 금품 수수 혐의로 수사를 받아왔다. 은해사는 최근 주지인 법타 스님이 사직했다. 인근 지역 사찰의 불자가 많이 참석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지휘관’이 이런저런 사건에 연루된 셈이어서 정권에 드러내놓고 ‘반기’를 세울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한다. 경부대운하 건설 반대뿐 아니라 종교 편향 규탄에 목소리를 높였던 영남권 교구본사 주지들의 목소리도 낮아졌다. 불교계의 한 관계자는 “이들 교구본사 주지 스님도 범불교도 결의대회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행사를 사실상 주최하는 조계종 총무원도 ‘김이 빠진’ 상황은 대구·경북지역 불교계와 마찬가지다. 한 불교단체 관계자는 “범불교도대회의 행사를 실질적으로 준비하는 집행위원장 진화 스님이 집행위원장 직을 그만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총무원 관계자는 “진화스님이 집행위원장직을 내놓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확인했다.

총무원은 8월 27일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의 범불교도대회 이후 이미 한 차례 몸살을 앓았다. 총무원에서 대외 업무 및 대내 업무를 총괄하는 기획실장 승원 스님이 사표를 내고 사무실에 나오지 않은 것이다. 가평 백련사 주지인 승원 스님은 지관 총무원장에 대한 경찰의 차량 검문 사태 이후 대변인으로 조계종의 강경한 목소리를 전했다. 불교계 내부에서는 이를 두고 현 정부와 마찰 과정에서 부담을 이기지 못해 물러난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흘러나왔다.

총무원에서는 대구에 직원을 파견하는 등 대구 불교도대회 준비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지관 총무원장은 조계사 신도들이 대구로 타고 갈 차량 준비 여부를 직접 확인했다고 한다.

총무원이 대구 대회 준비에 나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계종 내부의 분위기는 이미 급격하게 바뀌었다는 것이 불교계 내부의 이야기다. 조계종은 9월 26일 교구본사 주지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언급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며 종교 편향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를 대폭 낮췄다.

교구본사 주지도, 총무원 관계자도 일제히 소리를 낮췄다. 시국법회에 참여했던 젊은 스님들이 여전히 강경한 입장을 표명한 반면, 주지 소임을 맡고 있는 중진 스님들의 경우 현실론을 내세우면서 목소리를 낮췄다. 대구 불교도대회도 규탄대회에서 결의대회로 수위가 낮아졌다.

종교 편향 규탄 과정에서 강경한 입장을 견지했던 원우회(총무원 직원 조합) 역시 목소리가 낮아졌다. 경찰청앞 항의 시위에서 삭발했던 장영욱 원우회장은 “미진함은 있지만 종단의 입장을 따를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천막에서 농성하고 있는 광우병국민대책회의 박원석 상황실장은 조계종의 ‘입장 완화’ 표명 이후 변화에 대해 “전에는 바깥에만 있던 경찰들이 조계사 경내에 들어와 천막 안을 지켜보고 있다”면서 “종교 기관에서 정부와 갈등을 이렇게 오래도록 지속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불교계의 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불교단체 ‘경찰 내사설’ 지적
어청수 경찰청장에 대한 퇴진 운동 이후 지방 경찰서 관계자들의 사찰 방문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불교계에서는 ‘경찰 내사설’이 흘러나왔다. 시국법회추진위원회는 10월 9일 “9월 10일 어청수 경찰청장의 동화사 사과 방문 이후 12일께 경무관급 이상이 참석하는 참모진 회의에서 불교계 비리에 관한 내사를 구두지시했다는 제보가 모 사찰에 들어왔다”며 관계기관의 해명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경찰청은 다음 날 “시국법회추진위원회가 주장하고, 일부 언론이 보도한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자료를 냈다. 경찰청은 “범불교도대회를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주최 측에 행사 계획을 문의·협의했고, 사과 서신 발송 등을 위해 불교계 지도자의 주소를 파악했을 뿐”이라며 “경찰은 불교계 등 어떤 단체나 개인에게도 보복성 표적 내사나 수사를 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불교계가 일제히 목소리를 낮춘 데는 내사설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재야 불교단체의 목소리다. 윤남진 참여불교재가연대 사무처장은 “내사설에 대한 제보가 있었고 사실”이라면서 “정황상 그것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박광서 참여불교재가연대 공동대표는 “내사설은 경찰이 앞으로 내사를 하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이야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내사설에 대해 조계종 총무원 신임 기획실장 장적 스님은 “지금과 같은 세상에 내사란 것이 있을 수 없다”면서 “경찰청장이 불교계에 각별히 신경 써 불미스러운 일이 없도록 하라고 한 것이 잘못 해석되는 면이 있는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불교계에서는 11월 1일 대구 불교도대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제대로 치르지 못할 경우 대외적으로 망신을 당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박광서 공동대표는 “총무원이 김을 뺏다”면서 “하지만 대구 불교도대회를 잘 마쳐야만 이명박 대통령 임기 기간에 불교계와 현 정권이 서로 긴장하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상효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사무국장은 “동력이 많이 약화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불교단체가 대거 참여하고 있는 시국법회 추진위는 10월 16일 성명서를 내고 불자들이 적극 동참할 것을 호소했다. 불교계의 한 관계자는 “총무원 차원에서 처음부터 강경하게 나서는 바람에 뒷감당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서 “지금은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데 찍지 못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박광서 공동대표는 “용두사미가 돼 버렸다”며 현 상황을 비판했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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