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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자사업은 퇴직관료 ‘은퇴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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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은 자리 보장·사업자는 수입 보장받는 ‘SOC 마피아’ 비판 높아

[경제]민자사업은 퇴직관료 ‘은퇴 코스’

올해 국감에서도 민자사업은 도마에 올랐다. 그동안 국가 재정의 한계로 정부가 민자유치사업을 적극 장려했지만 시행사의 총 투자사업비보다 국고지원액이 더 커지고 있는 것. 때문에 여야를 막론하고 ‘세금 먹는 하마’ ‘밑 빠진 독’이라는 지적의 목소리가 크다.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김성순 의원(민주당)은 국토해양부 국정감사에서 “정부가 민자로 추진한 인천공항철도,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천안∼논산고속도로 등의 교통량 수요 예측이 크게 부풀려졌고 운영 수입 보장도 과다해 막대한 국고 보조금을 투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세금 쏟아붓는 ‘국고 먹는 하마’
국토해양부 자료를 보면, 인천공항철도의 경우 하루 평균 20만7421명이 이용할 것으로 예측됐지만 지난해 수요 예측의 6.4%인 1만3212명이 이용하는 데 그쳤다. 하루 평균 통행량 6만8711대(52.1%)에 불과한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도 당초 예상은 하루 13만1965대였다. 천안∼논산고속도로 역시 당초 예상 통행량이 하루 평균 5만5624대였으나 실제는 3만2390대(58.2%)에 그쳤다. 김 의원은 “정부가 민간 사업자에게 예상 수요량의 최대 80∼90% 운영 수입을 보장하기로 함에 따라 지난해 국고보조금으로 인천공항철도 시행자에게 1093억 원,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808억 원, 천안∼논산고속도로 390억 원, 대구∼부산고속도로 시행자에게 331억 원을 지급했다”면서 “예산만 낭비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민자사업의 운영 수입 보장 기간을 잘못 책정하는 바람에 앞으로도 국고 지원을 추가해야 할 곳이 많다. 광주 제2순환도로와 우면산터널, 인천공항고속도로, 인천국제공항철도 등 4개 사업은 운영 수입 보장 기간을 잘못 책정하는 바람에 앞으로도 추가 지급할 금액은 모두 1조7000억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

수년 동안 되풀이되면서도 민자사업을 꾸준히 추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민자사업의 사장으로 건교부 출신 등 퇴직 관료들이 줄줄이 낙하산으로 내려앉은 것을 보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적자가 나도 정부가 세금으로 메워주는 민자사업 특성상 이 같은 전임 관료에 대한 ‘영전 인사’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우선 건교부(현 국토해양부) 퇴직 관료들의 이동이 눈에 띈다. 인천공항철도 사업자 공항철도(주) 대표는 김윤기 전 건설교통부 장관이다. 한국토지공사 사장(1997~ 2000), 건설교통부 장관(2000~2001) 출신인 김 대표는 2001년 3월 퇴임 직전 현대건설 컨소시엄과 신공항철도 건설 실시 협약을 체결할 때 주무 장관이다. 당시 계약 내용을 보면 정부는 공항철도 수입이 예상치 대비 90%에 못 미치면 그 차액을 보전해주기로 되어 있다. 김 대표는 3년 전 자신이 선정한 사업체에 대표로 부임한 셈이다. 작년 3월 1단계 구간을 개통한 인천공항철도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향후 연간 2000억~3000억 원 수준으로 불어날 전망이다.

총 사업비 2조3300억 원을 투자하는 영천~상주고속도로 시행사인 영천상주고속도로(주)의 최종수 대표도 건교부 도시건축심의관, 건설경제심의관, 부산지방국토관리청장, 항공국장 등을 역임한 후 대한건설협회 상근 부회장을 거쳐 지난 5월 30일 취임했다. 영천상주고속도로(주)는 경북 영천시 북안면과 상주시 낙동면을 연결하는 94㎞의 고속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설립한 민간사업자로 대림산업(주) 등 17개사가 컨소시엄에 참여했다. 공사기간은 10월부터 2013년 10월까지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font color="#cc6600"><b> 인천공항철도 →</b></font> <b>김윤기</b> 공항철도 대표(전 건교부 장관) <font color="#cc6600"><b> 우면산 터널 →</b></font> <b>박필용</b> 우면산인프라웨이 대표(서울시 시설관리공단 이사, SH공사 본부장) <font color="#cc6600"><b> 서수원~오산~평택고속도로 →</b></font> <b>남동익</b> 경기고속도로 대표(건교부 광역교통기획단장, 대한건설협회 부회장) <font color="#cc6600"><b> 신분당선 →</b></font> <b>신광순</b> 신분당선 대표(철도공사 사장) <font color="#cc6600"><b> 인천~김포고속도로 →</b></font> <b>장동규</b> 인천고속도로 대표(건교부 기획실장) <font color="#cc6600"><b> 영천~상주고속도로 →</b></font> <b>최종수</b> 영천상주고속도로 대표(건교부 항공국장, 대한건설협회 부회장)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인천공항철도 → 김윤기 공항철도 대표(전 건교부 장관) 우면산 터널 → 박필용 우면산인프라웨이 대표(서울시 시설관리공단 이사, SH공사 본부장) 서수원~오산~평택고속도로 → 남동익 경기고속도로 대표(건교부 광역교통기획단장, 대한건설협회 부회장) 신분당선 → 신광순 신분당선 대표(철도공사 사장) 인천~김포고속도로 → 장동규 인천고속도로 대표(건교부 기획실장) 영천~상주고속도로 → 최종수 영천상주고속도로 대표(건교부 항공국장, 대한건설협회 부회장)

내년 10월 개통 예정인 서수원~오산~평택고속도로 사업자인 경기고속도로(주)의 사업 규모는 1조6800억 원. 이곳 역시 건교부 광역교통기획단장을 거쳐 대한건설협회 상근 부회장을 지낸 남동익 대표가 2005년부터 재임 중이다.

이 밖에도 인천~김포고속도로(사업비 1조3300억 원) 시행사업자인 인천고속도로(주) 대표는 장동규 전 건교부 기획실장이고, 평택~시흥고속도로(사업비 1조1600억 원) 시행사업자인 제이서해안고속도로(주) 대표는 건교부 출신 김석봉 사장이다.

건교부 산하기관 출신의 민자사업자 대표 진출도 있다. 총 사업비 1조5400억 원 규모인 부산울산고속도로(주)는 전 도로공사 기획본부장 출신 김용진 사장이, 2조5400억 원을 투자해 지하철 2호선 강남역과 분당선 정자역을 잇는 신분당선 시행사인 신분당선(주) 대표는 신광순 전 철도공사 초대 사장이 맡았다.

우면산터널 민자사업자인 우면산인프라웨이의 박필용 대표는 서울시 건설 공무원 출신으로, 시설관리공단 시설관리 이사와 SH공사 사업1본부 본부장을 지내고 지난해 9월 취임했다. 민주당 발표에 따르면, 우면산터널 통행량은 예상치 대비 38% 정도에 불과해 앞으로 30년간 3000억 원 규모 재정지원금을 투입할 것으로 보인다.

국감 단골 메뉴지만 개선되지 않아
건교부 출신뿐 아니다. 감사원의 4급 이상 퇴직자 중 가장 많이 취업한 업종은 건설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이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주광덕 한나라당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3년 이후 감사원을 퇴직한 4급 이상 고위 공무원 중 영리 사기업체에 재취업한 36명 가운데 11명이 건설업체에 재취업했다. 또 민간 부문 경영기법을 행정에 반영하기 위해 도입한 민간휴직제도 실시 이후 취업한 민간업체도 모두 건설업체였다.

이 때문에 주 의원은 “감사원 고위 공직자가 영리 사기업체에 재취업한 것과 민간휴직제도로 1년 동안 취업했다가 다시 감사원에서 근무하는 것이 고속도로나 철도, 항만 등 사회기반시설(SOC) 민자사업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 외면 행태와 관련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혈세 먹는 민자사업’이 국정감사의 단골 주제지만 늘 지적만 될 뿐 책임지는 사람과 기관이 없고 뾰족한 대책도 없는 상황이 문제다. 민자사업자들이 추정 교통량을 과다 책정하고 청탁을 통해 확정한 후 개통 후의 실제 교통량에 따른 실제 운영 수입과 최소 운영 수입 보장 금액의 차액을 정부로부터 교묘하게 챙겨 받아가는 수법을 쓰고 있지만, 이와 관련해 감사원의 감사는 수박 겉핥기 식이라는 지적이다.

때문에 민자사업자 대표로 정부나 산하기관 출신 인사가 선임되는 데 대해 의혹의 눈초리가 강하다. 민자사업자는 세금 보전을 받고, 퇴직 관료는 자리를 보전받는다는 말이 그것이다. “공무원, 토목업자, 정치인들은 모두 SOC(사회간접자본) 마피아”라는 비난이 거세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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