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도 예술도 아닌 대한민국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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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상의 교훈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왼쪽)과 <태풍>.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왼쪽)과 <태풍>.

브로드웨이는 해마다 6월이면 신작으로 넘실댄다. 이유는 하나, 바로 토니상 때문이다. 미국의 무대 작품을 대상으로 선발하며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토니상은 TV의 에미상, 영화의 오스카상, 음악의 그래미상 등과 더불어 미국의 문화산업을 이끌어가는 대표적인 수상제도로 손꼽힌다.

뮤지컬로 토니상에서 받을 수 있는 상은 모두 14개 분야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신작도 이 상을 모두 받는 일은 없다. 왜냐하면 신작은 후보에 오를 수 없는 리바이벌 부문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 작품을 가져다 현대적으로 각색하고 재구성해 그 예술성을 인정받을 때 비로소 후보에 오를 수 있는 작품에 수여하는 독특한 분야다. 옛것을 다시 무대에 올릴 때도 창의력과 예술성을 가미한 준창작 과정을 포함해야 한다는 암묵적 요구인 셈이다.

토니상은 단순한 시상제도 자체만 의미하지 않는다. 미국 뮤지컬계에서는 장기 공연 여부를 좌우하는 갈림길의 표지석 역할을 하기도 한다. 수상 여부가 곧 흥행과도 밀접하게 관련되는 셈이다. 시장 기능이 극대화된 미국 상업극장가에서 ‘오픈 런’이란 ‘양날의 칼’과 같다. 관객이 찾는다면 10년이든 20년이든 얼마든지 오랜 기간 공연을 계속 하는 반면, 그렇지 못하면 하시라도 문을 닫고 마는 비정한 정글의 법칙이 살아 있는 것이 바로 장기공연제도다. 토니상의 수상 여부는 그해 막을 연 신작들에겐 장기 흥행의 관문을 통과할 것인지를 결정짓는 일종의 테스트 마켓이 되는 셈이다. 상의 권위에 시장적 기능까지 부가함으로써 문화산업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노하우와 연륜에는 절로 감탄이 흘러나온다.

우리나라 뮤지컬계에는 두 개의 대표적인 상이 있다. 해마다 봄에 열리는 더 뮤지컬 어워드와 가을의 한국 뮤지컬 대상이 그것이다. 얼마 전 14번째 생일을 맞은 한국 뮤지컬 대상에서는 치열한 각축 끝에 창작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이 12개 부문 후보에 올라 6개상을 석권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2000년 창작뮤지컬 <태풍>의 7개상 수상에 이은 두 번째의 다관왕 기록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는 현재 이 뮤지컬을 볼 수 없다. 장기 공연이 불가능한 탓에 공연은 이미 막을 내렸고, 어쩔 수 없이 다음 리바이벌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신세다. 해마다 급속한 성장을 이루며 뮤지컬 시장은 빠르게 팽창하고 있건만, 시장을 꽃피울 창작물의 육성이나 장기 공연을 위한 제반 여건의 조성에는 정부든 행정가든 큰 관심이 없다. 대한민국의 뮤지컬은 산업도 예술도 아닌 언저리에서 육성도 지원도 아닌 모호한 서자취급만 받고 있을 뿐이다. 우리 창작 뮤지컬의 해외 진출 소식이나 성공 신화의 탄생을 학수고대한다지만 정작 우리의 시장 환경은 창작물을 만들 수도, 비료를 주며 가꿀 수도 없는 척박한 땅에 불과하다. 언제쯤 돼야 우리는 토니상의 교훈과 시장적 기능을 제대로 이해하고 흉내라도 내볼 수 있을지 답답한 노릇이다.

원종원<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jwon@s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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