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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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마에 리더십과 이명박의 리더십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강마에로 분한 김명민.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강마에로 분한 김명민.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강마에는 넝마에 무엇인가 잔뜩 줍는 사람 같다. 그는 마에스트로기 이전에 미다스의 손을 가진 사람이다. 넝마에 이것저것 고물을 담는 그의 손길을 거치면 멋진 물건이 되어 나온다. 심지어 그가 즐겨 규정하는 ‘똥덩어리’도 그의 손을 통해 멋진 음악인으로 탄생한다.

그를 보자면 훌륭한 음악교육기관이 쓸모없음을 느끼게 된다. 강마에 같은 훌륭한 연주자 한 명만 있으면 아무리 실력이 뒤진 이들이라도 단번에 좋은 음악가가 될 수 있다. 뭐 하러 어렸을 때부터 죽어라 하고 바이올린이나 첼로, 클라리넷을 연습할까. 적당히 하다가 강마에 같은 연주자의 지도를 받으면 되는데 말이다. 오히려 지휘자만 잘 길러내면 비용도 대폭적으로 아낄 수 있다. 더구나 유학 비용도 강마에는 혼자 해결했다.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는 지도자에 대한 환상을 중심에 둔다. 강마에는 상대방이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끼도록 하며 자기 인식에 따라 분발시키려 한다. 실제로 이러한 리더가 조직 안에 있다면 어떨까? 자신이 매우 프로페셔널하기 때문에 너희들 모두 나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라고 할 것이다. 처음부터 의사 소통은 없다. 다만, 드라마 속에서는 강마에가 절대 악인이 아니기 때문에 보아줄 만할 뿐이다.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는 클래식 버전의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과 같다. 어중이떠중이 모아다가 실력은 있지만 왕따를 당하는 리더가 세상을 깜짝 놀랄 만한 성과를 낸다. 그러나 클래식에서 짧은 순간에 깜짝 놀랄 만한 성과를 낸다는 것은 허구적이다. 단기적 성과 지상주의의 투영이다. 또 음악 자체에 집중하지 못하고 그 외의 요소에 더 주목할 뿐이다.

천재 한 명, 뛰어난 인재가 전체 구성원을 먹여살린다는 점은 자본과 보수층의 논리다. 이들은 영재교육에 찬성하고 특목고의 설립을 추진한다. 다중지성의 논리나 사회연결망이론 혹은 링크와 허브를 생각하면 이러한 점은 이미 낡았다. 자연과학도 혼자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 일반 조직에는 더 타당하지 않다. 한 사람의 지도자가 전체 결과물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대통령제에서도 불가능하다. 시스템에 따라서 움직이는 면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몇몇 리더가 혼자의 깜냥으로 좌지우지하려고 한다. 강마에는 이명박 시대에 아부 한다. 그러나 하이에크의 말대로 인간은 모든 것을 계획하고 통제할 수 있을 만큼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강마에는 불도저 리더십을 닮았는데 이명박 정부를 볼 때 그 결과는 드라마와 다르게 참혹하다.

김헌식<방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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