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현재현 동양그룹회장 ‘시련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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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합섬 인수합병 배임혐의로 조사
검찰 입장 강경 사법처리 여부 관심

<동양그룹 제공>

<동양그룹 제공>

동양그룹이 최근 도덕성 논란에 휩싸여 갈팡질팡하고 있다. 부실 계열사에 대한 부당 지원 및 현재현(59) 회장의 한일합섬 인수합병(M&A)에 대한 배임 혐의에 따른 검찰의 기소 여부 때문이다.

부산지검 특수부는 동양메이저㈜가 지난해 ㈜한일합섬을 인수·합병(M&A)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각종 의혹과 관련해 동양그룹 현재현 회장을 지난달 3일 소환해 조사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지검 특수부는 동양메이저가 2006년 말 3745억 원대에 한일합섬을 인수·합병한 후, 법적으로 금지된 차입인수(LBO) 방식을 이용해 한일합섬의 주주들에게 1800억 원대의 손해를 끼친 혐의(배임중재 등)로 지난 7월 구속된 동양메이저 추연수(49) 대표이사를 구속한 바 있다. 검찰은 이와 관련해 현 회장의 공모 여부 등에 대해 집중 조사했고 현 회장이 편법으로 한일합섬 인수합병에 개입한 사실을 입증할 만한 증거를 확보했다며 기소를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또 추씨가 전 한일합섬 부사장 이전철(61·구속기소)씨에게 동양메이저를 인수기업으로 추천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18억9000만 원을 건넨 사실을 현 회장이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조사했다.

동양그룹 측 혐의내용 전면 부정
동양그룹과 현 회장은 물론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차입인수(LBO) 방식을 이용한 인수·합병 사실은 전혀 몰랐다”고 진술했다. 동양그룹 측의 공식 입장도 한일합섬 인수·합병과 관련한 의혹에 대해 “한일합섬 인수를 위해 받은 대출금 상환은 동양메이저와 한일합섬 합병 후인 올해 5월 14일에 이뤄져 LBO 방식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해명하고 있다.

현재현 동양그룹회장.

현재현 동양그룹회장.

동양그룹은 2006년 말 동양메이저를 통해 법정관리 중인 한일합섬 매각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한일합섬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바 있다. 당시 동양그룹은 한일합섬의 섬유 부문은 기존 유통망을 강화해 의류 브랜드 마케팅을 펼치고 건설은 동양메이저 건설 부문과 연계해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또 설비 부문은 동양매직의 산업기계 부문과, 레저 부문은 동양레저와 함께 종합레저그룹으로 성장시켜 금융·제조와 더불어 동양그룹의 새로운 축을 형성한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하지만 인수 2년이 가까워진 지금 검찰은 한일합섬의 인수 의도 자체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검찰은 구속된 추연우 동양메이저 대표가 지난해 2월 법정관리 상태인 한일합섬을 인수한 뒤 5월 한일합섬을 동양메이저에 합병시키고 그 즉시 한일합섬의 현금성 자산 1800억 원으로 동양메이저의 대출금을 상환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즉 한일합섬 재무구조가 견실했기 때문에 한일합섬 자금으로 대출금 상환이 가능하다고 보고 현 회장을 비롯한 동양메이저 수뇌부가 합병을 계획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경영자문료 19억 원 상식 밖 금액
이에 대해 동양그룹 홍보팀의 관계자는 현 회장에 대한 검찰의 배임중재혐의에 대해 “이전철 전 한일합섬 부사장이 한일합섬 인수를 추천해 동양이 이를 인수하는 계기가 됐고, 인수 후 소액주주 주식 매입, 타사와 마찰을 빚은 시공권 해결 등 이 부사장의 역할이 커 이에 대한 적정한 경영자문료 등을 지급한 것으로 현 회장의 개입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적정한 경영자문료가 19억 원에 달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또 LBO 방식의 인수와 관련해 “검찰 발표와 달리 한일합섬의 인수 주체인 동양메이저산업이 보유 중인 주식을 담보로 한일합섬의 인수자금을 조달했고 차입금 상환은 동양메이저와 합병 후인 2008년 5월 14일에 이루어졌으므로 LBO 방식과는 전혀 무관하다”라고 주장했다.

구속 조치된 추연우 동양메이저 대표.

구속 조치된 추연우 동양메이저 대표.

검찰은 또 지난 8일 인수 당시 동양그룹이 한일합섬을 5년간 독자적인 기업으로 유지하겠다는 이해당사자 간 협약서를 작성한 시실도 밝혀냈다. 협약서까지 작성해서 주주를 안심시키고 합병이 되자 한일합섬의 유동자산을 자신들의 대출금 상환에 임의로 전용한 것은 명백한 배임이라고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의 입장이 이처럼 강경하자 현 회장의 사법 처리 여부가 재계에서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 인수자가 자신의 자금을 직접 출자해 SPC(특수목적회사)를 설립한 뒤 피인수 기업의 주식을 담보로 차입금을 마련하는 방식의 LBO가 배임인지 아닌지에 대한 법원 판결이 없기 때문이다.

검찰, ‘공짜 M&A’ 관행 철퇴 계기로
검찰은 이번 기회에 재계 일각에서 인수하지도 않은 기업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려 사실상 ‘공짜’로 M&A하고 채무상환 부담도 피인수 회사에 떠안겨 해당 기업 주주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는 관행에 철퇴를 가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입장이다. 지금까지 비교적 깨끗한 이미지로 재계에 알려진 현 회장은 이번 사건으로 도덕성에 흠집이 난 상태다. 취임 후 최대 고비를 맞은 현 회장의 시련이 어떻게 끝날지 자못 궁금하다.

사시 12회 동기 ‘현재현 수호천사’ 되어줄까

강재섭, 정형근, 이종찬, 김각영, 김승규, 양승태. (왼쪽 위 시계방향)

강재섭, 정형근, 이종찬, 김각영, 김승규, 양승태. (왼쪽 위 시계방향)

동양그룹 현재현 회장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동양그룹의 창업주인 고(故) 이양구 회장의 맏사위다. 동양은 국내 재벌가에서 최초로 사위가 승계한 그룹이다. 창업주인 고 이양구 회장은 1945년 북에서 혈혈단신으로 월남해 부인과 슬하에 딸만 둘을 뒀다. 이 회장이 1989년 타계한 이후 동양의 경영권은 가족 간 협의를 통해 맏사위인 현 회장이 승계했고, 둘째사위인 담철곤 회장은 동양제과(현 오리온)를 맡았다. 현 회장과 담 회장은 13년간 각각 시멘트·금융, 제과·엔터테인먼트 등의 사업 영역에서 독자 경영을 했기 때문에 사위 간 기업 분할은 별다른 잡음 없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동양제과가 2001년 9월 1일 동양그룹에서 분가하면서 동양그룹 32개 계열사 가운데 제과와 엔터테인먼트 계열의 16개사가 떨어져나가 계열 분리가 마무리됐다.

동양그룹은 삼성, 현대 등 복잡한 가족 간의 경영권 다툼으로 소송 등이 끊이지 않는 다른 재벌그룹과는 다르게 가족 구성원이 단출하다. 혼맥 역시 정·관·재계에 든든하게 뿌리를 내린 국내 여느 재벌가와 달리 단순하다. 따라서 현 회장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 구속 위기에 처하면서 동양그룹은 정·관·재계 인맥이 부재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전언이다.

현 회장은 경기고-서울대를 거친 소위 ‘KS’ 출신으로 대학 3학년 때 사법고시 12회에 합격해 부산지검 검사로 재직하다 장인의 부름을 받고 경영에 입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 회장의 집안은 전형적인 학자 집안이다. 고려대 초대 총장을 지내고 ‘유학계의 마지막 거두’로 알려진 고(故) 현상윤 총장이 그의 조부이며, 이화여대 의대 교수를 역임한 고(故) 현인섭씨가 그의 부친이다. 현 회장은 3남2녀 가운데 셋째인데 그의 형제 역시 대부분 학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첫째는 고려대 대학원장을 지낸 현재천(61) 교수이며, 둘째는 현재민(59) KAIST 교수, 장녀는 현재희(51) 세종대 교수, 차녀 현재란(49)씨는 의사다. 현 회장은 그동안 검사 출신답게 투명하고 정직한 경영을 해왔지만 이번 사건으로 구속될 경우 그동안 쌓아온 깨끗한 이미지와 도덕성에 어느 정도 흠집이 생길 것은 자명하다.

재계 일각에서는 현 회장의 버팀목으로 사시12회 동기들을 꼽고 있다. 현 회장은 최근까지 1년에 한두 차례 이상 사시12회 동기 모임을 주도해왔고 부부동반 모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사시12회 동기는 그야말로 ‘빵빵’하다.

정치권 인사로는 강재섭 한나라당 전 대표최고위원과 정형근 전 한나라당 의원이 있고 이명박 정부에서 ‘왕수석’으로 불리던 이종찬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사시 동기이자 청와대 입성 전까지 동양종합금융증권의 사외이사로 재직했다. 법원에 남아 있는 현직 판사로는 양승태 대법관이 있으며 고위 법관 출신의 정호영(전서울고등법원장)·강병섭(전서울중앙지방법원장)·김연태(전광주고등법원장)·김상기(전서울행정법원법원장) 변호사 등이 있다. 검찰 출신 동기로는 노무현 정권 때 법무부 장관과 국가정보원장을 거친 김승규 변호사, 김각영 전 검찰총장, 윤동민 전 대전고검 차장 등이 있다.

특히 윤동민 변호사는 김앤장 소속으로 대우그룹 김우중 전 회장 사건과 두산그룹 사건을 맡는 등 대기업 총수 사건 전문으로 정평이 나 있는 인물이다. 한편 동양그룹 수사를 하고 있는 부산지검의 수장은 김수민 검사장(사시22회)이다. 성균관대학교 출신의 김 검사장은 공안통으로 검찰총장을 지낸 김각영 변호사와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김태열 기자 yol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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