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에 나타난 증권가 : 겜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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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과 욕망이 비극을 부른다

[시사와 문화]영화 속에 나타난 증권가 : 겜블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환율이 요동치고 증시가 널뛰기를 한다. 미국 다우존스산업지수도 심리적 마지노선이던 1만이 붕괴하고 곤두박질치고 있다. 코스피 지수도 연일 하락세다. 코스닥도 400 이하로 떨어지기도 했다. 청와대 경제팀에서는 매일 비상대책회의를 한다고 한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어지럼증이 날 지경이다. 이런 장세에서 득을 보는 것은 오직 선수들뿐이다. 피해자는 개미 투자자들이다. 그들은 아무리 안전한 투자를 한다고 해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이제는 반토막이 난 투자액을 보고 한숨지을 여유도 없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올해 들어 3분기까지 개인 투자자들의 주식 자산이 100조 원 이상 날아갔다고 한다.

증권가를 무대로 한 영화 중에서는 올리버 스톤 감독이 만든 ‘월 스트리트’가 압권이다. 마이클 더글라스와 찰리 쉰 등이 출연해서 월가의 거물과 그의 하수인으로 들어가는 풋내기 신참을 통해 시세를 조종하고 적자 기업을 헐값에 인수하여 분할매각하는 방식으로 이득을 챙기는 증권가의 이면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제임스 디어든 감독의 ‘겜블(‘Rogue Trader, 1999년)은 세상을 떠들석하게 한 실제 사건을 소재로 만든 금융 영화다. 영국계 투자은행의 아시아 지점에 근무하는 한 직원의 욕망과 실수로 수백 년 전통의 명망 있는 은행이 도산한 실제 사건이 긴박감 있게 펼쳐진다.

닉 리슨(이완 맥그리거 분)은 승승장구한다. 영화의 초반은 그의 출세가도를 신나게 보여준다. 닉이 근무하는 베어링 회사는 머천트 뱅크, 일종의 종합 금융회사다. 고졸 출신의 그는 유서 깊은 이 은행에 입사한 뒤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는다. 인도네시아 국채를 산더미처럼 쌓아만 놓고 처리하지 못하는 자카르타 지점으로 발령이 난 것이다. 리슨은 단시일에 일을 깔끔하게 처리하고 회사에 큰 수익을 안겨준다. 이제 결혼해서 미모의 아내 리사(앤 프리엘)도 얻고 싱가포르 지사로 옮겨서 팀장으로 활동하는 닉은 자신의 팀에 있는 한 직원의 실수로 후지은행 주식 선물을 매수해야 할 것을 매도하면서 2만 파운드의 손실액이 발생한다. 닉은 비밀 깡통계좌를 만들어서 손실액을 보충하려고 하지만 주가는 계속 상승해서 손실액은 6만 파운드로 늘어난다.

그때 거액의 투자가가 나타나자 닉은 엄청난 자금을 가지고 시장을 조작하면서 막대한 차익을 거두어 손실액을 모두 메운다. 시장조작의 방법은 간단하다. 자신의 팀이 매도 주문을 내서 선물 가격을 떨어뜨리고 가장 바닥을 칠 때 낮은 가격으로 다시 사서 수익을 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비극의 시작이었다. 단순간에 막대한 차익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목격한 닉은 겁이 없어진다. 그의 배팅 규모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그의 잘못된 판단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실제 사건이 갖는 무게감, 주가 조작 등 증권가의 이면을 사실적으로 그린 ‘겜블’은 금융위기의 시대에 경고등처럼 붉은 불빛을 깜박거린다. 영화는 잘못된 탐욕과 욕망이 모든 비극의 근원이라는 것, 그리고 위기관리 시스템의 부재가 비극을 부른다는 것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하재봉<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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