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MBC 트로이카 권력에 굴종 마라”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노조, 엄기영 사장·김세영 부사장·김종국 기획조정실장 정조준

MBC노조는 (좌로부터) 엄기영 사장, 김세영 부사장, 김종국 기획조정실장을 정조준하기 시작했다. <MBC 제공>

MBC노조는 (좌로부터) 엄기영 사장, 김세영 부사장, 김종국 기획조정실장을 정조준하기 시작했다.

MBC노조가 MBC 임원진 중 엄기영 사장, 김세영 부사장, 김종국 기획조정실장을 정조준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MBC노조는 서울지부 조합원 101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현 경영진 출범 후 6개월 동안의 활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잘못했다”는 응답이 77.4%나 되고, “PD수첩 사과방송 결정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설문에는 “잘못했다”가 79.6%를 차지했다. 눈에 띄는 설문은 “경영진이 정권에 타협하거나 굴복하려 한다면 경영진 퇴진 투쟁에 나설 것임을 천명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라는 질문에 “지지한다”는 답변이 무려 85.6%나 나온 것. 특히 노조는 지난 9월 22일 ‘우리의 입장’이라는 글을 통해 “타협과 백기투항을 주도한 부사장과 기획조정실장은 즉각 자진 사퇴하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현 경영진에 대한 불신감이 MBC 구성원 사이에 팽배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박성제 MBC노조위원장은 이번 설문조사에 대해서 “엄기영 사장이 사원의 정서를 못 읽고 있기에 설문조사를 통해 조합원의 뜻을 밝힌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왜 유독 김 부사장과 김 기조실장이 타깃이 됐을까.

김 부사장 “난 굴종한 적 없다”
지난 2월 말 엄기영 사장은 취임 전 임원진을 구성했다. 부사장으로 목포MBC 김세영 사장을 선임했고, 기조실장으로 김종국 선임기자, 경영본부장에 박성희 광고국장, 보도본부장에 송재종 논설위원 등을 내정했다. 김 부사장은 1983년 교양PD로 입사해 편성기획팀 부장, 편성국장 등을 지낸 후 목포 MBC 사장을 역임했다. 경북고와 서울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다. 김종국 기조실장은 고려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1982년 MBC 기자로 입사해 경제부장과 정치부장 등을 지냈다.

김 부사장과 김 기조실장은 보수적인 인사로 알려져 있다. MBC 노조는 엄 사장 취임 후 ‘PD수첩’의 사과 방송, ‘PD수첩’의 진행자·팀장·PD의 인사발령, 시사교양국 국장 교체, 그리고 내부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오고 있는 ‘프로그램 본부장 책임제’와 ‘비상경영방안’ 발표 등을 두 사람이 주도했다고 보고 있다. MBC 보도민실위 김재용 간사는 “노조가 노보를 통해서 두 사람의 퇴진을 요구했을 때, ‘왜 우리냐’라는 반응이 없었다”면서 “그것은 자신들이 주도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고, 여기저기서 들려온 이야기를 종합해도 두 사람이 주도적으로 한 일들이다”라고 설명했다. 김 부사장이 MBC 로비에서 시위를 벌이는 조합원의 피켓에 ‘권력에 굴종하지 마라’는 문구를 보고 그 자리에서 “난 굴종한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는 일화는 노조와 김 부사장의 생각 차가 얼마나 큰지 알려주는 예다.

요즘 MBC 내부 구성원의 반발을 불러오고 있는 ‘프로그램 본부장 책임제’와 ‘비상경영방안’ 역시 노조와 아무런 합의 없이 경영진이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프로그램 본부장 책임제’는 말 그대로 프로그램의 실무책임을 본부장이 진다는 것. MBC는 1989년 노사협의로 체결한 단체협약 제24조 ‘공정방송협의회 운영규정’에 따라 ‘편성·보도·제작상의 실무 책임과 권한은 관련 국장에게 있다’고 명시하면서 ‘국장책임제’를 지켜오고 있다. 외부의 압력 때문에 프로그램이 영향받는 것을 막기 위한 조처였다. 본부장은 외부의 시선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위치기 때문에 일선 국장 책임하에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프로그램을 지켜내는 것이라고 판단한 것.

MBC노조는 ‘PD수첩’의 사과방송부터 인사 문제, 그리고 ‘프로그램본부장 책임제’ 등을 주도했다고 알려진 김 부사장과 김 기획조정실장에게 “자진 사퇴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MBC노동조합 제공>

MBC노조는 ‘PD수첩’의 사과방송부터 인사 문제, 그리고 ‘프로그램본부장 책임제’ 등을 주도했다고 알려진 김 부사장과 김 기획조정실장에게 “자진 사퇴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MBC 구성원은 1990년 3당 합당 이후 ‘PD수첩-농촌을 포기할 수 없다’의 방송이 일방적으로 보류되고, 사회고발성 드라마 ‘땅’(1991)이 느닷없이 중도하차한 뼈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또 이런 분위기를 타고 1992년 MBC 사측이 단체협상에서 공정방송협의회 폐지 등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MBC노조는 50일 파업을 통해 국장책임제를 지켜낼 정도로, 구성원들에게 의미가 있는 원칙인 것이다.

‘프로그램 본부장 책임제’ 일방 발표
‘프로그램 본부장 책임제’는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고 전해진다. MBC의 한 내부 인사는 김 기조실장이 지난 6월부터 ‘프로그램 본부장 책임제’에 대해서 누차 이야기해왔다고 전했다. 김 기조실장은 MBC 구성원이 지켜냈던 공정방송협의회와 국장책임제에 대해 탐탁지 않게 여겼다는 것이다.

업무추진비와 통신료 삭감 등의 사항을 내건 비상경영방안의 일방적인 발표에 대해서도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김재용 간사는 “구성원 모두 경영의 어려움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고통 분담을 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협의 과정도 없었으면서 마치 조합과 협의한 것처럼 발표한 것에 실망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노사가 협의해야 할 사항을 경영진이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경영진의 ‘일방통행식’ 소통구조에 노조는 반발하고 있다. 또 엄기영 사장이 취임식에서 ‘유능제강’(柔能制剛, 부드러운 것이 능히 단단한 것을 이긴다는 뜻)을 이야기하면서 “지켜야 할 원칙을 훼손하는 일에는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고 강하게 약속했던 것도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내부 구성원은 판단하고 있다. MBC의 한 기자는 “엄 사장은 심지가 굳은 사람이 아닐뿐더러 이명박 정부가 이렇게 방송을 장악하기 위해 휘몰아치는 상태에 휩쓸린 것 같다”며 “엄 사장은 좋은 방송인 이미지를 지키고 싶을 텐데, 지금까지의 결정은 잘못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현재 노조와 MBC 경영진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PD수첩’ 사과방송 결정 이후 노조와 경영진 사이의 대화가 끊겼기 때문이다. 노조는 노조대로, 사측은 사측대로 서로 자신들의 주장과 행동만 보여주고 있는 것. YTN노조원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막고 있는 선배들을 보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토로한 것처럼, MBC 내부 구성원들 역시 함께 생활했던 선배를 나가라고 요구하는 것이 어렵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MBC노조는 김세영 부사장과 김종국 기조실장의 퇴진을 끝까지 주장할 것이라는 분위기다. 만일 두 사람이 퇴진하지 않으면 파업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공언했다. 김재용 간사는 “MBC는 KBS나 YTN과는 달리 이제야 1회전이 시작된 것”이라며 “우선은 두 사람부터 퇴진시키고, 이번 정기국회를 통해 나올 방송 장악에 관한 움직임에 대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