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고래의 친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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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의 작품은 남미식 유머와 깊이 있는 생태의식으로 유명하다. 그가 쓴 소설을 읽다보면 문학계에 위장 취업한 환경운동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연애소설을 읽는 노인’이나 ‘갈매기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준 고양이’가 대표적이다. 생태주의적인 감수성으로 가득한 그의 이야기는 우리 내면에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9월 6일 세풀베다의 작품과 비견할 만한 일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다. 자초지종은 이렇다. 충남 보령의 모래갯벌에 세 마리의 돌쇠고래가 갇혔다. 이들을 살리고자 어민과 면사무소 직원, 한국해양구조대와 환경운동연합 회원은 7시간이 넘게 구조 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세 마리를 모두 구할 수는 없었다. 어린 새끼는 너무 오래 바다를 떠난 탓에 탈수를 동반한 피부 건조로 생명을 잃었다. 그 후 어미 두 마리는 새끼의 주검을 뒤로 한 채 바다로 돌아가야 했다.

공식 행사로 치러지는 ‘고래 맛자랑’
어미 고래들이 자기들만 살려고 했다면 언제든지 바다로 돌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새끼를 모래갯벌에서 구해내려고 몸부림치다 오히려 자신마저 갯벌에 묻혔다. 차라리 새끼와 함께 죽으려 했던 어미의 마음이 보는 이들의 가슴을 적셨다고 한다. 영상 기록을 보면 어미 고래의 눈가에는 눈물인지 물방울인지 모를 물기로 가득하다.

세풀베다의 소설 가운데 ‘세상 끝으로의 항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뒤 나중에 다시 ‘지구 끝의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한 소설이 있다. 일본 포경선 침몰 사건의 미스터리를 다룬 이 소설은 남극해에서 고래 학살극을 벌이던 일본 포경선에 맞선 늙은 수부(水夫)를 구하기 위해 고래들이 포경선에 돌진하여 침몰시킨 이야기다. 선장과 수부가 고래 살육 현장을 처음 발견했을 때, 고래들은 몸에 박힌 작살 주위로 붉은 피를 분수처럼 뿜어내고 있었다. 분노한 늙은 수부가 보트를 내려 포경선과 맞서자 포경선은 늙은 수부를 바다에 수장할 듯 공격했다.

고래들이 돌변한 건 그때였다. 고래들은 늙은 수부의 나뭇잎 같은 보트를 해안으로 밀어내고 머리를 돌려 포경선을 향해 돌진했다. 수천 마리의 고래가 포경선을 들이받으며 죽어갔다. 그것은 집단자살과 다른 차원의 의식이었다.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생명을 건 인간을 지키려던 고래들이 보여준 용기와 희생은 문학적 허구로 보아 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보령 해안에 떠밀려와 죽어가는 새끼를 구할 수 없게 되자 함께 죽으려 했던 돌쇠고래 어미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세풀베다가 그려낸 고래들의 영웅담이 단지 문학적 허구에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돌쇠고래들은 새끼와 자신들을 살리려고 생업을 내던지고 달려온 사람들의 사랑과 안타까움에 공감했던 것이다.

하지만 생명에 대한 외경을 다시 생각케 하는 이 아름다운 사례들과 정반대의 일도 벌어지고 있다. 2005년 우리나라를 방문한 생물학자 스콧 베이커 박사는 우리나라에서 고래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국제 사회에서 처음으로 확인한 인물이다. 그는 “11년간의 DNA 추적 조사를 통해 한국의 어시장과 고래 고기 식당에서 멸종 위기 고래들이 거래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상업 포경은 1973년 생물종다양성협약(CITES)에 의해 금지됐다. 1987년에는 국제포경위원회(IWC)가 모든 포경을 금지한 상태다.

우리나라에서 고래잡이는 주로 어류와 함께 그물에 걸리는 혼획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2003년 통계를 보면, 혼획으로 죽어가는 고래 수는 우리나라가 84마리, 일본이 112마리다. 지난 5월 장생포에서 열린 고래축제에서는 ‘한·일 고래 맛자랑’이라는 고래 고기 요리 프로그램을 공식 행사로 진행했다고 한다. 과연 우리는 고래들의 친구인가 적인가?

<안병옥 환경연합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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