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혈액은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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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팬의 테플론코팅, 살충제, 드라이크리닝 용제 등 우리 일상 속의 화학물질은 ‘초대받지 않는 손님’으로 우리 혈액을 오염시킨다. 사진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인간 혈액. <경향신문>

프라이팬의 테플론코팅, 살충제, 드라이크리닝 용제 등 우리 일상 속의 화학물질은 ‘초대받지 않는 손님’으로 우리 혈액을 오염시킨다. 사진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인간 혈액. <경향신문>

‘몰리 클레멘트의 혈액은 35가지 이상의 화학물질이 섞여 있는 칵테일과 다름없었다.’ 2005년 11월 19일 영국의 일간신문 데일리 메일은 한 가족의 혈액검사 결과를 기사로 내보냈다. 104가지에 이르는 화학물질의 인체 침투 여부를 검사한 결과, 몰리의 가족은 모두 화학물질로 오염된 혈액을 지니고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몰리 가족의 몸에서 검출된 화학물질은 모두 75가지. 그 가운데는 생식기 장애를 부르는 프탈레이트와 발암물질로 알려진 과불화화합물(PFCs), 그리고 간암 유발인자인 PCB 등이 섞여 있었다.

그런데 몰리 가족의 이야기는 바로 우리의 미래일 수도 있다. 어린이 책에 자주 등장하는 노마가 바로 우리 아이들이라 치자. 노마의 혈액은 과연 괜찮을까? 답은 노마를 둘러싼 환경에 좌우된다.

예컨대, 노마네 집 부엌에 있는 프라이팬이 모두 음식 재료가 눋지 않도록 테플론 코팅으로 처리되어 있다고 가정해보자. 기형을 유발하는 발암물질 퍼플루오로옥탄산염(PFOA)이 프라이팬의 가열 과정에서 방출될 가능성이 크다. 노마가 물을 튕겨내는 방수 기능성 겉옷을 자주 입는다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노마의 옷 또한 퍼플루오로옥탄을 함유하고 있을 확률이 거의 100%기 때문이다.

옷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옷도 잘 선택해 입지 않으면 화학물질의 칵테일을 걸치는 꼴이 되기 십상이다. 노마의 엄마는 합성섬유로 만든 옷보다 천연소재인 면이 건강에 좋을 것이라는 생각에 노마에게 주로 면 옷을 입힌다. 아크릴이나 나일론, 폴리에스테르와 같은 화학섬유 옷감들은 보통 포름알데히드로 마감한다. 따라서 그런 옷감으로 만든 옷을 입으면 체열 덕분에 증기화된 포름알데히드를 흡입할 가능성이 크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 화학물질
하지만 노마 엄마의 선택이 과연 맞을까? 면이 화학섬유보다 더 유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에코숍’ 설립자인 그레그 혼의 신작 ‘리빙 그린’의 내용을 보면, 면의 원재료인 면화 재배 면적은 세계 경작지의 3%에 불과하다. 하지만 면화에 투입되는 살충제량은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살충제 양의 4분의 1이나 된다. 더구나 미국환경보호청(EPA)은 면화 재배에 사용하는 농약 10종 가운데 9종을 1급 화학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노마 엄마가 유기농으로 재배된 면 의류를 고르지 않았다면, 노마의 혈액 속에서 독성 농약 성분이 검출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이번엔 노마의 아빠에게 눈을 돌려보자. 노마 아빠는 퇴근길에 세탁소에 들러 드라이클리닝을 맡긴 와이셔츠와 양복을 찾아왔다. 보통 세탁소들은 맡긴 옷을 다시 전문 드라이클리닝 업체에 맡겨 처리하는 중간상들이다. 유기용제 중독 노동자들의 건강피해보험을 다루는 제니스보험사에 따르면, 과거 드라이클리닝 공장에서는 카본테트라클로라이드, 트리클로로에틸렌 등 두통, 피부염, 인후염과 비염, 간과 신장, 중추신경계 질환을 부르는 화학물질들이 함유된 용제를 사용했다. 최근에는 그보다 독성이 덜한 과염소산염에틸렌으로 대체되는 추세지만 유독하기는 마찬가지다. 노마 아빠가 옷장에 드라이클리닝한 옷들을 그대로 걸어둔다면 노마집 옷장은 당분간 화학물질의 창고가 되는 셈이다. 만일 비닐 커버를 벗기자마자 그 옷을 입고 나선다면? 옷을 입는 것과 동시에 혈관 속으로 화학물질을 주입하는 꼴이 된다.

지구 상에서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는 화학물질은 대략 8만 가지다. 매년 2000개 이상의 신종 화학물질이 목록에 추가된다. 화학물질로 뒤범벅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몸에 닿는 것과 입에 넣는 것에 대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노마의 혈액 속에 초대하지 않은 불청객들이 점점 더 많이 찾아든다면, 어느 날 인류는 생식기 독성만으로도 ‘침묵의 봄’을 맞게 될지 모른다.

<안병옥 환경연합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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