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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세상은 소프트웨어가 만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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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21세기 세상은 소프트웨어가   만들어간다

‘weekly경향’은 21세기를 상징하는 주체로 ▲노무현 전 대통령(정치) ▲아고라(사회)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사회) ▲비정규직 노동자(경제) ▲생물학자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학문) ▲수유+너머(지식인) ▲듀나(대중문화) ▲기후변화(환경) ▲가수 서태지씨(대중문화) ▲안철수연구소 안철수 이사회의장(소프트 웨어)을 뽑았다

2000년 1월 1일 온 세계는 떠들썩했다. 새로운 세기, 그리고 새천년인 밀레니엄이 시작됐다. 21세기는 20세기와 뭔가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한껏 부풀었다. 하지만 21세기는 20세기 말에 비해 갑자기 달라진 것이 아니다.

새로운 세기가 바뀐 지 올해로 9년째를 맞이했다. 그동안 세계에서는 9·11테러와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고, 한국에서는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출범했다. 9년 동안 어떤 현상은 세기말에 예언했던 것처럼 나타났고, 어떤 현상은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21세기는 그동안 과연 20세기와는 다른, 어떤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 것일까?

인물 정보 중심의 기사를 지향하는 ‘weekly경향’은 제호 변경 특집으로 21세기를 상징하는 국내 인물을 선정했다. 학자·문화평론가들이 21세기를 상징하는 인물로 추천한 것을 토대로 엄선한 것이다. 이 인물에는 21세기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을 떠올릴 수 있는 상징이 담겨 있다. 선정 과정에서 연세대 김호기 사회학과 교수는 “21세기를 상징하는 것을 꼭 인물로 좁혀본다는 자체가 20세기적 사고방식”이라면서 “21세기에는 비인격 주체가 인격 주체처럼 활동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가 21세기를 상징하는 것으로 직접 언급한 주체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아고라다. 다른 전문가도 비인격 주체가 21세기를 상징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김 교수의 의견에 공감했다.

‘weekly경향’은 21세기를 상징하는 주체로 ▲노무현 전 대통령(정치) ▲아고라(사회)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사회) ▲비정규직 노동자(경제) ▲생물학자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학문) ▲수유+너머(지식인) ▲듀나(대중문화) ▲기후변화(환경)를 뽑았다. 이밖에 두 명의 독특한 인물이 있다. 비록 20세기 말에 널리 알려졌지만 ▲가수 서태지씨(대중문화) ▲안철수연구소 안철수 이사회의장(소프트 웨어)이 21세기를 상징하는 주체로 선정됐다.

촛불집회 통해 집단지성 분출
21세기를 상징하는 이들 주체가 곧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영향력과 일치한다는 것은 아니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교수는 “요즘 새롭게 뜨고 부각된다고 21세기적 상징 주체로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weekly 경향’이 선정한 이들 상징 주체는 20세기와 다른, 21세기적 상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비록 9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나머지 91년의 21세기는 이런 형식의 상징이 주체로서 존재하고 활동할 것이란 점이다.

2006년 시사주간지 타임지는 매년 선정하는 ‘올해의 인물’에 ‘YOU’를 뽑았다. 인터넷을 사용하며 유튜브처럼 생활 속에서 디지털 혁명을 주도하는 당신 모두가 ‘올해의 인물’이라는 것이다. 타임지는 2005년 빌 게이츠 부부와 아일랜드 출신 가수 보노를 올해의 인물에 선정했다. 매년 그해의 역사적 인물을 선정했던 것과 비교하면 2006년 ‘YOU’를 올해의 인물로 뽑은 것은 파격적이다. 이렇듯 21세기적 상상력과 패러다임은 20세기를 초월한다.

전문가들 대부분은 21세기적 패러다임을 규정하는 것은 아직 어렵다는 점을 토로했다. 강내희 중앙대 영문학과 교수는 “20세기는 지나갔고 21세기는 이제 조금 진행했을 뿐이므로 20세기와 21세기를 1대1로 비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장석주 문학평론가는 “21세기라고 해서 21세기의 첫날부터 갑자기 달라진 것이 없다”는 전제를 달았다.

[커버스토리]21세기 세상은 소프트웨어가   만들어간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손꼽은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있다. 소프트웨어가 대표적이다. 20세기가 하드웨어를 생산했다면 21세기는 소프트웨어를 창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20세기적 하드 웨어에는 공장·기계·건축 등 산업화의 상징이 등장한다. 산업화 시대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 등이 대표적인 상징 주체로 떠올랐다. 이들은 눈에 보이는 유형의 생산물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21세기에는 물질적 흐름에서 보이지 않았던 비물질적 흐름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인터넷이 대표적이다. 인터넷으로 사람들이 만나고 지식과 지식이 연결됐다. 여기에다 블로그와 미니 홈피, 인터넷 카페를 통해 네트워크가 형성됐다.

이 같은 양상은 이미 20세기 말 예견됐다. 21세기는 소프트웨어의 세상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세계는 예상대로 움직였다. 인터넷을 매개로 IT산업이 굴뚝 산업을 제치고 경제의 중심이 됐다. 장석주 평론가는 “21세기적 인물로는 안철수 이사회의장 같은 사람을 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안철수 이사회의장이 운영하는 안철수 연구소는 인터넷 바이러스를 막는 백신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다. 대표적인 소프트웨어 산업이다. 21세기에는 안 사장 외에도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이해진 NHN 이사회의장(CSO) 등이 소프트웨어 산업의 총아로 부상했다.

틀을 만드는 하드웨어가 아니라 내용을 채우는 콘텐츠 생산 산업이 크게 발전했다. 김호기 교수는 “20세기의 하드 파워에서 21세기에는 소프트 파워로 힘이 이동했다”고 분석했다.

인터넷이 만든 21세기 또 하나의 두드러진 패러다임은 네트워크화다. 인터넷에서 누리꾼이 현안마다 자연발생적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해 소통의 구조를 만들어냈다. 올 5~7월의 촛불집회는 이 같은 네트워크화가 만든 대표적인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음 아고라에서 만들어진 누리꾼 네트워크는 촛불집회의 중심에 섰다. 장석주 평론가는 “인터넷을 통해 형성된 네트워크가 표준의 권력을 가진 지배세력에게 변화를 요구한 것으로 이런 방식은 20세기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사이버 문화 전문가인 민경배 교수는 “21세기 전까지는 영웅적인 개인이 중심이 됐지만 21세기에는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개인들의 네트워크가 주체가 됐다”고 분석했다.

아고라를 통해 ‘집단 지성’이라는 화두가 사회 전면에 등장했다. 다수의 개체가 토론을 통해 결론을 이끌어내고 행동으로 옮김으로써 새로운 힘의 중심이 된 것이다. 다수가 객관적 정보를 공유해 만드는 위키백과도 집단 지성의 대표적인 예다.
다음 아고라는 순식간에 생겨난 네트워크가 아니다. 2002년 여름 월드컵 때 길거리 응원의 네트워크 방식, 2002년 겨울 대선의 노사모 네트워크 방식, 2004년 대통령 탄핵 때의 촛불집회 등이 진화한 것이다. 이런 방식의 네트워크화는 20세기적 조직과는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1970~80년대의 민주화 운동 조직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네트워크인 것이다. 20세기적 조직은 운동의 효율성을 위해 중심 조직이 있고, 중심 조직의 결정에 따라 활동을 펼쳤다. 하지만 21세기적 네트워크는 새로운 형태의 모습을 선보였다.

안철수·김택진씨 등 IT산업 총아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남호진 기자>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남호진 기자>

민경배 교수는 “촛불집회는 조직 중심이 아닌 네트워크를 통해 일어났다”면서 “20세기의 조직적 개념에서 21세기에는 네트워크 개념으로 전환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강내희 교수는 “21세기에는 단일 주체가 아니라 다양한 주체가 등장했다”면서 “집단 지성은 이런 점에서 과거와 다른 주체적 행위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또 “사람들이 서로 동호회 형태의 네트워크 또는 공동체를 형성하고, 여기에서 새로운 희망을 피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네트워크에는 하나의 중심이 없다. 산발적으로 흩어진 다양한 주체가 필요한 시기 때마다 얽혀 공감대를 이루는 수평적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런 구조는 인간관계에도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오고 있다. 수직적이고 수목(트리·Tree)적인 구조에서 수평적인 구조로 옮아간 것이다. 수직적이고 수목적인 구조는 21세기전까지 일반화된 현상이다. 상·하가 분명하고 결정과 활동의 주체가 분명하다. 국가·군대·기업 등이 대표적인 수목적인 구조를 띠고 있다. 20세기는 이런 수목적 구조의 조직이 대규모로 충돌하고 움직인 시대였다.

하지만 21세기에 등장한 수평적인 구조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동등한 입장이다. 결정을 내리는 주체도, 활동하는 주체도 동일하다. 전문가들은 이런 수평적 구조를 리좀(Rhizome)이라는 철학용어로 설명한다. 리좀이란 대나무의 뿌리 줄기처럼 줄기가 변해서 뿌리가 된 것을 일컫는다. 뿌리와 줄기의 구분이 모호해져 뿌리가 되기도 하고 줄기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 리좀적 구조다. 중심이라고 할 수 없는 뿌리가 없고 수없이 얽혀져 있는 형태가 21세기적 인간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중심 없는 관계들의 복합체’라는 이런 리좀적 특성은 촛불집회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났다. 집회를 이끄는 뚜렷한 주체도 없다. 다만 리좀적인 구조로 얽힌 누리꾼의 네트워크가 촛불집회를 이끌었다. 이런 비인격적 주체들이 사회를 움직이는 하나의 세력으로 등장했다.

이동연 문화평론가는 “21세기 사고 전환의 큰 틀은 수목적인 구조에서 리좀적인 네트워크로 바뀐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평론가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콘텐츠의 제공과 수용의 구분이 없어지면서 이런 리좀적 구조가 가능해졌다”면서 P2P와 웹2.0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웹 2.0은 기존의 웹과는 달리 개방과 적극적 참여가 가능한 네트워크화를 만들었다. 네트워크는 정치·사회 분야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대중문화에서도, 리니지 같은 네트워크 게임에서도 네트워크 현상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리좀적 구조는 사유 방식에도 적용된다. 리좀적 네트워크에서 중심을 찾으려는 시도는 20세기적 사유 방식에 속한다. 리좀적 네트워크에는 중심이 텅 비어 있거나 다양한 중심이 흩어져 얼기설기 얽힌 복잡다기한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뿌리에 기반한 20세기적 사유 방식을 뒤집은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뿌리가 없이 떠도는 유목민적 특성은 21세기적 사유 방식에 투영된다. 21세기에는 ‘디지털 유목민’이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디지털 유목민은 노트북과 휴대전화, 디지털 카메라, MP3, PDA 등 각종 디지털 장비로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네트워크 활동을 한다. 어디에서나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와이브로 세계에 들어서면서 정보의 혁명을 통한 개인의 무한한 활동이 가능해졌다. 윤순봉 삼성물산 부사장은 ‘21세기 디지털 유목민 되기’라는 강의를 통해 디지털 유목민의 특성을 소(小·small), 속(速·speedy), 연(連·networking), 개(開·open)라고 규정했다. 작고 빠르고 열린 네트워크가 디지털 유목민의 대표적인 특성이라는 것이다. 김호기 교수는 “21세기는 정주 문화에서 노마드 문화로 이동하고 있다”며 이에 동의했다.

이념적 구조도 21세기에는 크게 변했다. 20세기는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으로 대표될 정도로 국가 간 동맹의 큰 충돌이 일어났다. 20세기 중반 이후로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대결 구도가 나타났다. 거대한 국가 권력의 집단끼리 맞서는 대칭 구조가 20세기를 대표했다. 하지만 조그만 세력이 거대한 국가를 상대로 전 세계를 뒤흔든 9·11테러가 발생했다. 강내희 교수는 “9·11테러는 총체·전면성으로 말할 수 있는 20세기적 프로젝트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아주 약한 세력이 강한 세력에 충격을 줬다는 점에서 20세기적 양상이 변화되고 있음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즉 국가 권력끼리 맞서는 대칭적 구조에서 21세기에는 한 작은 집단이 거대 권력에 맞서는 비대칭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강내희 교수는 “촛불집회 역시 국가란 거대 권력에 맞섰다는 점에서 비대칭적 양상을 띠고 있다”고 해석했다.

‘디지털 유목민’새로운 화두로
비대칭적 구조는 사회 구성원 내부에서도 나타났다. 동유럽과 소련에서 사회주의가 붕괴하면서 21세기에는 자본주의가 세계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가 됐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자본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대표적이다. 일부 전문가는 앞으로 모든 사람이 비정규직 노동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놓았다. 모든 사람이 프리랜서 형태의 직업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김호기 교수는 “앞으로 비정규직 노동자가 21세기를 상징하는 주체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정규직 근로자가 매장 계산대에 고용보장을 기원하며 종이학을 걸고 있다. <김정근 기자>

비정규직 근로자가 매장 계산대에 고용보장을 기원하며 종이학을 걸고 있다. <김정근 기자>

비정규직 노동자가 수적으로 많이 늘어났지만 이들은 소수자다. 장석주 평론가는 “소수자는 사람이 많더라도 소수자일 뿐”이라며 “이런 소수자의 인권이 21세기에는 중요한 화두로 등장했다”고 말했다. 백인에 대해 흑인, 기독교 문명에 대해 이슬람 문명, 자본 권력에 대해 비정규직 노동자 등이 대표적이다. 이 양상은 역시 비대칭적 구조를 띠고 있다.

21세기에는 자본주의 내에서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이 여러 갈래로 나타나고 있다. 강내희 교수는 “자본주의 이후를 상상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이후를 상상하는 것이 가능해졌으며, 또 상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됐다”면서 “21세기에는 자본주의의 구체적 대안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20세기 ‘규모의 경제’에서 파이의 질을 생각하는 분배가 21세기에는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다. 21세기 한국 사회는 글로벌 체제에 급격하게 편입하면서도 로컬적 특성을 띠는 다극화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소수자, 분배라는 개념도 이런 로컬적 특성의 단면이다.

세계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21세기적 화두로 급속히 부상한 과제는 기후변화다. 수질·대기·원자력·생태 문제로 다양하게 제기되던 환경 문제는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기후 변화’라는 주제로 통합됐다. 안병옥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은 “인류는 2100년까지 기후변화와 씨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후변화는 환경의 문제뿐 아니라 세계의 경제구조까지 바꾸는 패러다임이 됐다. 안 사무총장은 “기후변화가 단순히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정책의 수정을 요구하는 21세기 인류의 숙제로 대두했다”고 말했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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