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

인간이 쌩쌩 달리니 자연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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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고속도로로 인한 환경 훼손과 생태계 파괴 등 ‘건설의 그늘’

[추석특집]인간이 쌩쌩 달리니 자연이 운다

“어디로 가든 자동차 타면 되고/ 가다 막히면 새 도로 내면 되고/ 더 빠른 도로 또 만들면 되고/ 생각대로 하면 되고.”
최근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르는 ‘되고송’이다. 물론 필자가 개사한 것이다. 추석이 다가오면서 벌초 차량으로 인해 차량 지·정체 현상이 속출하고 있다는 교통방송이 끊이지 않는다. 지난 주말 선배 한 명이 강원도 삼척 고향에서 일요일 오후에 출발했지만 월요일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서울에 도착했다고 한다. 여름휴가와 명절연휴뿐 아니라 단풍 시즌과 주말만 되더라도 이런 현상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이런 폐해를 없애기 위해서일까? 정부는 전국 어디서나 30분 내에 기간교통망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전국을 반일생활권화하는 것을 교통정책의 목표로 삼고 있다. 그래서 한반도라는 공간을 남북으로 7개, 동서로 9개로 나눠 고속도로를 만들 계획이다. 그러다 보니 산도 깎고 바다 위 다리도 놓아 더 빠른 도로를 건설해야만 하는 것이 숙명이라 생각한다.

예전부터 길은 사람이 만나 소통하는 연결고리였다. 길을 통해 사람이 만나고 사람 사이에서 문화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자동차가 만들어지면서 자동차길에 도로라는 이름이 새로이 붙으면서 사람이 설 자리가 없어졌다. 이제 고속도로는 속도와 시간만으로 평가된다.

경제성장 지표였던 고속도로가 이제는 전국 곳곳에 닿지 않는 곳이 없다. 고속도로 건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주변 자연환경 훼손과 도로로 인한 피해 때문에 도로 건설을 반대하는 움직임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낮은 경제적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교통 수요 예측이 부풀려져 백두대간 핵심구역을 관통하는 춘천~양양 고속도로가 그 대표적인 예다.

최근에는 수도권 주변부의 고속도로 건설 예정 지역에서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도립공원으로 지정될 정도로 우수한 자연환경을 가진 수리산을 관통하는 수원~광명 고속도로, 관악산과 청계산 관통에 따른 환경 훼손을 야기하는 안양~성남 고속도로(제2경인연결고속도로)에 대한 반대에는 도심 주변에 얼마 남지 않은 자연을 지켜내기 위한 힘겨운 목소리가 담겨 있다.

최근 구리시를 관통하는 서울~포천 민자고속도로 건설 계획은 구리시민의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을 신청한 사적 제193호 동구릉 문화재보호구역과 장자호수공원 주변 조망권 훼손에 대한 우려와 주변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간선도로 등 기존 도로망 이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서울~포천 고속도로가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점점 커지는 도로건설 반대 목소리

고속도로에서는 야생동물이 자동차에 치여 죽는 로드킬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고속도로에서는 야생동물이 자동차에 치여 죽는 로드킬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보존 가치가 높은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 우수한 자연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삶의 공간을 침해당하지 않기 위해, 지역의 이해관계로 도로건설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힘이 센 도로건설 관계자(정부·건설사)와 힘겨운 싸움을 하게 된다. 결국 도로가 건설되더라도 지역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이와 같은 논의를 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국토 곳곳에서 지어지고 있는 수많은(다 기억하기조차 힘들 정도다) 고속도로에 대해서 우리는 관대한 편이다. 도로 건설을 지역 발전의 매개체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부가 발표한 도로 건설 계획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보다 우리 지역을 거점으로 하기 위한 의견을 제안하는 경우가 더 많다.

도로 건설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많이 좌우된다. 그래서 지역 개발과 경제 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선거철만 되면 공약에 빠지지 않는 것이 도로 건설이다. 논밭과 노년층만 남은 지역에 고속도로가 들어서면 당장 외지인이 많아지고, 주변 개발 사업으로 지역경제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이런 도로 건설을 부추긴다. 그래서 산을 깎고 논을 메워 일직선으로 쭉 뻗은 고속도로를 만든다. 그렇게 들어선 고속도로는 과연 지역 주민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지역 주민들은 도심 주변부 고속도로 건설 계획이라도 발표되면 집값이 오른다며 좋아한다. 대부분 사람이 교통이 편리해지는 만큼 경제적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경제적 차익을 누리는 사람은 극히 일부다. 반대로 도로 주변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은 고속도로로 인한 소음 피해에 더욱 노출되고, 대기오염으로 인한 천식 및 아토피의 피해가 커진다는 연구 결과에 불안해한다.

경운기를 몰고 가던 그 길에 고속도로가 들어서면, 일직선으로 쭉 뻗은 도로는 마을과 생태계를 둘로 쪼개 섬처럼 고립시킨다. 예전처럼 집에서 논으로, 밭으로 갈 수가 없다. 저녁 노을이 질 때 마실 가던 옆집도 도로 건너편이 되고 나니 예전처럼 가기가 쉽지 않다. 대청마루에서 마을 앞산을 바라보던 것도 옛일이다.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마을은 고속도로로 둘러싸인다.

3368㎞에 생태통로는 고작 17곳

고속도로는 편리하지만 그 편리함이 인간과 동식물의 생태계를 고립시키기도 한다. 시원하게 쭉 뻗은 고속도로가 집과 일터를 갈라놓았다. <도로공사 제공>

고속도로는 편리하지만 그 편리함이 인간과 동식물의 생태계를 고립시키기도 한다. 시원하게 쭉 뻗은 고속도로가 집과 일터를 갈라놓았다. <도로공사 제공>

비단 사람만 고립되는 것이 아니다. 야생 동식물의 서식 공간인 생태계도 고립된다. ‘어느 날 그 길에서’라는 야생동물 로드킬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가 있다. 88고속도로를 넘나들다 발견된 삵(영화 속 이름은 팔팔이·멸종위기종 2급)은 결국 88고속도로에서 자동차에 치이는 로드킬을 당했다. 도로 위 자동차 속에서 편리함을 느끼는 우리 인간과 달리 야생동물에게는 고속도로가 생사를 넘나드는 공간인 것이다.

도로는 공사 과정에서 야생동식물의 서식지를 훼손하는 것뿐 아니라 공사 이후에도 산사태 및 지형 변화, 수질 오염, 지표면 침식, 야생동식물의 서식지 파편화, 생태계 단절, 로드킬 등의 형태로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도로 주변부의 소음, 진동, 빛 등의 요인도 주변 조류의 서식 환경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야간 조명은 야생동물의 번식의 장애가 된다. 특히 도로로 인한 생태계 단절은 야생동물에게 가장 치명적이다.

야생동식물의 서식 공간을 되찾아준다며 찾은 방안이 생태통로다. 도로를 지나다 보면 양쪽 사면을 다리로 연결한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생태통로가 우리나라 고속도로에는 고작 17개다. 고속도로 연장은 3368㎞에 이른다. 200㎞마다 한 개씩 있는 생태통로를 야생동물이 어떻게 알고 건너갈지 의문이다.

실제 영화 속에서 팔팔이는 12개 도로를 넘나들어 최초로 사고를 당한 지점까지 찾아오지만 결국 도로 위에서 로드킬을 당한다. 한 연구 자료에 따르면 로드킬을 당한 지점을 점으로 찍어 보니 그 점이 도로 노선이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한다. 즉, 로드킬은 도로 전체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수십, 수백㎞마다 있는 생태통로가 야생동물의 로드킬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현대 사회에서 고속도로는 분명 편리한 교통시설이다. 그러나 도로와 자동차가 가진 편리성만 추구한다면 현 세대와 미래 세대가 겪어야 할 어려움과 불편함은 더욱 커질 것이 분명하다. 고유가·기후변화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도로·자동차와 더욱 친해지기 어렵지 않을까 싶다.

이번 추석에 고향으로 갈 때 길은 또 얼마나 막힐까? 정체와 지체를 반복하고 나면, 늘어난 교통량을 분산하기 위해 새로운 도로건설계획이 발표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비록 산을 깎은 회색빛 절개면과 방음벽 속에 갇힌 삭막한 고속도로 위를 달리지만 자동차 창문 사이로 숲과 하늘을 바라보며 자연을 느껴보자. 한 가지 더 당부하자면 고속도로 위를 건너가고 있는 야생동물을 위해 야생동물주의 표지판을 ‘주의 깊게’ 바라보는 것은 어떨까?

민자도로의 ‘허울’

강남고속도로의 관악산 관통 반대 퍼포먼스를 벌이는 시민단체 회원들의 모습. <김문석 기자>

강남고속도로의 관악산 관통 반대 퍼포먼스를 벌이는 시민단체 회원들의 모습. <김문석 기자>

교통 SOC 투자 예산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에 민간자본 건설 비율을 높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민자도로는 민간자본으로 도로를 건설하여 국가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도입한 제도다. 그러나 최근 민자도로 건설 실태를 보면 효율적인 예산 운용이라는 측면에서 도입한 민자도로가 오히려 재정 악화를 초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광역대도시에서 건설한 민자도로의 적자 보전으로 인해 민자도로 건설사와 재협약을 추진하거나 운영권 회수 등 공익 처분을 추진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광주시는 광주제2순환도로 운영 문제에서 시민이 부담하는 차량 통행료와 적자 보전금에 대한 부담이 커져 협약 조건을 변경하려 했으나 해당 민간건설사와 협의하지 못했다. 결국 광주시는 투자협약 해지와 관리 운영권 회수 등 공익 처분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이제는 최소운영수입보장제도가 폐지돼 운영 수익을 보장하지 않아도 되지만, 광주시의 경우 폐지 이전에 협약한 터라 20~30년간 운영 수익을 매년 수십~수백억 보전해야 한다. 지자체 세금으로 적자 보전이 충당되기 때문에 도로를 이용하지 않은 주민들의 세금까지 이용하는 것이다.

정부는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행정복합도시, 기업도시, 혁신도시로 인구·사업 분산을 유도하는 한편, 수도권 분산정책이라는 명분하에 수도권 주변에 신도시를 계획하고 주변에 20개의 도로망을 건설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 정책의 단절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예다.

민자도로 건설계획은 국가중장기교통계획에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기 때문에 교통수단 간 연계성이 부족하다는 심각한 문제를 지니고 있다. 민자라는 이름하에 짓지만 건설비의 30%를 국고로 지원하는 점을 감안할 때 국민의 세금을 여전히 무분별한 민자도로 건설자금으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민자도로를 국가 인프라 구축이라 하지만 타당성 없는 민자도로 계획 남발로 국가재정과 시민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허승은<녹색연합 간사> plusa213@green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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