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처칠, 나폴레옹, 고흐도 불면증을 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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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cc6600"><b>불면증과의 동침</b></font><br>빌 헤이스, 이지윤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8

불면증과의 동침
빌 헤이스, 이지윤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8

사람은 본질적으로 낮의 생물이다. 낮에 생계와 의미를 위한 노동을 하고, 밤에는 잠을 통해 낮에 소진한 기력을 충전한다. 밤이 사라지고 낮만 있다면 누구도 견디지 못할 것이다. 밤은 아늑한 잠의 시간이다. 어둠이 짙게 깔리고 밤이 깊어지면 우리 몸의 송과선(松果腺)은 멜라토닌을 분비하고, 육체는 우리 의지와 상관없이 잠잘 준비를 갖춘다. 밤은 생리적으로, 윤리적으로 건강한 잠을 잘 수 있는 사람에게 축복이다. 그러나 매일 잠을 설치는 사람들에게 밤은 끔찍한 악몽이다. 기면 발작, 폐쇄성 수면 무호흡증, 아프리카 수면병, 치명성 가계 불면증 따위의 기괴하고 위험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잠들기 위하여 자신과 싸워야 한다. 불면증이란 실로 다양한 원인을 가진 복합적인 장애다. 불면증의 고통과 싸우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성인의 반 정도가 단기 불면증을 겪고, 10%는 급성 불면증을 겪는다는 보고가 있다. 윈스턴 처칠이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등이 불면증을 앓았고, 마릴린 먼로나 빈센트 반 고흐 등도 고질적인 불면증 환자였다. 불면증과 가장 친숙한 사람들은 작가다. 마르셀 프루스트, 버지니아 울프, 윌리엄 워즈워스, 찰스 디킨스, 마크 트웨인 등이 불면증을 앓았다. 프루스트는 만성 불면증 환자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는 밤을 새우며 소설을 쓰고, 낮에는 불규칙하게 잠에 빠져들곤 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침실의 창문을 커튼으로 가린 채 살았다. 불면증에 시달리며 잠에 들기 위해 아편, 진정제, 모르핀 등의 약물에 의존하곤 했다. 그가 쓴 ‘잃어버린 시간 속으로’는 그 불면증의 연금(軟禁) 상태 속에서 고통을 넘어서서 일궈낸 빛나는 업적이다. 여기에 그 복잡하고 미묘한 장애와 맞서 싸우고, 심각한 불면증의 고통을 불면증에 대한 연구로 보상받은 이의 회고록이 있다. 빌 헤이스의 ‘불면증과의 동침’이 바로 그것이다.

“우주 만물의 체계 속에 메아리치는 모든 것, 24시간 주기의 리듬·중력·계절 변화가 우리의 일생”을 주조(鑄造)한다. 우리는 평생의 삼분의 일을 잠과 꿈꾸는 일로 보낸다. 당연히 그것들은 우리의 일생을 만드는 데 참여한다. 아주 소수의 종교 근본주의자들 중에는 잠을 악덕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잠을 자지 않는다면 오장육부가 다 망가지고 신경계통에 심각한 장애를 겪을 것이다. 불면증이 계속된다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 ‘불면증과의 동침’은 불면증에 시달려온 한 사람이 탐욕스럽게 잠을 쫓아다닌 그 여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 책은 불면증 환자의 잠에 대한 끈질긴 구애와 불면증의 본질을 조명한 수면의학 논픽션이며, 동시에 잠을 중심축으로 하는 잠의 현상학과 불면증의 골상학과 함께 제 삶의 얘기를 펼쳐내는 특이한 자서전이기도 하다. “내가 나이 어린 소년일 때부터 대학에 입학한 해까지 아버지는 도시의 주요 음료 공장을 운영했다.

난 크면서 코카콜라를 정말 많이 마셨지만, 지금은 입에 대지도 못한다. 그 모든 당분과 카페인이 내 신경 화학 물질 구조를 변형시켜 지금의 예민하고 불안하기만 한 남자를 만들어낸 것이 아닌지 자주 궁금해진다. 그 물질이 지금까지도 밤중에 내 혈관 속을 흐르며 불면증을 키우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하지만 이런 나의 엉뚱한 견해는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 성인의 몸 속 카페인의 반감기는 36년이 아니라 4시간에서 6시간이다.” 빌 헤이스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코카콜라 병 공장을 경영했던 탓에 코카콜라를 원 없이 먹고, 그 결과 카페인 중독자가 된다. 빌 헤이스는 한국 전쟁에 참전한 상이 군인인 아버지 밑에서 다섯 누이들과 함께 보낸 어린 시절, 몽유병을 앓으며 수면 장애에 시달렸던 밤들, 종교에 대한 회의와 반항이 싹텄던 사춘기, 동성에 대한 욕망, 마리화나를 피우며 술을 마시고 동성애 상대를 찾아 헤매던 청년기의 괴로운 추억, 에이즈에 걸린 파트너와의 만남, 새로운 인생의 출발… 따위의 개인사를 펼쳐놓는다. 고백체의 어조 속에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에 대한 회한이 드문드문 박혀 있고, 그것들 사이로 잠과 꿈에 대한 과학자들의 연구 성과가 자랑스럽게 흘러간다. 어떤 과학자들은 기억들이 각기 다른 영역의 뇌 속 저장고에 들어갈 때 그 기억이 흘깃 보이는 것이 꿈이라고 말한다. 다른 과학자들은 렘수면이 기억을 정리하는 역할을 맡는다는 이론에 완벽히 동의하지 않는다. 꿈을 꾸는 건 불필요한 기억이 휴지통에 던져지기 전에 찰나적으로 그 형상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빛은 눈에서 시각 교차핵으로 여행해 잠을 자려는 자연스러운 힘에 대항하는 경고 신호를 보낸다고 그(에드거 박사)는 설명한다. 복잡한 잠의 작용을 뇌가 연주하기 시작하는 저녁 무렵부터 이런 각성 신호들은 서서히 줄어들게 된다. 어둠, 침묵, 따뜻함, 민족감, 편안함을 뇌줄기의 아래쪽에 둥지를 튼 잠을 유발하는 신경세포를 활성화하는 결정적 요소들이다. 신경 세포들은 이런 요소들에 반응해 서파 뇌활동(徐波 腦活動)을 유발한다.”

빌 헤이스.

빌 헤이스.

빌 헤이스는 불면증 환자에 카페인 중독증 환자다. 빌 헤이스는 이렇게 쓴다. “만약 불면증 유전자라는 것이 있다면, 아버지는 자신의 초록색 눈과 아일랜드 특유의 우울함과 함께 그것을 내게 물려주셨다.” 세상에 널린 불면증 치료법과 수면제가 불면증이라는 마귀와 투쟁하는 데 무력하다는 것을 깨달은 빌 헤이스는 잠 못 이루던 밤에 잠과 몽유병, 잠꼬대, 이갈기, 불면증, 코골이, 기면 발작, 폐쇄성 무호흡증, 치명성 가계 불면증 등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한다. 그가 펼쳐내는 이야기 속에 현대 수면 과학의 창시자인 너새니얼 클레이트먼의 수면 연구, 렘수면의 발견자인 유진 아제린스키, 꿈을 가지고 정신 분석학이라는 형이상학적 이론 체계를 만든 지그문트 프로이트, 몽유병과 잠꼬대의 비밀에 맞선 에드워드 빈스 등 잠과 꿈에 매달려 그 비밀을 해명하고자 고투한 여러 과학자의 이야기가 날줄과 씨줄로 얽힌다. 그동안 비밀에 남아 있던 렘수면과 꿈이 어떻게 관련되는가, 그리고 렘수면과 수면 주기, 수면 주기 안의 각 수면 단계 등이 베일을 벗는다. 잠과 꿈에 대한 연구자들에 의해 이것들이 신경 생리학적인 물질적인 과정임이 분명해진다. 그러니까 수면에 대한 과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종합하고, 거기에 몽유병에 시달렸던 어린시절의 경험과 성적 소수자자의 정체성을 감추며 살아야 했던 개인적인 경험을 비벼서 잠과 불면증에 관한 이 비범한 책을 써낸 것이다. 밤마다 그를 괴롭힌 불면증이야말로 이 책을 탄생시킨 최대의 공헌자다. 인생을 통털어서 그의 최대 화두는 여전히 어떻게 편안한 잠에 드는가다. “지금 인생의 반을 지냈지만 나는 여전히 밤 속을 헤매인다. 아직도 무적의 수면 보조제를 찾아 돌아다닌다. 따뜻한 우유, 기분 좋은 섹스, 멜라토닌, 모두들 치료법을 하나씩 권한다.

한 친구는 불을 끄기 전에 더러운 양말 냄새를 맡아보라고 진지하게 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민간요법들은 최음제 정도의 효과뿐이었다. 수면제는 몸을 강제로 무의식에 빠뜨린다. 이는 사실이다. 나는 할시온(Halcion), 자낙스(Xanax), 앰비언(Ambien), 리스토릴(Restoril)에 취해본 적이 있다. 이 맛있는 하늘색 알약들 덕분에 잠이 든 적도 많다. 하지만 내 몸은 절대 속지 않는다. 약효로 인한 수면과 자연스러운 잠의 차이점은 정사(情事)와 진실한 사랑의 차이처럼 결국은 드러나게 돼 있다.

그 차이는 눈빛에서 나타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잠은 신체적 기능 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감정처럼 작용한다. 마치 스스로 의지가 있는 것처럼 추적을 불허한다. 잠이 당신을 찾아와야 하는 것이다.”

<장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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