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서울시 불도저’ 문화재에 테러 자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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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청 철거 감행한 오세훈 시장의 야만 비난받아야”

문화재청이 8월 7일 서울시청사에 대한 원형 보존을 결정했으나 서울시는 26일 중장비를 동원해 본관 앞면과 태평홀 해체를 강행했다. <김문석 기자>

문화재청이 8월 7일 서울시청사에 대한 원형 보존을 결정했으나 서울시는 26일 중장비를 동원해 본관 앞면과 태평홀 해체를 강행했다. <김문석 기자>

지난 8월 25일 일본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필자는 26일 늦잠을 자고 사무실로 향했다. 집에서 나오자마자 급하게 걸려오는 전화! “황 선생님 서울시청이 헐리고 있답니다.” 필자는 설마설마 하면서 시청으로 향했다.
10시 50분쯤 프레스센터 앞에 도착한 필자의 눈 앞에 도무지 현실로 믿어지지 않는 테러가 자행되고 있었다. 대형 굴삭기로 반달리즘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야만과 광기는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서울의 역사로 ‘기억’ 할 가치 충분
등록문화재 52호인 서울시청(옛 경성부청)은 大日本의 本이 아니라 지형을 이용해 건축했으며 弓자 개념으로 건축한 것이 당시의 건축보고서인 ‘조선의 건축’에 의해 밝혀졌다. 시청 본관의 중앙계단과 주변의 장식을 보면 사치스러운 장식은 피하고 지극히 담백한 느낌을 주도록 설계되었다. 건축 비용이 조선총독부 건물의 8분의 1밖에 안 되는 약 80만 원이던 점도 이런 간소한 설계의 주요 원인이다. 시청 내부는 복도의 한쪽 방향으로만 사무실이 자리잡아 건물의 두께가 얇은 것도 특이점이다.

3층에 있는 대회의장인 ‘태평홀’은 넓이 378㎡, 높이 약 6m인데 1926년 완공 당시, 시의회 격인 경성부협의회 회의장으로 쓰인 공간이다. 이곳은 최근까지도 시장이 주재하는 주요 회의 공간으로 활용됐다. 보통 이런 공간은 의장석을 높게 해서 권위를 세우는데, 이곳은 모든 의석을 같은 높이로 한 것이 독특하다.

태평홀의 맞은편은 역대 시장이 집무했던 시장실이다. 외벽의 칠감으로는 서울의 추위에 견딜 수 있도록 독일 남부 와이덴 지방에서 나온 ‘리씽’이라는 재료를 수입해서 사용했는데, 일본에서도 유례가 없다.

경성부 청사는 덕수궁 바로 옆에 지어 일제의 침탈 의도를 분명히 드러낸 면이 있지만 서울시청은 서울역, 한국은행과 함께 서울의 3대 근대 건축물이며, 특히 근대주의 양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또 근대와 현대를 아우르며 성장한 서울의 역사요 상징이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은 일제 잔재라며 철거하기를 주장하지만 슬프고 아픈 역사도 우리의 역사다. 문화유산은 ‘기념’할 것과 ‘기억’할 것으로 구분해야 한다. 서울시청은 ‘기억’의 가치가 충분한 문화유산이다. 보물로 지정된 삼전도비는 우리 민족에는 치욕의 역사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역시 치욕의 역사지만 보존하면서 다시는 치욕을 되풀이하지 말자는 교훈으로 삼고 있다. 서울시청은 일제와 20년, 우리와 60년을 함께 지낸 건물이다.

필자는 여러 언론사에 전화했고, 이건무 문화재청장과 문화재청의 근대문화재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빨리 대책을 세워달라고 하소연했다. 파괴 현장에는 외부인이 일절 출입할 수 없도록 통제하고 있었다. 아무리 철거를 중단하라고 해도 현장에 가서 드러눕고 싶어도 진입이 불가능했다. 하는 수 없어 112에 신고했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에게 “오세훈 시장은 문화재위원회 권고에 따르겠다고 수없이 약속했다. 문화재위원회에서 보존하기로 결정했으니 서울시는 따라야 한다. 현재 철거는 불법이니 막아달라”라고 말했지만 현장에 있던 서울시 직원은 경찰관에게 “등록문화재는 소유자가 철거해도 불법이 아니다”라며 철거를 계속했다.

경찰관도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문화재의 경우 일반 민간 소유자가 이런 말과 행동을 해도 비난받는데(군포 소금창고 철거, 스카라극장, 증권거래소 건물, 영천 격납고의 경우도 소유자들이 철거 후 비난받았다) 우리나라 정부 다음의 최고 지방정부인 서울시가 이런 말과 행동을 하다니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시민 안전상 이유’ 주장은 궤변
오후 1시 반쯤이 되자 이건무 문화재청장, 한영우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 위원장, 남문현 근대문화재분과 부위원장이 도착했다. 모두 어이가 없는 표정이다. 이 청장은 서울시장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회의 중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20여 분이 지난 후 다시 전화했더니 오세훈 시장과 통화가 가능했다. 이 청장은 유감이라고 밝혔으나 오 시장은 등록문화재는 헐어도 불법이 아니란다. 필자는 문화재청장께 “사적 가지정”을 즉시 발동해달라고 했다. 청계천공사 때 이미 사적 가지정의 아이디어를 내고 성과가 있는 것을 아는 필자는 마음이 급했다.

그러나 문화재청장은 “지금 가지정을 하면 보복으로 보일 수 있으니 문화재위원회의 의결을 존중해서 집행하겠다”고 했다. 일단 수긍도 가는 부분이었다. 우리는 한 개인의 광기와 야만으로 숭례문을 잃었다. 당시 숭례문의 실제 관리책임자인 오세훈 서울시장은 불탄 숭례문 앞에서 고개를 숙였으며 전 국민에게 반성문을 썼다. 그러나 이번에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광기와 야만을 드러내며 숭례문 화재사건을 재현했다.

서울시는 8월 25일 퇴근 무렵에 서울시청을 헐겠다고 문화재청에 통보했다. 문화재청은 26일 오전 9시께 철거하지 말라는 공문을 보냈지만, 한국 근대체육 역사인 동대문운동장과 근대 환경시설인 구의정수장 철거를 감행하면서 반달리즘의 선봉에 서기로 작심한 오 시장의 광기와 야만을 꺾기는 역부족이었다.

이처럼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서울시청을 굳이 철거하려는 명분은 무엇인가? 서울시의 입장만 대변하는 영혼 없는 일부 구조 전문가들이 조작한 ‘건물의 심각한 노후화(D급 E급)’와 ‘서울시민의 안전상 이유’로 철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결과는 1996년 실시한 ‘서울시 청사 시설물 구조 안전진단 보고서’의 결과와 너무 상반된 것이다. 이 보고서는 구조안전 상에는 큰 문제가 없으며 전반적으로 양호한 상태로 결론냈다. 그렇다면 얼마 전까지도 시청으로 사용했던 철근콘크리트 건축물이 10여 년 사이에 심각하게 노후화해 철거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서울시의 주장을 어떻게 납득해야 하는가? 서울시의 정밀안전진단 결과가 의심스럽다. 그리고 건축문화재에 대해 현대적 건축 잣대를 적용하는 것 역시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서울시의 주장대로라면 현존하는 우리나라와 전 세계의 건축문화재는 모두 폐기물감이다.

또 시민의 안전을 이유로 내세우고 있는데 그 동안 서울시청에 얼마나 서울시민들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었고, 그곳이 어떠한 면에서 서울시민들을 위한 공간이었는지 의문스럽다. 바로 얼마 전 서울시는 다양한 주체의 공론의 장이었던 서울시청 광장에 공권력을 투입하여 수많은 서울시민들을 밀어내고, 서울시청과 광장에 접근조차 못하게 했다. 서울시민의 안전을 위해 서울시청 본관을 해체해야 한다는 서울시의 주장은 아무리 생각해도 궤변이다.

오후 4시, 문화재위원 사적·근대분과 합동회의가 열리고 유사 이래 문화재위원회의 가장 강력한 권고안이 채택되었다. 즉시 효력이 발동되고 위원 20여 명은 현장 실사를 갔다. 그러나 서울시는 현장을 완전히 봉쇄했다. 3일 전에 통고하지 않은 방문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서울시는 퇴근 무렵 철거공문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에 철거하기 시작했다. 오세훈 시장은 법적 대응을 운운하고 있다. 불도저 이명박 전 시장도 문화재위원회의 결정을 뒤집은 적이 없다. 오세훈 시장은 반역사적 야만과 광기로 자신의 인생에 큰 오점을 남기려 한다.

황평우<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문화재 전문위원·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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