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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정부자본 ‘한국 착륙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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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항공 인천시와 합작으로 저가항공사 설립 국내외 노선 공략 나서

인천시가 추진하는 인천타이거항공 설립이 도마 위에 올랐다. 싱가포르 국부 자본의 투입으로 항공 주권을 내주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인천시가 추진하는 인천타이거항공 설립이 도마 위에 올랐다. 싱가포르 국부 자본의 투입으로 항공 주권을 내주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인천시가 저가항공인 인천타이거항공 설립을 추진하면서 외국 자본에 항공 주권을 내주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거세다. 저가항공 시장이 확대하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현재 이렇다 할 실적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주민 혈세로 지자체까지 저가항공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문제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인천시와 싱가포르 타이거항공은 지난 1월 저가항공사인 ‘인천타이거항공’ 법인을 설립한 데 이어 이달 말이나 다음 달 중으로 국토해양부에 정기항공운송면허를 신청할 예정이라고 최근 밝혔다. 인천타이거항공은 면허를 취득하면 12월부터 인천~제주, 인천~마카오 노선 운항을 시작한다는 계획이다. “인천공항을 동북아 허브 공항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저가항공사를 설립해야 한다”는 게 인천시의 공식적인 입장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항공업계와 시민단체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국내 항공사는 외국 자본에 국내 노선을 내줄 수 없다는 입장이고, 시민단체 역시 ‘혈세만 낭비하는 적자사업이 될 것’이라며 사업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항공주권 외국에 넘어갈 수 있다”
문제는 합작회사인 타이거항공이 싱가포르 정부가 국부 펀드를 통해 소유·지배하는 기업이라는 것. 싱가포르 정부 자본이 항공 문외한인 인천시를 앞세워 한·중·일 항공시장 개방을 공략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타이거항공은 싱가포르항공 및 국부 펀드 테마섹(Temasek)이 6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모회사인 싱가포르항공 역시 국부 펀드 테마섹이 54%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어 타이거항공은 그야말로 싱가포르 정부 소유인 셈이다. 싱가포르항공은 자국 시장이 없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의 정책적 지원을 배경으로 민간 기업인 각국 항공사를 공략하며 해외시장을 잠식해가고 있다. 호주에 이어 두 번째로 해외 자회사를 만들고자 하는 타이거항공의 전략에 인천시가 이용당하고 있는 모양새다.

[경제]싱가포르 정부자본 ‘한국 착륙 작전’
지난 1월 24일 인천시와 싱가포르 타이거항공의 항공사 설립 공동합의문 서명식 모습.

지난 1월 24일 인천시와 싱가포르 타이거항공의 항공사 설립 공동합의문 서명식 모습.

인천타이거항공의 지분은 타이거항공이 49%를 보유하고, 나머지 51%는 인천관광공사 20%, 인천도시개발공사 16.3%, 인천교통공사 12.3%, 인천시 2.4%로 나뉘어 있다. 때문에 인천시는 “시 산하 공사가 갖고 있는 지분은 시가 소유한 것과 같은 효과가 있어 결국 시 지분이 51%로 지배주주가 돼 항공주권을 내주는 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 이사 5명 중 3명과 그 중 대표이사도 범인천시에서 선정하기 때문에 명백한 한국 국적 항공사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국내 항공업계의 분석은 다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타이거항공이 전체 지분의 49%를 차지하는 단일 대주주로, 이는 ‘외국인은 국내 항공사를 지배할 수 없다’는 항공법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면서 “특히 타이거항공이 항공사 운영 경험이 없는 인천시를 대신해 모든 사업을 총괄하기 때문에 사실상 ‘외국인이 사업을 지배하는 기업’으로 항공주권이 외국에 넘어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메이저 항공사뿐 아니라 제주항공, 한성항공, 영남에어 등 저가항공업체들의 반발도 크다. “타이거항공과 경쟁은 우리나라 민간기업 대 싱가포르 정부의 경쟁으로, 싱가포르 정부가 무제한적인 자본력과 저가인력을 앞세우면 민간 국적 항공사로서는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게 이들의 목소리다.

싱가포르 국영투자회사 테마섹은 정부 지분 20% 이상인 싱가포르 기업을 뜻하는 GLC(정부 출자회사)를 관리하기 위해 1974년 만든 지주회사다. 정식 이름은 ‘테마섹 홀딩스’로, 싱가포르 정부(재무부)가 100% 출자해 설립한 후 33년 동안 지배 구조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현재 싱가포르텔레콤, 싱가포르항공, 항만운영사인 PSA와 케펠 코퍼레이션, 금융그룹 DBS 등 굵직한 22개 대형 공기업을 관리·감독하고 있는데, 이들 회사가 다시 자회사, 손(孫)회사를 두고 있어 테마섹이 영향력을 미치는 기업은 수천 개에 이른다.

싱가포르 국부 펀드는 선박 건조에서 반도체 제조, 동물원 운영까지 ‘돈 될 만한’ 곳은 어디든 투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의 경우 부동산 투자가 눈에 띈다. 2000년 서울 중심가인 광화문에 있는 30층짜리 서울 파이낸스센터를 사들인데 이어 2004년엔 당시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사무용 빌딩인 41층짜리 스타타워를 론스타 펀드로부터 매입해 현재 강남 파이낸스센터로 이름을 바꾸었다. 부동산이 쌀 때 헐값에 사서 비쌀 때 판다는 것이 투자 원칙이다. 하나금융에도 투자해 약 10%의 지분을 갖고 있다.

테마섹의 가장 큰 특징은 소유주인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이사회와 CEO(리센룽 총리의 부인인 호칭)의 책임 아래 철저히 상업적 관점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그 결과 33년간 자산운용 규모가 약 460배 증가하는 성과를 달성했다. 그러나 대외경제연구원의 2005년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대 테마섹의 실적은 과거와 다르게 크게 떨어지고 있어, 지난 30년간 연평균 수익률이 18%였으나 최근 10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해양부 결정에 항공주권 좌우
한편 인천타이거항공 설립은 인천시 내에서도 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당초 저가항공 설립에 반대했던 한나라당 소속 시의원들이 입장을 번복해 지지선언을 하는 등 갈팡질팡하는 모습 속에 인천경실련 등 시민단체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인천 경실련은 성명을 통해 “타 지역 저가항공사의 적자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경험도 없는 인천시의 참여는 저가항공사 간의 과당경쟁만 불러일으킬 소지가 크다”면서 “인천시민공청회를 열어 이 사업의 타당성 여부를 짚어봐야 한다”고 밝혔다.

국내 항공업계와 시민단체의 반발에도 인천시는 8월 말 이후 인허가 신청을 강행한다는 계획이다. 국토해양부 항공정책과에 따르면 통상 항공사 설립 인허가는 신청 서류를 접수하면 25일간 소속기관과 관련 기관이 검토한 후 결과가 나온다. 검토 결과에 따라 보완을 요구하거나 법적으로 큰 하자가 있으면 불허방침이 떨어진다고. 항공사 인허가를 담당하고 있는 추철규 사무관은 “아직 인천타이거항공 측의 인허가 신청서를 접수하지 않아 이렇다 저렇다 말할 입장이 아니다”라면서 “지금까지 항공사 설립 인허가 과정에서 불허한 경우는 없었지만 이번 인천타이거항공의 경우 외국 자본이 출자된 특이한 경우여서 소관 부서에서 면밀히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인허가 여부는 정부의 손에 달린 셈. 인천시의 인허가 신청에 대한 국토해양부의 결정이 국내 민간항공사의 생사 여부는 물론이고, 인천 시민의 혈세와 3선을 노리는 안상수 시장의 입지를 좌우할 전망이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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