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노리’ 네 번째 국토 나들이 소리로 가는 우리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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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길]‘소리노리’ 네 번째 국토 나들이 소리로 가는 우리 땅

돌아가면 다시 굽어지고 그 길 돌아서면 다시 굽어지는 길을 하나 된 마음으로 나아간다. 흥보가 기가 막혀~ 뱀이다~ 흥겹게 노래하며 분위기 만들어주고 즐거움을 선사한 그들도, 남편과 아버지의 독단적 결정에 큰 불평 없이 따라주던 가족도, 배후령 고개 끝나는 지점에서 인사굿으로 포옹한다. 나들이 길에 확인한 우리의 사랑은 강원도의 하늘처럼 맑고 깨끗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빠를 따라 걷던, 내 눈엔 예쁘고 귀엽고 사랑스런 두 딸들이 어느덧 중3, 중2가 되었고, 아내는 더 젊어지고, 세월은 그렇게 헷갈리게 가지만, 가족의 사랑은 서로 이해해가며 포근함으로 깊어감을 느낀다. 바쁘지만 날개가 되어준 임들과 가족은 부족한 나에겐 진정 고마움이고 가장 든든한 응원군이다. 소중한 그들과 잠시의 이별도 몹시 허전하고 외로워진다. 그 기분을 잊고자 더 씩씩히 나아가서, 아름다운 춘천 땅에서 한 주의 나들이를 마음으로 회상하며 묘한 감정을 두 눈 감고 정리해본다. 그들이 있어 춤추고 노래하고 장구소리 울린다.

유세차 단기 4341년, 불기 2552년, 서기 2008년, 소기(소리노리) 13년, 해의 날 8월 8일, 달의 날 7월 8일, 말복더위 보내면서, 해동제일 대한민국 남도땅 빛고을 풍암골 서구 체육공원에서, 풍물굿으로 바람길 열어 생명 씨앗 뿌리고자 모인 소리노리 식구들이 마음 열고 그 속에 다른 기운들로 가득 채우고 비워서 고하나니, 산신님, 지신님, 사해용왕님, 천신님, 바람님 굽어 내리시어, 네 번째 국토 나들이,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강화도 마니산까지 가는 걸음걸음에, 아프고 다친 사람 없고 길 잃어 허둥대게 하는 해꼬지 액운들 맥이해 주시고, 신명의 소리, 대동의 몸짓으로 열어가게 보살펴 주옵소서. 지금 이 순간 뜻 모아 함께 부르는 소통의 노래가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어 소외와 버림과 무시의 고리 풀어져, 살판, 맘판의 대동세상 되게 하옵소서. 상향.

네 번째 국토 나들이 출정식에서 고천문을 읽는 ‘소리노리’ 김용철 대표.

네 번째 국토 나들이 출정식에서 고천문을 읽는 ‘소리노리’ 김용철 대표.

우리문화연구회 ‘소리노리’의 네 번째 국토 나들이 출정식이 열리던 날, 해의 날 8월 8일(양력), 달의 날 7월 8일(음력)이 무색하게 하늘에선 억수 같은 장대비가 쏟아져내렸다. 무려 87㎖가 넘는 물폭탄이었다. 이 무슨 해원이란 말인가. 김용철(45)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2005년 진도-임진각을 시작으로 해마다 500여㎞의 길을 걸어왔다. 그 길은 그가 이제껏 살아온 길, 앞으로 살아갈 길, 바로 국토의 실낱같은 길들이었다. 그 길 위엔 그와 함께 살 부대끼며, 맘 섞으며 살아온, 살아갈 무수한 사람이 있었다. 그들에게 신명을 나누고, 기어이 그들과 더불어 대동세상을 이루고픈 꿈으로 떠나는 길, 그 장정에 혹여 맺힌 것이라도 있다면 다 풀고 가라는, 마음에 낀 찌끼마저 다 씻고 가라는 하늘의 뜻은 아닐는지. 그 세례는 아닐는지.

김용철은 광주 광산농악 설장구 이수자다. 고등학생 시절이던 1983년 취미삼아 시작한 것이 1993년부터 5년간 전수생을 거쳐 1998년 정식 이수자가 되었다. 1995년 광주시체육회 민속놀이교실을 모태로 한 우리문화연구회 ‘소리노리’를 창단해 본격적으로 풍물을 보급하는 데 나섰다. ‘소리노리’는 주부들이 주축이 된 아마추어 풍물패로 그간 6번의 정기발표회를 열기도 했다. 정기발표회를 비롯한 공연이 거듭될수록 회원들 사이에서는 무대 발표도 좋지만 더 많은 사람에게 우리 가락과 소리를 알리는 게 더 시급한 일일 수도 있다는 의견이 대두되었고, 그러기 위해서라도 타 지역 풍물패들과 교류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그러던 차에 2005년 김용철의 장구소리에 반한 몇몇 사람이 담양에서 모임을 만들었고, 우연찮게 국토 종주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마침내 그해 8월 17일 진도를 출발하여 9월 7일 임진각에 이르는 첫 국토 나들이가 성사되었다.

춘천 배후령을 오르는 ‘소리노리’.

춘천 배후령을 오르는 ‘소리노리’.

아름다운 임들이 모여 2005년 8월 17일 진도에서 시작한 국토종단을 금일 9월 6일 사바세계 대한민국 경기도 문산 마정리, 6·25전쟁으로 비통한 한이 서린 임진각에서 갈무리를 하게 되었사오니 하늘님, 땅님, 달님, 별님, 해님이시여, 굽어 살펴보시옵소서. 금차에 처음 뜻을 세운 바를 다시 한 번 고하오니,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의 나라, 남과 북, 북과 남이 서로 마주하여 판문점이 사라지고 민통선이 철거되며 철조망이 제거되어 자유의 다리가 다시 자유의 다리가 되는 그날, 임진강에 황포돛대를 휘날리며 임진각에 통일의 깃발을 꽂고 남과 북이 다함께 통일의 노래를 목청껏 부르는 통일의 그날, 우리 사람이 우리 소리를 흥얼거리고, 우리 사람이 우리 몸짓으로 다루를 치며, 우리 사람이 우리 풍물을 두드리며 다 함께 희망의 몸짓으로 더덩실 춤을 추리.

그 두 번째는 땅끝에서 호미곶까지였으며, 세 번째는 호미곶에서 고성 통일전망대, 그리고 올해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강화도 마니산까지와 내년 제주도, 울릉도, 독도를 끝으로 1차 대장정이 마무리된다. 그간 김용철을 비롯한 주축이 국토를 종주하는 동안 다른 회원들이 사정에 따라 수시로 중간에 합류하는 방식으로 나들이했으며, 한 해 평균 연인원으로 250명 정도가 참가했다. 그들은 길을 가는 동안 시시때때로 ‘구경’이 아닌 ‘참여’의 난장을 만들어냈다. 정자에서 쉬던 어르신들과 함께 즉석무대를 만들었고, 도로변 장사꾼이 ‘나도 장구를 칠 줄 아노라’ 끼어들었고, 중국집 딸도, 옥수수를 따던 아줌마도, 고추를 따던 할머니도, 휴가 온 도시가족들도, 국토 순례에 나선 다른 팀들까지 모두 한데 어울려 신명의 한 판 굿을 벌였다. 이번 8월 15일 태백 구와우 해바라기축제에서 벌인 판만 해도 그랬다. 정선아라리보존연구회에서 여섯 사람이 나와 ‘소리노리’ 팀들과 함께 쏟아지는 빗속에서 한판 흐드러지게 놀았다. 저쪽에서 정선아리랑으로 나오면 이쪽에선 진도아리랑으로 받았고, 강원도 상여소리엔 전라도 상여소리로 답했다.

[사람의 길]‘소리노리’ 네 번째 국토 나들이 소리로 가는 우리 땅

김용철의 아내 나선미(44)는 이번 나들이 길에도 어김없이 두 딸과 함께 따라나섰다. KT 서울 화곡지사 과장인 김용환(59)은 4년째 빠지지 않고 참가하고 있다. 그는 도보 때 행렬의 맨 앞장에 서서 길을 인도하는 나들이의 ‘깃발대장’이다. 5년 전 우연히 담양에 내려갔다가 거기서 만난 김용철의 장구소리에 ‘홀딱’ 반해서 그와 의형제까지 맺었다. ‘문제’의 담양 모임에서 국토 종주를 부추긴 죄(?)로 일부러 휴가를 내가면서 나들이의 선두에 선다. 사진작가 최공철(49) 역시 속절없이 김용철의 매력에 빠져서 4년째 내리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광주의 친환경인증기관에 다니는 서석봉(60)은 일행의 최연장자고, 초등학교 6학년으로 김용철의 조카인 김의현(13)은 그 반대다. 이들은 모두 아픈 다리를 서로 주물러가며 길을 걷는다. 개인적으로 ‘해냈다’는 기쁨도 있겠지만, 더 많은 사람과 만나고 자연과 소통하는 즐거움으로 마냥 힘든 길을 간다.

‘소리노리’는 8월 26일 강화도 마니산에 오른다. 마니산은 민족의 시원이 어린 곳이다. 풍물의 태생이 기원제에 있을진대, 풍물소리는 신을 불러들이는 소리다. 그들은 그곳에서 하늘에 제를 지내고, 여느 곳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곳의 흙을 채취할 작정이다. 그렇게 모인 흙들은 내년 독도에서 치를 합토식에 쓰일 것이다. 그 꿈을 위하여 오늘도 우리 소리가 우리 땅을 간다.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야윈 팔다리일망정 한껏 휘저어/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우리의 가락 속을 거닐 수밖에 없는 일이다./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하나에까지/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도록/우리는 우리의 삶을 불 지필 일이다./우리는 우리의 숨결을 보탤 일이다./일렁이는 피와 다 닳아진 살결과/허연 뼈까지 통째로 보탤 일이다.
-조태일 ‘국토 서시’

<글·사진 유성문 편집위원 rotack@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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