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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가 올림픽스타 장래 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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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띄우기’는 오히려 부작용 초래… 마음 붕 떠 연습 소홀‘퇴보’ 경우도

지난 8월 8일 평화와 희망, 번영을 내건 2008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 한국 선수단이 태극기를 들고 입장하고 있다. 한국 선수의 금메달 소식이 전해지면서 박태환, 최민호 등 올림픽 스타가 탄생했다. <경향신문>

지난 8월 8일 평화와 희망, 번영을 내건 2008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 한국 선수단이 태극기를 들고 입장하고 있다. 한국 선수의 금메달 소식이 전해지면서 박태환, 최민호 등 올림픽 스타가 탄생했다. <경향신문>

베이징 올림픽 열풍이 한국을 강타하고 있다. 5번 연속 한판승으로 금메달을 딴 유도의 최민호 선수를 시작으로, 남녀 양궁 단체전 금메달, 아시아인 최초로 수영 400m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딴 박태환, 16년 만에 역도 금메달을 딴 사재혁 등 올림픽 스타들이 연달아 탄생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한국의 돌풍이 올림픽 초반부터 이렇게 거셀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또한 스포츠 중계 때문에 시청률이 높은 쇼프로그램을 결방하는 일은 올림픽이 아니면 상상하기 힘든 경우다.

메달리스트 마케팅 이용 미디어 전쟁
특히 박태환의 금메달 소식이 전해지자 방송, 신문, 인터넷 등 한국의 언론은 덩달아 바빠지기 시작했다. 박태환을 모델로 쓴 기업이 얻을 광고 마케팅 효과가 수천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이야기부터, 광고업계에서 박태환의 ‘몸값’이 6개월 단발 광고 기준 5억 원 안팎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또 올림픽 스타의 인기에 기대는 연예인의 기사도 쏟아지고 있다. 박태환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원더걸스 선예가 박태환이 금메달을 딴 순간 소리를 질렀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다. 금메달 송으로 알려진 소녀시대의 노래 ‘소녀시대’ 이야기, 박태환의 미니홈피 음악이 자신의 노래라는 신인가수 2am에 대한 기사, 박태환의 팬임을 자처하면서 ‘베이징 올림픽 테마송’ 녹음을 알린 한지혜까지 다양한 종류의 기사가 나왔다. 심지어 왕기춘 선수의 미니홈피에 신인 가수 문지은에 대한 글과 사진이 실리자 이 가수의 응원 메시지와 함께 만남을 주선하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언론뿐 아니라 연예계까지 올림픽 스타의 인기에 기대려는 움직임이 많다는 증거다.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베이징 올림픽을 통해 탄생한 스타를 마케팅에 이용하려는 미디어 전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언론은 올림픽 스타를 이용해 시청률과 판매 부수를 올리기에 분주하고, 선수들은 언론 덕분에 ‘자고 나니 스타’가 되어 있기도 했다.

미디어가 스포츠 스타를 집중 조명하는 이유는 ‘돈’이 되기 때문이다. 동아대 정희준 교수(스포츠과학부) 역시 “미디어가 올림픽을 띄우는 이유는 광고를 많이 받기 위해서”라며 “올림픽은 초반에 어느 정도 뜨느냐에 따라서 광고에 영향이 있는데, 최민호와 박태환 덕분에 방송사는 쾌재를 부를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그는 또 “미디어는 스타가 있어야 기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올림픽 스타 만들기는 계속될 것”라고 덧붙였다. 한국방송작가협회 예능이사인 최대웅 작가 역시 “올림픽 경기보다 다이내믹한 버라이어티 쇼는 없다”면서 “게다가 요즘 젊은 선수들은 과거와 달리 외모뿐 아니라 말주변도 좋아서 시청자의 관심을 끌 만한 요소가 많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언론에 자주 노출되는 것이 마냥 좋은 게 아니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많다. 예전부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는 국민적 영웅이 되고, 올림픽이 끝난 후에도 모든 언론이 이들을 집중 조명한다. 프로 선수는 언론의 수많은 섭외 요청을 에이전시를 통해 걸러내면서 보호받는다. 하지만 대다수 올림픽 스타는 감독이나 부모가 에이전시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격 강초현 “제발 저 좀 놔두세요”
하지만 이들은 언론을 잘 모르다 보니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 생긴다. 다른 경기를 준비해야 할 시간에 쇼프로그램에 나가야 하고, 연습 시간에 인터뷰를 하다 보면 선수가 컨디션을 조절할 수 없는 부작용이 생기는 것. 무엇보다 수많은 매체에 출연하다 보면 운동선수가 마치 연예인이 된 듯 착각할 수 있다.

제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1992) 마라톤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황영조 감독(국민체육진흥공단)도 이런 비판에 수긍한다. 당시 올림픽을 마치고 귀국한 후 황 감독에 관한 기사는 수도 없이 쏟아졌다. 그리고 각종 환영 행사와 불우이웃돕기, 자선바자회 모임, 오락프로 등 온갖 행사에 끌려다녀야 했다. 심지어 올림픽 2연패를 요구하는 언론과 사람들의 부담감 때문에 은퇴를 선언했다가 하루 만에 철회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당시 한 신문 사설에서는 이런 현상을 비꼬아 ‘황영조, 좀 가만 놔둬라’라는 사설을 올릴 정도였다. 황 감독은 당시 상황에 대해서 “국민은 나에 관해서 언론을 통해 나온 이야기를 보고 믿는데, 그 속에는 과장된 것도 아주 많았다”면서 “올림픽 스타는 국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줘야 하기 때문에 언론을 피할 수는 없지만, 오랫동안 언론에 나오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디어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부당한 대우에도 “혼자서 견뎌내야 했다”고 토로했다.

지난 8월 12일 베이징 항공항천대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남자 역도 69㎏급 용상에 출전한 이배영 선수가 부상으로 메달 사냥에 실패했지만, 그의 투혼은 큰 감동을 줬다. <경향신문>

지난 8월 12일 베이징 항공항천대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남자 역도 69㎏급 용상에 출전한 이배영 선수가 부상으로 메달 사냥에 실패했지만, 그의 투혼은 큰 감동을 줬다. <경향신문>

제27회 시드니 올림픽(2000) 사격 종목에서 은메달을 딴 강초현 선수(현재 갤러리아 소속) 역시 언론의 피해를 당한 대표적인 스타. 강 선수는 올림픽이 끝난 후 ‘강초현 신드롬’까지 만들어냈고 ‘국민 여동생’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당시 최고의 인기가수 조성모와 의남매를 맺고, 강초현의 생일에 조성모가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생일 파티를 해주는 등 연예인 못지않은 대접도 받았다. 각 대학에서는 강초현을 잡기 위해 무한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관심 탓인지, 부산전국체전에서 결선 꼴찌를 기록한 후 “제발 저 좀 놔주세요” 하고 울먹이기까지 했다. 강초현은 “당시 고등학교 3학년으로 어리기는 했지만, 이런 것이 거품일 것이라는 생각은 했다”고 말했다. 강초현을 지도하고 있는 송희성 감독은 “당시 매체에서 막 띄워서 훈련에 많은 영향이 있었다”면서 “그때 일이 지금도 초현이에게 영향을 주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현재 동서울대 경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88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 김재엽씨는 올림픽이 끝난 후 사업 실패와 이혼 등으로 많은 인생 부침이 있었다. 이런 일이 기사로 나오면서 심적 고통을 많이 겪기도 했다. 펜싱에서 처음으로 금메달을 딴 김영호 감독 역시 개인사가 기사화되어 많은 고통을 받기도 했다. 스포츠 에이전시 전문 변호사인 장달영씨는 “선수도 미디어를 통해 팬에게 서비스해야 한다”면서 “다만 운동선수가 미디어의 달콤함에 빠지면 운동을 왜 해야 하는지 동기를 잃어버릴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미디어가 올림픽 스타의 생명력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반론도 많다. 스포츠평론가 기영노씨는 “올림픽은 4년마다 있는 것이기 때문에 미디어 입장에서도 놓칠 수 없는 호재다”면서 “하지만 선수에게 그 여파는 1~2개월밖에 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강초현의 경우는 드문 사례고, 이번 올림픽에서 배출한 스타 중에서 박태환을 제외하면 그렇게 걱정할 만한 선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한 연예전문 기자는 “올림픽 스타나 연예인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면서 “스포츠 스타가 스타덤에 오르면 그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일이 벌어지게 마련이니까 자신이 스스로 컨트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초현 선수 역시 “미디어와 올림픽 스타는 서로 상부상조하는 관계다”면서 “미디어를 통해 선수 자신을 잘 알리는 기회가 되고, 그런 선수들을 잘 활용하면 선수 저변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또한 “올림픽이 끝난 후 몇 개월 정도만 선수 자신도 미디어를 즐긴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별 문제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올림픽 영웅 만들기’ 자제해야
전문가들은 올림픽 스타와 미디어의 관계에서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줄이려면 가장 먼저 ‘올림픽 영웅 만들기’를 없애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경우 금·은·동메달을 모두 합산해서 나라별 순위를 매긴다. 메달의 색깔에 관계없이 선수를 바라보는 것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금메달 지상주의가 여전히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런 흐름을 만든 것은 체육계 자체의 문제도 있지만, 미디어도 큰 몫을 했다는 것이 공통적인 의견이다.

베이징 올림픽 유도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최민호 선수가 “아테네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을 때 메달을 딴 것만으로 기뻤는데, 주위 반응은 안 그랬다”면서 “금과 동의 차이가 그렇게 클 줄 몰랐다”고 털어놓은 것이 단적인 예다.

하지만 이제 시청자와 독자의 눈높이가 높아졌다. 과거에는 금메달 유망 종목만 방송해도 별 비판을 받지 않았지만, 요즘은 네티즌을 중심으로 공평하게 방송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그만큼 시대와 사람들의 인식이 변한 것이다. 정희준 교수는 “월드컵이나 올림픽을 보면 방송사가 이성을 잃고 시청률 전쟁을 벌이는데, 이번에는 시청자와 네티즌이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아졌다”고 지적했다. 최대웅 작가 역시 “요즘 시청자는 금메달을 딴 선수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 나름대로 매력을 갖춘, 노력하는 선수에게 시선을 주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번에도 방송에서 올림픽 스타를 불러 노래 부르게 하고, 춤추게 하는 등 구태의연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젠 스포츠 스타도 이미지를 관리해야 할 때다. 하지만 과거처럼 감독이나 가족이 주먹구구식으로 미디어를 접한다면 선수에게는 약이 아닌 독이 될 수 있다. 스포츠 스타가 속한 협회 차원에서라도 미디어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 최대웅 작가는 이에 대해서 “협회가 방송 전문가나 기자에게 도움을 요청해 올림픽 이후 선수를 관리하는 조직을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면서 “올림픽 스타들 때문에 온 국민이 웃을 수 있는 것이니까 언론도 올림픽 스타를 보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젠 선수와 미디어가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시스템과 인식을 마련해야 할 때다.

인터뷰 | 유플러스 연구소 김원제 소장
“선수들도 거품 사라진다는 것 알아야”

[특집]미디어가 올림픽스타 장래 망친다?

미디어는 왜 올림픽 스타에 열광하는가.
“스포츠는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하지 않나. 방송에서 드라마의 인기를 높이려면 배우를 띄우는 것처럼, 스포츠 스타를 띄워야 인기를 끌 수 있기 때문이다. 미디어는 스타가 있어야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스타가 없으면 스타를 만드는 것이 미디어의 속성 아닌가.”

올림픽 스타들이 미디어 때문에 고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언론이 스포츠 스타에게 주문을 거는 것이다. 스포츠 스타를 ‘대한의 건아’ ‘국민 남동생’ ‘국민 여동생’ 등으로 만드는데, 선수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런 분위기에 빠져들어 우쭐해질 수 있다. 하지만 선수들은 그런 건 시간이 지나면 거품처럼 사라진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스포츠 선수는 스포츠로 말해야지, 언론에 자주 나오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스포츠 스타도 언론을 이용해야 하지 않나.
“물론이다. 요즘은 방송하지 않는 스포츠는 전혀 관심을 받지 못한다. 스포츠가 발전하려면 대중의 지지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골프가 박세리와 최경주를 통해 대중 스포츠가 되지 않았나. 언론이 스포츠를 대중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하기 때문에, 선수들도 자신들의 종목을 알리려면 언론을 이용해야 한다.”

미디어와 스포츠 스타가 서로 잘되는 대안이 있나.
“히딩크 감독이 언론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알려줬다. 언론도 함부로 스포츠 스타를 취재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 또한 협회나 전문가가 선수들에게 언론을 대하는 방법을 교육해야 한다. 그리고 미디어도 금메달을 딴 선수만 조명하지 말고, 스포츠 스타를 마치 연예인 다루듯 하지 않았으면 한다. 시청자 역시 미디어의 행태가 잘못되면 과감하게 비판해야 할 것이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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