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청림 최공철, 연꽃과 에어컨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사람의 길]사진작가 청림 최공철, 연꽃과 에어컨

섭섭하게,
그러나 아주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서정주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드릴을 잡은 손에 땀이 밴다. 등줄기로도 연방 ‘육수’가 흘러내리고, 머릿속이 하얗게 뜰 것만 같다. 비라도 한바탕 쏟아졌으면. 비가 내리면 일이야 영 ‘꽝’이지만 말이다. 하긴 비가 내린다 한들 그리 밑질 것도 없다. 그렇잖아도 아까부터 청림의 머릿속엔 연꽃이 그득했다. 비만 오면 청림의 마음은 이미 연꽃밭에 가 있다. 아니 실제로도 비를 핑계 삼아 연꽃밭으로 달려가곤 한다. 비가 오지 않아도 그의 마음은 한여름 내내 연꽃밭에 가 있다. 아니 실제로도 일도 때려치우고 연꽃밭으로 달려간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사람의 길]사진작가 청림 최공철, 연꽃과 에어컨

한여름 내내 청림은 몸살을 앓는다. 에어컨 설비기사를 하는 자신의 처지로 여름 내내 일로 몸살을 앓는 건 당연한 노릇이겠지만, 그게 아니다. 청림은 연꽃 때문에 몸살을 앓는다. 청림 최공철(49)은 명색이 사진작가다. 줄창 연꽃만 찍어대는. 밥벌이로 에어컨 일을 하고는 있지만 사진은 그의 삶의 전부이고 그의 혼이다. 에어컨에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에어컨은 단지 밥벌이를 위한 존재일 뿐이고, 그의 혼은 사진에 팔려 있다. 사진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사진은 그에게 밥벌이는 되지 못한다. 어디 그게 자신의 탓인가.

전남 구례에서 태어났다. 조실부모하고, 구례농고를 나와 전남대 미대에 들어갔지만 그조차 가난 때문에 채 마치지 못했다. 사진을 시작한 건 스물네다섯 살 때였다. 이리저리 직장을 옮겨다니며 밥벌이를 하던 때였다. 줄기차게 그를 따라다니던 그림에 대한 꿈을 접고, 아니 ‘배고픈’ 그림에 대한 회의 때문에, 그래도 나을까 싶어 사진을 시작했다. 제대로 교육 한 번 받지 못했고, 따라다니며 배울 스승도 없었다. 그래도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사진을 찍어댔고, 1999년인가는 구례에서 첫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 일은 멋모르던 때의 수치일 뿐이었다. 그 후론 가끔 전시회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더는 개인전을 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연꽃 사진을 찍기 시작한 건 7년 전이었다. 옥외 간판을 주로 하는 광고업을 하다가 쫄딱 망하고, 자살까지 생각할 때였다. 어쩌다 스며들어간 절에서 한 스님을 만났고, 스님은 연꽃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구정물 속에서 피어나는 꽃,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꽃, 그때부터 연꽃은 그의 천국이었고 지옥이었다. 그가 처음으로 작정하고 연꽃을 찍어댄 곳은 무안의 회산백련지였다. 그는 보았다. 무수한 연꽃의 세상, 그때부터 연꽃은 그에게 세상이었고, 세상은 연꽃이었다.

나는 유독 진흙에서 나왔으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고 출렁이는 물에 씻겼으나 요염하지 않고, 속은 비었고 밖은 곧으며, 덩굴을 뻗지 않고 가지를 치지 아니하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꼿꼿하고 깨끗이 서 있어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나 함부로 가지고 놀 수 없는 연꽃을 사랑한다. -주돈이 ‘애련설(愛蓮說)’

에어컨 일을 시작한 건 5년 전이었다. 돈이 궁할 때 아르바이트 삼아 에어컨 설비기사를 따라다니다 급기야 창원에서 시스템 에어컨 설치 자격증을 땄고, 도급으로 일을 다녔다. 힘들고 위험한 일이었다. 오로지 사진을 찍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영판 보람 없는 일만은 아니었다. 그의 손을 거치기 전 에어컨은 단지 죽은 기계일 뿐이다. 그의 땀 밴 손을 거치고서야 비로소 기계는 생명을 얻는다. 그에게는 에어컨 역시 연꽃이었다.

[사람의 길]사진작가 청림 최공철, 연꽃과 에어컨

하지만 그놈의 에어컨 일이 여름철 일이라는 게 문제였다. 에어컨과 씨름을 하다가도 시도 때도 없이 한창 피어올랐을 연꽃을 생각했고, 돈만 손에 쥐면 모든 걸 내팽개치고 연꽃밭으로 달려가기 일쑤였다. 자연 일을 펑크 내고 원성을 듣는 일이 잦았다. 약속을 어겼다고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많이 했다. 그러나 연꽃 사진을 찍기 좋은 날씨면 어김없이 병이 도졌다. 한번은 시흥에 일을 나갔는데 하필이면 연꽃 시배지인 관곡지 근처였다. 에라, 모르겠다, 마침 우연찮게 카메라도 차에 실려 있겠다, 보조에게 일을 떠맡긴 채 저수지로 달려갔다. 실컷 사진을 찍고 돌아와 보니 에어컨이 퍼져 있었다. 원 없이 욕을 얻어먹고 돈까지 물어줬다. 그런데 나중에 뽑아본 사진만큼은 무척 마음에 들었다. 거금 50만 원을 들여 찍은 비싼 사진이었지만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아내와는 1984년인가 85년인가 광고 일을 할 때 만났다. 거래처에 근무하는 부산 여자였는데, 처가에 인사를 하러 갔다가 단지 ‘전라도 놈’이라는 이유만으로 욕을 듣기도 했다. 아내는 그가 사진작가인 줄 모르고, 아니 모르는 척 산다. 사진을 찍으러 나갔다가 며칠 만에 들어오면 아예 보따리 싸가지고 나가라고 바가지를 긁어대기 일쑤다. 언젠가 가족 사진을 찍어줬더니 그 잘난 사진하면서 가족 사진 달랑 한 장 찍어주느냐고 핀잔을 해댔다. 그래도 사진 하나는 마음에 들었는지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눠주겠노라 몇 장 더 뽑아달란다. 사진 값은? 물었더니, 마누라한테까지 사진값 받느냐고 하면서도 피식 웃어대는 것이었다. 군대 간 놈 한 놈, 대학 1학년 한 놈, 두 아들 놈은 대놓고 말은 하지 않지만 그래도 은연중에 친구 놈들에게 아비가 사진작가라고 자랑하는 모양이었다.

[사람의 길]사진작가 청림 최공철, 연꽃과 에어컨

사진이야 말할 것도 없고, 에어컨 일도 힘닿는 데까지 해볼 작정이다. 한 70까지라도 남은 힘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연꽃과 사람이 어우러진 사진을 담은 사진집을 내볼 작정이다. 전시회야 60대쯤 되었을 때 회고전이나 열어볼 생각이고. 마치 쭈그렁 망탱이가 되어 씨집만으로 남는 연꽃처럼. 가능하다면 사진연구실도 차리고 후배들도 양성하고 싶지만 그냥 꿈으로 그치고 말지도 모를 일이다.

청림은 얼마 전 작고한 사진 작가 김영갑을 좋아한다. 루게릭병을 앓으면서도 혼신을 다해 제주의 하늘과 땅과 바다를 기록한 그의 정신을 좋아한다. 생각해보면 그 역시 하나의 연꽃이다.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자기를 버려서 자기를 얻는. 청림은 언젠가 제주에 촬영을 갔다가 밤새 그와 나눴던 이야기들을 잊지 못한다.

땀을 한 말이나 쏟고서야 일이 끝났다. 새로 생명을 얻은 에어컨은 기분 좋게 돌아가고 실내에는 금방 시원한 바람이 돈다. 그 바람은 어쩐지 스스럼없다. 마치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처럼. 어디선가 한여름 무더위 속에 한 잎 두 잎 연꽃 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내가/돌이 되면,/돌은/연꽃이 되고/연꽃은/호수가 되고,/내가/호수가 되면,/호수는/연꽃이 되고/연꽃은/돌이 되고…
-서정주 ‘내가 돌이 되면’

<글·사진 유성문 편집위원 rotack@lycos.co.kr>

사람의 길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