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화난 불교계, 과거와 양상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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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면적 불만이 아닌 정권을 향한 격앙된 반발로 내부 분위기 강경

7월 30일 경찰청 앞에서 불교계의 항의 방문 법회가 열렸다. 항의 서한을 전달하려던 대표자들은 경찰청 정문에서 실랑이를 벌였다. 서대문 경찰서장이 나서 평상시 사람이 드나드는 작은 문으로 들어오길 요청했고, 불교계 대표자들은 정문으로 떳떳하게 들어가겠다고 이를 거부했다. 당초 법회 참석자들이 경찰청 앞마당으로 들어가고 대표자들은 경찰청 안으로 들어가려는 것에서 물러나 대표자들만 정문 안으로 들어가기로 양보한 것인데, 쪽문으로 들어오라는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거부에 대해 서대문 경찰서장이 “정문을 열어 (참석자들이) 모두 정문 안으로 들어오면 책임지지 못한다”면서 “(대표자만 들어온다는) 약속을 믿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믿지 못하겠다’는 말에 격분한 참석자들은 결국 항의서한을 경찰청장에게 전달하지 않고 정문 앞에서 불 태워버렸다. 불교계가 얼마나 격앙돼 있는지 보여주는 한 단면적 상황이다.

경찰청장 사퇴 선결조건으로 내세워
불교계가 뿔이 나도 단단히 났다. 이번 불교계의 격앙은 표면적 차원이 아닌 정권을 향한 구조적 불만이라는 점에서 과거와 양상이 다르다. 7월 29일 경찰이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의 차량을 검문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불교계는 종교 편향이 도를 넘어섰다며 격앙된 분위기에 휩싸였다. 전경도 아닌 경찰이 “총무원장 차량이라면 검문 검색을 더 (철저히)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전해지자, 불교계는 어청수 경찰청장의 사퇴를 사태 해결의 선결조건으로 내세울 정도로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항의에 나선 불교 관련 모임의 면면만 보아도 불교계 내부의 분위기를 잘 알 수 있다. 항의 법회에는 시국법회 추진위원회와 이명박 정부 종교편향 종식 불교연석회의, 조계사·봉은사 불자가 참석했다. 시국법회 추진위원회는 7월 4일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시국법회를 주도했다. 여기에는 조계종의 대표적 사회단체인 실천불교승가회와 불교환경연대가 두 축을 이루고 있다. 두 단체의 뿌리는 1980년대 민주화 운동 당시 불교민중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실천승가회는 지선·효림스님, 불교환경연대는 도법·수경스님으로 대표되는 스님들이 밑바탕을 다졌다. 이 두 단체는 1994년 종단개혁 이후 총무원장 직을 둘러싸고 다른 길을 걷기도 했지만 진보·개혁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같은 쪽에 섰다. 두 단체는 시국법회를 앞두고 시국법회 추진위원회라는 모임을 꾸렸다. 불교계와 조계사에 피신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수배자들의 의사 통로도 자연스럽게 이 추진위가 떠맡았다.

이들 단체에 속했던 스님들이 현 총무원 집행부에 일부 포진해 있어 총무원이 이번 사태에 때로는 강경하게, 때로는 합리적으로 대처한다는 교계 내부의 평가를 얻고 있다. 사회부장 세영스님이 환경연대, 재무부장 장적스님이 실천승가회 소속이며, 총무원과는 조금 떨어져 있지만 교육원장인 청화스님과 교육부장 퇴휴스님 역시 실천승가회 소속이다. 실천승가회 사무처장 효진스님은 “꼭 우리 식구가 있어서 그런 것보다 총무원이 예전에 비해 변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 총리의 방문 당시 총무원에서 미리 추진위 측에 양해를 구했다는 것이다. 약속대로 추진위 측에서는 침묵 시위만 벌였을 뿐이다. 효진스님은 “총무원은 공식적인 종단 기구이므로 정부에 전면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힘들다”면서 “결국 이번 종교편향 사태에 대해서는 재야단체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격앙된 분위기의 수위를 알 수 있는 척도는 총무원 관련 단체다. 이들 단체는 총무원과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에 추진위 측과 달리 비교적 온건한 편에 속하나, 최근 일련의 ‘종교편향’ 사태 이후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섰다. 조계종 중앙신도회와, 총무원 직원 모임인 원우회 등의 관련 단체가 7월 초 이명박 정부 종교편향 종식 불교연석회의라는 모임을 결성하고 사안마다 강경한 입장의 성명을 발표했다. 경찰청 앞의 항의 방문 집회에서도 원우회 회장이 삭발을 하면서 총무원장 검문 검색에 대해 항의를 표시했다.

한 총리 방문 당시 함께 배석한 손안식 위원장(이명박 정부 종교편향 종식 불교연석회의)은 총무원장 대신 종교 편향에 대해 강력한 항의를 표명했다. 손 위원장은 “우리 측 요구사항을 전달받았느냐고 총리에게 물었더니 고개만 끄덕거렸을 뿐”이라면서 “당시 총무원장 지관스님은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연석회의에는 시국법회 추진위도 일부 참여하고 있다. 손 위원장은 “연석회의를 조계종뿐 아니라 범불교 차원으로 확대 개편할 것”이라고 밝혔다.

늘 외교적인 수사에 머무르며 공식적인 입장만 발표하던 총무원조차 강경한 언사를 감추지 않았다. 검문 검색 사건이 있은 이튿날, 기자회견에서 조계종의 대변인 격인 기획실장 승원스님은 기자회견을 열어 “참담한 사건”이라고 표현하면서 “더 이상 사과를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날 언급한 사과는 7월 22일 한승수 국무총리의 조계사 방문을 언급한 것이다. 승원스님은 성명서에서 “이는 총무원장 스님을 범죄자 또는 범죄 예비자로 간주하여 불법 검문검색한 것”이라면서 “어청수 경찰청장은 즉각 사퇴하라”고 주장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기자의 질문에 답변한 것이긴 하지만 절문을 닫는다는 의미의 ‘산문폐쇄’를 고려해볼 수도 있다라는 이야기까지 했다.

총무원 집행부 스님들의 입장도 강경하다. 총무부장 원학스님은 종로경찰서장에게 “조계사에는 농성자가 없다”고 답변해 불교계에 이 ‘선문답’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호법부장 정만스님은 공교롭게도 총무원장의 차량 검문 직후 청사를 방문한 한나라당 나경원·조문환 의원에게 이 사태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했다. 한나라당 제6정책조정위원장인 나 의원과 한나라당에서 불교 관련 일을 맡아 하고 있는 조 의원은 ‘공무원의 종교 편향 금지 법안’을 놓고 총무원과 상의하기 위해 방문했다가 난데없이 항의받는 상황에 처했다.

총무원 발표도 강경한 언사 동원
총무원뿐 아니라 교구본사 주지들의 입장도 강경하다. 7월 24일에는 총무원이 교구본사 주지회의를 열었다가 전국 교구본사 주지들의 강경한 목소리를 낮추느라 애를 썼다고 한다. 전국 사찰을 실제로 대표하는 교구본사 주지들은 이날 채택한 결의 성명을 총리실에 전달했다. 8월 5일까지 정부의 입장을 들은 후 행동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영천 은해사 주지인 법타스님은 “그날 교구본사 주지들이 이번에는 분명히 해결지어야 한다며 강경한 목소리를 쏟아냈다”면서 “지방에 있지만 교구본사 주지들이 현장의 목소리를 듣다 보니 목소리가 높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교구본사 주지들은 전 총무원장인 법장 스님의 입적 이후 중단했던 비공식 모임인 교구본사주지협의회를 7월 29일 다시 부활시켰다. 이 자리에서도 종교 편향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고 한다.

국회의 정당에 비유할 수 있는 조계종 종회의 5개 종책 모임도 소속 종회의원이 7월 31일 한자리에 모여 총무원장 검문 검색의 책임자 파면을 요구했다. 조계종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와 총리실, 경찰청에 공문을 보내 8월 5일까지 답변을 달라고 했다”면서 “회답이 오는 것을 보고 불교계가 대응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불교계에서는 음력 7월 15일인 8월 15일을 주목하고 있다. 스님들이 하안거를 끝내고 밖으로 나오는 날이기 때문이다. 8월 15일을 앞두고 불교계는 폭풍전야의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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