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트 계급이 높아 ‘인생의 걸림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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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자스탄주 평민계층 “신분 낮춰달라” 시위… 천민에게 할당된 고용·입학 기회 누리려

카스트제도에 따라 6등급으로 나뉜 인도 열차의 모습. <경향신문>

카스트제도에 따라 6등급으로 나뉜 인도 열차의 모습. <경향신문>

지난 6월 중순 근 2년째 간헐적으로 계속된 소요 사태가 일단락됐다. 100명 이상이 희생된 결과였다. 라자스탄에서 시작하여 수도 델리까지 확산된 이번 사태에서 참가자들의 요구는 자신들의 카스트를 낮춰달라는 것. ‘카스트의 나라’ 인도에서 카스트가 낮으면 낮을수록 출세에 유리하다는 ‘이상한 진리’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정치권력의 분점화가 불가피한 상황과 맞물려 이들의 요구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번 소요의 주인공은 라자스탄 주의 구자르(Gujjar) 카스트.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그들은 중앙아시아 유목민으로 인도로 들어와 정착하면서 자신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평민 계층인 바이샤, 즉 유통과 생산을 담당하는 상인 및 농민 카스트로 분류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은 주로 가축을 돌보는 목동 일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카스트는 하층 카스트인 수드라, 즉 천민 카스트에 속하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위해 천민 카스트의 일종인 소위 지정 부족(ST)으로 카스트를 낮춰달라는 것이다.

공공부문 하층 카스트 강제할당 명문화
본래 고대 힌두 카스트 체계는 정복 계층인 아리아인들이 피정복민들을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만들었다. 처음에는 피부색, 바르나(varna)로 구분했지만 점차 혼혈이 나타나 결국 현실적인 방법인 직업, 자티(jati)로 계층을 구분했다. 가장 상위 카스트는 성직자인 브라만, 다음 카스트는 군인인 크샤트리아, 평민 카스트인 바이샤, 그리고 천민 카스트인 수드라다. 수드라 안에도 여러 직업군에 따라 차별 정도가 달랐으며 이들은 불가촉천민, 달릿, 하리잔(신의 아들이란 뜻으로 간디가 사용) 등으로 불려왔다. 고대 힌두성전으로 힌두인이 지켜야 할 법, 다르마를 규정한 마누법전에 “베다(일종의 힌두 철학 및 종교 문헌)를 읽는 천민은 혀를 자르고, 베다 소리를 들은 천민은 귀를 납으로 막고, 베다를 외운 천민은 머리를 잘라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을 정도로 이들에 대한 차별은 엄청났다.

천민 카스트 차별철폐 및 지원정책은 간디 등이 주장했지만 사실 구호에 그쳤고, 영국 식민정부가 이를 법제화하기 시작했다. 1935년 영국은 인도 정부법을 제정하면서 후진 계층으로 불린 천민 카스트를 지정 카스트(SC), 지정 부족(ST), 그리고 이들을 제외한 기타 후진계층(OBC)으로 분류해 지원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같은 해 인도 천민 카스트의 대부이자 경제학자, 변호사였으며 훗날 인도 초대 법무장관으로 인도 헌법 기초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암베드카르가 “나는 힌두 천민으로 태어났지만 결코 힌두교인으로 죽지 않을 것”이라고 그 유명한 욜라 선언을 할 정도로 하층 카스트에 대한 차별은 당시 심각한 사회 문제였다.

경제 여유 없어 강제입학 혜택 못누리기도
1943년 영국 식민정부는 인도에서 처음으로 이들 하층 카스트를 위한 고용할당제도를 정부 부문에 국한해서 실시했다. 이후 1947년 인도가 독립하고 1950년 인도 헌법이 제정되면서 향후 10년간 공공부문은 하층 카스트를 일정 비율로 강제 할당해야 하는 것이 명문화되었다. 그 후 이 규정은 10년 단위로 계속 연장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이에 따라 SC, ST는 헌법 제정 때부터 행정부, 즉 중앙정부 및 주정부, 입법부, 공공 교육기관에서 인구 비례에 따라 고용 및 입학 할당의 혜택을 받아왔다. 이번 소요의 주인공인 구자르가 그들의 카스트를 ST로 낮춰달라는 것도 바로 강제할당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다. OBC도 뒤늦었지만 1980년 만달위원회(2차 후진계층위원회 의장인 만달의 이름을 딴 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1989년 강제할당의 권한을 받았다.

[친디아 리포트]카스트 계급이 높아 ‘인생의 걸림돌’

현재 이들 하층 카스트의 강제할당 비율은 49.5%, 인도 하층 카스트의 인도 인구 전체 비중인 75%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인도 대법원이 사회정의와 효율성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강제할당 비율 상한선을 50%로 못 박았기 때문이다. 타밀나누 등 하층 카스트 인구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주의 경우 50% 이상의 강제할당 비율이 허용되었다. SC와 ST의 경우, 일찌감치 할당률을 적용받아 인구 비율인 16%와 8%에 상응하는 15%와 7.5%를 받았고, 가장 늦게 보호받은 OBC의 경우, 전체 인구의 51%를 차지하면서도 할당률은 27%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어찌되었건 법대로 하면 모든 공공부문 고용의 49.5%는 하층 카스트로 채워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특히 OBC의 경우, 만달위원회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상층 카스트들의 반발과 법정소송으로 집행이 보류되다가 1993년에야 중앙정부 및 주정부, 산하 공기업에 강제할당을 시행했으며, 교육기관 입학의 강제할당은 올 4월에서야 대법원의 합헌 결정으로 시작되었다.

SC나 ST의 경우 대체로 강제할당 비율은 지켜지고 있으나 그 내용을 보면 입법 취지가 무색할 정도다. 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중앙정부 산하 공기업에 고용된 SC의 경우, 고용 비율은 18.8%로 오히려 강제할당 비율보다 높으나 대부분 청소부 등 하위 직종으로 채워져 있다. 교육부문에서는 정도가 더 심하다. 인도인재개발부 자료에 따르면 1999년 기준으로 학사와 석사 과정의 8%, 박사 과정의 2.8%만이 SC가 차지하고 있다. 인도정부는 하층 카스트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를 인도 의회 등에만 보고하고 거의 공개하지 않아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이러한 현상은 ST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알려져 있다.

강제할당에도 불구하고 이들 하층 카스트는 인도에서 여전히 가장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이다. 교육 특히 고등교육의 경우, 어느 정도의 경제적 여유가 없으면 강제할당의 혜택을 현실적으로 누리기 어렵다. 가난해서 고등 교육기관 입학 자체가 힘들어 진학률이 낮으니 공공기관에서도 최하위직에 종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실질적인 혜택은 별로지만 하층 카스트 바로 위에 있는 차상위 카스트는 부럽기만 한 모양이다. 구자르는 지난 6월 19일 2년간의 시위 끝에 구자라트 주정부에서 ST 자격과 함께 5%의 강제할당 비율을 받아냈다. 라자스탄 주정부는 다른 카스트들의 반발을 의식해 경제적으로 소외된 또 다른 카스트에도 14%의 강제할당 비율을 부여했다. 결국 라자스탄 주는 기존의 강제 할당률인 49%에 19%를 추가해 그 비율이 무려 68%로 전국 최고를 기록했다. 이것은 원하든 원치 않든 오랫동안 인도 사회를 유지해온 카스트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인도의 경제성장 속도가 빨라지면서 성장의 과실을 취할 수 없는 계층을 중심으로 최근 수년간 카스트 낮추기 요구가 전국적으로 봇물 터지듯 발생하고 있다. 특히 중앙정부나 주정부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정당이 점차 사라지고 권력의 분점화가 대세로 고착되어가는 가운데 이들의 요구는 지지가 필요한 정치권과 맞물려 더욱 힘을 발휘하고 있다. 공공부문에 이어 민간부문에까지 고용할당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이미 인도 경제 및 산업 단체는 강제 고용할당제가 민간부문으로 확산하는 데 일제히 반대의사를 밝혔지만 현 연정을 지지하고 있는 공산계 정당들은 여전히 이를 주장하고 있다.

상층 카스트는 역차별 내세우며 불만
상층 카스트는 상층 카스트대로 불만이다. 상층 카스트라는 이유로 고용이나 입학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해지는 것은 일종의 역차별이기 때문이다. 또 아예 카스트 대상이 되지 않는 모슬렘에게는 강제할당의 혜택이 거의 돌아가지 않는 것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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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식민지 시절 영국의 하층 카스트 보호정책으로 시작한 강제할당제는 다분히 카스트 분리를 통해 인도 통치를 용이하게 하려는 ‘분리 및 통치’ 정책의 성격이 강하다. 식민시절 카스트 정치의 망령이 오늘날 또다시 살아나고 있는 셈이다.

이렇듯 한편에서는 자신들의 카스트를 하층 카스트로 전락시키면서까지 실질적인 혜택을 누리려는 실용적인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카스트에 대한 전반적인 사회적 인식이 바뀌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인도의 미래를 짊어지고 있는 대학생들의 카스트에 대한 인식 조사를 보면 카스트 차별이 얼마나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인도의 수재들이 몰리는 자하할랄네루대학, 푸네대학, 하이드라바드대학 재학생 449명, 대학별·전공분야별·남녀성비별·종교별로 조화롭게 구성된 설문집단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다른 사람이 자신을 생각할 때 자신의 카스트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가’라는 질문에 전체의 30%가 동의했다. ‘본인이 생각할 때도 자신의 카스트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가’라는 질문에도 28%가 동의했다.

이는 ‘카스트는 내 부모에게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의 질문에 동의한 73%와 비교해볼 때 상당히 개선한 점이 있긴 했지만 누구보다 자신감이 넘치고 지식의 첨단을 걸으며 인도에서 가장 진보적인 대학생들이 느끼는 카스트에 대한 자기인식치고는 솔직히 실망스럽다. ‘동일 카스트 간 결혼이 다른 카스트 간 결혼보다 더 성공적’이며 ‘부모가 (양가 카스트에 맞춰) 정해준 중매결혼이 더 좋다’는 데 동의 비율이 각각 54%와 49%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머리 속에는 카스트 차별을 철폐해야 한다는 의식이 자리하고 있지만 실존하는 카스트 차별 속에 그들도 여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식과 실존의 격차가 큰 가운데도 희망은 보인다. 같은 대학생들을 상대로 ‘우리 손자들은 어떠한 카스트에 대한 차별의식이 없기를 바란다’에 전체의 81%가 동의했으며, ‘카스트는 인도의 후진성을 나타내는 창피한 의식이다’에 75%가 동의했다.

간디와 달리 카스트 차별 철폐를 정치적·제도적·법적으로 해결하려 했던 암베드카르 박사는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 결국 1951년 9월 인도 초대 법무부 장관직을 내놓았다. 그리고 그는 “힌두로 태어났지만 힌두로 죽지 않겠다”는 선언을 지켰다.

1956년 불가촉 천민 60만 명과 함께 힌두교에서 불교로 개종한 것이다. 암베드카르 박사가 살아 돌아와 실리를 위해 하층 카스트로 전락하기를 바라는 오늘날 인도의 한 단면과, 그러면서도 아직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카스트 차별을 목도한다면 그는 다시 어떤 선언을 할까, 참으로 궁금하다.

조충제<롯데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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