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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보듬고 다시 일어선 성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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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종단 잇따라 비폭력 집회 이끌어… ‘심상찮은 현시국’ 반증

종교인이 다시 일어났다. 우리 현대사의 변곡점마다 아스팔트 위에 몸을 던졌던 이들이 다시 등장했다는 것은 현 시국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정부는 내부적으로 매우 당황한 표정이다. 최고위층이 교계 최고 지도자에게 촛불시위 반대 성명을 요청했다가 거부당했다는 후문이다. 게다가 정부는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성직자에게 “종교행사라고 해도 도로를 장시간 점거하거나 연좌하는 것은 집시법 위반”이라며 형사처벌을 운운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면면을 보면 사법처리를 두려워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왼쪽부터) 김인국 신부, 전종훈 신부, 김영식 신부.

(왼쪽부터) 김인국 신부, 전종훈 신부, 김영식 신부.

사제단은 종교계의 사회 참여 흐름을 대표할 뿐 아니라 한국 민주화 운동 자체를 대표할 만한 무게를 지니고 있다. 지난해 10월 삼성그룹 비자금 의혹을 폭로한 데 이어, 2008년 촛불정국에서도 6월 30일부터 세 차례 시국미사를 통해 촛불집회의 비폭력 평화 기조를 확고하게 정착시킴으로써 촛불을 일부 과격세력의 폭력 집회로 몰아가려던 정부의 허를 찔렀다는 평가를 받았다.

1970~80년대 사제단을 대표하던 함세웅 신부, 김병상 신부, 문규현 신부, 송기인 신부 등을 사제단 1세대라고 할 때, 현재 전종훈 신부, 김인국 신부 등 사제단 상임위를 구성하고 있는 신부들은 사제단 2세대를 대표한다. 전종훈(52) 신부는 2006년 전임 대표 문규현 신부가 물러나면서 사제단 대표로 선출됐다. 전 신부는 1990년 사제서품을 받고 1991년부터 사제단 활동을 시작했다. 2004년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단식 기도를 했고 2006년 5월에는 평택 대추분교 옥상에서 문정현 신부, 김인국 신부, 배인호 신부 등과 함께 경찰의 대추분교 진입에 항의했다. 정세 판단과 분석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전 신부는 전곡 성당과 염리동 성당을 거쳐 현재는 수락산 성당 주임 신부로 재직하고 있다.

사제단 총무를 맡고 있는 김인국(45) 신부는 시국미사에서 연일 어록을 쏟아내며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다. 교구에서 일반 신자들과 일상적으로 접촉하는 신부는 대중적인 친화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지만 김 신부는 사제단 내에서도 발군의 언어 감각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청주교구 금천 성당에 재직하고 있다.

사제단 상임위 통일위원회 위원장 김영식(49) 신부는 식량 지원을 비롯한 대북지원 업무를 맡고 있다. 사제단은 해마다 금강산 평화 기행을 통해 북한 지역 교우들과 교류하고 있으며 백두산 및 평양 방문 사업도 진행한다. 1994년 사제 서품을 받았고 안동 옥산성당에 재직 중이다. 사제단의 현실 참여와 관련해서는 전종훈 신부, 김인국 신부, 김영식 신부가 큰 틀에서 결정을 내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제단 사무처장을 맡고 있는 나승구(45) 신부는 사제단 회계와 사무처를 관리하며 살림꾼 역할을 하고 있다. 2004년에는 전종훈 신부, 김영식 신부와 함께 국보법 폐지 단식 기도에 참여했다. 1991년 사제 서품을 받았고, 현재 서울교구 신월동 성당에 재직 중이다. 상임위 부총무 배인호(40) 신부는 1996년 사제 서품을 받았고 2004년 국보법 폐지 단식 기도를 기점으로 사제단 활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배인호 신부는 사제단의 향후 행보와 관련해 “사제단이 본의 아니게 촛불정국의 전면에 부각되긴 했지만 궁극적으로 촛불은 대책위와 시민의 몫”이라면서 “그러나 정부가 끝까지 소통을 거부하면 다시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배 신부는 현재 상주 화령 성당에 재직하고 있다.

기독교

(왼쪽부터) 김경호 목사, 문대골 목사, 방인성 목사. <광우병기독교대책회의>

(왼쪽부터) 김경호 목사, 문대골 목사, 방인성 목사. <광우병기독교대책회의>

기독교 시국 기도에는 기독교 교단 연합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산하 8개 교단에 소속된 교회가 참여했다. 실제 행사는 NCCK 정의평화위원회, 예수살기, 교회개혁실천연대 등 기독교 내 진보단체가 주축을 이뤘다.

들꽃 향린교회 김경호(52) 목사는 광우병기독교대책회의 집행위원장을 맡아 촛불 정국에서 기독교계의 가장 전면에 나섰다. 김 목사는 1970년대 안병무 선생의 영향을 받은 젊은 민중신학자들의 모임인 제3시대 그리스도연구소 상임대표를 지냈고 기독교인의 적극적인 현실 참여를 주장하는 예수살기 총무를 맡고 있다. 백찬홍 제3시대 그리스도연구소 연구위원은 김 목사에 대해 “민중신학을 한 분들은 현실 참여는 열심히 하지만 목회에는 소홀해질 수 있는데 김 목사는 목회와 현실 참여를 모두 성실하게 하는 드문 사람”이라고 평했다. 김 목사는 시국 기도회에서도 시청 앞 광장에 모인 대중의 호응을 끌어내기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함께여는 교회의 방인성(54) 목사는 보수 진영의 한기총과 진보 진영의 NCCK로 양분된 기독교계에서 중도적인 목소리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복음주의 계열 교회개혁실천연대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교회개혁실천연대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 활동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따로 떨어져나온 소장 그룹이 만든 단체로 교회의 회계 투명성과 세금 납부 문제에 앞장서고 있다. 방 목사는 지난 1일 오후에는 김창규 목사 등과 함께 항의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청와대로 향했으나 경찰에 가로막혀 10여 분 만에 돌아오기도 했다.

예수살기 상임의장을 맡고 있는 문대골(68) 목사는 1970~80년대 기독교 진보운동의 좌장이라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는 함석헌 선생의 제자로 생명 평화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활동했다. 늘 흰색 두루마기를 입고 다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2002년 효순 미선양 사건 때는 범국민대책위원회 상임의장을 지냈다. 이번 촛불정국에서는 기독교 원로 33인 비상시국선언에 이름을 올렸고, 지난 6월 30일 YMCA 연맹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이명박 정부는 역사에서 퇴장 위기에 처해 있다”며 6월 28일과 29일 사이에 벌어진 경찰의 강경진압을 강력하게 규탄했다.

불교
지난 5일 이후 조계사는 1980년대 명동성당 구실을 하고 있다. 촛불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관계자 6명이 조계사로 피신해 무기한 단식농성 중이다. 대책회의 관계자들이 조계사를 선택한 데는 불교계가 정부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는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불교계는 현 정부 출범 이후 거듭된 불교계 폄훼에 대해 불만이 쌓일 대로 쌓인 상태다. 종단 내부의 진보 단체를 중심으로 참여한 다른 종교와 달리 불교계가 범종단 차원에서 촛불정국 한복판에 뛰어든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참여불교재가연대 윤남진 협동사무처장은 “현 정부에 대한 불교계의 불만이 상당하다”면서 “시국법회라는 분출구가 없었더라면 종단 전체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불교계의 격앙된 분위기를 전했다.

(왼쪽부터) 명진 스님, 법안 스님, 수경 스님, 청화 스님.

(왼쪽부터) 명진 스님, 법안 스님, 수경 스님, 청화 스님.

범종단 차원의 시국법회를 통해 불교계의 현실 참여가 그 외연을 크게 넓히기는 했지만, 이 흐름의 저변에 그간 종단 내부에서 꾸준히 현실 참여와 종단개혁의 목소리를 내온 스님들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불교계 시국법회 공동추진위원장을 맡은 수경(60) 스님은 불교계 시민사회운동을 대표하는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환경 문제에 관한 수경 스님의 뜨거운 관심은 삼보일배라는 말에 집약되어 있다. 새만금 방조제 공사 중단을 요구하며 2003년 3월 28일부터 57일 간 전북 부안에서 서울에 이르는 305km 거리를 삼보일배로 행진한 것이 대표적이다. 현재 화계사 주지로 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시국 법회 법어를 통해 “부시 대통령의 웃음은 보면서 국민의 눈물은 보지 못하고 있다”고 대통령을 비판한 조계종 교육원장 청화(64) 스님은 지선 스님과 함께 1986년 현재 실천불교 승가회의 전신인 정토구현승가회를 창립한 주역이다. 정토구현승가회는 1986년 조계종 승려 221명의 발기로 탄생한 단체로, 당시 불교의 반민중적 보수성에 대한 반성과 사회 참여를 기치로 내걸었다. 청화 스님은 정토구현승가회 초대 의장을 지냈다. 청화 스님은 종단 안팎에서 넉넉한 품성의 소유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197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당선한 예민한 감성의 시인이기도 하다. 참여불교재가연대 윤남진 협동사무처장은 “문인은 글을 통해 대중과 교호하는 사람으로 청화 스님은 그런 면에서 대중의 아픔과 교감하는 감성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1992년부터 2002년까지 실천불교 승가회 의장을 지냈다.

(왼쪽부터) 강해윤 교무, 김성근 교무, 정상덕 교무, 최서연 교무.

(왼쪽부터) 강해윤 교무, 김성근 교무, 정상덕 교무, 최서연 교무.

봉은사 주지 명진(58) 스님은 불교계에서 손꼽히는 달변가로 알려져 있다. 1994년 조계종 종단 개혁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으로, 그가 2006년 11월 강남 최대 사찰인 봉은사 주지가 된 것은 불교 개혁파가 종단 내에서 외연을 확장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봉은사 주지가 된 직후인 2006년 12월에는 일반 신도만 20만 명에 달하는 봉은사의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자신의 개혁 성향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2006년 12월부터 1000일 기도에 들어가 아직까지 절 밖으로는 나온 적은 없으나 현 정부 출범 이후 정부의 종교 편향과 쇠고기 협상 문제를 날카롭게 비판했으며 이번 시국법회에서도 공동추진위원장으로 이름을 올렸다.

금선사 주지 법안(48) 스님은 조계종의 입법기구인 중앙종회 의원을 1995년부터 연이어 세 번 지냈다. 정토구현승가회 창립 당시 소장 승려 대표로 참여한 불교계의 대표적인 실천적 승려다. 1999년 실천불교 승가회 집행위원장을 거쳐 올해 3월부터 승가회 대표를 맡고 있으며 2007년부터는 종교인협의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법안 스님은 현재 촛불정국과 관련한 불교계의 향후 계획과 관련하여 “촛불의 염원이 왜곡되고 억압받는 상황이 오면 종교계가 다시 응답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시국법회는 1차 법회일 뿐이고 앞으로 언제라도 시국법회를 다시 열 수 있다”고 말했다. 승가회 이상효 기획팀장은 “한 인물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엇갈릴 수 있지만 법안 스님의 명석함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고 평했다.

원불교
원불교는 본래 불교 시국법회에 뒤이어 7월 8일 시국법회를 추진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지난 5일 ‘7·5 국민승리선언 범국민 촛불대행진’을 기점으로 종교인협의회 차원에서 촛불정국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대책회의 제안에 대한 정부 대응을 지켜보기로 합의한 데 따라 시국법회 추진을 유보했다.

4일 밤 연등촛불이 켜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시국법회에 참가한 스님들이 108배를 올리고 있다. <박재찬 기자>

4일 밤 연등촛불이 켜진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시국법회에 참가한 스님들이 108배를 올리고 있다. <박재찬 기자>

원불교 시국법회는 원불교 종단 내 진보적 성직자들의 단체인 사회개벽교무단이 주도했다. 1987년 결성된 후 원불교의 사회적 실천에 앞장서고 있는 사회개벽교무단은 정상덕·최서연·강해윤·김성근 등 교무 4인방이 이끌고 있다. 교무는 가톨릭의 신부, 개신교의 목사에 해당하는 원불교 성직이다. 교무가 되기 위해서는 영산 선학대 원불교학과 또는 원광대 원불교 학과를 졸업하고 다시 2년 과정의 원불교 대학원 대학에서 공부해야 한다.

정상덕(44) 교무는 교무 4인방 가운데서도 사회 참여의 최선두에 서 있는 인물이다. 그는 원불교의 근거지인 전북 지역에서 꾸준히 시민운동과 환경운동을 했고, 2001년 원불교 청년회 사무총장직을 맡아 서울교구로 올라온 이래 원불교 내 평화·생명·인권 운동를 대표하는 인물로 자리 잡았다. 타고난 재치와 유머로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 데 탁월한 재능을 발휘한다는 평을 받고 있지만, 진보적 사회운동에서는 저돌적인 면모를 보여줬다. 2005년 ‘사형제도폐지를위한범종교연합’에 원불교 대표로 참가했고, 이보다 앞서 2003년에는 핵폐기장 건립 추진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쳤다. 정 교무는 종교인협의회 원불교 대표로서 촛불정국과 관련하여 다른 종단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최서연(50) 교무는 포항공대 화학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뒤늦게 원불교 성직자가 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키스트(KIST) 연구원 시절 과학에 회의를 느끼고 원불교에 귀의했다. 영산 선학대를 졸업하고 1999년 출가한 후 현재는 화곡동 원불교 서울외국인센터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서울외국인센터는 이주 노동자 및 결혼 이주 여성을 상대로 한 컴퓨터 교육과 한국어 교육을 지원한다. 또한 최 교무는 외국인센터 옥상에 요안원불교시민발전소라는 이름의 태양열발전소를 설치해 친환경에너지 사용을 실천하고 있다.

강해윤(50) 교무는 원불교 환경운동과 대안교육 활동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는 오랫동안 소년원 학생들과 교도소 재소자를 상대로 한 교화활동을 펼쳐왔다. 원불교의 사회활동 가운데 특히 중심이 되는 것은 대안학교다. 원불교는 한국 최초의 공식 대안학교인 영광 성지고를 비롯하여 8개의 대안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강 교무는 헌산중학교 설립을 주도했고 이 학교에서 원불교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으며, 새터민 청소년들의 정착을 지원하는 한겨레 중고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요가를 가르치고 있다. 이외에도 강 교무는 경기도 용인에 있는 원불교 은혜의집 운영을 맡고 있으며, 청소년 교화에 힘쓰고 있다.

김성근(47) 교무는 원불교 내 핵폐기장 반대 운동의 주역이다. 2003년에는 영광핵폐기장반대 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으로 청와대 앞에서 40일간 단식농성을 벌였다. 지난 20여년 간 친환경 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며 도자기를 굽는 일을 병행하고 있다. 김 교무는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빠른 보폭으로 움직이는 다른 교무들 사이에서 속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는 평가다. 교단 내에서는 원불교 성지인 전남 영광 소재 영산성지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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