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농심‘촛불 유탄’ 맞고 미운털 박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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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제품 이물질 발견 악재 이어
조선일보 광고 게재로 네티즌 공분 불러일으켜

쥐머리 새우깡, 바퀴벌레 신라면, 나방 짜파게티에 이어 조선일보 찬양까지, 농심이 사면초가에 놓였다. 그러나 확인되지 않은 ‘설’로 특정 업체에 공분을 표출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쥐머리 새우깡, 바퀴벌레 신라면, 나방 짜파게티에 이어 조선일보 찬양까지, 농심이 사면초가에 놓였다. 그러나 확인되지 않은 ‘설’로 특정 업체에 공분을 표출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지난 5월 22일 손욱 농심 회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새우깡 사태와 관련해 “이번 사태는 안일했던 농심의 분위기를 깨우쳐준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연초에 터진 ‘쥐머리 새우깡’ 사건에 대한 반성과 향후 계획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뒤이은 일련의 사건은 신 회장과 농심의 바람을 무색하게 했다. ‘바퀴벌레 辛라면’에 이어 ‘나방 짜파게티’까지 발견되면서 이물질 파문이 이어졌다. 게다가 ‘촛불정국’의 한가운데에서 조선일보 찬양 논란에 휩싸이며 네티즌의 공분을 샀다. 웬만한 중소기업이라면 벌써 한두 번은 망하고도 남았을 사건이 한 회사에 집중되자 내부에서조차 “무슨 마가 낀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농심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농심 “유통서 발생한 일로 억울하다”
사실 식품업계에서 이물질이 발견되거나 기준치 이상 세균이 검출되는 것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올해 들어 농심뿐 아니라 삼양식품 용기라면에서 금속 너트가 발견되어 회수됐는가 하면, 파리바게뜨 가맹점의 빵에선 비닐조각과 고무장갑 조각이 섞여 나오기도 했다. 또 오리온 ‘고소미’에선 철심이 발견됐고, 카스맥주에서는 소시지 껍질이 나와 소비자를 경악시키기도 했다. 동원F&B의 참치캔에선 칼날이 나와 리콜됐다. 최근엔 ‘사골우거지국’ 등 오뚜기 즉석국에서 기준치를 약 500배가량 초과한 세균이 검출되어 식약청으로부터 제조일자가 같은 제품이 긴급 회수조치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오뚜기는 지난 5월에도 곰팡이가 핀 ‘썩은 즉석밥’ 판매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농심의 ‘연타석’을 지목하고 있다. 연초 ‘국민 스넥’이자 ‘스테디셀러’인 새우깡에서 쥐머리가 발견돼 충격을 주더니 이어 신라면에서 바퀴벌레가 발견되고, 지난 6월 21일에는 서산의 한 소비자가 짜파게티를 사다가 냄비에 집어넣는 순간, 라면 봉지 안에서 나방이 나왔다고 신고한 것이다. 실제 소비자원이 지난해 8월부터 올해 1월까지 이물질 신고 1000여 건을 분석한 결과 농심에서 제조한 가공식품에 대한 신고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련의 사건에 대해 농심 측은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식약청 조사에 의해 지난 3월 쥐머리 새우깡에 이어 이번 바퀴벌레 건도 유통 과정의 문제로 밝혀졌지만 여전히 소비자는 농심에 뭇매를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짜파게티에서 발견된 나방 또한 제조 공정의 특성상 살아 있는 나방이 들어갈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는 식약청의 발표가 나왔지만 소비자들은 여전히 냉담하다는 게 농심 측의 설명이다.

지난 7월 4일 ‘농심쓴소리’ 모임이 신라면을 생산하는 농심 구미공장을 방문했다. 농심은 위생 시스템 강화는 물론, 소비자와 ‘소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7월 4일 ‘농심쓴소리’ 모임이 신라면을 생산하는 농심 구미공장을 방문했다. 농심은 위생 시스템 강화는 물론, 소비자와 ‘소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유성근 농심 홍보담당 상무는 “이번에 발견된 화랑곡나방의 애벌레는 일반 포장지를 잘 뚫고 들어가는 특성이 있어 애벌레가 유통 과정 중 포장지를 뚫고 들어가 약 1개월 정도 부화되어 나방으로 발견된 것으로 조사됐다”며 “화랑곡나방은 모든 식품업체의 공통적인 고민으로 이를 방지하기 위한 특수 포장재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 상무는 또 “농심의 클레임 수준은 6Sigma 수준으로 100만 개당 3건 전후로 발생하는데, 이 수준은 다른 식품기업과 비교해볼 때 최상의 품질을 보여주는 수치”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심의 클레임이 높은 이유는 전체 식품생산량 중 농심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번 문제의 사후처리에서 신고 내용을 뒤늦게 발표하는 등 ‘미온적’인 대처 방법은 원성을 사고 있다.

국민기업으로 재탄생 계기삼아야
농심의 위기는 식품에서 출발했지만 전혀 다른 곳에서 증폭했다. 바로 ‘촛불집회’에 대한 부정적 보도 탓에 네티즌이 구독 거부 운동 중인 조선일보에 광고를 게재한 것이 발화점이 되어 네티즌의 공분을 산 것. 이에 대해 유 상무는 “농심은 원래 모든 일간지에 지면광고를 거의 하지 않는 기업으로, 조선일보에도 마찬가지여서 1년에 한 번 정도 광고가 나가는 수준”이라며 “최근의 조선일보 정어리펩타이드 광고는 해당 제품의 취급 도매상이 농심 로고를 무단 사용하여 광고한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농심은 지면광고 비중이 적어 신문사의 미움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올해 조선일보의 경우에도 이번에 게재한 정어리펩타이드 광고 전까지는 새우깡 이물질사과광고 1회, 고객안심프로젝트 광고 1회만 집행했을 뿐이다.

“구독률이 높은 신문에 광고를 싣는 것은 당연하며, 조선일보는 앞으로도 계속 번창할 것”이라는 상담원의 이메일도 문제였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을 마치 농심의 공식적인 입장인 양 답변한 것이 네티즌의 공분을 불러온 것이다. 공분의 꼬리는 이어 ‘괴담’ 수준의 소문을 만들어냈다. 그 결과 농심의 주가는 하향 곡선을 그렸다. 실제 매출에는 큰 영향이 없지만 브랜드 이미지가 크게 손상된 것. 브랜드 가치 평가회사인 브랜드스톡의 조사에 따르면 농심 신라면은 ‘이물질 파동’ 여파로 1분기 79계단이나 급락해 브랜드 순위가 86위까지 밀렸다가 2분기에 가까스로 18계단 반등해 68위에 올랐다.

하지만 이번 농심 불매운동 타깃이 잘못 설정됐다는 지적도 있다. 촛불집회 초반 윤도현밴드(YB) 등 의식 있는 가수들의 공연을 추진했던 탁현민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는 “문어발식 확장으로 세를 불려온 여느 대기업과 달리, 그저 식품업 하나만으로 40년을 버텨온 농심이, 이렇게 대표적인 불매운동 대상 기업으로 선정된 내용을 살펴보면 심각한 오류가 있다”고 주장했다. 탁 교수는 “대상을 선정하는 데, 그리고 선정된 대상을 대중에게 설득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은 진실”이라며 “막연한 추측으로 잘못된 타깃을 설정한다면 설득력도 없고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지기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이번 농심 사태를 보며 국민 실생활에 깊숙이 자리한 농심이 ‘국민기업’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목소리도 강하다. 현재 라면 시장은 업체 조사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농심이 70%가량을 점유하는 가운데 삼양라면(13~14%), 한국야쿠르트, 오뚜기 등이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 농심은 82년 너구리, 83년 안성탕면, 84년 짜파게티를 연이어 출시하며 기세를 잡더니 86년엔 최대 히트작 신라면을 내놓으면서 업계 정상에 올라섰다. 하지만 제품 외에 소비자들이 농심이라는 기업을 접하는 접점이 지금까지는 적었다는 지적이다.

그룹 차원의 사회공헌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동안 농심은 율촌재단을 통해 인재 육성을 위한 장학사업, 학술·문화·연구 지원사업과 청소년교육 지원사업, 사회복지시설 지원과 푸드뱅크 사업을 펼쳐왔으나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것이 사실. 때문에 온 국민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사회공헌활동을 펼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농심이 지난 7월 1일 첫 기업PR 광고를 시작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또 지난 3일 그동안 회사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던 다음 아고라와 각 사이트 커뮤니티의 네티즌을 초청해 비판과 충고를 직접 듣는 ‘농심 쓴소리 경청회’를 연 데 이어 4일엔 공장 탐방도 진행했다. “여러분의 쓴소리를 소중히 듣겠습니다”라는 광고의 마지막 자막처럼 ‘심기일전’하는 농심의 모습을 봐달라는 몸짓이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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