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세계일주’ 도보여행가 김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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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제게 너무도 훌륭한 학교이자 스승이에요”

[아주 특별한 인터뷰]‘걸어서 세계일주’ 도보여행가 김남희

자신이 인생에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조차 찾지 못하는 이가 많다. 설령 찾았다고 해도, 그것을 얻기 위해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현실적인 이유로 혹은 게을러서…. 핑곗거리는 널려 있다.
여기, 한 여자가 있다. 안정적이나 획일적인 삶이 견딜 수 없던 그는 서른넷 나이에 꿈을 좇아 배낭을 메고 세상 밖으로 나섰다. 앞날에 대한 보장도 없이 전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전세 보증금과 적금을 털어 나선 여행길이지만 그는 행복했다. ‘걸어서 세계일주’를 하겠다는 뚜렷한 목표와 드디어 그 목표를 실천한다는 설렘이 있었기 때문이다. 6년째 지구 곳곳을 걸어서 누빈 도보여행가 김남희(38)의 얘기다. 오랜만에 돌아온 그를 만났다.

‘짹짹짹짹짹…’ ‘찌르르르르…’ 청명한 새의 지저귐은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다. 초록 잎사귀를 나풀거리며 반짝이는 태양광선을 대지 위에 분사하는 나무, 수줍게 작은 얼굴을 내미는 어여쁜 꽃, 그리고 코끝을 간질이는 향긋한 풀내음. 콘크리트 도심 속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신문로의 성곡미술관에는 여름의 향취가 가득하다. 김남희가 성곡미술관 안에 있는 찻집을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으로 꼽는 이유도 바로 이 같은 자연의 온기 때문이리라. 나무로 만든 테라스에 앉아 살포시 눈을 감고 있노라면, 찌든 시름까지 사라지는 듯하다.

약속시간보다 10분 늦게 허겁지겁 나타난 김남희는 목이 잔뜩 쉬어 있다. 얼마 전 제주도에서 장대비를 맞고 걸은데다 지난 주말 이틀간 촛불집회에 참석해 목청껏 구호를 외쳤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에는 두 팔 걷고 나서는 성격이다. 우문을 던졌다. 왜 오랜만에 한국에 왔으면서 촛불집회에 참석하고 있느냐고. 그는 잠시 생각하는 눈치더니, 자신의 생활신조에 대해 말했다.

“제 삶의 모토는 ‘내 능력 안에서 스스로 기쁜 일을 하자’예요. 어떤 거대한 담론이 있다 해도 제 능력 밖의 일이거나 저 자신이 즐겁지 않은 일은 시도하지 않겠다는 거예요. 여행을 하면서 항상 깨닫는 것은 남보다 느리더라도 제 속도로 가는 게 결국 오래가고, 저를 기쁘게 하는 일이라는 진리예요. 촛불집회도 제가 참가해야 하고 참가하고 싶은 일이기 때문에 되도록 빠짐없이 나가는 거고요.”

시리아 다마스커스의 사원에서 시리아 여성들, 일본인 여행자 미카와 함께 2006년 봄.

시리아 다마스커스의 사원에서 시리아 여성들, 일본인 여행자 미카와 함께 2006년 봄.

그가 여행의 매력에 빠진 것은 대학을 졸업한 해인 1993년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 궁금해 유럽으로 떠났던 게 여행 중독에 빠지게 된 계기였다. 유럽에 대한 맹목적인 짝사랑의 열병을 앓게 된 것이다. 유럽에 살고 싶었던 그는 여행과 관련한 공부도 할 겸 영국 버밍엄대학교 대학원에서 관광정책학을 전공했다. 귀국 후 그는 터키대사관에 취직했다. 터키대사관에서는 여름휴가를 한 달씩 줬고, 그때마다 한 나라씩 정해 여행을 다녔다. 그리고 매번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울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둔 채 혼자 돌아오는 심정이었다. 지긋지긋해질 때까지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고 싶다는 욕망이 솟구쳤다. 하지만 그 역시 이미 가진 것들을 포기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꼬박꼬박 월급 나오는 안정된 직장, 오래된 다정한 연인…. 마음잡고 남들처럼 살아보려고 8년간 연애한 남자와 결혼까지 했지만 불쑥불쑥 떠나고 싶은 욕구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결혼이란 것이 마치 남의 옷을 입은 느낌이었다. 답답했다. 결국 2000년 결혼 1년 8개월 만에 이혼한 그는 2001년 국토종단을 한 후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세계일주를 시작했다. 전세 보증금과 적금을 해지한 3000만 원이 그에게 허락된 최초의 세계일주 경비였다.

“배를 타고 중국으로 들어가서 라오스, 미얀마, 캄보디아를 둘러본 것이 첫 세계일주 여정이었어요. 그런 다음 네팔과 인도, 파키스탄, 이란, 터키를 거쳐 중동과 아프리카 대륙을 여행했지요. 도보여행이 된 것은 제가 돈은 별로 없지만, 시간은 굉장히 많았기 때문이에요. 시간 제약이 없으니까 남이 몇 주에 봐야 하는 것을 전 몇 달 동안 볼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걸어서 가보자고 결심할 수 있었던 거예요. 하지만 세계일주 전 과정을 걸어서 한 것은 아니에요.”

이브 파칼레는 그의 저서 ‘걷는 행복’에서 “사람은 걸을 수 있는 만큼 존재한다”고 말했다. 연장선상에서 김남희에게 걷기는 내면으로 침잠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거울이다.

“14시간을 쉬지 않고 걸은 적이 있어요. 의지로 시작했는데 걷다 보니 어느 순간 몸이 의지를 끌고 나가면서 걷고 있더라고요. 육체적 한계를 극복함으로써 정신까지 확대된 경험이었어요. 또 걷기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과 만날 수 있는 기회예요. 상념에 빠지면서 나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죠. 곱씹고 곱씹는 것은 대부분 자신의 일이거든요. 그리고 걷다 보면 사람과 사물을 폭넓게 알게 돼요. 말을 거는 사람도 많고 차를 타고 가면 그냥 스쳐지나갔을 많은 사물도 멈춰 서서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잖아요.”

모로코 사하라 사막 트래킹 중 2008년 3월.

모로코 사하라 사막 트래킹 중 2008년 3월.

그동안 거친 나라가 몇 곳이나 되는지 세어본 적은 없단다. 대략 50개 국이 좀 넘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2004년부터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시리즈를 연달아 냈다. 다행히 책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인세를 경비 삼아 다시 길 위에 나서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인세 중 10%를 여행하는 나라의 아이들을 위해 기부하는 그는 1년 중 7~8개월은 여행지에서, 나머지 4~5개월은 서울에서 책을 쓰며 지낸다. 그는자신이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전세 보증금 뺀 돈으로 세계일주를 시작했는데 뜻하지 않게 책을 써서 번 돈으로 여행을 하는 것도 감사한 일이죠. 하지만 그보다는 끝없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 축복받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길 위에서 너무도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으니까요. 만약 제가 한국에서 살았다면 대학 졸업하고 직장 갖고 결혼해서 아이 낳고, 저와 비슷하게 살아온 사람들만 만나면서 세월을 보냈겠지요. 전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어요. 지나온 삶에 대한 반성, 감사할 줄 아는 마음, 그리고 긍정의 힘을 배웠지요. 제가 가진 것이 많고, 그것을 나누는 방법도 고민하게 됐고요. 그런 점에서 여행은 제게 너무도 훌륭한 학교이자 스승이에요.”

곰배령에서 점프 2006년 가을.

곰배령에서 점프 2006년 가을.

여자 혼자 무거운 배낭을 진 채 낯선 길을 걷는다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 그의 배낭은 항상 노트북과 카메라 그리고 몇 권의 책이 들어 있어 묵직하다. 산티아고를 걸을 때는 십자인대가 늘어나기도 했다. 게다가 그는 “외로워”를 입에 달고 살 만큼 외로움을 많이 탄다. 실제 그의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일상을 적은 글과 직접 선곡한 음악만 봐도 그가 얼마나 감수성이 예민하고 여리고 고독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얼마나 사람에, 사랑에 갈증을 느끼는지도.

그럼에도 혼자 하는 여행을 고집하는 것은 혼자 하는 여행의 묘미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혼자서 계획하고 실행하고 책임지는 모든 과정을 거쳐 이제껏 몰랐던 자기 자신의 이면을 새롭게 발견하면서 얻는 희열! 물론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도 있다. 수돗물도, 전기도 없는 중국의 산간마을을 여행할 때는 길을 안내해주겠다는 남자로 인해 심각한 위험에 직면할 뻔한 적도 있다. 길이 끊겼다면서 앞장선 사내는 그를 으슥한 곳으로 이끌었고, 뭔가 이상하다고 직감한 그는 남자가 외다리를 건너는 사이 줄행랑을 쳤다. 되돌아와 보니, 끊겼다는 길은 멀쩡했다.

“평소 그런 생각을 해요. 다른 사람보다 많은 경험을 하며 세상을 돌아다닌 대가로 뭔가를 내줘야 할지도 모른다고요. 아주 안 좋은 일을 당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해도 그 일이 제 인생 전체를 장악하지 않게, 또 제 여행을 접게 하는 계기가 되지 않게 하자고 마음먹었어요. 물론 주의해야죠. 나름대로 안전 수칙을 정했는데, 그걸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해요. 가령 외딴 숙소는 가지 않는다. 해가 진 후에는 돌아다니지 않는다. 낯선 곳에서 길을 물을 때는 되도록 여자나 노인에게 묻는다 등등이죠. 그런데 위험을 생각하면 못 떠나요. 위험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말 운이 나쁘면 자기집 안방에서도 심한 일을 당할 수 있는 것이고, 운이 좋으면 전쟁터에서도 살아남잖아요. 스스로 조심하고 약간의 긴장감만 놓지 않으면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는 곳이 많아요. 오히려 성이 여자이기 때문에 득이 되는 경우도 많고요.”

스페인 바르셀로나 친구 카를로스의 결혼식 2007년 5월.

스페인 바르셀로나 친구 카를로스의 결혼식 2007년 5월.

그는 고기를 입에 대지 않는다. 4년 전 존 라빈스의 ‘육식, 세상을 망치고 건강을 망친다(Diet for a new America)’를 읽은 후부터 고기를 먹지 않았다. 햄버거에 들어갈 쇠고기 100g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초지에 옥수수를 심으면 50명이 먹을 수 있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음식을 가리는 게 여행객에 이득이 될 리 만무하다. 그래서 그는 ‘채식의 벽에 갇히지 말자’는 철칙을 세웠다. 일부러 사 먹지는 않지만 가령 어느 산골마을에서 외국인 손님을 대접한다며 닭이라도 잡아 내오면 맛있게 먹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체력에 문제는 없을까.

“한국에서 지내면 대체식품이 많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밖에서 여행할 때는 솔직히 힘들어요. 육식을 끊은 후 영양상태가 불균형해지면서 빈혈 증세도 있었어요. 그래서 지난해 스페인에서 1년간 체류할 때 스페인어를 익히는 일 못지않게 체력과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먹는 것에 신경을 썼어요. 외식은 되도록 삼가고 집에서 현미오곡밥과 생선, 두부, 콩, 버섯 이런 요리를 해먹었죠. 덕분에 지금은 꽤 좋아졌어요.”

여행은 치유의 의미를 내포한다. 그에겐 치유해야 할 어떤 상처가 있을지 궁금했다. 그는 먼 곳을 응시했다. 눈빛이 흔들렸다. 그리고 느리게 돌아오는 말.

[아주 특별한 인터뷰]‘걸어서 세계일주’ 도보여행가 김남희

“사람에게 너무 많이 의지해요. 산을 타면서,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나아지기는 했는데 여전히 사람에게 많이 의존해요. 많이 기대하고 그래서 빨리 실망하고 무너지고. 사람에게 의연해지는 법, 덜 상처받는 법, 강해지는 법을 배우고 싶어요.”

1970년(호적상으론 1971년) 경상북도 상주에서 태어난 그는 7살 때까지 강원도 삼척에서 자랐다. 호박꽃 속에 반딧불이를 잡아서 넣어 호박등을 만들고, 동네 아주머니들의 보호 아래 개울에서 발가벗고 놀던 기억 등 유년기의 체험은 그에게 오롯하게 각인돼 있다. 어쩌면 자연 속에서 깔깔거리며 행복했던 그 유년의 기억이 오늘날 그를 여행가의 길로 이끄는 데 일조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획일적이거나 속박되는 삶에 그는 진저리를 치기 때문이다. 낯을 몹시 가리면서도 그는 끊임없이 다른 삶을 궁금해하고, 오감으로 확인한다. 콘크리트 대신 흙을, 풀과 꽃을, 그리고 나무를 사랑한다.

언젠가 그는 나이 마흔이 되면 유목민의 생활을 마치고 정착민으로 살겠다고 말했다. 실제 그때쯤이면 얼추 지구를 한 바퀴 다 돌게 된다. 1년을 예상하는 중남미 여행을 끝내고 실크로드 1만2000㎞를 걷고 나면 세계일주가 완성되는 것이다. 시기로는 내후년이 될 것이다. 만으로 그가 딱 마흔이 되는 나이다. 그렇다고 여행을 완전히 그만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지금과 반대로 1년에 7~8개월은 한국에서 지내고, 나머지 4~5개월은 여행을 할 생각이다.

그렇다면 정착민이 된 김남희는 무엇을 할까. 그는 “외국인 여행객을 위한 게스트하우스를 만들고 여행학교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가 꿈꾸는 게스트하우스는 단순히 잠자리를 제공하는 외국인 숙소 개념이 아니다. 김치도 담고 장구와 한국 춤도 배우고 그와 같이 트래킹도 하면서 외국인에게 한국의 문화를 전방위로 체험하게 하는 동네 사랑방 같은 곳이다.

김남희의 홈페이지 이름은 ‘Skywaywalker’다. 번역하면 ‘하늘길을 걷는 사람’이다. 커다란 배낭 하나를 멘 채 터벅터벅 걷고 또 걸으며 오늘도 꿈의 퍼즐을 하나씩 맞춰나가는 그의 작은 뒷모습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듯하다.

“비행청소년에게 도보여행 체험케 하고 싶어요”

김남희가 그린 여행학교는 ‘나는 걷는다’를 쓴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실천하고 있는 일이다.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63세의 나이에 오래전부터 꿈꿔온 터키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까지의 1200㎞ 실크로드를 4년에 걸쳐 도보횡단한 인물로, ‘나는 걷는다’는 이 경험을 3권짜리 두툼한 기행문으로 엮은 것이다.

김남희가 말한 여행학교는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설립한 쇠이유(Seuil) 협회와 같은 개념이다. 비행청소년에게 도보여행을 통해 재활의 기회를 주는 협회로,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이 소년원에 들어가는 대신 도보여행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판사의 협조를 얻어 이 소년들은 둘씩 짝을 지어 최소 2500㎞ 이상을 걸어서 여행한다. 단, 녹음된 형태의 음악을 가져가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김남희는 “우리 사회가 좀 더 성숙하면 단지 어떤 곳에 가두는 것으로 교화를 하는 게 아니라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새로운 기회를 줄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으로 믿는다”면서 “여행을 통해 내가 성장했고 상처를 다독이고 치유하는 방법과 긍정의 힘을 배웠기 때문에 비행청소년들에게도 여행이라는 훌륭한 학교를 체험하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단, 자신이 아이들에게 뭔가를 가르칠 생각은 없다. 함께 걸으면서 그들이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운 계기를 찾을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약력

1970년 경상북도 상주 출생 1989년 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1995~1996년 버밍엄대학교 대학원 관광정책학 석사 1997년~2002년 터키대사관 근무 2003년~현재 세계일주 중 저서로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1, 2, 3, 4권과 ‘김남희가 반한 유럽의 걷고 싶은 길’이 있다.


<글·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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