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스필버그’ 강우석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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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중은 터집니다. 700만~800만 명은 들 거예요”

[아주 특별한 인터뷰]‘한국의 스필버그’ 강우석 감독

강우석(48) 감독은 흥행의 귀재라는 점에서 ‘한국의 스필버그’로 통한다. ‘미스터 맘마’ ‘투캅스’ ‘실미도’ 등 손수 연출한 작품 대다수가 흥행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가 새 영화 ‘강철중:공공의 적 1-1’(KnJ엔터테인먼트 제작)을 가지고 다시 한 번 도전장을 내밀었다. 제작과 투자, 배급을 겸하고 있는 그가 직접 연출한 작품을 내놓은 것은 2006년 ‘한반도’ 이후 2년 만이다. 한국 영화의 불황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과연 강 감독의 영화가 구원타자가 될지 영화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6월 19일 전국의 580개 스크린에서 개봉한 영화 ‘강철중’의 흥행대박을 자신하는 강 감독을 서울 충무로 KnJ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서 만났다.

강우석 감독은 에너지가 넘친다. 자신감도 넘친다.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인 그는 말도 속사포처럼 빠르다. 그의 이런 성격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그가 메가폰을 잡는 영화는 촬영기간이 짧다. ‘강철중’은 42회 촬영으로 끝났다. 밤을 꼬박 새우는 경우는 없다. 낮 신을 찍건 밤 신을 찍건, 하루 8시간 이상 촬영하지 않는 것도 강 감독 영화의 특징이다. 강 감독 작품을 찍을 때면 스태프나 배우들은 자신들을 농담 삼아 ‘공무원팀’이라고 부른다. 편집 때 잘라내는 분량도 적다. ‘강철중’은 편집하면서 3분 분량만 잘려나갔다. 1000만 관객이 본 ‘실미도’는 촬영 분량의 1분만 삭제된 채 극장에 걸렸다.

판단이 빨라 투자를 할지 안 할지 결정하는 데도 몇 분이 안 걸린다. 시나리오를 보고 5분 만에 투자를 결정한 영화(‘황산벌’ 등)도 있고, 제목만 보고 투자한 영화(‘여고괴담‘ 등)도 있다. 두 영화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 강 감독이 자신의 감각을 믿는 근거들이다.

또 하나 강 감독을 특징 짓는 것은 유머 감각이다. 그는 체질적으로 진지한 분위기를 싫어한다. 자신이 웃기든 다른 사람이 그를 웃기든 일단 자리가 재미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몇 분을 견디지 못하고 일어선다.

강우석 감독의 연출 스타일은 속전속결이다. 사진은 1000만 관객이 든 영화 ‘실미도’ 촬영 장면.

강우석 감독의 연출 스타일은 속전속결이다. 사진은 1000만 관객이 든 영화 ‘실미도’ 촬영 장면.

강 감독은 자신의 유머 감각이 ‘타고난’ 것이라고 말한다. 중학생일 때 같은 반 친구들을 웃겨주려고 선생님을 상대로 장난을 치다가 얻어맞은 적도 부지기수. 결혼 직후, 일만 하는 남편 때문에 울음을 터뜨린 어린 아내에게 가장 주효했던 약도 그의 유머 감각이다(강 감독은 ‘이번만 찍고 다음부터는 영화 안 하겠다’는 거짓말도 숱하게 했다고 한다). 그가 코미디영화에 강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청소년을 조직폭력배로 키우는 악당과 꼴통 형사 강철중의 대결을 그린 영화 ‘강철중’에도 특유의 유머는 빠지지 않는다. 더구나 ‘강철중’은 강 감독 못지않은 코미디 감각을 증명해온 장진 감독이 시나리오를 쓴 작품이다. 강 감독은 “두 사람의 코미디가 만나 시너지 효과가 있었다”고 말했다.

강 감독은 이 영화에 700만~800만 명의 관객이 들 것으로 내다봤다. 그의 호언장담은 자신감이긴 하지만 한국 영화계를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터지지 않으면 끝장이에요. 최근 1, 2년 사이 한국 영화 중 잘된 게 거의 없잖아요. 지금 국내 영화 제작사들이 줄줄이 도산하게 생겼어요. 시네마서비스만 해도 지난 1년 6개월 동안 제작, 투자한 영화 중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 하나도 없어요. 전액 손실 본 영화도 있고요. ‘실미도’와 ‘왕의 남자’로 번 돈은 이미 다 날렸고, 은행에서 차입한 70억 원도 바닥났어요. 연출만 하려고 2006년 장진 감독과 KnJ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면서 시네마서비스를 떠났다가 지난해 다시 돌아온 것도 그래서예요. 이 영화를 찍기 위해 CJ그룹으로부터 개인적으로 44억 원을 빌렸어요. 이번 영화가 망하면 시네마서비스 등에 있는 제 지분도 다 내줘야죠. 하지만 지금 분위기로는 700만, 800만 명 정도는 들 것 같아요.”

충무로 맏형답게 강 감독이 느끼는 책임감은 큰 듯했다. 7월 중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으로 관객과 만나는 김지운 감독을 비롯해 후배 감독들에게 거듭 강조하는 말도 “‘강철중’이 아무리 잘돼도 다른 한국 영화들이 잇따라 터져 한국 영화의 파이를 키워놔야 한국 영화계가 회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60년 생인 강우석 감독은 경북 경주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유지의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황해도 출신으로 한국전쟁 때 남쪽으로 내려와 큰돈을 번 그의 아버지는 성냥 등을 만드는 화학제품 공장을 운영했다. 영화를 좋아하고 유머가 넘쳤던 어머니는 새로운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초등학교 저학년생인 막내아들의 손을 잡고 극장에 갔다. 아버지는 막내아들을 데리고 가는 조건으로 어머니의 늦은 시간 영화 관람을 허락했다.

덕분에 강 감독은 어린 시절부터 성인영화를 포함한 많은 영화를 섭렵했다. 어린 아이에게 성인영화를 보게 하는 부모가 어디 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당시에는 가장 야한 장면이 키스였다고 한다. 그는 “어머니를 따라다니면서 영화를 빠짐없이 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영화에 중독이 돼 어머니가 ‘우석아, 영화 보러 가자~’ 하시면 좋아서 폴짝 뛰었던 기억이 난다”고 회고했다.

교육열이 높은 부모의 뜻에 따라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로 전학한 그는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영화의 유혹을 떨치지 못했다. 조조영화를 관람하기 위해 학교에 ‘아프다’고 꾀병을 부린 일도 부지기수. 그리고 3학년 어느 날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을 보고,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위부터) 강 감독의 연출작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투캅스’ ‘마누라 죽이기’ ‘투캅스2’ ‘실미도’ ‘공공의 적’ ‘강철중:공공의 적 1-1’

(위부터) 강 감독의 연출작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투캅스’ ‘마누라 죽이기’ ‘투캅스2’ ‘실미도’ ‘공공의 적’ ‘강철중:공공의 적 1-1’

“새로웠어요. 그 전에 본 한국 영화는 뭔가 알맹이가 없는 느낌이었는데, ‘바보들의 행진’은 드라마 속에 저항의식을 포함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어요.”

그러나 고1 때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강 감독은 최초의 시련을 겪는다. 대구 영남일보에까지 대서특필된 부도로 아버지는 쫓기는 신세가 되었고, 경주의 집 세간에는 하나같이 차압을 뜻하는 빨간 딱지가 붙었다. 가족은 서울의 달동네를 전전하며 월세를 살았다.

“집안이 망한 후 가난을 피부로 절감한 것은 고3 때였어요. 이사할 때마다 월세집 크기가 줄더니, 어느 날부터는 학원비를 달라고 어머니께 손을 내밀면 돈이 없다며 주지 못하시더라고요.”

영화감독을 꿈꾸던 그는 대학입시를 앞두고 연극영화과를 지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담임선생님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고, 친구들은 그를 ‘이상한 놈’으로 취급했다. 연극이나 영화를 하는 사람을 ‘딴따라’라며 업신여기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성균관대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첫 등록금은 외삼촌이 댔다. 하지만 수업은 뒷전이었다. 매일 영화를 보고 시나리오를 끄적였다. 그는 1학년 1학기 중간고사만 치르고 군대에 가겠다며 휴학을 했다. 마음이 영화에 쏠려 있던데다 가정형편상 학업을 계속하는 것도 무리였기 때문이다. 평발인 그는 현역이 아닌 방위로 군대 생활을 마쳤다.

1980년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은 그의 가슴을 뛰게 했다. 그는 자신이 갈 곳은 학교가 아닌 영화판이라고 확신했다. 국군홍보관리소에 간 그는 60분짜리 군 홍보용 영화를 찍는 일로 처음 촬영 현장을 경험했다. 적성에 딱 맞았다. 학교를 중퇴하고 충무로로 갔다. ‘애마부인’ 시리즈로 유명한 정인엽 감독 밑에서 만 4년 동안 조감독 생활을 한 후 ‘외아들’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등을 연출한 정진우 감독 밑으로 들어갔다.

그는 1988년 ‘달콤한 신부들’로 감독 데뷔했다. 장가를 못 가 비관해 자살하는 농촌 총각이 적지 않던 시대적 상황을 그린 영화였지만, 반응은 시원찮았다. 그러나 이듬해 내놓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는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실제 일어난 한 여고생의 충격적 자살을 소재로 하고, 그 여고생이 남긴 유서의 내용을 제목으로 쓴 영화다.

하지만 강우석이라는 이름 석자가 충무로의 흥행 보증수표가 된 것은 ‘미스터 맘마’(1992년)가 흥행에 성공하고 잇따라 ‘투캅스’(1993)가 기록적인 흥행 성적을 기록하면서다. 이를 바탕으로 시네마서비스의 전신인 강우석프로덕션을 설립, 제작과 감독을 겸했다. 1994년 20세기폭스사는 강 감독에게 ‘마누라 죽이기’를 할리우드판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해 ‘타임’지에는 강 감독을 ‘아시아의 빌리와일더’라고 소개하는 글이 실렸다. 결국 의견 차이로 ‘마누라 죽이기’의 할리우드판 제작은 무산됐지만 이 사건은 20세기폭스라는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영화사가 한국의 젊은 감독 강우석의 코미디가 세계적이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20세기폭스사는 ‘투캅스’와 ‘마누라 죽이기’를 보고 제게 만나자고 연락했어요. ‘마누라 죽이기’를 영어 버전으로 만들자고요. 그런데 한국의 ‘마누라 죽이기’와 영어 버전을 똑같이 찍어달라는 거예요. 저와 생각이 달랐죠.”

하지만 방만한 투자로 빚이 쌓이면서 그는 휘청거렸다. 심각한 위기였다. 빚만 16억 원인 상태에서 ‘투캅스 2’를 찍었다. 대박이 터졌다. 빚을 다 갚고 나서도 30억~40억 원이 남았다. 이 돈만 있으면 여생을 편안히 살 수도 있었지만, 그는 이 돈을 새 영화를 제작하는 데 쏟아 부었다. 그러나 제작한 몇 편의 영화가 실패하면서 다시 또 위기.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주유소 습격사건’ ‘자귀모’ ‘텔 미 썸딩’ 4편의 영화가 크게 성공했지만 1999년 당시 100억 원대의 부채가 남았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는 기사회생했다. 미국 월가에서 워버그핀커라는 대규모 투자그룹이 시네마서비스에 2000만 달러를 전격적으로 투자한 것이다. 한국 시장에서 시네마서비스의 위력도 위력이지만, 이 회사를 실사하면서 법인 대표가 단 돈 100원 하나도 횡령하지 않은 점에 워버그핀커가 높은 점수를 줬다는 후문이다.

사실 회사 돈과 개인 돈을 철저히 구분하고 돈 거래를 투명하게 하는 것은 강 감독의 오랜 철칙이다(강 감독은 자신의 지갑을 열어 기자에게 국세청이 지급한 ‘모범납세자 카드’를 보여줬다. 세금를 성실히 납부한 사람 중에서도 까다로운 자격 조건을 통과한 사람에게만 주는 카드로, 공항에서 출입국 절차를 밟을 때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아주 특별한 인터뷰]‘한국의 스필버그’ 강우석 감독

“사업을 하셨던 아버지가 생전에 제게 자주 들려주신 말씀은, 남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신용이고, 돈 거래는 항상 투명해야 한다는 점이었어요. 뼛속까지 명심하고 있는 교훈이에요. 가족을 포함해 사람들은 우리 회사가 잘 나가면 제 주머니가 두둑해지는 것으로 아는데 그건 정말 잘못된 생각이에요. 회사 돈은 제 개인 돈이 아니거든요. 어머니에게 유머감각과 예술가의 감성을 물려받았다면, 아버지에게는 사업가의 기질을 이어받은 셈이죠.” 실제로 그는 영화로 번 돈을 고스란히 영화에 재투자하고 있다. 영화로 흥했으니, 영화로 망하는 것쯤은 두렵지 않다는 배짱도 두둑하다. 인생과 사업에서 흥망성쇠를 두루 경험해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꿋꿋함이다. 밑바닥 직전에 이르는 위기에 봉착한 순간, 기적같이 오뚜기처럼 회생한 일이 반복된 행운아이기도 하다.

그의 아내 박정은(34)씨와 세 자녀(2남 1녀)는 5년 전부터 캐나다 벤쿠버에 머물고 있다. 아이들이 더 큰 세상에서 꿈을 펼칠 수 있게 하려는 강 감독의 뜻이다. 여기에는 ‘영어만 유창하면 일찌감치 할리우드도 재패했을 것’이라는 내면 깊숙한 아쉬움이 담겨 있다.

“14년 전 20세기폭스사로부터 ‘마누라 죽이기’ 영어 버전을 만들자는 제안을 받고 그들과 미팅했을 때 답답했어요. 통역을 중간에 둔 채 대화를 나누는데 짜증이 나더라고요. 4~5년만 영어 공부 열심히 해 할리우드에 도전할까 심각하게 고민했어요. 영어 못 하는 데 열등감을 느꼈거든요. 하지만 회사가 너무 바빠 포기했죠(웃음).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후배감독이나 배우를 볼 때마다 부러웠지만 지금은 한국에서 재미있는 영화를 가장 잘 만드는 감독으로 인정받는 것만으로 만족해요. 아이들은 캐나다에서 공부해 영어 실력이 유창해요. 하지만 제가 있을 때 집에서 영어 쓰면 혼내죠. 어디에 있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되니까요.”

그는 지금까지 컴퓨터 자판을 단 한 번도두드려본 적이 없는 ‘컴맹’이다. 아날로그적 사고가 실종될까 두려워 배우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계획과 포부를 물었다. 그는 “제작은 ‘강철중’의 흥행 추이에 따라 계속할지 그만둘지 판가름 나겠지만 감독으로서는 앞으로 정치 코미디 영화를 포함해 열 편 정도의 영화를 더 연출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 열 편 중 강우석 아니면 절대 찍을 수 없는 영화 한 편을 반드시 남기는 게 그의 꿈이라고 한다.

“영화도 관객과 소통해야 합니다”

한국 영화 위기의 근본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영상은 좋아졌지만 재미가 없기 때문이에요. 관객에게 웃음을 주거나 감동을 주거나 깊은 슬픔을 주거나 장르별로 뭔가 임팩트를 줘야 하는데 그런 게 없잖아요. 코미디가 웃기지 않고, 멜로가 슬프지 않으면 누가 보겠어요. 한국 영화가 점점 망해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제가 제일 자신 있는 장르인 코미디 영화를 들고 나온 거예요. 그리고 제가 웃기고자 한 부분에서 관객들이 웃는 것을 확인했어요. 관객과 소통에 성공했다고 자부해요.”

나이 50이 목전인데, 요즘 젊은 사람들의 코드를 맞추기가 쉽지만은 않을 텐데요.
“시기와 세대마다 유행어가 다를 뿐, 감동과 웃음은 시대와 세대를 관통해요. 실례로 ‘모던 타임스’ 등 채플린의 1930년대 영화들은 여전히 웃음과 짙은 감동을 주잖아요. 자니 윤씨는 나이 60에도 스탠딩 코미디로 관객을 웃기고요. 코미디에는 기본 질서라는 게 있는데, 그 질서 속에서 대중의 허를 찌르면 충분히 웃음을 유발할 수 있어요.”

‘투캅스’ ‘공공의 적’ ‘강철중’ 등 강 감독의 영화는 항상 시사적인 내용이 가미돼 있습니다.
“코미디는 사회성을 밑바탕에 깔지 않으면 관객의 웃음을 유발할 수 없어요. 제가 ‘PD수첩’ ‘시사투나잇’과 같은 TV 시사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에요.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는 경우가 많거든요. ‘강철중’도 미국에 출장 가는 길에 본 한 시사프로에서 착안했어요. 기업화·조직화된 조폭을 다뤘는데 흥미로웠죠.”

‘강철중’에 수입 쇠고기와 광우병을 거론한 장면들이 있습니다. 관객의 기호에 맞춰 흥행성을 강화하기 위한 방책인가요, 강 감독 개인의 소신을 피력한 것인가요.
“촛불집회가 있기 전인 5개월 전에 찍은 장면들이에요. 저는 다른 것은 몰라도 농민들의 시위는 늘 가슴 아파요. 영화에서라도 우리 한우의 우수성을 보여주자는 단순한 생각에서 넣은 설정이에요. 영화 다 찍고 나서 촛불집회가 일어나서 저도 당황한 걸요. 촛불집회 현장에 딱 한 번 갔는데, 거기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어요. 유모차 끌고 나온 엄마, 중·장년층, 넥타이 부대… 감동적이었어요.”

현 정부에 바라는 영화 정책은 어떤 것입니까.
“저는 정부에 대해 기대하는 게 없어요. 지금까지 정부 돈 써본 적도 없고요. 다만 영화진흥기금이 좀 더 투명하게 쓰일 수 있도록 정부가 시스템을 확실하게 구축하는 노력은 필요할 것 같아요.”

●약력

1960년 경북 경주 출생 1988년 ‘달콤한 신부들’로 데뷔 1989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1991년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1992년 ‘미스터 맘마’ 1993년 ‘투캅스’ 1993년 강우석프로덕션(현 시네마서비스) 설립 1994년 ‘마누라 죽이기’ 1995년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어요’ 1996년 ‘투캅스 2’ 1997년 ‘친자 확인’ 1998년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 2002년 ‘공공의 적’ 2003년 ‘실미도’ 2005년 ‘공공의 적 2’ 2006년 KnJ엔터테인먼트 설립, ‘한반도’ 2008년 ‘강철중:공공의 적 1-1’ (작품은 연출작만)


<글·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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