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가라사대 “행복은 성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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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홀로 자녀’ 초등학교부터 치열한 경쟁… 일류학교 거쳐 좋은 직장 다녀야 ‘사람 대접’

[친디아 리포트]부모님 가라사대 “행복은 성적순”

옛날 중국에는 황제가 존재했지만 오늘날 중국에는 ‘소황제’가 있다. 소황제는 1978년 중국의 가족계획정책에 따라 가정마다 한 명뿐인 자녀를 일컫는 말이다. 일손이 모자라 벌금을 내더라도 무리하게 여러 명의 자녀를 둔 농촌이 아니면 중국 웬만한 가정의 자녀는 외아들이 아니면 외동딸이다. 친가와 외가를 통틀어 유일한 어린 황제다 보니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다.
집에서는 ‘금이야 옥이야’ 대접을 받는 소황제지만 학교에서 벌이는 치열한 경쟁 앞에서는 고달플 수밖에 없다. 성적이 좋지 않으면 사람 대접도 받지 못하고 일자리도 제대로 찾을 수 없는 것이 중국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쟁은 일찌감치 초등학교부터 시작한다.

중국 수도 베이징 도심에 자리한 한 명문 초등학교. 전교생이 1800여 명으로 비교적 큰 규모다. 이 학교 학생들에게 “왜 공부하냐?”고 물어보면 학생들은 이구동성으로 “공부를 안 하면 나중에 커서 일도 하지 못하는 불량배가 되기 때문”이라고 답변한다.

학급마다 성적 계급사회 존재
새 학기가 시작하는 9월 초순(중국은 9월에 시작해서 이듬해 7월에 학년이 끝난다). 이 학교 5학년 5반에서 반장 선거가 열렸다. 6명의 학생이 출마했다. 선거 당일, 대다수 학부모가 교실을 찾았다. 학부모도 투표에 참가하는 것이 이색적이다. 후보 학생들은 한 명씩 교단에 나와 연설을 하면서 공약을 내걸었다. 중국 반장 선거의 특징은 투표함을 각 후보 면전에 두고 학생들에게 투표하도록 하는 점이다. 누가 누구에게 표를 던졌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표가 예상보다 적게 나온 후보 학생들 일부는 “능력 부족을 실감했다”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1학년 때부터 줄곧 이 반을 맡아온 담임교사는 당연하다고 여긴다. 치열한 경쟁 사회를 미리 맛보게 하는 교육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학생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성적이다. 학교는 2주마다 한 번씩 모의고사를 본다. 해마다 두 번 기말고사를 치른다. 시험을 치르고 난 뒤 전체 학생의 석차를 담은 성적표를 학생들에게 나눠준다. 학부모는 한눈에 자녀의 학업 수준을 알 수 있다. 학부모들은 자녀를 늘 다른 학생과 비교한다. 때문에 학생들은 자기 점수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5명의 후보를 제치고 반장에 당선한 쉬웨이산(11). 그는 수학이든 체육이든 못하는 과목이 없다.

중국 학급에서 성적이라는 가치관에 따라 나뉘는 계급 사회가 존재한다. 성적에 따라 인간성을 판단하는 것이다. 성적이 좋으면 공부를 못 하는 학생들에게 왕따를 당할 것 같지만, 중국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학생들은 싸움을 할 때 “너보다 공부 잘한다”면서 상대를 협박하기도 한다. 학생들이 공부에 목을 매는 것은 다른 학생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유치원에서 놀이를 하고 있는 중국 소황제들.

유치원에서 놀이를 하고 있는 중국 소황제들.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아들을 인재로 키우고 싶다는 이른바 ‘망자성룡’이라는 말이 있다. 아들을 ‘용(인재)’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는 뜻이다. 학부모들은 어떻게 자녀 학습을 하고 있는가. 반장 쉬웨이산의 집은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있다. 아버지는 무역회사를 경영하는 사업가다. 아버지는 시간을 쪼개 날마다 고급 독일 승용차로 아들을 등하교시킨다. 쉬웨이산의 부모는 이미 아들이 진학할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정한 상태다. 당연히 입학 성적이 뛰어난 명문 학교다. 어느 일류대학에 진학할 것인지 청사진도 그려놓고 있다. 그러나 아이의 집 부근에는 학교 친구가 없다. 학교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친구들과 놀 수 없다는 점이 불만스럽지만 부모는 그저 공부를 잘하면 된다는 말을 반복할 뿐이다.

초등학생 날마다 3시간 이상 숙제
같은 반 학생인 첸훙샹. 성적은 중위권이다. 부모는 공부 못 하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말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당부하고 있다. 집은 학교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다. 전기공장에서 임시 근로자로 일하고 있는 어머니는 집에서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가 집에 들어서자 마자 어머니는 “오늘 숙제는 많으냐. 서둘러 해라”라고 말한다. 첸훙샹은 말 한마디도 못하고 책상에 앉아 숙제를 시작한다.

숙제가 많은 것은 중국 초등학교의 특징이다. 날마다 3시간 이상 숙제를 해야 한다. 10분마다 어머니가 숙제를 챙겨준다. 잘못 쓴 글자가 없는지 살피는 것이다. 어머니는 중국어와 영어 숙제를 챙기는 반면, 아버지는 수학을 책임지고 있다. 부모의 도움이 없으면 아이는 숙제하는 시간이늦고 심지어 공부를 따라가지도 못한다. 그의 어머니는 “우리가 어렸을 때는 이렇게 숙제가 많지 않았고 어렵지도 않았다”면서 “지금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과거 우리가 중학교에서 배우던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조금만 방심하면 친구들과 경쟁할 수 없다”면서 “부모 노릇 하기도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오후 6시 30분쯤, 아버지가 돌아왔다. 그는 호텔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올해 43세지만 백발이 성성하다. 아버지는 돌아오자 마자 식사를 했다. 밥을 먹는 동안 화제는 주로 아들의 성적이다. 식사를 마친 다음 첸훙샹은 계속해서 숙제를 했다. 그는 영어 듣기 훈련과 예습을 한 다음 오후 10시 30분쯤 잠자리에 들었다. 아이의 집 부근에는 학교 친구가 많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놀 시간이 없다. 숙제를 하기에도 시간이 벅차기 때문이다.

중국의 학부모는 왜 자녀의 학업을 중요하게 여기는가. 첸훙샹의 부모는 과거 국영기업에서 일하다가 정리 해고를 당했다. 이후 그들은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해 일자리를 끊임없이 찾아야 했다. 그들의 일자리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알 수 없다. 아버지의 근로 계약 기한은 내년이면 끝난다. 계속해서 계약을 연장할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연장이 안 되면 다시 일자리를 찾아 나서야 한다. “우리는 정리 해고를 당했다. 아이가 일류대학에 들어가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기를 바란다. 중국은 모두 외아들이거나 외동딸이다. 자녀가 성공하면 100% 성공이며, 실패하면 100% 실패다. 아이가 성공하면 사회의 인재가 되고, 실패하면 가정의 부담이 된다. 자녀 공부를 도와주는 학부모도 시험을 치르는 것과 같다. 이런 점에서 보면 경쟁은 엄마 품속에 있을 때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현실감이 느껴지는 말이다.

초등학생 60% 성적 스트레스
어느 날 금요일, 천훙샹은 수업에 빠졌다. 섭씨 39℃의 고열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았다. 토요일, 열이 조금 내려가자 어머니는 숙제를 하라고 채근했다. 다음 주 월요일, 수업을 들으면서 아이는 멍하니 창문을 내다보고 있다. 수업을 마친 뒤 담임교사가 “몸이 어떠냐?”고 묻자 아이는 “너무 힘들어요”라고 말했다. 아이는 “정말 공부하기 싫어요. 부모님은 늘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하고, 정말 미치겠어요”라며 눈물을 흘렸다.

“부모와 선생님들이 너희 자신을 위해 공부하라고 다그치니, 우리는 하는 수없이 공부를 좋아하는 것처럼 흉내냅니다.” 실제로 학생들이 격렬한 성적 경쟁에 피로감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다. 중국 청소년 연구센터의 지난해 설문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 60%가 공부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응답했다. 2005년 설문조사는 초·중학생 10%가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중국 교육부는 학생들의 가방이 지나치게 무겁다면서 나름대로 대책을 내놓기는 했지만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현실과 이상의 차이인 셈이다.

중국 초등학교는 학기말 시험을 끝으로 7월 5일부터 여름방학에 들어간다. 얼마나 많은 소황제가 눈물을 흘리며 좋지 않은 성적을 한탄했을까. 얼마나 많은 부모가 자녀의 성적표를 들고 일희일비 했을까. 소황제는 중국의 특이한 현상이지만, 그들이 흘리는 눈물은 생존만이 최상의 방책인 중국의 치열한 경쟁 사회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일류 유치원에 들어가야, 일류 초등학교에 갈 수 있고, 일류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 일류대학에 들어가야, 사람 대접을 받으면서 좋은 일자리를 구하는 공식이 아직도 중국에서는 철칙이다.

대입수능시험 ‘고고(高考)’ 풍속도

[친디아 리포트]부모님 가라사대 “행복은 성적순”

중국의 대입수능시험은 ‘고고(高考)’라고 한다. 중국의 ‘고교’는 우리의 ‘대학’이며, ‘고’는 ‘고시’라는 뜻이다. 우리에게 입시 한파라는 말이 있지만 중국은 입시 폭서라는 말이 있다. 중국에서는 수능을 보통 6월과 7월에 치르기 때문이다. 올해 수능시험은 6월 7일과 8일 이틀간 중국 전역에서 열렸다. 일부 지방은 9일까지 사흘 동안 열렸다.

시험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됐다. 첫날은 국어와 수학, 둘째 날은 문과(정치·역사·지리), 이과 종합시험(물리·화학·생물)과 외국어, 작문을 치렀다. 점심은 밖으로 나와서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부유한 가정은 고사장 부근 호텔에 방을 잡고 영양식을 마련한다.

중국은 지방별(정확히 말하면 31개 성·직할시·자치구)로 시험 문제가 다르다. 수능에서 전국 수석 합격자가 나오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방별로 문과와 이과 수석 합격자가 나온다. 베이징대와 칭화대 등 명문대학의 경우 지방별 문과·이과 수석 합격자가 몇 명 들어왔느냐에 따라 한 해 농사를 가름한다.

대학이 지방별로 합격자 수를 할당하는 것도 특징이다. 지역 할당제인 셈이다. 예컨대 칭화대는 올해 처음으로 남부 구이저우성에 문과 합격자 3명을 할당했다. 구이저우성 출신의 문과 응시자 가운데 성적이 우수한 3명은 칭화대에 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칭화대 문과의 경우 그동안 16개 성에만 합격자를 할당했다가, 올해부터 31개 성으로 늘렸다. 할당 수가 없으면 아무리 성적이 뛰어나도 그 대학에 진학할 수 없다.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 대도시 출신 수험생들은 진학의 길이 넓지만, 경제가 낙후한 서부 지방에서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올해 중국 수능시험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1,050만 명이 응시해 이중 500여 만 명이 합격할 예정이다. 나머지 600만 명은 재수의 길을 걷는다. 만점은 지방마다 다르다. 베이징은 750점 만점이지만, 상하이는 630점이 만점이다. 우리 수능시험은 객관식이어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가 나오기 쉽지만 중국은 주관식 비중이 높아서 높은 점수를 받기가 쉽지 않다. 특히 작문 시험은 제목이 일간지에 실릴 정도로 일반인들의 관심도 높다. 올해 작문 제목으로는 ‘쓰촨성 대지진’과 ‘베이징 올림픽’ 등 비교적 평이한 예상 문제가 나와 수험생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는 후문이다.

수학은 풀이 과정을 다 써야 하고 풀이 과정도 점수로 연결된다. 베이징의 명문 대학 커트라인은 문과 620점, 이과 650점을 넘는다. 중국은 내신 성적은 반영하지 않고 100% 수능 성적만으로 대학 진학이 결정된다. 따라서 대학 진학의 열쇠는 수능이 쥐고 있는 셈이다.

중국 수험생들은 대부분 시험 3~4일 전부터 머리를 감지 않는다. 그동안 공부한 것들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미신 때문이다. 또 대학 문을 활짝 열라는 의미로 집 안의 모든 서랍과 창문을 활짝 열기도 한다. 올해 중국 수능시험은 1990년 출생자가 처음 대학에 진학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른바 ‘90후(1990년 이후 출생자)’로 불리는 이들 세대는 본격적인 중국 경제 성장 혜택을 받은 세대로 자유분방함이 특징이다.


홍인표<경향신문 베이징 특파원·중문학 박사>iph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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