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촛불은 국민 마음 따라 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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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향후 행보 놓고 활발한 토론, “우리 사회 건전하게 만드는 기폭제 구실”

18일 밤 KBS 본관 앞에서 시민들이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 시도를 규탄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18일 밤 KBS 본관 앞에서 시민들이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 시도를 규탄하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지난 19일 이명박 대통령은 특별 기자회견에서 “국민과 소통하면서 국민과 함께 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되돌아온 것은 공허한 주장의 되풀이라는 비판이다.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촛불집회는 어떤 방향으로, 어떤 규모로 타오를까. 정부와 여당의 태도를 지켜보면서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간 시민들이 지난 일주일 동안 광장과 온라인에서 보여준 움직임을 통해 그 길을 가늠해보았다.

6월 10일의 대폭발 이후 일단 집회 규모는 크게 줄었다. 대규모 인원을 모을 수 있는 발화점의 온도가 미지근해진 탓이다. 5월 24일 시위대가 청계광장을 벗어나 거리로 진출했다가 경찰에 연행된 것이 가장 격렬했던 5월 31일 집회의 도화선이 되고, 5월 31일 집회에서 경찰이 물대포와 강경 진압으로 응수한 것이 6월 10일 100만 인파를 모은 기폭제가 된 반면, 6월 10일 이후에는 이에 비견할 만한 이슈가 없었다.

“애국세력과 매국세력의 대결”
수가 줄어든 대신 촛불의 의제는 넓은 갈래로 펼쳐졌다. 6월 11일 집회 참가자들이 처음으로 한국방송공사 앞으로 집회 장소를 옮겼다. KBS 앞 촛불집회는 이날 이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시민들은 16일에는 코엑스로 진출했다. 최시중씨가 위원장으로 있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주관하는 ‘인터넷 경제의 미래-OECD 장관회의’에 참석한 외국인을 상대로 정부의 언론 장악 시도를 규탄하기 위해서다. 집회 구호도 ‘쇠고기 재협상’에서 ‘최시중 퇴진’과 ‘공영방송 사수’로 바뀌었다. 대책위는 기존의 쇠고기 협상 이슈에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대가 결합된 이른바 1+5 의제를 내놓고 집회의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가고 있다.

시민사회는 온라인 광장과 오프라인 광장을 넘나들며 촛불집회의 행보를 놓고 활발한 토론을 벌였다. 지난 18일 오후 2시 경향신문사 대회의실에서 시민단체와 네티즌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3차 긴급 시국 대토론회’도 그러한 노력의 하나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사회를 맡고, 홍성태 참여연대 집행위 부위원장, 원용진 문화연대 집행위원장, 하승창 시민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 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이 시민단체를 대표해서 참석했다. 네티즌 쪽에서는 다음 아고라에서 ‘권태로운 창’이라는 아이디로 활동 중인 나명수씨, 촛불집회에 20여 차례 참가한 아주대 공대 박사 과정 정문호씨, 이명박탄핵투쟁본부 카페 부대표 강전호씨, 미친소 닷넷 운영자 백성균씨가 참석했다.

현 정부가 “사회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정치적 지체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한 홍성태 교수의 주제 발표에 뒤이은 토론은 지난 40일간 촛불집회의 성과에 대한 진단과 향후 방향 모색이라는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벌어졌다.

16일 밤 서울광장에서 집회를 마친 시민들이 조선일보 사옥 앞에 붙여놓은 스티커.

16일 밤 서울광장에서 집회를 마친 시민들이 조선일보 사옥 앞에 붙여놓은 스티커.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는 시민단체와 네티즌을 가릴 것 없이 날카로운 비판이 쏟아졌다. 비판의 요체는 ‘소통의 부재와 그로 인한 시민들의 울화통’이다. 나명수씨는 이명박 정부의 소통 능력 결핍을 “성급한 일반화와 인과의 오류”로 요약하면서 정부와 시민의 대립은 “애국 세력과 매국 세력의 대결”이라고 말했다. 강전호씨는 경찰이 컨테이너 장벽을 세운 6월 10일을 “내 마음대로 정치하겠다고 공포한 날”로 규정하고 촛불집회는 “프랑스 혁명을 능가하는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정문호씨는 촛불집회가 개인의 생존과 관련된 실생활의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다.

“내가 지금까지 집회에 참석한 이유는 밤을 새우더라도 광장을 지켜야만 내 생명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정씨는 “대통령은 국민이 하나로 뭉칠 수 있는 힘을 주고 민주주의의 교육장을 제공했다”고 말했다. 원용진 교수는 “촛불은 소통에 대한 요청인데, 이 정부는 자물통이 아니라 아예 먹통인 듯하다”라고 비판했다.

전통적인 사회 운동을 대변하는 시민단체 대표들은 한결같이 촛불집회를 통해 시민 운동의 진화에 대한 경이로움과 함께 기존 운동 방식을 재고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했다. 하승창 시민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은 “기존 사회운동가들은 그동안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면서 “오히려 직장에 다니는 평범한 친구들한테서 집회에 나오라는 채근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김민영 사무처장은 “정치, 언론, 기존 사회 운동 등 기존의 권위가 모두 날아가버렸다”면서 촛불집회에 모인 시민들은 “정치적으로 각성한 자유로운 개인들의 결합”이라고 평가했다. 원용진 교수는 “시민단체는 더 가벼워지고 덜 엄숙해져야 한다”고 말하면서 시민단체가 스스로 보수화한 측면이 없는지 따져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촛불 준 건 본질적 부분 아니다”
시민 대표들은 광우병 대책위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나명수씨는 “대책위가 기여한 부분은 인정하지만 시민들을 통제하려는 것은 잘못이다”고 비판했다. 그는 대책위를 해산하고 좀 더 확장된 범국민적 연대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전호씨와 정문호씨도 대책위가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는 데 미흡한 점이 많았다고 지적하고 범국민적 연대 기구로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촛불집회의 향후 행보에 대해서는 ‘예측할 수 없지만 연대의 원칙 아래 시민들의 집단 지성이 스스로 길을 찾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김민영 사무처장은 광장에서 드러난 국민의 뜻은 “국민주권,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공공성 수호일 것”이라면서 정치권의 해결을 기대하기보다는 국민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강전호씨는 정권 퇴진이 헌정 위배라는 보수 진영의 주장에 대해 “대한민국의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정신을 부정하는 말”이라고 일축하고 “시민들은 집단 지성을 통해 자정 작용을 거듭하며 문제를 해결해왔다”고 강조했다.

18일 밤 KBS 앞에서 촛불을 들어올린 시민들의 의견도 큰 맥락에서는 차이가 없었다. 오후 9시쯤 KBS 본관 앞 계단에서 만난 직장인 원호연(35)씨는 최근 촛불집회 참가 인원이 줄어든 것에 대해 “지금은 시민들이 정부에 결단할 시간을 준 것이라고 본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지금까지 촛불집회는 우리 사회를 건전하게 만드는 기폭제 구실을 충분히 했다”면서 “앞으로는 시민사회가 정책적인 부분에 대한 견해를 모아서 정부가 옳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잡아주고 촛불 수가 줄어들었다는 건 본질적인 부분이 아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교사 조경희(41)씨는 “대책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방법이 다를 뿐 목표는 같다”면서 “정부가 재협상이 아니라 근본적인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사람들은 언제든 쏟아져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18일 토론회를 마무리하면서 김호기 교수는 “촛불은 국민의 마음이 가는 길로, 국민 다수의 뜻이 가라고 시키는 길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특별 기자회견 이후 다음 아고라에 올라온 글들과 댓글을 보면, ‘국민의 마음’은 여전히 대통령이 시민과 반대되는 길을 가고 있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촛불은 이제 숨 고르기를 끝내고 다시 타오를 가능성이 커 보인다.

<글·사진|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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