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서 살아 남은 자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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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랑하는 가족 잃고 생활터전마저 무너져 앞으로 살 길 막막

중국은 지난 5월 12일 발생한 쓰촨성 대지진의 후유증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재까지 7만 명에 가까운 사망자가 나왔고 실종자도 2만 명에 달하는 중국 역사상 보기 드문 자연재해기 때문이다. 현재 구조 작업은 끝났고 복구 작업이 한창이지만 여진이 계속되는데다 지진으로 생겨난 자연호수(언색호)가 붕괴 위험을 맞고 있고, 전염병이 발생할 위험 때문에 중국 당국은 긴장하고 있다. 지진으로 죽은 사람들의 사연도 절절하지만, 다행히 목숨을 건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도 지금 우리에게 또 다른 아픔을 안겨주고 있다.

쓰촨성 베이촨현. 이번 지진의 최대 피해 지역이다. 이곳에 사는 농민 룽밍푸(62)는 5월 12일 오후 2시 28분 산기슭에 있는 자신의 밭에서 아내와 함께 일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산 아래 마을의 땅이 파도처럼 뒤집어 지더니만 검은 연기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는 지진이 일어난 줄 직감하고는 산 아래 집으로 달려갔다. 집은 산에서 밀려든 돌멩이와 자갈 때문에 100여m 밀려가면서 완전히 잠겨버렸다. 마을로 달려가자 곳곳에서 살려달라는 아우성으로 가득 찼다.

유치원 무너져 여동생 시체 못찾아
그는 학교에 간 손자 2명이 생각났다. 그는 먼저 작은 손자가 1학년에 있는 취산 초등학교를 찾았다. 학교 건물이 박살이 난 것을 보고 어안이 벙벙했다. 다른 학부형들과 마찬가지로 건물 폐허 더미에 올라가서 큰 소리로 손자 이름을 불렀다. 여진은 계속 되고 발아래 콘크리트가 계속 움직였지만 아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10여 분을 외친 다음에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지나가면서 말했다. “찾지 마세요. 손자는 선생님과 운동장에 있었거든요. 아무 일 없어요” 작은 손자의 손을 잡고 학교를 빠져나오면서 그는 학교 앞의 유치원 건물이 무너진 것을 발견했다. 갑자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유치원은 여동생이 일하던 곳이었다. 여동생은 유치원이 무너지면서 수십 명의 원생과 함께 폐허 더미에 깔렸고 지금도 시체를 찾지 못하고 있다.

큰 손자는 베이촨 중학 1학년 학생이었다. 베이촨 중학에 가는 길에 그는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그동안 무너진 집에서 20여 년째 같이 살던 친정어머니(86)를 찾던 중이었다. “아무래도 어머니를 찾을 수 없어요” “그럼 손자부터 먼저 챙깁시다” 그들 부부는 베이촨 중학으로 갔다. 다행히 큰 손자는 별탈이 없었다. 지진이 났을 때 현 사무소에서 열린 예술공연에 참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은 이미 오후 5시가 넘었다. 저녁 7시가 되자 그는 집 주방 폐허 더미에서 먹을거리를 찾았다. 아내는 어디선가 옷가지를 찾았다. 그들 부부와 손자 2명 등 일가족 4명은 비교적 안전한 곳으로 옮겨 음식을 먹었다.

저녁 9시가 너머 딸네 일가가 그들이 있는 곳으로 왔다. 그들 일가족은 베이촨에 더 이상 머물 생각이 없었다. 서둘러 쓰촨성 제2 도시인 양시로 걸어서 피난길을 떠났다. 그는 피난 사흘째인 5월 15일, 갑자기 집에 남겨둔 개 두 마리 생각이 났다. 구조작업을 하러 베이촨에 들어가는 군부대 차량을 얻어타고 집을 다시 찾았다. 집에 있던 개 두 마리 가운데 황소만한 개는 그나마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그는 개를 묶고 있던 목줄을 풀고는 “어서 가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이 암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갔다. 7·8년 동안 키웠던 정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진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정신없이 달려가는 개의 뒷모습을 그는 물끄러미 쳐다봐야 했다.

일가족은 지금 양시 주저우 체육관에 마련된 천막에 임시로 거주하고 있다. 그들 부부와 딸, 사위, 외손자가 일가족이다. 손자 2명은 광둥성에서 일하고 있는 아들이 데려갔다. 지진으로 1978년에 지은 벽돌집은 완전히 무너졌다. 가족을 먹여 살리던 돼지 9마리도 이번 지진으로 모두 숨졌다. 특히 다음 달 새끼를 낳을 예정이던 암퇘지가 죽은 것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그는 비교적 운이 좋았다고 자위하고 있다. 가족 중 2명만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생필품 가게서 물건들 마구 집어가
베이촨현 레이구진 젠신촌. 장셴윈(70)은 폐허가 된 자신의 구멍가게를 떠나지 않고 있다. 그는 지진이 일어난 뒤 정든 집을 떠나는 다른 이재민들과는 달리 아무리 폐허라도 여기가 내 터전이라는 생각에서 가게를 지키고 있다. 이들 부부는 동네 어귀에서 조그만 구멍가게를 했다. 목이 좋아 벌이가 꽤 솔솔 했다. 지진이 일어났을 당시 그는 기어서 가게에서 빠져나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가게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는 아내와 외손녀 2명을 안전지대로 피신시켰다.

하지만 그는 곧 야박한 인심을 절감해야 했다. 그날 밤, 폐허의 큰 돌덩이 위에서 잠을 청했던 그는 밤새 가랑비가 내렸지만 일어나지 못했다. 그만큼 피곤했던 것이다. 이튿날 새벽, 노인은 눈을 뜨자 가게 물건이 많이 사라졌음을 알았다. 갈수록 많은 동네 사람들이 물건을 ‘빌려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체면이 있는지 빌려간다고 했지만 나중에는 말도 없이 물건을 슬그머니 들고 가버렸다. 라면, 생수, 치약과 먹을거리, 일용품이 한눈에 사라졌다. 그는 필사적으로 사람들을 가로막고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무릎까지 꿇고 애원도 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그가 마음을 비웠다. “마음대로 가져가시오” 노인은 장탄식을 했다. 지금 구멍가게는 담배 한 보루만 남았다.

두장옌시에 살고 있는 마칭춘(46·여)씨는 정리해고 노동자다. 그녀는 정리 해고된 뒤 지난 몇 년 동안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올해 초 회사 측은 정식으로 퇴직 통보를 하고 월 600위안(우리 돈 7만8000원)을 퇴직금조로 주고 있다. 남편(샤오더칭)은 두장옌시 임업국 산하 농장에서 근로자로 일하다가 지난해 11월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남편을 산에 묻었을 때 11세 아들(샤오안)이 자신의 어깨를 부축하면서 “울지 마세요. 제가 집안에서 유일한 남자니까 앞으로 잘 보살펴 드릴게요”라고 말했다.

아들이 다니던 신젠 초등학교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마칭춘은 미칠 것만 같았다. 아들은 그 학교 5학년 1반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반 52명 학생 가운데 6명만 목숨을 건졌다. 마칭춘은 당시 시장에서 저녁거리를 사들고 오는 길이었다. 살고 있던 아파트 어귀에서 지진을 만났다. 경비실이 풀썩 무너지고, 단층 건물들도 잇따라 무너져내렸다. 그녀는 급히 도망쳐 화를 면했다. 이웃 주민이 지나가면서 신젠 초등학교 건물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그녀는 다리가 풀려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이웃 주민이 부축해서 도로변 벤치로 데려갔다.

작년에 남편 잃고 올해 아들마저
그녀는 벤치에서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신젠 초등학교로 달려가는 것을 보았다. 서둘러 학교를 가보니 정말로 건물이 무너져 있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그녀는 아들 이름을 부르면서 헤매고 다녔다. 순간적으로 빗물이 흥건한 학교 운동장 바닥에 기절해 쓰러졌다. 해방군 병사가 그녀를 들것에 옮겼다. 담임교사가 달려와 “아드님이 세상을 떠났다”고 울면서 말했다. 그녀는 “그럴 리가 없다. 아들이 떠났을 리 없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5월 14일 오전 8시, 마칭춘은 학교에서 아들 시신을 보았다. 아들은 외상이 전혀 없었다. 그저 입과 코, 귀, 눈에 먼지와 흙이 잔뜩 들어 있었다. 아들이 세상을 떠난 지 7일 만인 19일 오전, 강변을 거닐다가 아들과 비슷한 크기의 남자아이가 지나는 것을 보고 달려갔으나 아들이 아닌 것을 알고는 땅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마칭춘은 요즘도 하늘이 무심하다며 탄식한다. 눈 깜짝할 사이에 가족 2명이 사라진 것이다. 지진이 발생한 이후 그녀에게는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는 딸(22)이 유일한 혈육으로 남았다. 다른 가족과 함께 공용 텐트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녀는 이제 눈물마저 말랐다. 더 이상 아들과 비슷한 모습의 남자 애를 뒤따라가지도 않게 됐다. 아들의 시체를 직접 본 이후 그녀는 이미 몸과 마음이 마비 상태가 된 것이다. 앞으로 살아갈 일이 걱정이다.

중국 쓰촨성 지진으로 발생한 산사태 때문에 생겨난 호수가 붕괴 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말 피해가 우려되는 칭촨현에서 이재민들이 구조대원의 도움을 받아 피난길에 오르고 있다. 7만 명 이상이 숨지고, 2만 명 이상이 실종된 중국 대지진은 전염병 창궐 등 살아남은 자들에게도 고통을 주고 있다.

중국 어린이들이 지진이 발생한 쓰촨성 더양에 세워진 임시 천막 교실에서 활짝 웃고 있다. 지진 후의 고통 속에서도 다시 희망을 일구려는 중국 인민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인터넷 인민재판 ‘인육수색’

최근 지진과 관련한 잘못된 발언으로 중국 네티즌의 표적이 된 여배우 샤론 스톤.

최근 지진과 관련한 잘못된 발언으로 중국 네티즌의 표적이 된 여배우 샤론 스톤.

우리말로는 ‘인물 검색’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인물을 인터넷으로 공개수배하면서 신상정보를 샅샅이 알리는 것이다. 인터넷 인민재판이라고도 한다. 마녀사냥을 방불케 하는 네티즌의 공격은 구글, 바이두, 소후 등 중국의 주요 인터넷 사이트의 ‘인육수색’을 통한다.

“누구를 찾는다”라는 수배령으로 시작하는 이 검색 엔진이 작동하면,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목표물의 이름과 직업, 학력 등을 찾아낸다. 이 같은 신상정보가 인터넷에 그대로 노출되면서 네티즌의 공개재판을 받는다. 그동안 인육수색이 종종 있었지만, 쓰촨성 대지진으로 네티즌이 인육수색에 나서는 경우가 더 잦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여배우 샤론 스톤이 중국 네티즌의 ‘공적 1호’다. 샤론 스톤은 5월 24일 프랑스 칸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해 “중국 지진은 (중국 당국이 티베트 시위를 유혈 진압한) 업보”라고 주장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 네티즌은 100만 명이 서명해 샤론 스톤을 비난하면서 “무지는 용서할 수 있지만, 모욕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흥분했다. 결국 네티즌의 분노를 감안해 프랑스 화장품 회사 디오르는 샤론 스톤이 모델로 나온 CF의 중국 내 방영을 중단하는 한편 샤론 스톤과 모델 계약을 파기해야 했다. 그녀가 단골로 참석하던 상하이영화제도 올해는 초청을 포기했다.

베이징대 출신으로, 쓰촨성 두장옌 광야학교에서 중국어 교사로 있는 판메이중 교사도 인육수색의 후폭풍으로 곤혹을 치르고 있다. 판 교사는 중국 최대 토론 사이트인 톈야에 올린 글에서 지진이 났을 때 자신이 학생들을 포기하고 먼저 도망친 과정을 생생하게 소개했다. 네티즌은 “선생님도 인간인 이상 지진이 났을 때 본능적으로 도망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의기양양하게 공개하는 것은 무례하다”고 비난하고 있다.

네티즌의 인육수색 대상이 된 인물로 랴오닝성의 한 여성을 꼽을 수 있다. 이 여성은 5월 21일 쓰촨 대지진에 대한 막말을 4분 40초 동안 내뱉은 동영상을 공개했다. 이 여성은 다리를 탁자 위에 올린 채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국무원(정부)의 결정으로 중국 전역에서 오락활동을 중단하라고 해 게임을 할 수 없게 됐다”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이 사실이 퍼지면서 네티즌은 분노의 표시로 13억이 함께 이 여자를 찾아내자는 운동을 펼쳤다. 인육수색 엔진이 작동했다. 21일 오후 1시쯤 이 여성에 대한 신상명세가 공개되고 경찰은 문제의 여성을 한 PC방에서 체포했다. 여성의 부모는 중국 국민에 사과의 편지를 공개하는 한편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예금액 전액을 이재민 돕기 성금으로 내겠다고 밝혔다.

인육수색이 좋은 의미로 쓰이는 경우도 가끔 있다. 세계 최대의 검색엔진 구글 중국법인은 중국 지진 발생 4일째인 5월 16일 지진 피해자 및 부상자 가족 찾기 인육수색 작업을 시작했다. 첫날 10만 건의 접속 건수를 기록한 데 이어 17일에는 40만 건의 접속 건수를 자랑했다. 구글에 따르면 5월 20일 현재 344개 웹사이트를 통해 80개 병원이나 대피소에 머무르고 있는 부상자나 이재민 3만8284명에 대한 정보를 올려놓아 이중 1000여 명이 그리던 가족이나 친지를 찾는 데 성공했다.


홍인표<경향신문 베이징 특파원·중문학 박사>ipho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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