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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100일, 그리고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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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성 16인 ‘이명박 정부 100일, 그리고 그 후‘를 말한다

[창간특집]이명박 정부 100일, 그리고 그 후

이명박 정부 출범 100일을 맞았다. 3개월하고 10일 남짓의 기간이었지만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 영어 몰입 교육, 학교자율화, 한반도 대운하 추진, 그리고 한·미 쇠고기 협상까지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정책을 두고 많은 논란이 있었다. 인사를 둘러싼 잡음도 끊이지 않았다. 5월,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섰다. 거리에 나선 이들 중엔 심지어 ‘이명박 탄핵’ ‘퇴진’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10대 청소년이 주도한 촛불 시위는 이제 20대와 30대, 청년층과 장년층까지 번지고 있다. 이들은 ‘Again 1987’을 말하며 제2의 6월항쟁·시민불복종 운동을 펼치겠다고 말하고 있다.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분노케 했을까.
뉴스메이커는 창간 16주년을 맞이하여, 대표적인 한국 사회 신지성 16인을 선정, 그들에게 지난 ‘이명박 정부 100일’을 어떻게 보는지, 또 그들은 앞으로 남은 4년 5개월은 어떻게 될 것으로 내다보는지 평가와 전망을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창간특집]이명박 정부 100일, 그리고 그 후

설득의 리더십이 부족했다

강원택 숭실대학교 정치학 교수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는 과거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과를 뛰어넘는 새로운 도약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의 실정에 대한 반작용만 보여줬지, 새로운 ‘이명박 시대’의 그림 또는 비전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 지난 10년간 야당으로 머물렀던 보수 진영의 국정 운영 경험 부재 역시 문제였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과도한 자신감에 차 있었고 상황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정책적 판단 실수를 되풀이했다. 대통령으로서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치는 것은 국민에게도 중요한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 3개월에 대한 통렬한 자기 반성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혼자 끌고 가려하기보다 시민사회나 기업·지방정부 등 다양한 사회적 행위자를 설득하며 함께 나가려는 거버넌스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정국은 계속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변화된 리더십을 기대한다.

[창간특집]이명박 정부 100일, 그리고 그 후

‘노쇠한’ 정권이 파국 불러

고미숙 고전평론가·수유+너머 연구원

이명박 정부는 지난 20세기 동안 맹렬하게 추구한 근대적 가치와 제도의 결정판에 해당한다. 즉 문명, 민족, 민주주의, 합리성 등으로 포장되었던 근대적 가치들이 ‘실용정부’의 등장으로 인해 그것들이 궁극적으로 자본의 범주 안에 갇혀 있었음을 여지없이 폭로하고 말았다. 실용정부 다음엔 대체 뭐가 오지? 그런 점에서 결정판이자 파국의 시작이 될 것이다. 불과 두 달도 안 됐건만, 국민들이 말기적 피로감에 시달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따라서 이 정부는 모든 국민에게 정치적 상상력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을 요구한다. 남대문의 화재나 광우병, 촛불집회, 이러한 일련의 사건은 기존의 사회과학적 틀로는 절대 해명할 수 없다. 이것을 읽어내지 못한다면, 이 ‘노쇠한’ 정부는 예기치 못한 파국을 불러올 것이다.

[창간특집]이명박 정부 100일, 그리고 그 후

국민의 큰 기대가 실망으로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그 어느 때보다 국민적 기대가 크고 정부의 의욕도 넘치던 100일이었다. 5년의 임기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서는 시작부터 서두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국민의 커다란 기대는 실망으로, 정부의 높은 의욕은 당혹감으로 변한 것 같다. 인간에게는 서로 대립되는 두 가지 감정, 즉 기대와 실망이 동시에 존재한다. 처음에 기대가 크면 실망감은 거의 느껴지지 않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실망감이 강하게 작동한다. 이것은 국민과 정부에 모두 해당한다. 아직 시작 단계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단계를 넘어가야 한다.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아야 한다. 100일보다 더 긴, 함께 가야 할 먼 길을 정부와 국민이 하나가 되어 헤쳐가자.

[창간특집]이명박 정부 100일, 그리고 그 후

반실용적 냉전 이념에 함몰

김기원 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

이명박 정권은 ‘실용주의’를 내걸었지만 대북관계 등에서 보듯이 반실용적 냉전 이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리고 출자총액제한 폐지·금산분리 완화 등에서처럼 재벌이 원하는 대로 해주면 성장이 달성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장 인사에서 드러나듯이 이명박 정권은 공정한 시장경쟁질서 확립과 관계없는 사실상의 반시장주의로 가고 있다. 전망은 어둡다. 이명박 정권이 발상과 인사를 근본적으로 반성하지 않는 한, 국민은 물론 정권 자신에게도 험난한 길이 예상된다. 성장률 제고라는 정권의 목표가 이제까지 보여준 방식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정책에서 소외된 국민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 결국 우리 사회경제 시스템은 선진화와 반대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크다.

[창간특집]이명박 정부 100일, 그리고 그 후

반대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김민전 경희대학교 학부대학 교수

이명박 정부로선 수업료를 비싸게 치른 셈이다. 그동안 배운 걸 바탕으로 다시 한 번 신발 끈을 고쳐 매야 할 시점이다. 100일을 맞아 쇄신안을 내야 한다. 쇄신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명박 정부와 국민 관계가 정상화될 기회는 영원히 사라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내각에 대한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 대통령 자신의 리더십 스타일도 바꿔야 한다. 위에서 아래로 지시하는 형태의 리더십으로는 정보화 시대 리더로 자리 잡기 어렵다.

흔히 말하는 ‘친이(親李)세력’뿐 아니라 반대 세력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단순히 듣는 척만 하는 것이 아니라 듣고 국정에 반영시켜야 한다. 지난 100일을 혹독한 훈련이라고 생각한다면 앞으로 잘할 수 있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는 자세로 국민과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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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과의 소통 시스템 정비를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이명박 정부는 예상보다 대단히 못하고 있다. 그 원인은 권위적 리더십, 소통 시스템의 부재, 정책의 혼선과 일관성 부재다. 개인적으로는 이명박 정부가 신자유주의적 포퓰리즘의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대선 당시 많은 사람이 그를 선택한 것은 청계천 복원이나 서울시 교통체계·정책 개편 등에서 보인 추진력이었다. 그러나 취임 후 그가 보여준 모습은 신자유주의적 권위주의였다. 권위적 리더십은 아날로그적 리더십이다. 디지털적이고 수평적 리더십을 통해 정부와 시민사회의 소통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 쇠고기 협상 과정이나 대운하 등에서 정책의 일관성 부재 문제도 심각하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불행은 국민의 불행이다. 이념을 떠나 6개월 정도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국민의 인내도 한계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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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불감증’에 또 실망

나임윤경 연세대학교 문화학 협동과정 교수

구관이 명관. 짧지만 이처럼 대통령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을 잘 설명할 표현이 또 있을까. 엄청난 도덕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당시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된 데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가 경제 ‘딱 하나’로 환원되었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도덕성은 포기한 기준이다. 그런데도 또다시 대통령에 실망하는 것은 본인을 지지한 수많은 사람의 실망감에도 아랑곳없이, 마치 진공관 속에라도 들어앉은 것 같은 표정의 대통령, 그의 불감증 때문이다. 차라리 불안하고 안달하는 대통령,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져 네티즌에 시비하듯 댓글이라도 다는 대통령이 훨씬 낫겠다. 그건 그래도 국민들과 소통하고 있다는 의미니까.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 ‘구관’은 얼마나 매력적인 직업인가. 조금만 참고 있으면 명관이 되니 말이다. 구관들은 지금의 대통령에게 감사를 표할 일이다.

[창간특집]이명박 정부 100일, 그리고 그 후

“따라오라”는 방식으론 안된다

박경철 안동신세계연합병원 원장

현재 한국의 상황은 1970년대 미국 상황과 비슷하다. 당시 미국은 국가가 대기업 독점을 허용하면서 일정한 사회적 책임을 부여하는 한편, 축적된 잉여를 바탕으로 근로자의 일부가 중산층이 되는 사회 구조였다. 당시 미국처럼 우리도 ‘대기업이 잘되면 우리도 잘되는 것’ 식의 생각이 많았지만 지금은 공기업 민영화 등의 정책을 놓고 “대기업에 좋은 일이 우리에게도 좋은 일인가”라는 회의가 늘어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말하는 개혁이란 민간의 기업이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집단에 공기업과 같은 국가의 일을 이양하거나 경영을 합리화·구조 개혁하는 것이다. 그 추진 방식도 일종의 ‘브나로드’운동처럼 ‘깃발 꽂고 따라오라’는 식으로, “무조건 반대하지 마라, 지나보면 맞지 않았느냐, 경부고속도로를 봐라”는 식이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현자(賢者)’라면 믿겠지만 그렇게 믿기 힘들다는 데 있다.

[창간특집]이명박 정부 100일, 그리고 그 후

‘불도저 신자유주의’가 저항 초래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교 교수

이명박 정부의 출범은 한국 정치사에서 여러 가지로 ‘파격적 사건’이었다. 기업인 출신으로 최초의 대통령인데다가 득표율은 여태까지의 민주적 선거 치고는 가장 압도적인 축에 속했다. ‘기업인 대통령’이 하나의 ‘열풍’을 일으켰다. 일부 사회과학자는 한국이 하나의 ‘주식회사’처럼 운영되는 보수적 ‘기업 사회’로 재편된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속단이었다. ‘열풍’은 ‘역풍’으로 바뀌고 말았다. 한·미 FTA 체결을 위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이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첫 ‘친기업적’ 정책부터 거의 전 국민적 저항에 부딪혔다면 과연 대운하를 계획대로 팔 수 있겠는가? 이명박 대통령의 ‘불도저식 신자유주의’는 더욱 거센 저항을 불러일으켜 반대로 진보 세력에 절호의 기회를 줄 것이다. 앞으로는 우리가 ‘뜨거운 투쟁의 5년’을 살 것으로 보인다.

[창간특집]이명박 정부 100일, 그리고 그 후

편향된 정책 강행으로 반감 확산

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이명박 정부는 약한 정부의 조건을 갖고 탄생했다. 도덕적 권위를 가질 수 없는 대통령 개인의 문제도 컸지만, 낮은 투표율에서 보듯 민주주의와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기대가 최저로 떨어진 상황에서 출범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정당체제의 뒷받침 없이는 제도로서의 대통령 권력도 불안정하다. 이런 조건 위에서 영어 몰입 교육, 대운하, 잘못된 인사, 미국산 쇠고기 협상 파동 등 일방적이고 소수 상층의 정서와 가치에 편향된 정책을 강행했기 때문에 이 정부에 대한 반감이 급격히 확산될 수 있었다. 정부는 소통이 문제였다고 하지만, 문제는 훨씬 구조적이다. 정치 전체가 시민들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고, 야당도 대안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당분간 전국적인 선거도 없어서 정치를 바꿀 계기도 없다. 한국 정치의 비극이다.

[창간특집]이명박 정부 100일, 그리고 그 후

대한민국은 주식회사가 아니다

심영섭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학 교수

지난 5월 24일 밤, 신촌 길거리를 가득 메운 촛불 시위대를 연행해가는 공권력과 국민의 충돌을 보면서 드는 생각. 이명박 정부와 국민과의 밀월이 이렇게 빨리, 이렇게 허망하게 끝나버리고 있구나.

우리가 그를 선택했던 바로 그 이유, 경제 회복의 견인차가 될 CEO 대통령이라는 선택은 지금 대한민국 전체를 아우르는 분노의 함성에 묻혀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부디 알아주시라. 대한민국은 거대 주식회사가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현대 건설의 장기 근속 사원도 아니다.

여전히 대통령은 경제 부흥의 캐치프레이즈만 내세워 무리한 쇠고기 협상의 휴우증을 전 국토에 몰고 왔다. 역사상 가장 짧은 신혼기를 보낸 이명박 정부의 100일. 지금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대통령 자신이 가장 덜 강조했던 대통령의 기본기, ‘정치력’이다.

[창간특집]이명박 정부 100일, 그리고 그 후

100일이 1000일처럼 느껴져

우석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88만원 세대’ 저자

가수 이승환이라는 사람이 있다. 촛불 시위의 초기에 윤도현, 김장훈과 함께 무대에 섰던 사람이다. 한때는 한국 발라드의 황태자였던 사람인데, 그가 촛불 시위에 시민의 한 사람으로 섰다고 말하는 일이 벌어질 줄 알았던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그가 그 자리에서 부른 노래 중에 ‘천일동안’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이 노래는 이명박 100일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 그 어떤 말보다 적합하다. 이제 100일이지만 우리는 1000일은 지난 듯이, 지난 대선과 그의 취임이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그를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그 100일은 1000일의 무게와 같은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남은 날을 돌아보면, 천만년이라는 말이 남 같지 않다. 이천만년을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제발 천만년이 지나고 그의 임기가 끝났을 때, 한국의 공공부문과 시민부문이 형태라도 남아 있기를 바란다.

[창간특집]이명박 정부 100일, 그리고 그 후

전문가 말고 ‘쌩대중’을 만나라

이범 한국교육연구소 정책위원·곰TV 강사

이명박 정부의 교육 담당자들에게 고한다. 당신들이 매일같이 상대하는 교육 전문가들, 알고 보면 다들 꽉 막혔거나 오염된 인간들이다. ‘쌩대중’이라는 말이 있단다. 시류와 이해관계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일반 대중을 뜻한다. 제발 그 잘난 전문가들 좀 그만 만나고, 쌩대중 학부모와 학생들을 만나보기 바란다. 그들이 영어교육, 학교자율화, 일제고사 등에 관하여 무엇을 불안해하는지 들어보기 바란다. 그리고 그들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대안이 있는지 자문해보기 바란다.

이들을 정면에서 대면할 용기가 없나? 그럼 당신들의 정책은 계속 ‘조질’ 것이 분명하다. 당신들의 약속은 ‘사교육비 절반, 학교 만족도 두 배’였다. 그 정도는 애초에 바라지도 않았다. 앞으로 4년간 당신들이 한국 교육을 확실히 ‘조져’놓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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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한 부자정권에 민심 등 돌려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무능한 부자 정권, 답이 안 보인다! 취임 100일이면 당선 축하 인사도 다 못했을 시간인데, 10년은 족히 된 것 같다. 인수위 시절부터 내놓는 것마다 보편적 상식은 고사하고, 그 기초 지능을 의심케 했다. 예상은 했다. ‘실용적’ 이유에서 이 정부를 지지한 사람들, ‘실용적’ 이유에서 등을 돌리리라고. 하지만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속절없는 인심이여!

취임 100일에서 하루 빠진 6월 3일, ‘6·3사태’가 올해로 몇 돌일까. 이 대통령 자신이 주동자로 구속된 적이 있을게다. 이제 그 손으로 얼마나 많은 시민을 구속시킬까. 전율이 온다. 무능한 보수, 얼빠진 야당, 토막난 진보, 이제 18대 국회가 시작되면 시민들은 기댈 구석이 없다. 그를 찍은 손가락을 탓하랴, 잘못 본 눈을 찌르랴. 그래도 5년에서 100일을 뺄 수 있어 다행이다. 불면의 밤이 그만큼 줄었으니….

[창간특집]이명박 정부 100일, 그리고 그 후

경직된 보수 편향 행보를 멈추라

조국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

이명박 정부는 유권자 다수의 지지를 받고 출범했기 때문에 민주적 정당성을 갖는다. 하지만 새 정부는 큰 착각을 했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은 노무현 정부에 대한 반대라는 반사이익의 덕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새 정부는 자신을 지지한 유권자가 자신의 국정 운영 방식이나 정책도 무조건 지지할 것이라고 착각했다.

유권자는 이전 정부가 이루지 못한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이명박 정부가 어떻게든 해결해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새 정부는 계속 ‘틀린 메시지’를 보냈다. 첫째는 고소영·강부자로 대표되는 잘못된 인선이고, 둘째는 의료·복지·교육 등에서 공공성을 포기하겠다는 정책 추진이다. 이명박 정부의 인선과 정책노선이 사회경제적 약자의 짜증과 고통을 계속 초래한다면 상황은 급변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진정 ‘실용’을 소중히 여긴다면 경직된 보수 이념 편향의 행보를 멈추어야 한다.

[창간특집]이명박 정부 100일, 그리고 그 후

‘신자유주의 불평등’ 시대 도래

조희연 성공회대 NGO대학원 시민사회단체학과 교수

이명박 정부는 한국형 권위주의적 신보수정권이다. 1960·70년대 개발독재 정권과는 구별되는 신자유주의 지구화시대의 새로운 보수 우파정권이다. 우리는 본격적인 ‘신자유주의적 불평등’시대를 대면하게 될 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정책은 권위주의, 신관치주의적 방식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러한 정책 기조는 많은 저항과 대중들의 다종다양한 이반을 불러올 것이다. 이러한 이반과 저항이 어떻게 ‘새로운 평등연합’으로 수렴될 것인가. 이 땅의 서민과 소외된 사람들이 과거 개발로부터 소외되었던 한(恨)을 ‘모방적 개발 욕망’으로 투사하지 않고, 좀 더 높은 수준의 공공적인 기대와 가치 지향으로 수렴되는 연합이 구성되어야 한다. 이 과정은-촛불시위에서도 보듯이-과거와 다른 감수성을 갖는 새로운 저항 주체들이 나오고 결합하는 새로운 연대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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