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 터지는 소리 언제쯤 그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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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반복되는 테러에도 정치권 근절의지 ‘결핍’… 안전하지 않는 나라는 투자처로 환영 못받아

지난 5월 13일 화요일 저녁, 인도 서부 라자스탄 주의 관광지 자이푸르에서는 퇴근하는 사람들과 쇼핑을 즐기는 관광객이 분주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핑크색 도시라고도 불리는 관광지 자이푸르는 유적이 많고 보석세공업이 발달해 많은 국내외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흥정하고, 음식을 먹기도 하며 평화로운 일상에 몰두해 있던 순간 조용히 자전거 한 대가 혼잡한 틈을 비집고 들어와 가방 하나를 내려놓았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가운데 그 가방은 얼마 안 있어 ‘쾅’ 하는 요란한 폭음을 내며 주위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버렸다. 자이푸르에서는 이후 연이어 일곱 차례 폭탄이 터졌다. 평화로운 일상을 단번에 깨트린 폭탄은 짧은 순간에 무려 63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200명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었다.

첫 폭탄은 보석세공으로 유명한 조하리 바자르 근처에서 터졌다. 보석세공 가게가 많아 관광객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두 번째는 성 안으로 들어가는 5개의 문 가운데 하나인 상가네리 게이트(Sanganeri Gate)에 있는 하누만(Hanuman) 사원 옆에서 터졌다. 하누만은 원숭이 형상을 하고 있는 신으로 용기와 힘을 상징한다. 테러분자들은 화요일 하누만 신께 기원을 드리러 오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고 이를 노렸음이 틀림없다. 세 번째는 바람의 궁전이라는 뜻을 가진 ‘하와 마할’에서 불과 30야드 떨어진 곳에서 터졌다. 이 역시 역사적인 유적이라 외국인을 포함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나머지 다섯 개 폭탄도 이처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인 사원이나 궁전, 시장 등을 중심으로 터졌다.

종파 간 대립으로 안 번져 ‘그나마 다행’
자이푸르가 있는 라자스탄 지역은 그 동안 테러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곳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이번 테러는 의외였다. 테러리스트들은 왜 자이푸르를 선택했을까. 라자스탄은 1년에 국내 관광객 2600만 명과 외국인 140만 명이 찾는 곳이다. 역사적으로 인도로 넘어오는 관문과도 같은 역할을 했고, 예전에 비해 많이 파괴되긴 했지만 사원이 많은 곳이다. 또한 늘어나는 관광객과 함께 경제 발전 바람이 불면서 투자가 활발해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상업적인 성공에 시기심을 품은 테러분자들이 이곳을 주목했는지도 모른다. 과거 상업적으로 성공한 뭄바이, 하이데라바드가 당했던 것과 같이 말이다.

[친디아 리포트]폭탄 터지는 소리 언제쯤 그칠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폭탄 테러 이후 누가 폭탄을 터뜨렸는지를 두고 종파 간, 공동체 간 대립으로 번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바로 옆 구자라트 주에서는 2002년 테러로 힌두와 모슬렘이 충돌해 약 2000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자이푸르에서는 각 종파의 지도자들이 나서서 이번 테러 공격을 일제히 비난하고 나섰고 어느 쪽도 다른 쪽에 원인이 있다고 서로 비방하지 않았다. 비록 이번 테러 배후에 방글라데시에 근거를 둔 회교 단체나 파키스탄에서 넘어온 간첩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은 있지만, 과거 구자라트의 유혈사태를 지켜본 자이푸르 사람들은 소요로 인해 이득을 보는 사람은 정치인일 뿐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힌두든 모슬렘이든 피해를 볼 뿐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 건지도 모른다.

테러 방지 입법활동 번번이 무산
최근 폭탄 테러 상황을 나타낸 표를 보면 매년 폭탄 테러가 반복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레스토랑, 극장, 열차, 버스, 유적지 등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폭탄이 터진 것이다. 심지어 필자가 거주하는 델리에서도 폭탄이 터졌다. 하나는 파하르간지라는 시장이고 또 하나는 사로지니 마켓이며, 마지막은 버스에서 터졌다. 사로지니 마켓은 우리의 재래시장과 비슷한 곳이다.

누가 이처럼 아무 죄도 없는 일반인을 상대로 폭탄을 터뜨리는 것일까? 제일 많이 거론되는 단체는 과격 이슬람 단체다. 이번 자이푸르 폭탄 테러에서도 파키스탄에 근거를 둔 모 단체, 방글라데시에 근거를 둔 모 단체, 그외 무수한 단체가 지목되었으나, 정확한 결론은 나지 않았다. 힌두와 모슬렘 간의 갈등의 역사는 뿌리가 너무 깊으니 누가 그랬는지는 차치하더라도 왜 관계 당국이 폭탄 테러를 예방하지 못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잦은 테러는 외국인 투자자의 인도 진출을 머뭇거리게 할 수도 있다. 수익률도 좋고 인도의 경제 성장도 좋지만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곳은 투자지로 환영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진은 GM의 인도 공장.

잦은 테러는 외국인 투자자의 인도 진출을 머뭇거리게 할 수도 있다. 수익률도 좋고 인도의 경제 성장도 좋지만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곳은 투자지로 환영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진은 GM의 인도 공장.

인도에서 치안과 범죄에 대한 수사는 기본적으로 주정부 소관이다. 그런데 문제는 주정부 산하 경찰들은 대체로 장비가 빈약할 뿐 아니라 인력도 충분치 못하다. 영국과 미국의 경우 평균 300명당 경찰관 1명을 보유한 반면, 인도는 평균 728명당 경찰관 1명을 보유한 상황이다. 더욱이 인구 밀도가 높은 비하르나 우타르 프라데시 주는 치안 상태가 더 열악하다. 경찰들이 사용하는 장비도 첨단화하고 지능화하는 테러분자들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인력이나 장비뿐 아니라 조직 또한 효율적으로 운영되지 못한다. 여러 주를 넘나드는 테러 세력에 맞서려면 정부 산하 테러 방지 기관들 간에 유기적으로 협조해야 하나, 연방정부와 주정부 간에 손발이 맞지 않고, 인공위성, 휴대전화 감청 장비와 같은 정보수집 기기에 대한 사용 허가를 잘 내주지 않으며, 연방정부 정보기관들도 수집된 정보를 서로 교환하기 꺼린다.

그러나 테러 방지에 궁극적인 장애 요인은 정치권의 의지가 강력하지 않다는 데 있다. 인도에는 테러에 대처하기 위한 강력한 법이 없다. 미국이 9·11 사태를 겪은 후 ‘미국애국법(USA Patriot Act)’을 통과시킨 것과 대조적이다. ‘미국애국법’은 연방 요원들이 비밀리에 전화를 도청하고 도서관과 은행 기록들을 입수하며, 테러 용의자들의 가택을 수색하는 것을 허용할 만큼 매우 강력한 것이다. 하지만 인도는 현재의 UPA 정권이 2004년 ‘테러방지법’을 폐지한 이래 대체 입법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오히려 테러 방지와 관련한 입법 활동이 번번이 중앙 정치권에 의해 무산되는 실정이다. 일례로 전 정보국 국장인 아지트 도발(Ajit Doval) 씨는 인디아 투데이와 인터뷰에서 “법이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억제, 지연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테러리스트들과 싸우고 있는 일선 경찰들의 손을 묶고 있다”고 밝혔다.

테러 정치적 이용 땐 큰 혼란 초래
사실 국민회의당과 공산당 등 기타 세력이 연합한 집권 UPA 연합은 테러세력의 배후로 알려진 파키스탄과의 갈등이 커지는 것을 원치 않고 있으며, 공산당과 연합해 낙살라이트(Naxalite)로 알려진 무장 공산폭력단체들의 공격에도 뜨뜻미지근한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로 인해 야당인 BJP는 연일 UPA를 공격하고 있으며, 테러 공격에 맞서는 강한 정부를 구성할 수 있는 정당은 BJP밖에 없다는 점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BJP의 주장도 설득력이 크지 않다. 테러 세력에 공격의 빌미를 준 곳이 바로 BJP기 때문이다. BJP는 2002년 구자라트 주 소요 사건 때 힌두와 모슬렘 간의 갈등을 유발하고 서로 적대감을 고조시켰고, 폭력적인 소요가 일어나도록 기름을 부은 세력이다. 이들이 힌두극우주의를 표방하면서 이슬람 세력을 적대시하도록 주민들을 부추긴 것이 폭력을 촉발하고, 또 다른 폭력을 낳았다. 이처럼 정치권이 테러에 대해 책임지지 않고, 테러 대처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면서 애꿎은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만 늘어나고 있다.

인도에 폭탄이 빈번하게 터져도 아직은 외국인 투자를 저해할 만큼 심각한 실정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폭탄이 터지는 와중에도 인도 경제는 계속 발전해왔고 아울러 외국인 투자도 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폭탄 테러의 직접적인 영향보다는 그로 인한 간접 영향이다. 특히 정치권이 분열된 상황에서 폭탄 테러를 정치에 이용하려는 세력이 나타난다면 상황을 크게 악화시켜 큰 소요를 야기할 가능성이 크고 이는 다시 급격한 정치적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폭탄 테러가 발생하면, 누구의 소행이라는 소문이 급속하게 퍼지면서 후속 폭력 소요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과거 인디라 간디 수상이 시크교도의 본산인 황금 사원을 탱크로 진압하자, 시크교도였던 간디 수상의 경호원이 간디 수상을 암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델리에서는 시크교도에 대한 무차별적인 테러가 가해져 수천 명이 죽거나 다치는 경우가 있었다.

2002년 구자라트 폭력 소요 때도 마찬가지였다.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확산된 상황에서 정치인들이 증오를 부추기면 상황은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것처럼 악화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인도가 대국이라 한 지역에서 소요가 일어나더라도 다른 지역은 이에 개의치 않고 경제활동을 영위한다는 점이다.

다만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잔 매에 장사 없고, 잔병이 큰 병 된다는 점이다. 비록 9·11과 같은 큰 테러 사건이 아니라 하더라도 작은 폭탄이 지속적으로 터지면, 인도는 위험한 나라라는 인식이 퍼질 수밖에 없다. 인도에 사는 사람들은 신문에 테러 경보라는 주의 기사가 뜨고 현지 경찰들이 갑자기 도로를 막고 경비를 강화해도 늘 보던 것이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새로 인도에 진출하려고 계획 중인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굳이 폭탄이 터지는 인도에 갈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것이다. 수익률도 좋고 인도의 경제 성장도 좋지만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곳은 투자지로 환영받지 못한다. 세계적으로도 외국인 투자가 활성화된 곳들은 정치가 안정되고 사회가 안전한 곳이 대부분이라는 점을 인도의 정부, 정치가들은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이대우<포스코경영연구소 연구위원> Ldw@pos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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