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파리는 술과 섹스와 예술의 무릉도원이었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B>파리는 여자였다</B><BR>안드레아 와이스·왕정연 옮김·에디션더블유·2008

파리는 여자였다
안드레아 와이스·왕정연 옮김·에디션더블유·2008

20세기 초 프랑스 파리는 세계 여러 곳에서 몰려온 예술가들로 북적거린다. 작가 지망생, 신출내기 무명 화가들, 음악가들, 지식인들이 파리에 모여들어 막 시작한 새로운 세기의 예술을 꽃 피우려고 준비한다. 그들은 피카소나 헤밍웨이와 같이 대개는 건장한 남성들이었다. 마르셀 뒤샹, 마티스, 브라크와 같은 화가들, 셔우드 앤더슨, 스콧 피츠제럴드, 제임스 조이스와 같은 작가들, 에즈라 파운드, 엘리어트 같은 시인들, 봉두난발에 펠트 모자를 쓰고 염소수염을 기른 천재 작곡가 에릭 사티, 사진작가 만 레이, 현대 무용가 이사도라 덩컨, 거리의 샹송 가수 에디트 피아프, 그 뒤를 잇는 사르트르와 시몬느 드 보봐 …. 이렇듯 파리는 곧 예술가로 넘쳐나는 예술가들의 엘도라도, 신천지였다. 사람들은 파리를 남성 예술사가 만들어진 장소라고 기억한다.

그러나 그 이면도 있다. 매혹적인 이 빛의 도시를 활보하고 둥지를 튼 것은 남성 예술가들만이 아니다. 노천 시장, 헌책방들, 불로뉴 숲 호숫가 노천카페 따위가 있는 파리의 센강 우안(右岸) 그 건너편 좌안(左岸) 기슭을 가리키는 레프트뱅크에 둥지를 튼 여성 예술가들이 있었다. 그들은 아주 느슨한 여성들만의 독특하고 자유로운 우정과 자의식의 공동체를 만든다. 그들은 거기서 살면서 시와 소설을 쓰고, 사진을 찍고, 기사를 쓰고, 서점이나 살롱을 열어 예술가들에게 장소를 제공했다.

1917년 3월, 레프트뱅크의 서점 겸 대본점인 ‘라 메종 데자미 데 리브르’ 문 앞에서 한 젊은 여자가 서성거렸다. 서점 주인이자 작가이고 출판인인 아드리엔느 모니에는 이 여성을 따뜻하게 맞이했다. 이 여성의 이름은 실비아 비치다.

실비아가 수줍게 발을 들여놓은 아드리엔느 서점은 이미 아방가르드 문학의 중심이자 모더니즘 운동의 탄생지였다. 앙드레 브르통, 폴 발레리, 콜레트, 기욤 아폴리네르, 쥘 로맹, 장 콕토, 레옹 폴 파르그, 앙드레 지드 등이 그 서점의 단골이었다.

실비아 비치는 나중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를 설립하고, 음란하다는 이유로 인쇄소들이 인쇄를 거부해서 미래에 대한 기약없이 공중에 떠 있던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받아 책으로 펴낸다. 실비아는 무명 기자이자 작가 지망생인 한 젊은 미국인에게서 ‘진정한 작가적 기질’을 발견하고 아낌없이 지원했는데, 그가 바로 헤밍웨이다. 어쨌든 실비아와 아드리엔느의 만남은 프랑스에서 영미문학이 꽃을 피우는 데 크게 기여한다. 실비아는 제 에너지와 모든 재정적 자원을 다 동원하고, 조이스의 까다로운 요구 조건을 다 들어주며 ‘율리시즈’를 내지만, 엄청난 재정적 손실을 입고 그 때문에 파산 위기에 직면한다.

실비아가 파산할 무렵 제임스 조이스는 실비아에게 ‘율리시즈’의 전 세계 판권을 양도하는 계약서를 써주긴 하지만, 얼마 안 가 스스로 계약을 위반하고, 실비아 몰래 랜덤하우스와 미국 판권 계약을 맺고 거액의 달러를 챙긴다.

많은 예술가를 압도적인 힘으로 끌어당기고 영향을 미친 거트루드, 그래서 ‘모든 모더니스트의 영적인 어머니’라고 불리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거트루드의 ‘살롱’에는 작가와 화가, 음악가, 문하생, 그 외에도 수많은 사람이 드나들었다. 거트루드는 나중에 대가가 된 그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필요한 도움을 베풀었다. 그 중 한 사람이 화가 피카소다. 거트루드는 당시 가난하고 무명화가였던 피카소의 그림을 사들여 그를 재정적으로 도왔다. 거트루드와 피카소는 우정을 쌓고, 피카소는 거트루드의 초상화를 여러 장 그렸다. 당시에는 무명작가였던 헤밍웨이 역시 거트루드의 그늘에 있던 사람 중 하나였다. 헤밍웨이는 거트루드의 원고를 베끼고 교정쇄를 손보는 작업을 하면서 작가에게 필요한 많은 것을 습득할 수 있었다.

거트루드는 종종 사람들에게 헤밍웨이가 자신의 훌륭한 학생이라고 소개하곤 했다. 거트루드는 자신의 ‘살롱’을 거쳐 간 ‘수제자’들이 빛을 보는 걸 지켜봤다. 정작 거트루드 자신이 쓴 글은 출판사에서 거절당했다. 대중과 평단의 갈채를 받으며 예술가로 입지를 넓혀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참담한 심경이 되곤 했다.

낸시 큐나드 아버지 모자를 쓴 재닛 플래너. 배러니스 애벗이 찍은 유명한 인물 사진이다.

낸시 큐나드 아버지 모자를 쓴 재닛 플래너. 배러니스 애벗이 찍은 유명한 인물 사진이다.

거트루드는 “출판이 안 되니 자꾸 우울하고 불안해진다. 출판하고 싶다”고 적기도 한다. 미국인 목사의 딸로 뉴저지 프린스턴 출신인 실비아 비치가 그랬던 것처럼,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문학과 예술에 대한 갈망과 흠모, 그리고 숨길 수 없는 예술적 재능으로 넘쳤던 여자들이 파리로 몰려들었다. 누구도 부른 적이 없지만 그들은 사부아와 부르고뉴, 그리고 런던, 베를린, 뉴욕, 시카고, 인디애나, 캘리포니아에서 파리로 왔다. 그들의 공통점은 파리를 너무나 좋아한다는 점이다. 파리는 그들에게 예술의 이상향, 술과 분방한 섹스와 새로운 예술의 기운이 넘치는 무릉도원이었다. 이들 여성 예술가 대부분에겐 남편과 자식이 없었다. 그들은 말 그대로 자유로운 여성들이다. 결혼 경험이 있는 여성들은 이혼했거나 미망인들이고, 대개는 결혼한 적이 없는 독신 여성들이다. 그들은 여러 가지 점에서 다른 사람들이다.

국적, 돈, 예술적 취향과 재능, 추구하는 예술에서의 우선순위, 정치 관점, 섹슈얼리티의 차이에 따라 잘게 쪼개지고 대립의 각을 날카롭게 세웠지만, 그 차이가 예술을 향한 열정과 우정으로 얽힌 관계들을 뒤엎을 만큼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레프트뱅크에 안착한 이들 창조적 에너지로 넘치는 여성 예술가, 작가, 학자, 출판인 들은 파리의 문화지형을 바꿔놓는 일들을 벌인다.

이를테면 오데옹 가에 있던 실비아 비치와 아드리엔느 모니에의 서점, 야콥 가에 있던 나탈리 바니의 살롱, 그리고 플레뤼 가에 있던 거트루드 스타인의 살롱은 단박에 파리의 모더니즘 예술이 배태되는 자궁이자 그것에 젖을 물려 수유(授乳)하는 내실(內室)이 되었다.

이 여성들은 왜 파리에 왔을까. 파리의 무엇이 그들을 호출했을까. 이들이 파리에 온 것은 파리가 그 내부에서 발효시킨 예술적 분방함, 그리고 자유와 막 싹을 틔우기 시작한 모더니즘이 공중에 흩뿌린 방향(芳香) 때문이다. 그들은 꽃에서 꿀과 꽃가루를 얻기 위해 파리로 몰려든 것이다. 꽃이 예술이라면 꿀은 자유였다. 이때 자유의 한 부분은 성적인 분방함을 뜻한다. 그러나 이 자유가 여러 상대와의 자유분방한 성관계나 혼음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보다는 이성애의 원칙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여성에 대해 남성들이 만든 규범들에서 자유로워지는 것, 즉 여성을 사랑할 수 있는 자유에 더 가깝다. 레프트뱅크의 여성들 대부분이 여성 동성애자거나 양성애자였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거트루드 스타인의 여성 동거인인 앨리스는 스타인을 꼼꼼하게 돌봐주는 ‘아내’이자 뮤즈이고 영감을 주는 사람이었다. 나중에 크게 성공하는 거트루드의 자서전 ‘모두의 자서전’은 앨리스가 초고를 받아 적고 문장을 자기 식으로 꼼꼼하게 고쳐 내놓은 것인데, 그 책은 모든 면에서 앨리스의 책이기도 하다. 레프트뱅크의 여자들은 거트루드와 앨리스와 같이 이성애의 편협한 관습과 통념에 맞서 강렬한 우정으로 끈끈하게 맺어지는 동성과 더 넓은 관계를 일궈낸다.

20세기 초 파리로 몰려와 예술가이자 지식인의 삶을 세우려고 한 이들 개척자 사이에 형성된, ‘역사의 아주 특별한 순간에 파리의 희망 같은 무형의 무엇인가에 의해 불붙은 우정’은 파리의 예술을 꽃 피우게 한 힘이었다. 그러나 이면은 그림자와 같이 빛이 넘치는 이쪽의 반대편에 조용히 존재한다.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작가인 안드레아 와이스는 바로 그 이면을 다루는데, 여성이 남성 예술가들의 조력자나 정부(情婦), 혹은 뮤즈를 넘어서서 그들 스스로 예술과 지식의 창조자로 어떻게 살았는지에 초점을 맞춰 책을 쓴다. ‘파리는 여자였다’가 그것이다. 이것은 남성 중심으로 기술된 예술사가 고의적으로 누락한 여성 예술사이며, 남성에게 속박되는 걸 거절한 발칙하고 괘씸한 여성들의 자유로운 삶과 우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

독서일기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