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민주당 의원 조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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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 청문회 스타로 뜬 ‘버럭 경태’

조경태 통합민주당 의원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가 있습니까? 그런 쇠고기가 있으면 나한테 좀 주세요.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

조경태 있습니까, 없습니까!

정운천 선택에 따라서 …….

조경태 미국인들이 값싸고 질 좋은 30개월 쇠고기를 먹고 있습니까? 30개월된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 있으면 지금 저한테 내놔봐요.

[인물연구]통합민주당 의원 조경태

5월 7일 쇠고기 청문회에서 있었던 이 장면은 인터넷에서 동영상으로 인기를 얻었다. 조 의원에게는 ‘조포스’ ‘승리의 조경태’ ‘버럭 경태’ ‘호통 경태’ ‘리틀 노무현’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조 의원 자신은 ‘조포스’라는 호칭에 호감을 갖고 있다. 포스(force)란 힘이 넘친다는 의미다. 조 의원은 “미래에 대한 건강한 비전을 보여주는 호칭이란 점에서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청문회 스타로 떠오른 그는 늘 노무현 전 대통령과 비교된다. 정치적 고향이 부산이며, 지역주의를 딛고 일어 선 인물이라는 점 때문이다.

조 의원은 민주당에는 황무지나 다름없는 부산(사하 을)에서 지역주의를 딛고 17대와 18대 총선에서 연거푸 금배지를 달았다.

그가 중앙정치 무대에서 자신의 모습을 부각시킨 것도 노 전 대통령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2002년 8월,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노 전 대통령이 인기가 점점 떨어질 때였다. 의원·지구당 위원장 연석회의에서 안동선 전 의원이 노 후보의 사퇴를 압박하는 발언을 하자, 조 의원(당시 지구당 위원장)이 일어섰다. 그는 격한 어투로 ‘나가려면 안 의원이 나가야 한다’고 발언했다.

조 의원이 당시 거칠게 항의하자 당직자들이 그의 발언을 제지하기 위해 나선 장면이 사진 기자들의 카메라에 잡혔다. 그때까지 어느 누구도 정치인 조경태를 주목하지 않았다. 그는 두 번이나 총선에 떨어진, 부산의 한 지역구 위원장에 불과했다.

조 의원은 “그 사건이 일어난 지 1주일 후 노 전 대통령에게서 ‘고맙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회고했다. 당시 당내 친노 인사들에게도 그의 ‘거친 항변’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 당내 후보를 흔들려는 반발 세력에 일침을 놓았다는 것이다.

마치 5월 7일 쇠고기 청문회에서 국민들이 그에게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조 의원은 “청문회에서 정부가 거짓말과 말 바꾸기를 하고 있다고 느꼈다”면서 “무조건 자리 보전만 하려는 고위 공무원을 보고, 제 목소리가 아닌 국민의 목소리와 성난 민심을 전달하려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격려의 글이 쏟아지자 그는 “세비를 받는 국회의원으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기 때문에 너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 의원은 자신이 평소에는 조용하다고 말했다.
“혈액형이 A형인데 원래 유순하다. 학교에 다닐 때는 국민윤리 성적이 좋았다. 하지만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을 보면 참지 못한다.”

17대 상임위에서도 그는 몇 차례 격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농담으로 혈압은 정상이라고 말했다. 그에게는 ‘조포스’도 마음에 들지만 ‘버럭 경태’도 마음에 든다. 무슨 일이든지 나서야겠다고 마음먹으면, 나서고야마는 자신의 성격을 잘 나타낸 별칭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는 부산대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했다. 86학번인 그는 학생운동에 참여했고 1987년 6월 항쟁을 겪었다. 당시 운동권 내에서 그는 ‘떠오르는 샛별’이란 별칭이 붙었다고 한다. 평소에 얌전하지만 시위에서 야무지게 싸운다는 데서 붙은 이름이라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과 비교하자, 조 의원은 “그 분은 청문회에서 명패를 집어던졌지만 저는 그것에 비하면 양반”이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이 의원 시절 5공 비리청문회에서 명패를 집어던진 상황을 이야기한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5공 청문회에서 ‘청문회 스타’로 부상한 것처럼 그 역시 쇠고기 청문회에서 ‘청문회 스타’로 떠올랐다.

5월 12일 조 의원은 김해 봉하마을로 내려가 노 전 대통령을 만났다. 총선 후 처음 만난 자리였다. 노 전 대통령만 바라보던 방문객의 3분의 1가량이 조 의원을 쳐다봤다고 했다. 인터넷에서 인기 상종가인 조 의원에게 환호하자, 노 전 대통령이 “나의 라이벌이 생겼다”고 농을 건넸다. 봉하마을을 찾아온 사람들이 오로지 노 전 대통령만 바라보다, 조 의원에 관심을 갖는 현상을 보고 한 말이다.

조 의원이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6년이다. 15대 총선에서 20대의 나이로 부산 사하구에 출마한 조 의원과 서울 종로에 출마한 노 전 대통령이 서로 지구당 위원장 자격으로 만난 것이다. 그는 노 전 대통령과 자신의 관계가 비슷한 연배의 부산 측근과의 관계와 다르다고 설명했다. 부산 측근들은 노 전 대통령의 참모지만, 자신은 비록 나이 차는 있지만 노 전 대통령과는 정치적 동지 관계라는 것이다. 그는 나무로 그 관계를 비유했다. 노 전 대통령이 큰 나무라면 자신은 작은 나무이며, 독립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그는 ‘리틀 노무현’이란 표현에는 고개를 흔들었다.
“개인적으로 영광이다. 전임 대통령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나 자신은 그런 표현을 쓰고 싶지 않다. 그 분은 그 분의 정치를 하는 것이고, 나는 나의 정치를 하는 것이다. 나는 단지 조경태로 기억되고 싶다.”

그는 정치인으로 특이하게도 토목공학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부산대)를 갖고 있다. 보는 시야가 넓고 실천적이란 점이 공학 박사가 정치를 하는 데 이로운 점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그가 두 번씩이나 연거푸 ‘나홀로’ 당선한 부산 사하구는 유별나게 민주당에 유리한 지역이 아니다. 호남 주민이 많은 것도 아니고, 젊은 층이 유독 많은 곳도 아니다. 15대 총선과 16대 총선에서 두 번이나 떨어졌지만 조 의원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탄핵 바람을 타면서 유권자들 사이에 ‘저 친구에게 한번 맡기면 우리를 잘 대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했고, 이번 18대 총선에서는 ‘맡겨 보니 잘 하네’라는 평을 들었다는 것이 조 의원의 설명이다.

지역주의를 딛고 재선한 비법을 묻자,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하구민과 궁합이 잘 맞았다. 사하구민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훌륭한 유권자다. 나는 운이 좋았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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