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생필품값 폭등‘물가와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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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빈곤층 서민 경제 ‘휘청’ 정치문제화… 식량 위기설 퍼져 현 정부 재집권 불투명

[친디아 리포트]곡물·생필품값 폭등‘물가와의 전쟁’

글로벌 인플레이션 파고가 인도를 덮치고 있다. 두 자릿수 성장률 기대 대신 물가급등과 경기둔화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정권교체설과 식량위기설 등으로 확산되고 있는 분위기다. 지난 4월 인도의 유력 주간지 비즈니스투데이는 “식품가격 급등이 내년 총선에서 현 연정이 재집권하는 것을 어렵게 할 것인가?”라는 인터넷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도대체 물가가 얼마나 올랐기에 이런 설문을 진행했을까?

쌀 수출 금지, 식용유 관세는 폐지
4월 넷째 주 기준 도매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7.6%, 지난 3월 말 이후 지속 7%대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2004년 11월 중순 7.7% 이후 최고로 연초 인도중앙은행의 연간 목표치인 5%를 크게 초과한 것이다. 소비자물가는 3월 초 현재 7.8%를 기록, 도매물가를 후행하는 성질을 고려할 경우 곧 8%대를 돌파할 가능성이 크다.

물가상승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원인과 같은 주요 곡물 및 원자재 가격폭등이다. 4월 넷째 주 쌀과 밀의 도매가격 상승률은 각각 7.6%를 기록했다. 쌀은 2주 전의 7.8%에 비해 소폭 낮아졌지만 밀은 2주 만에 2%포인트나 인상되었다. 인도인의 식탁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최근 바이오 에너지로 각광받는 식용유의 경우, 같은 기간 13.2%나 상승했다. 철광석과 금속제품 가격도 같은 기간 40% 이상 상승했다. 이중에서도 인도 정부를 가장 곤혹스럽게 하는 것이 곡물가격이다. 전체 인구의 약 3분의 1이 아직 빈곤선상에 있는 인도의 현실을 감안하면 이들 가격의 상승은 곡물 구매력의 감소, 배고픔으로 바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는 경제적인 문제를 넘어 정치적 문제로 확산된다. 물가관리에 실패한 정부가 재집권에 성공한 사례가 드물 정도로 인도에서는 물가, 그중에서도 곡물가격은 중요한 관리대상이다.

올 5월에만 6개의 주(州)에서 의회 선거가 실시된다. 내년 4~5월에는 현 정권의 재집권을 묻는 총선이 예정되어 있다. 야당 정치 지도자들은 벌써부터 “물가관리에 실패한 정부는 정권에서 당장 물러나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재 인도 정부는 사실상 비상 상태다. 4월 초 인도 정부는 바스마티(basmati) 쌀이 아닌 다른 종류의 쌀에 대해 수출을 금지했다. 지난 3월 말 쌀 수출가격 하한선을 무려 54%나 인상한 인도 정부는 1주일 만에 아예 수출을 금지했다. 바스바티 쌀의 수출가격 하한선도 20% 이상 인상했다. 식용유에 부과하는 관세는 아예 없애버렸다. 5월 초에는 감자, 대두유, 고무 등의 선물거래를 4개월간 중단했다.

인도중앙은행은 지난 4월 중순 7.75%인 은행의 현금보유비율(Cash Reserve Ratio)을 4월 말 0.25%, 5월 초 0.25%포인트 각각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4월 말에는 또다시 0.25%포인트 추가 인상을 단행했다. 이에 따라 은행의 현금 보유 비율은 5월 24일부터 8.25%가 적용된다. 단기에 현금 보유 비율을 0.75%포인트나 인상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것으로 물가당국의 다급함을 시사해준다. 그 동안 성장동력을 약화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물가대책을 주장했던 상무부도 4월 들어서는 “지금은 성장 대신 물가대책에 총력을 기울일 때”라고 돌변, 기타 생필품의 수출 금지 조치 등을 적극 발동할 것임을 공식화했다. 독점및경쟁제한위원회는 철광석, 시멘트, 고무 등에 대한 가격담합 조사를 시작했다.

만모한 싱 총리는 “식료품 가격 상승은 빈곤 퇴치를 감속시키며 경제성장을 막고 고용을 후퇴시킨다”며 물가대책 총력전을 선포했다. 심리전도 동원되었다. 정부는 4월 말 이후이면 밀 수확이 정점에 오를 것이고, 최근 풍작을 기록한 호주의 밀 수확이 본격화되면 국제 밀 가격이 떨어질 뿐 아니라 정부의 곡물 재고량도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의 물가상승은 없고 곡물 가격은 점차 안정을 찾아갈 것이라며 필요 이상의 사재기와 부당한 가격에 대한 거래 자제를 당부하고 있다.

[친디아 리포트]곡물·생필품값 폭등‘물가와의 전쟁’

인도의 곡물 및 식료품 가격은 안정세를 찾을 수 있을까? 먼저 정부의 조달 및 출하, 비축물량을 살펴보면 큰 문제를 발견할 수 없다. 올 1월 기준 쌀과 밀의 정부 비축 물량은 각각 1148만t과 771만t으로 총 1919만t에 이른다. 이는 지난해 1월의 1740만t보다 10.3%나 증가한 것이다. 정부의 주장대로 최근의 곡물가 상승에는 글로벌 가격 상승에 따른 심리적·투기적 요인이 강해 보인다. 실제로 인도의 도매물가상승률은 지난 2월 중순 처음으로 연간 목표치 5%를 넘어서 약 1개월 만인 3월 중순 7%를 돌파했다. 단숨에 2%포인트 이상 급등한 것은 국제 곡물가 급등에 따른 심리적·투기적 요인이 개입된 것이 분명해 보인다.

시장에서는 인도 정부가 쌀 수출을 금지하면서 오히려 쌀 거래가 끊기고 대신 호가만 올랐다고 비난하고 있다. 가격 급등을 틈타 업자들이 곡물을 시장에 풀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비축분을 지속적으로 방출하면서 가격 오름세를 저지하고 있다. 정부 비축분이 실제보다는 훨씬 적을 것이란 관측도 곡물가격 오름세를 자극하고 있다. 정부의 불투명한 처리 및 비효율적인 관리로 통계보다는 실제 비축분이 적을 것이란 주장도 어느 정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농업생산성 정체도 식량부족 원인
한편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도는 구조적으로 식량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즉 인도의 식료품 가격, 특히 주요 곡물가격의 상승은 글로벌 가격 상승과 관계없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더 나아가 농업정책 실패에 따른 구조적인 문제라는 주장이다. 녹색혁명을 통해 이미 1970년대 식량의 자급을 이룩하고 1990년대부터는 주요 곡물을 수출하고 있는 ‘식량증산 모범국’이 ‘식량 부족국’으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이들 주장의 핵심은 농업생산성의 정체다.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2006년 기준 1헥타르당 인도의 밀 생산량은 2619㎏, 이는 프랑스의 6741㎏은 물론 중국의 4455㎏에 비해서도 크게 낮은 수준이다. 특히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증가율을 보면 인도는 0.3%, 이에 반해 프랑스는 7.9%, 중국은 무려 13.3%에 이른다. 2007년에는 550만t을 t당 205달러를 지불하고 수입했다. 올해는 최근까지 180만t을 t당 374달러에 수입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쌀은 대표적인 수출품이지만 생산 정체현상을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인도는 1㏊당 3124㎏을 생산하지만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은 4700~4800㎏을 생산하고 중국은 두 배나 많은 6265㎏을 생산하고 있다. 지난 4년간 쌀 생산증가율도 인도가 0.2%에 안주하고 있을 때 베트남은 5% 이상, 중국은 3.4%를 기록하고 있다. 실제로 쌀과 밀을 포함한 곡물의 지난 10년간 생산량을 보면 약 2억t 수준에서 작황에 따라 심한 편차를 보일 뿐 증가했다고 보기 어렵다. 1인당 곡물 생산량 추이를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1975년 183㎏이 1995년 205㎏까지 높아졌지만 2005년에는 다시 186㎏으로 감소한다. 사실상 거의 늘어나지 않은 셈이다.

“고물가로 재집권 어렵다” 75%

인도의 곡물가 급상승은 빈곤층에 견딜 수 없는 무게다. 빈민촌의 한 소녀가 굶주림에 지쳐 있다.

인도의 곡물가 급상승은 빈곤층에 견딜 수 없는 무게다. 빈민촌의 한 소녀가 굶주림에 지쳐 있다.

경작지도 문제다. 1990년 1억4300만㏊였던 경작지는 2005년 1억4189만㏊로 오히려 줄었다. 인도 정부는 현재의 인구증가율 약 1.2%에 최근의 높아진 경제성장률을 감안할 때, 2020년쯤에는 최소한 2억8000만t 이상의 곡물이 필요하다고 전망하고 있다. 최소한의 곡물 수요량을 감안할 때 곡물생산 증가율이 연간 최소 2%를 넘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이러한 낮은 농업생산성의 배경에는 낙후된 인도의 농업기반시설 및 영세농업 위주의 구조, 비효율적인 정부정책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인도 농지의 관개 보급률은 40%, 나머지 60%는 아직도 자연 강우에 의존하는 천수답이다. 1헥타르 미만 농가가 전체 농가의 63%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전체 농가의 약 27%만이 금융기관 등 공적 기관을 통해 영농자금을 조달할 뿐 전체의 51% 농가는 공적 기관은 물론 사적 기관, 어느 쪽으로부터도 금융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농업금융이 지속 증가하고 있는데도 이런 현상은 거의 개선되지 않고 있다. 2002년 6966억 루피였던 농업 금융이 2006년 2조329억 루피로 3배 이상 증가했지만, 여전히 인도 농촌에는 50억 루피보다 500루피 대출받기가 더 어렵다는 얘기가 만연해 있다.

곡물의 생산 및 분배시스템의 한계도 지적되고 있다. 우선 곡물의 국제가격이 국내가격보다 항상 높게 형성된다. 공적분배시스템에 따라 저렴하게 곡물을 공급하기 위해서 수년째 낮은 구매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영세농가의 소득 향상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국제가격과의 격차가 커질수록 정부 구매 회피, 사적 유통 및 수출 거래의 유혹이 커진다. 곡물 소비자와 공급자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구조적 한계로 이를 보전하는 정부의 예산 부담이 급증하고 있다. 1997년 이에 대한 정부보조금은 750억 루피였지만 2007년에는 2543억 루피로 3배 이상 커졌다.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국제 곡물가격 상승은 장기적으로 인도와 같은 곡물 수출국에 유리하다는 주장도 많다. 그 동안 농업생산성 정체를 겪어왔지만 전 국토의 50%가 경작이 가능한 점, 풍부한 농촌 노동력, 다양한 생태지역, 경작에 유리한 기후조건 등을 고려하면 인도만큼 농업 성장잠재력이 높은 나라도 없다는 것이다. 사실 주요 곡물은 물론 웬만한 농작물은 낮은 생산성에도 불구하고 생산량 세계 5위권에 들어 있다. 농산물로만 연간 120억 달러 정도를 수출하고 있다. 최근 현대적인 대형 유통업체들의 등장과 함께 이들과의 계약 재배 등이 농촌에서 시작되고 있는 점도 인도 농업의 미래를 밝혀주고 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으로 유발된 인도의 고물가는 단기적인 물가오름세 심리, 투기적 수요, 장기적인 식량위기설 등으로 단기에 잡힐 것 같지는 않다. 이에 따라 주 의회 선거는 물론, 내년 총선에서 현 정권의 재집권 가능성은 좀더 불투명해진 것이 사실이다. 분명한 점은 고물가가 지속되는 한 재집권의 가능성은 낮아지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현 정부의 노력은 강화된다는 점이다. 앞서 비즈니스투데이가 실시한 인터넷 여론조사의 결과도 이를 반영하듯 고물가가 재집권을 어렵게 할 것이란 응답이 전체의 75%에 달했다.

또 하나 분명한 점은 설사 현 정부가 재집권에 실패하고 또 다른 정부가 출범해도 인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제한적이다. 이미 1991년 개혁개방정책 이후에만 집권정당이 몇 번이나 바뀌었지만 인도 경제는 후퇴하지 않았다. 정권 변화 가능성과 관계없이 또 하나 분명한 점은 농업생산 정체 국가로서의 문제점과 동시에 농업생산 대국으로서의 발전 가능성이다. 어느 가능성을 택할지는 순전히 인도 자체에 달려 있다.

조충제<롯데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cjcho@lotte.dp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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