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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할’ 해외 유명 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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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리더]‘지구를 구할’ 해외 유명 운동가

레스터 브라운 | 레스터 브라운의 이름 앞에는 늘 최상급의 찬사가 따라다닌다. ‘환경운동의 정신적 스승’이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 중 한 사람’이라는 레스터 브라운은 1934년 뉴저지에서 태어났다. 고교 시절과 대학 시절에는 남동생과 함께 농사일을 했다. 대학에서 농업과학을 전공했고, 농업경제학과 공공정책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학 졸업 후 여섯 달 동안 인도에 머물면서 식량 및 인구 문제에 눈을 떴다.

‘환경정책의 대부’라고 불릴 만큼 환경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지만, 그에게는 박사학위가 없다. 레스터 브라운은 환경문제를 다루는 계간지 ‘인 컨텍스트’와 인터뷰에서 “특정 분야의 전문 지식을 추구하는 데 끌린 적은 없다”고 고백한 바 있다. 토마토 농장을 경영하는 농부로서 “식물의 질병이나 날씨, 토양, 시장이 농업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 등 여러 분야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통합적인 사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그의 이름과 동의어가 되다시피 한 월드워치연구소의 지구환경보고서가 줄곧 견지하고 있는 종합적이고 거시적인 시각은 이처럼 어떤 문제를 복합적으로 바라보는 그의 태도와 맞닿아 있다.

레스터 브라운은 2001년 지구정책연구소를 설립하고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를 달성하기 위한 비전과 로드맵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는 50여 권의 저서를 단독 또는 공동으로 집필했으며, 이 책들은 전 세계 40여 개 언어로 번역됐다. 올해 1월 출간된 ‘플랜 B 3.0’에서는 지구촌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20년까지 80% 줄이고, 2008년부터 해마다 탄소세를 부과하여 2020년에는 1t당 최대 240달러까지 끌어올리자고 제안했다.

[환경리더]‘지구를 구할’ 해외 유명 운동가

제인 구달 | “65년간의 생을 뒤돌아보면, 모든 것이 있어야 할 자리에 놓여 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침팬지의 대모’ 제인 구달의 삶은 이제 막 한 살을 넘긴 여자 아이에게 그녀의 아버지가 침팬지 인형 ‘주빌리’를 선물하던 순간 이미 결정되었는지도 모른다. 1934년 런던에서 태어나 본머스의 바닷가에서 자란 구달에게 자연과 동물은 숨쉬는 공기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나는 늘 온갖 종류의 동물들에 강렬히 매료되곤 했다”는 그녀의 말 그대로, 어린 제인은 개, 고양이, 햄스터, 거북이, 카나리아, 달팽이 등 온갖 동물에 둘러싸여 있었다.

23살 때 아프리카에서 유명한 인류학자 루이스 리키와 만난 것을 계기로 침팬지 연구에 발을 들여놓은 후, 그녀는 타고난 인내심과 끈질긴 집념으로 인간과 침팬지 사이의 유사점을 발견함으로써 영장류 연구에 굵직한 획을 그었다. 구달은 1965년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그녀의 연구 작업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세계적인 유명인이 되었고, “야생 침팬지에 대한 35년간의 탁월한 연구 업적과 자연을 보호하기 위한 쉼없는 노력”을 인정받아 1995년 내셔널 지오그래픽으로부터 허바드 메달을 받았다.

구달은 자전적인 기록 ‘희망의 이유’에서 “나는 사실 매우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침팬지 연구와 환경운동에서 그녀가 보인 정열과 헌신을 떠올릴 때, 이 말을 문자 그대로 믿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설령 그녀가 남보다 운이 좋았던 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녀에게만이 아니라 “지구의 문제를 진정으로 걱정”하는 모든 이에게도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환경리더]‘지구를 구할’ 해외 유명 운동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 이름만으로 영화의 흥행을 책임질 수 있는 배우는 드물다. 별천지 할리우드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14년 전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의 섬약한 정신지체아 연기로 스타덤에 오른 후 초대형 흥행작 ‘타이타닉’을 거쳐 세계 영화계의 가장 빛나는 별이 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자신의 이름만으로 영화의 흥행을 보장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배우 중 하나다. 지금의 명성을 유지한다면 할리우드 명예의 전당에 등극할 것이 분명한 이 수려한 용모의 배우는 환경 재앙으로부터 지구를 구할 녹색 영웅의 전당에 이미 이름을 올렸다.

지난 1월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우리 시대 환경운동을 대표하는 인물들을 소개한 ‘지구를 구할 50인’의 명단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포함시켰다. 이 신문 편집자는 선정위원들 사이에 그를 둘러싼 논란이 있긴 했지만, 그의 세계적인 영향력과 유명세가 환경문제를 알리는 데 기여할 것이라는 점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고 밝혔다.

디카프리오는 10년 전 영화 ‘비치’ 촬영 당시 제작진이 영화적 효과를 위해 아름다운 해변을 훼손했다는 비난을 받은 일을 계기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재단을 설립하면서 환경운동가로 공적인 이력을 시작했다. 그는 2000년 ABC방송을 통해 클린턴 전 대통령과 지구의 날 특별 인터뷰를 진행했다. 새파란 배우에게 거물과 인터뷰할 기회를 빼앗긴 ABC 기자들의 질투를 받으며 진행한 이 인터뷰에서 디카프리오는 기후 변화의 과학, 거대 정유사들의 로비, SUV 판매량 감소 대책 등에 대해 도발적인 질문들을 퍼부었다.

디카프리오는 2007년 기후 변화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다큐멘터리 ‘11번째 시간’을 찍은 데 이어 현재 ‘에코 타운’이라는 제목의 디스커버리 채널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그의 이름을 레스터 브라운이나 제인 구달 같은 환경 운동의 큰 이름들과 나란히 놓기는 힘들겠지만, 그가 자기 분야에서 획득한 명성을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데 이용하는 데서 모범적인 길을 걷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환경리더]‘지구를 구할’ 해외 유명 운동가

앨 고어 | 2000년 미국 대선 결과는 앨 고어의 정치적 이력에서는 패배로 기록되겠지만 앨 고어의 개인사에서는 그를 세속적 명성과 부의 정점으로 들어올린 지렛대로 기록될 것이다.

그는 2000년 이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행한 1000회 이상 강연으로 한 번에 10만 달러(약 1억 원)의 강연료를 챙겼고, 2006년 출간한 ‘불편한 진실’은 현역 상원의원이던 1992년 출간한 ‘위기의 지구’에 이어 또다시 그에게 베스트셀러 작가의 영예를 안겨주었다. 2007년 10월에는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협의체)와 함께 노벨 평화상을 공동으로 수상하면서 세속적 명예의 정점에 올랐다.

환경문제에 대한 그의 관심이 느닷없이 생긴 것은 아니다. 그는 이미 1978년에 현역 미국 국회의원으로서는 최초로 온실가스에 대한 청문회를 열었고, 1989년에는 워싱턴 포스트에 “숲이 파괴되고 있으며 오존층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있다. 생물들은 전에 없는 속도로 죽어가고 있다”며 환경 파괴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글을 기고했다.

지난해 12월 AP통신은 그가 테네시 주 내슈빌의 자택을 전면 개조했다고 보도했다. 그의 집이 미국 평균 가구의 20배를 넘는 전력을 쓴다며 고어를 위선자라고 부른 환경단체의 비난에 응수한 것이다.

앨 고어는 지난 4월 2일부터 3년간 3억 달러를 모금하는 사상 최대의 환경보호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가 우리 시대의 가장 권위 있는 환경운동가는 아닐지라도, 우리 시대의 가장 유명한 환경운동가 중 한 사람임은 분명하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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