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장관 김하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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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 전도사서 비핵정책 집행자로 ‘돌변’

[인물연구]통일부 장관 김하중

‘동명이인이었나?’
3월 27일 통합민주당 차영 대변인은 김하중 통일부 장관의 발언을 언급하면서 ‘동명이인이었나 하는 생각을 할 정도’라고 말했다.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당시 청와대 문화관광비서관이었던 차영 대변인은 당시 의전비서관이던 김 장관과 함께 평양을 다녀왔다. 2000년 6월 방북 당시의 김하중 의전비서관과 2008년 3월 통일부 장관이 이름은 같으나 다른 사람이 아니냐라고 꼬집은 것이다.

두 대통령 거치며 주중대사 장수
차영 대변인이 지적한 것은 3월 26일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10년간의 대북정책을 반성한 부분이다. 이날 김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 앞에서 “새로운 출발에 앞서 저희는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면서 “지난날 통일부가 국민의 소리를 경청하지 않고 눈높이를 맞추지 못함으로써 남북관계에 대한 국민의 걱정과 우려를 자아냈다”고 말했다.

1998년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의전비서관과 외교안보수석을 역임한 후 2001년부터 올해까지 주중 대사를 역임한 김 장관은 ‘햇볕정책의 전도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일부 장관에 내정된 후 베이징에서의 한국특파원과 귀임 간담회를 하고 그는 6·15 정상회담 당시 “북한에 가서 울었다”며 “아침 저녁으로 기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새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맡자마자 그는 ‘비핵·개방·3000정책의 집행자’로 돌변했다. 그는 장관 취임 후 처음으로 관련 기관 관계자를 만나는 자리인 3월 19일 개성공단 입주기업 대표 간담회에 참석해 “북핵문제가 타결되지 않으면 개성공단 확대가 어렵다”고 발언했다. 이 발언은 북한을 자극해, 3월 27일 북한은 개성공단 내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 직원들을 철수하게 했다. 새 정부 들어 남북교류의 첫 단추를 잘못 채우게 된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민주당 비례대표 후보인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이 발언은 실익이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김 장관의 ‘돌변’을 두고 새 정부의 인수위 시절 한 공무원이 토로한 ‘공무원에게는 영혼이 없다’라는 말을 거론하고 있다. ‘영혼이 없는 공무원’의 대표적인 예로 김 장관을 들고 있는 것이다.

김 장관을 아는 인사들 사이에는 칭찬이 앞선다. ‘완벽하다’ ‘성실하다’ ‘중국 인맥이 두텁다’ ‘중국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의전업무가 탁월하다’ 등이다. 김 장관은 1973년 제7회 외무고시에 합격해 35년 동안 외교관으로 살아왔다. 서울대 중문학과를 졸업한데다 외무부 동북아2과 과장, 주중국대사관 공사, 아시아·태평양국 국장 등을 역임할 정도로 외교부 내 대표적인 중국통이다. 주중국대사관 공사 당시 역사적인 한·중 수교가 성사됨으로써 그의 중국 전문가 이력은 더욱 화려하게 빛났다. 김 장관 자신이 주중대사 시절 밝힌 것처럼 그는 한·중 수교 15년 기간 가운데 10년을 근무했다.

그는 중국의 유력 인사와도 친분이 두텁다. 탕자쉬안 외교담당 국무위원을 비롯해 왕이 부부장, 다이빙궈 부부장과도 친하다. 2001년부터 2008년까지 6년 5개월 동안 두 대통령에 걸쳐 주중대사직에 장수하게 된 것도 바로 그의 이런 능력 때문이다.

보수적 성향의 남주홍 장관 후보자가 낙마하고, 통일부 장관에 김 장관이 내정됐을 때 민주당은 적이 안심했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인 김원웅 의원(통합민주당)은 “국민의 정부 시절 발탁됐고 참여정부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았기 때문에, 인사청문회에서 김 장관에 대해서 통합민주당 의원들이 우호적이었다”고 말했다. 덕분에 인사청문회도 순조롭게 넘어갔다.

“순하고 전형적인 엘리트 공무원”
그와 함께 햇볕정책을 이끌었던 인사는 대부분 그의 반대편에 서 있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그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민주당 차영 대변인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되게 좋은 분’이다”라고 평가했다. 차 대변인은 “순하고 전형적인 엘리트 공무원”이라고 덧붙였다. 당시 청와대 여성 비서관들에게는 해외 방문 후 머플러를 선물할 정도로 다정했고,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차 대변인은 당시 김대중 대통령에게서 김 장관이 특유의 성실성으로 인정받았다고 전했다. 중국 대사로 발탁된 것도 DJ의 높은 평가 덕분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외시 2년 후배인 송민순 전 장관은 “김 장관은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정해지든 간에 100% 성실하게 일한 분”이라면서 “방향이 한 번 정해지면 그 방향으로 가는데 모든 것을 다 바친다”고 평가했다. 송 전 장관은 “김 장관만큼 성실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장관 개인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와는 달리 그의 최근 활동에 대해서는 날카로운 비판이 가해졌다. 차 대변인은 “통일부 장관의 일련의 발언이 통일부 직원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해보면 너무 과격한 발언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송민순 전 장관은 “장관이라는 자리를 맡으면 바람에 시달리게 된다”면서 “그러나 장관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우리 정부의 당연한 입장인 핵포기 문제를, 북한과의 교류 전진기지인 개성공단 문제와 연관시켜 발언한 것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10년 동안의 햇볕정책이 잘못됐다는 발언에 대해서도 송 전 장관은 “북한이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해서 10년 뒤로 돌아가겠다는 것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원웅 의원은 “김 장관이 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김 장관이 임명권자인 이 대통령의 코드를 맞추려고 무리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장관은 ‘동명이인’이라고 꼬집은 차 대변인의 논평 발표 후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직·간접적으로 차 대변인에게 ‘자신을 믿어달라’는 식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졸지에 ‘영혼이 없는 공무원’의 대표적인 인물로 부각된 김 장관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지 궁금하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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