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 ‘업무상 재해’로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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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우물(忘憂物)

직장인들의 회식 장면.

직장인들의 회식 장면.

우리 조상은 술을 온갖 시름을 잊게 하는 물건이란 뜻으로 망우물(忘憂物)이라고 불렀다. 세상사에 지친 몸과 마음을 술을 벗 삼아 위로하며 살아가던 것이 우리네 삶이었다. 고층 건물과 자동차들, 그리고 각종 편의시설로 꽉 찬 현대인의 생활에서도 별반 달라진 것은 없다.

계절이 바뀌면서 해가 길고 날이 따뜻하다. 때맞춰 회사들은 대부분 겨우내 움츠렸던 회사 분위기를 추스르기 위해 야유회나 부서 회식 등 단합 차원의 술자리를 마련한다. 그리고 그런 자리에서는 으레 술잔이 오가게 마련이고, 분위기가 고조되어 거나하게 술기운이 돌게 마련이다. 이런 자리가 아무런 사고 없이 마무리되기를 바라기는 회사 측이나 직장인이나 모두 한마음일 것이다. 그러나 종종 생각하지 못한 사고가 발생해 본인뿐 아니라 가족에게 깊은 시름을 안겨준다.

업무시간 도중 발생한 사고라면 그나마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상의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아 요양급여, 휴업급여 또는 유족급여 등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야유회 뒷풀이 사고는 인정 못 받아
그런데 그 외에 야유회나 뒤풀이 회식 자리에서 사고를 당하는 경우는 어떨까? 회사 야유회에 참석했다가 이어진 술자리에서 사고를 당한 김모 부장의 경우를 살펴보자.

서울에 사는 ㄱ회사의 김 부장은 회사가 개최한 춘계야유회 및 뒤풀이 회식에 참석했다. 오후 3시쯤 공식적인 회식이 끝나갈 무렵, 분위기에 휩쓸려 일부 부하직원과 자리를 옮겨 한잔 더하게 되었고, 그러던 중 술집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이 사고로 김 부장은 한 달간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큰 상해를 입었고 몇 달간 휴직을 한 끝에 결국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 후 김 부장은 병원치료비와 입원 중 받지 못한 급여 등을 보상받기 위해 근로복지공단(관할지사)에 요양승인 및 휴업급여 등을 신청했다. 그러나 공단은 이 사고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5조 제1호에서 규정하는 ‘업무상 재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김 부장의 요양승인 신청 등을 거부했다. 그리고 법원도 “회사가 개최한 야유회 및 회식에 참석했다가 공식적인 자리가 끝난 후 분위기에 편승해 일부 직원이 술집으로 자리를 옮겨 술을 마시던 중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상해를 입은 경우 업무 관련성 및 업무 기인성을 인정할 수 없으므로 ‘업무상 재해’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해 김 부장의 청구를 기각했다.

만약 김 부장이 회사가 주관하고 비용을 부담했던 공식적인 회식 자리에서 이런 사고를 당했다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와 같이 공식적인 회식자리에서 벗어난 술자리 모임에서 발생한 사고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기 어려운 것이다. 즉 회식 등 술자리가 모임의 목적, 참가의 강제성 및 비용 부담 등의 사정에 비추어 회사의 지배관리 범위 내라고 보기 어렵거나 피해자가 모임의 순리적인 경로를 일탈한 경우에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기 어렵다.

그렇다면 접대를 위한 회식 자리에서 사고를 당한 경우에는 어떨까? 이런 경우 업무 관련성과 업무 기인성이 인정되어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공식적 자리를 넘어 소위 2차 술자리를 갖던 중 발생한 사고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기 힘들다.

주의할 점은 비록 회식 자리를 회사 업무의 연장선으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회식을 마치고 귀가하는 도중에 발생한 사고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리고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아 보상을 받기까지 당사자 및 그 가족은 정신적·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에 처한다는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매번 술자리를 거절하기도 그렇고, 때론 자기가 원하지 않더라도 술을 마실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다. 비록 매번 거절하기가 어렵더라도, 나와 가족들을 생각해 한 번쯤 절주(節酒)해보는 것은 어떨까.

김병철<법무법인 한승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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