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민주당 비례대표 1번 이성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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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계 대모’서 야당 정책전문가로

[인물연구]통합민주당 비례대표 1번 이성남

‘금융계의 대모’로 불렸던 이성남(61) 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이 통합민주당 비례대표 1번에 낙점됐다. ‘비례대표 1번’은 선거판에서의 상징성 때문에 여야 모두 고심 끝에 결정한다.

‘금융계의 대모’ 통합민주당 이성남 후보, ‘빈민의 대모’ 한나라당 강명순 목사의 1번 지명은 당의 색깔로 볼 때 언뜻 뒤바뀐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비례대표 1번의 면면은 정당의 부족한 이미지를 메우는 수단으로 활용돼왔고, 이번도 예외는 아니다.
한나라당이 여성 빈민운동가를 1번에 배치한 것은 ‘강부자 내각’이라는 비난을 의식한 인선이라고 볼 수 있다. 통합민주당이 여성 금융 전문가를 1번으로 낙점한 배경엔 경제 살리기 정책이 한나라당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주고 싶었던 면이 강하게 작용했다.

‘강단과 소신’ 지닌 첫 여성금통위원
이성남 전 금융통화위원은 금융계의 대모로 인정받는 정통 금융인이다. 그 분야 여성 중엔 보기 드문 전문성과 능력을 인정받아 법조계로 치면 ‘대법원 판사’에 해당하는 금통위원 자리에 올랐다.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 위원이다.

그는 1947년 서울 생이다. 경기여고와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한 후 1969년 씨티은행에 입행하면서 금융계 커리어를 쌓기 시작했다. 씨티은행에서도 그는 승승장구, 요직을 거치며 고속 승진했다. 한국 MIS(Management Information System) 부장과 한국영업담당 총지배인, 한국재정담당 수석 등이 씨티은행에서 그가 거쳐온 주요 보직이다. 1999년 금융감독원 검사총괄실장을 시작으로 부원장보까지 지냈고 국민은행 상근감사를 거쳐 결국 최초의 여성금통위원으로 입신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는 ‘강단과 소신’이다.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시절부터 그의 이런 점이 두드러져 주변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당시 김정태 국민은행장이 이 후보를 국민은행 감사로 영입한 것도 그의 ‘독립적인 품성’에 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세스 스마일’ 별명에 육성의 리더십
그는 ‘이헌재 사단’의 일원인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정작 이헌재 전 금감위원장은 강직한 소신을 굽히지 않는 이 후보를 어려워했다. 이 위원장이 일정에 쫓겨 미처 결제를 하지 못하면 복도에서 앞을 가로막아 기어코 사인을 받아내고, 소위 ‘모피아’(유력 재무관료 그룹)들과의 싸움에서도 결코 밀리지 않는 입심과 패기를 과시하기도 했다. 그를 스카우트했던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도 이 후보를 ‘좌지우지’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강직한 성품에도 불구하고 통화정책에 관해서는 평소 유연한 상황 분석과 대응책을 내놓았다. 그래서 금통위원 시절 내내 ‘불편부당’하다는 내외의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8월 그는 미국의 주택경기 냉각과 중국 경제의 둔화, 경기선행지수 하락 등을 이유로 콜금리 동결을 주장하기도 했다.

통합민주당이 이 후보를 1번으로 공천한 데는 그의 품성과 함께 부패지수 제로의 근검성실한 공직 생활 태도가 높은 평점을 얻었기 때문이다. 노력하는 자세와 치밀한 처신에도 호평이 이어졌다. 영문학도답게 영어에 능통하지만 과거 금감원 부원장보 시절부터 새벽에 출근해 사무실에서 원어민 강사로부터 아침 수업을 들었다. ‘잘 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최고’를 지향해야 직성이 풀리는 그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삽화다.

금감원에 들어가 586급 컴퓨터를 무려 386대나 주문한 일은 그의 강력한 추진력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로 지금도 회자된다. 당시 386컴퓨터를 다루기에 바빴던 금감원 직원들에게 예산에도 없던 최신형 컴퓨터를 사준다고 하자 간부들은 모두 반대하고 나섰다. 그는 “제대로 된 인프라 없이 어떻게 금융 선진화를 하냐”며 밀어붙여 컴퓨터 물갈이를 관철시켰다.

그는 억대 연봉자 반열에 들어선 후에도 한동안 허름한 아파트에 전세로 살았다. 그를 잘 아는 한 지인은 “금융계의 화려한 경력을 재산 축적의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아니겠느냐”며 이 후보를 치켜세웠다. 금감원 부원장보 시절에는 붐비는 등교시간에 고등학생들과 함께 좌석버스를 타고 출퇴근하기도 했다. 그는 서울 서대문의 아파트, 경기 성남의 오피스텔 등 4억7062만 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금융인 시절 이 후보의 별명은 ‘미세스 스마일’이었다. 업무적인 문제로 찾는 직원도 많았지만 그에게 인생 상담을 청했던 부하도 적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리더십을 ‘육성의 리더십’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자신이 모든 것을 끌어안고 고민하기보다 후배들의 능력을 파악하고 이들을 키워 업무에 활용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아무리 유능한 리더라도 모든 분야에 정통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품이 넉넉해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스타일이라 식사 약속도 오래전 ‘예약’이 필요할 만큼 지인과 인맥이 두텁다.

대학 시절 서울지역 영어 동아리 멤버였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도 이 후보의 절친한 지인 중 한 명이다. 지금도 “운찬아”라고 부를 정도로 두터운 친분을 과시한다. 정 전 총장의 대선 출마가 이슈로 부각될 때 당시 이 후보가 속했던 지인 그룹이 정 전 총장에게 모종의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금통위원 시절 그의 마당발 기질은 국제적으로도 위력을 발휘했다. 그는 국제금융시장 참가자들과도 끊임없이 정보를 교류했다. 정책은 물론, 경제 전반에 대한 시장 정보에 밝아 그를 남성 위원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했던 당시 한국은행 실무진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최고가 되려고 한 적은 없다. 언제나 최선을 다했을 뿐”이란 말을 자주 한다. 그를 비례대표 1번으로 지명한 통합신당은 향후 금융, 재정 정책 입안에 관한 한 가장 출중한 전문가를 영입했다는 자체 평가를 내리고 있다. 여성 금융 전문가라는 상징성을 넘어, 향후 4년간 금융정책을 구체적으로 입안하는 ‘정책의 대모’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한기홍 편집위원 glutton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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