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일성경기장에서 질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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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예선 남북대결 평양 개최 무산된 속사정… 패배할 경우 북한 관중 ‘실망감’ 우려

남북한이 3월 26일 중국 상하이 훙커우 스타디움에서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전을 치른다. 온 국민이 기대했던 남북을 오가며 경기를 펼치는 ‘코리안 더비’가 성사되지 않아 안타깝다. 우여곡절 끝에 월드컵 예선 경기 장소로 중국이 결정됐다.

지난 2월 중국 충칭에서 열린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한의 대결 장면.

지난 2월 중국 충칭에서 열린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한의 대결 장면.

남북한은 2010 남아공월드컵축구 아시아 예선 대진표에서 요르단, 투르크메니스탄과 함께 C조에 속했다. 월드컵 예선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이다. 그 때문에 남한은 3월 26일 평양을 방문해 원정경기를 치르도록 돼 있었다. 하지만 뜻밖의 암초로 평양 경기가 무산됐다. 북한은 월드컵 경기 실무 협상에서 시종일관 남한의 북한 방문 경기 시 김일성경기장에서 태극기를 걸 수 없으며, 애국가 대신 아리랑을 연주하자고 주장했다. 그뿐 아니라 남한의 축구 팬인 ‘붉은 악마’의 응원도 불허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월드컵 경기는 국제축구연맹(FIFA)이 주관하는 경기로 상대국의 국가와 국기를 게양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남북한이 끝내 합의를 보지 못해 FIFA의 중재로 남북한의 월드컵 예선이 제3의 장소인 중국에서 열리게 된 것이다.

평양 한복판에 태극기·애국가 용납 못해
북한은 왜 국제적인 룰을 무시하고 남한의 국기와 국가를 거부했을까. 북한의 상징인 김일성경기장에서 그동안 태극기가 펄럭이고, 애국가가 연주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평양 모란봉 기슭에 있는 김일성경기장은 원래는 평양공설운동장이라고 불렸다. 김일성 주석은 해방 직후인 1945년 10월 중국에서 귀국해 바로 이곳에서 청중들에게 모습을 보이며, 첫 연설을 했다. 당시 평양 시민들은 김일성 주석을 보고 “항일 무장군대를 이끌었다는 김일성 장군이라는 사람이 저렇게 젊을까” 하는 감탄사를 연발했다고 한다. 이후 평양공설운동장은 1982년 4월 김주석의 80회 생일을 맞아 현재의 규모(수용인원 10만 명)로 증·개축하고 이름도 김일성경기장으로 바꿨다.

북한은 대내적으로 남한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남한은 아직도 미수복된 지역으로 통일의 대상이다. 이렇게 볼 때 10여 만 명의 북한 관중이 운집한 평양의 한복판에서 태극기가 휘날리고 애국가가 울려퍼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노릇이다. 더구나 객관적인 전력상 남한이 북한보다 한 수 위여서 남한이 경기에서 이긴다면 북한 관중들의 실망감은 더 클 것이다. 통제사회인 북한에 유럽과 같은 훌리건은 없지만 순간적으로 관중들이 게임에 져 흥분한다면 감당하기 어렵다. 실제로 북한은 2005년 3월 김일성 경기장에서 치른 독일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 B조 3차전 이란과 홈경기에서 심판 판정에 격분한 관중들이 병과 의자 등을 그라운드에 내던지는 난동을 부렸다. 그 후 북한은 제3국(태국)에서 일본과 무관중 경기를 치르는 중징계를 받기도 했다.

북한 주민뿐 아니라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축구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는 남한의 프로 리그와 비슷한 1, 2, 3부 리그와 청년 리그, 각 공장팀이 있다. 1부 리그에는 4.25팀, 소백수팀, 기관차팀, 압록강팀 등 실력 있는 15개 팀이 있으며, 2부와 3부에는 각각 40개, 80개 팀이 있다. 세계 상위권 대열에 있는 북한 여자팀도 선수층이 두텁다. 북한은 주요 체육단에 여자 축구팀 보유를 의무화하고있다. 평양에 6개 팀이 있으며 전국적으로 12개 여자 축구팀이 있다.

김정훈 감독이 이끄는 북한 대표팀은 최강 클럽팀인 4.25팀 소속 선수들이 주축이며, 보스니아 리그에서 뛰고 있는 홍영조와 일본에서 뛰고 있는 정대세(가와사키)가 결합해 최강의 라인업을 구축하고 있다.

북한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아시아 최초로 8강 신화를 이룩했고, 남한은 2002년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기록했다. 3월 26일은 남북한 중 한 쪽의 꿈(★)이 이뤄지는 날이다.

<권순철기자 i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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